작년에 쓴 미국 대학 졸업장의 가치에 대한 글 '미국 대학과 일자리의 변화: 토발과 윌 이야기' 말미에 합리적 잔혹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몇몇 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을 하셔서 관련 글을 정리해 봅니다.
미국 대학과 일자리의 변화: 토발과 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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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존엄사 찬성 여론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쉽지 않은 문제에 부딪힙니다. 우선 18세 미만 청소년에도 존엄사를 허용할 것인지 육체적 질병이 아닌 정신과적 질환에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다수 국가에서 부정적 의견을 보이고 있습니다.
* 미성년과 정신질환에 대한 존엄사 허용 여부
존엄사에 대해 반대하는 측은 인간의 생명권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더 키울 것이며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자살을 쉽게 만들 수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더라도 생명을 보호해야 한다며 존엄사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구 국가들은 점점 존엄사의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미성년자라고 해도 극심한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본인이 가족과 협의해서 가능하게 해줘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또한 병의 속성이 문제가 아니라 고통의 정도가 판단의 기준이어야 하며 정신적 질환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왜 독일과 스웨덴의 의사 조력 존엄사의 지지율이 낮을까?
한편 다시 맨 위 그래프로 돌아가면 의사의 조력을 얻어 죽을 것인지 스스로 죽을 것인지에 대한 여론은 모든 국가에서 일반적 찬성 비율보다 낮습니다.
그런데 독일은 유일하게 의사의 조력 지지율이 세개 존엄사 유형 중 제일 낮은데 The Economist는 이를 제3제국의 장애인에 대한 처리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을 하였습니다. 즉, 의사에게 절대적 권한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불신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만약 독일의 특징이 나치 때문이라면 자기 의지 존엄사보다는 높지만 의사 조력 존엄사의 비중이 비교 대상 서유럽 국가 중 가장 낮은 스웨덴도 사민주의적 우생학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나치의 잔혹 행위에 비해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민주의 나라 스웨덴의 어두운 이면을 이전 글에서 다시 인용해 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은 자립적 인간에 큰 집착을 보였는데 따지고 보면 임금노동을 통해 산별노조의 노조원이 되고 고율의 세금을 납부하는 노동력이 있는 인간을 자립적 인간의 모델로 봤던 것 같습니다. 즉, 장애가 있거나 유전병이 있는 사람들은 사민주의가 원하는 노동력을 갖춘 자립형 인간에 포함되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비록 나치의 인종주의적 우생학과는 뿌리가 다를지 모르지만 공통된 국가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로 자립형 인간이 되기 어려운 사람들을 추려내어 후대를 잇지 못하도록 강제로 불임 수술을 시키기로 한 것입니다.
스웨덴 웁살라에서는 1922년 Institute for Racial Biology 연구소가 설립되어 우량 형질에 대한 연구를 시행했으며 1934년에는 강제 불임 수술이 가능하도록 불임법을 제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스웨덴 당국은 1935년에서 1976년까지 무려 6만 3천 건의 강제 불임 수술을 유목민이나 정신지체자 등 자립이 어렵다고 판단된 부류의 여성들에게 실시했습니다.(물론 모든 수술이 비자발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그 경계선은 매우 모호하였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나치의 만행이 공개된 이후인 1945년 불임 수술 건수가 1,747 건이나 되었으며 1947년에는 2,264 건으로 오히려 대폭 증가한 것입니다.
스웨덴 사민주의의 이론가이자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한 뮈르달 부부는 이러한 강제 불임 수술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였으며, '사회정책과 인구 자질의 향상'이라는 책을 1934년 출간하면서 이 조치의 정당성을 옹호하였습니다.(사회민주주의의 시대, 프랜시스 세예를스테드 지음)
이미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세계에서 가장 세련된 사회복지 체계를 구축했던 스웨덴 사민당이 나치의 인종범죄에 대한 세계적 규탄 와중에도 노동력을 상실한 우려가 있다는 명목으로 마이너리티에 대한 강제 불임을 시행한 것은 정말 놀라운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국가적 범죄가 공개된 것이 1997년 스웨덴 일간지 Dagens Nyheter가 순수 혈통을 만들기 위한 목적의 강제 불임에 대한 기사 때문이라는 점도 놀랍습니다.
사실 이런 우생학에 근거한 강제 불임법은 이웃 나라인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도 각가 1929년과 1934년 제정되었으며 노르웨이에서는 1977년까지 4만 4천 건이나 시행되었다고 하니 스웨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생학적 불임 수술법이 제정된 국가는 나치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노르딕 국가들이 유일(사실 비슷한 강제불임 시술은 미국이나 호주 등지에서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하다고 합니다.(The Nordic Mode by Mary Hilson)
노동력이 있는 자립형 임금 노동자가 단일 노조원으로서 공동체에 복무해야 한다는 스웨덴 사민주의자들의 이상에 대한 집착은 나치나 볼셰비키가 전쟁이나 내전 기간 보였던 극단적 전체주의적 폭력성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또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적 광기의 하나였음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아직도 스웨덴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새로운 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불임 수술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EU에서 인권침해로 지적하고 있는 조항이라고 합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신의 조국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의 반열에 올려놓았지만 멀지 않은 과거에 전체주의적 망령이 숨겨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행복은 개인의 자유주의에 더 가치를 두었던 국가의 시민들이 느끼는 행복과는 약간은 다른 의미일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