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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23 00:33:42
Name 눈시
Subject [일반] 일본, 섭정의 역사 - 3. 이렇게 된 김에 전국시대 얘기나 실컷~



1560년의 각 다이묘들 상황. 비와호(가운데 파란 호수요) 오른쪽에 쪼그맣게 oda가 보입니다.

전국시대에 활약한 다이묘들을 센고쿠 다이묘라 부릅니다. 하극상이든 아니든 자기 능력으로 올랐기에 다들 대단한 능력자였지만, 그 한계 역시 컸습니다.

일단 능력으로 올랐지만 일본의 사회 자체를 바꾸진 못합니다. 영향력을 넓힐수록 다른 다이묘들은 물론 토착 호족, 국인(國人)들과 손을 잘 잡아야 했으니까요. 애초에 영지가 얼마나 넓고 (= 수확량(석고)이 얼마나 많고) 힘이 얼마나 세느냐에 따라 다이묘냐 아니냐가 갈릴 뿐이니까요. 특히 하극상을 저지른 자들이 그랬죠. 자신도 주인 가문을 누르고 오른 마당에 다른 자들에게 자기에게 충성하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저 힘과 계략으로만 그들을 누를 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찍어누르기만 하면 반항도 거셌고, 힘이 약해지면 우르르 배반하고 다른 강대국이 나타나면 거기 달라붙기도 했습니다.

이러니 한 지역을 차지할 능력이 있더라도 그렇게 지역강국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죠. 주고쿠를 차지한 모리나 간토(관동)을 차지한 호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들도 명분이나 권위를 내세우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했죠. 호조부터가 옛 가마쿠라 지역을 힘으로 차지했기에 명분이 부족했고,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세웠던 하치만궁(팔번궁)을 복원하고 싯켄이었던 호조씨의 계승을 자처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진짜든 아니든) 다들 겐지와 헤이시의 후계를 내세웁니다. 한반도와 연관 깊던 주고쿠에서는 오우치(대내)씨부터 우키타 가문이 백제의 계승을 내세우기도 했구요. 여기에 권위를 세우기 위해 귀족들의 문화를 따라하기도 했습니다. 차를 마시는 다도(茶道)도 이런 가운데서 커졌죠.

혼인을 하고 양자를 보내면서 다른 가문과 손을 잡기도 했습니다. 모리가 대표적이죠. 둘째와 셋째를 각기 깃카와, 고바야카와 가문에 보냅니다. 둘 다 카와(川)자가 붙기에 "모리의 두 강"이라 했고 많은 활약을 합니다만, 이것부터가 모리가 호족 연합 수준이었음을 말해주죠. 어디든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케다가 강하다 우에스기가 짱이다 해도 여기서 못 벗어났죠.

+) 한국사에서 이런 걸 볼 수 있는 건 역시 후삼국시대죠.

무사도가 차츰 발전하고 있었습니다만, 일본과 서양에서 좋아하는 그 사무라이랑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대대로 가문을 모시는 가신들도 있었지만, 많은 무장들은 필요에 따라 주인을 바꿉니다. 아예 각 전투에서 어떤 공을 세웠다는 증명서를 발급해줬고 이걸로 다른 가문에서 일했습니다.

+) 이 때문에 전공을 평가할 때는 처음으로 적을 공격했다(일번창)는 등 시비 붙지 않게 공을 자세히 적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도도 다카토라. 옥포해전 때 깨진, 일본군의 수군 대장이었죠. 주인을 일곱번이나 바꿨다고 합니다.

유교식 충성보다는 주군이 내려준 은혜를 갚는다는 측면이 더 강했습니다. 때문에 "xx에 대한 의리는 다 했으니 나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식이었죠. 봉건사회의 기사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물론 오랜 가신으로 주군에게 절대 충성하고 주군이 죽으면 따라 죽거나 복수를 한 후 할복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만, 이 역시 주군이 없으면 자신들도 망한다는 개념이 더 강했구요.

전국시대에 입문할 때는 오히려 이게 더 매력으로 다가왔죠. 벼슬 따위 무슨 소용이냐 임금이 날 내쳐도 그저 충성할 뿐~ 이런 거 보다가 "이번 싸움으로 포상 얼마나 받았어요?" "500석? 출세했다~~" 이런 게 참 신선했거든요.


오다 노부나가, 일본인들이 제일 존경하는 위인이라고 하죠. 그는 좀 달랐습니다.

1551년 아버지 노부히데가 죽고 그가 가독을 상속받았을 때, 유리한 부분은 있었습니다. 일단 그의 영지 오와리가 작아도 수확량이 좋은 땅이었고, 노부히데가 상업을 진흥시키면서 가문의 부도 많았죠. 거기에 노부히데는 조정의 권위를 이용할 줄 알아서 많은 돈을 바치면서 좋은 평을 받고 있었죠.
하지만 불리한 부분도 컸으니, 잘 나가던 노부히데는 북쪽의 풍요로운 미노를 노리다가 계속 깨졌고, 결국 포기하고 혼인으로 동맹을 맺습니다. 게다가 오다가의 방계라 오와리도 다 차지하지 못 했죠. 여기에 노부나가가 놀기만 하면서 별명이 멍청이였고 -_-; 동생 노부유키를 지지하는 중신들이 많았습니다. 노부나가는 두 번이나 배반한 동생을 죽이고 본가까지 삼키면서 오와리를 통일했지만, 60년에 큰 폭풍이 들이닥쳤죠.

오다가의 동쪽에는 동해(일본의 동해요) 제일의 무장이라는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있었고, 그 북쪽에는 카이의 호랑이 다케다 신겐이, 또 그 동쪽에는 사가미의 사자 호조 우지야스가 있었습니다. 저 위에 북쪽에 있는 에치고의 용 우에스기 겐신까지 해서 참 무서운 다이묘들이 있었죠. 지들끼리 싸워서 큰 문제는 안 됐다가 이마가와-다케다-호조가 서로 혼인해 동맹을 맺어버립니다. 이제 이마가와는 마음껏 서쪽으로 갈 수 있게 되었죠.

결국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대군을 일으켜 오와리를 칩니다. 노부나가는 소수로 이마가와 본대를 쳐서 한 방에 역전을 노렸고, 성공합니다. 이를 오케하자마 전투라 합니다. 일본의 역사를 바꾼 전투죠. 비가 올 때를 노려서 기습했다는데 현재는 그냥 죽을 각오로 공격했는데 운 좋게 비바람이 불어서 이마가와군이 혼란에 빠진 운빨이라는 설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 아무튼 워낙에 극적인 전투라서 정말 많이 띄워진 전투죠. 최고의 무사라는 요시모토는 귀족들 흉내내는 소인배로 비하됐구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노부나가가 구세대의 상징인 요시모토를 죽였다 뭐 이런 식으로요. 요새야 각종 매체에서도 좀 제대로 그려줍니다만.  요시모토가 상락(=상경)을 노렸다고 하는데 이 역시 그 근거가 없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걸로 강력했던 이마가와는 몰락, 노부나가는 이마가와에서 독립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어 후방을 안정시킨 후 아버지의 숙원이던 미노를 노립니다. 그 전에 장인이었던 사이토 도산이 자식에게 배신당해 죽으면서 명분도 생겼죠. 67년에 마침내 성공하면서 노비 평야라고 불리는 미노와 오와리에 걸친 비옥한 땅을 지배하에 두게 되죠. 이 때 미노의 이나바 산성을 기후성으로 바꾸면서 천하포무를 시작합니다. 무력으로 천하를 제압하겠다는 거였죠.

이 때부터 그는 뻗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요시아키가 의지해 오면서 그를 쇼군으로 옹립하겠다 약속했고, 그 명분으로 상경을 시도한 겁니다. 지나가는 길에 있는 다이묘들과 동맹을 맺고 힘으로 누르면서 말이죠. 분열돼 있던 미요시는 이를 막지 못하니 68년,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노부나가에 의해 쇼군으로 옹립됩니다. 마지막 쇼군으로 말이죠.


1570년의 상황, 오다가 많이 커졌죠.

노부나가의 상경은 삼국지에서 조조가 헌제를 얻은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쇼군의 권위를 이용해 다른 다이묘들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된 것이죠. 거기다 아버지와 자신이 조정에 바친 정성(=돈)으로 조정의 권위도 이용할 수 있었구요. 다른 이라고 그걸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호소카와 등 근처의 가문들은 쇼군을 가지고 놀았고, 서쪽의 오우치도 상경해서 쇼군을 갈아치운 적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호소카와 등은 그 정도에 만족했고, 지방의 강력한 다이묘들은 호족연합체라는 특성상 중앙에 오래 신경쓸 수가 없었습니다. 노부나가는 이들과 달리 지방 다이묘면서도 교토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걸로 일본 통일을 노립니다. 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것도 그럴 수 있었던 이유겠습니다만. 정치적 가치는 물론이고 수도권인만큼 경제적 가치도 어마어마했죠. 그건 곧 국력=군사력으로 연결됐구요. 하지만 평야가 많고 교통의 요지라는 것은 방어하기도 힘들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그걸 다 각오한 것이었죠.

+) 노비 평야가 있는 일본의 주부(중부)지방, 호조->이에야스가 있는 관동, 교토가 있는 관서... 지금도 일본의 대도시권이죠.

노부나가가 전투에서도 충분히 잘 하긴 했지만 결정적인 장점은 이런 대국을 볼 수 있고 실제로 시도했다는 점이죠. 거기에 상업의 가치를 잘 알고 키웠다는 부분도 컸습니다. 다른 다이묘들이 이미 한 거긴 하지만 상인들에게 물리던 자릿세를 없애고 지역을 이동할 때 물리던 세금도 없애면서 상업을 진흥시킵니다. 거기에 오사카 쪽 항구인 사카이를 손에 넣었고, 바다를 통한 무역을 손에 쥡니다. 북쪽의 비와호를 통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이를 통해 얻는 이득은 물론이고 당시 뜨고 있었던 철포(=조총) 등을 다수 운용할 수 있었고, 서양인들을 보호하면서 이들의 문물도 보다 더 쉽게 받을 수 있었구요. 노부나가의 진정한 능력은 이런 정치력이라고 봐야죠. 앞으로 얘기할 계속되는 위기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엄청난 경제력=군사력과 능력을 중시한 인재 기용이었습니다.


... 노부나가 얘기로 가니까 끝이 없군요. 자, 이제 다시 허수아비에게로 가 봅시다. 요시아키가 쇼군이 되긴 했지만 노부나가의 꼭두각시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시아키는 형 요시테루처럼 거기에 머물 생각이 없었습니다. 대담하게도 주변의 다이묘들에게 노부나가를 칠 것을 명령했고, 노부나가를 경계하거나 아예 적이었던 세력들이 한데 뭉칩니다. 70년경부터 시작된 이른바 "노부나가 포위망"이었습니다.

여기엔 혼인동맹을 맺은 아자이 가문도 끼어있었죠. 아자이의 오랜 동맹이었던 아사쿠라를 아무 말 없이 쳤으니 따지고보면 노부나가의 잘못입니다만 -_-; 이 때문에 위기에 몰렸을 때 후방을 맡아서 노부나가도 살리고 자기도 살아서 돌아온 출신도 하찮은 못생긴 무장이 있었으니 그 이름 기노시타 도키치로...

노부나가 포위망은 아사쿠라, 아자이, 미요시, 마츠나가 등이 합세했고, 여기에 불교 세력인 혼간지까지 끼어듭니다. 전국에 큰 인기를 얻었기에 오와리 근처에서도 혼간지의 봉기가 일어났고 큰 피해를 입었죠. 여기에 일본 불교의 성지로 여겨지던 히에이산의 불교 세력도 이들 편을 들었습니다. 노부나가가 이들을 학살하고 성지를 공격해 불태우기까지 했기에 잔혹한 이미지를 쓰게 됩니다. 자신은 그게 뭐 어떻냐고 하면서 불교의 악마인 제육천마왕이라 자칭하기도 했다네요 (...)

+) 그렇다고 역사대로 잔인한 이미지냐 하면... 학살 같은 경우 항복해놓고 다시 배반했기에 그런 게 컸고, 잔인하다는 에피소드는 창작된 게 많습니다. 고니시가 동래성 깨뜨리고 성 안 사람들을 학살한 것처럼 당시 일본인들은 배반하거나 철저항전할 경우 본보기로 학살하는 게 흔했습죠. -_-; 반대로 성주가 책임지고 할복하면 나머지는 다 살려주기도 했구요. 노부나가를 비롯해 이전 편의 마츠나가 등 피도 눈물도 없는 이미지를 가진 자들은 후대에 꾸며지거나 원래 그 시대에는 다 그렇게 했던 것인 게 많습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특히 잔인하다 할 케이스야 있겠지만요. 반대로 좋은 이미지 가진 무장은 그런 짓을 한 건 무시당할 때가 많구요. 흔치 않게 의(義)를 내세웠던 우에스기 겐신은 다른 영지를 공격, 백성들을 노예로 팔아서 부를 쌓았다죠. 한마디로 좋은 무장 나쁜 무장이야 당연히 있겠지만 의외로 많은 케이스가 [그래봐야 다 그런 놈들]일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죠. -_-a 뭐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이런 캐릭터 만들기 덕분에 지금도 전국시대가 인기가 많은 거겠습니다만.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노부나가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니... 73년 그 무서운 다케다 신겐이 포위망에 참가한 것입니다. 쇼군 탄압과 불교 탄압을 명분으로 말이죠. 그동안 다케다에게 저자세로 나가면서까지 동맹을 유지했고 장남 노부타다를 보내 혼인까지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신겐은 대군을 이끌고 이에야스를 치고 들어왔고, 포위망에 갇혀 있던 노부나가는 몇천 정도의 원군밖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헌데 이에야스도 의지의 남자라 오다를 배반하지 않고 싸웠죠. 깨졌지만요 ( ..) 그렇게 신겐이 오다 영지까지 오는가 하는 순간... 죽어버립니다. 이에야스가 님자나 조총으로 암살했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 통설은 병 때문입니다. 어쩌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기에 마지막으로 꿈 이뤄보자 이런 거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장 두려운 적 신겐이 죽었습니다. 노부나가는 더 이상 요시아키를 놔두면 안 된다는 결심을 하죠. 이미 신겐이 본거지 기후성으로 쳐들어올 때도 오히려 대군을 휘몰아 교토를 공격했고, (당시 교토는 상경 하경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상경을 불태우면서 조정을 통한 화친을 맺었습니다. 신겐이 물러난 후에는 다시 요시아키를 공격해 항복을 받고, 교토에서 추방해 버리죠. 이 73년을 무로마치 막부가 멸망한 해로 잡습니다. 다만 조정에서 정식으로 자르지 않았고, 여전히 모리, 우에스기 등 강력한 다이묘들이 그를 쇼군이라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이러니 노부나가도 죽이진 못 한 거겠죠.


노부나가는 기세를 몰아 포위망에 가담했던 아사쿠라, 아자이가를 멸망시킵니다. 이렇게 그를 괴롭히던 포위망은 붕괴되죠. 이 때 기노시타 도키치로라는 원숭이 닮은 놈이 옛 아자이가의 영지를 받고 다이묘가 됩니다. 이 때 이름을 바꾸니 하시바 히데요시죠.

노부나가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건 천하(일본-.-)통일이었으니까요. 요시아키도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습니다. 모리 가문으로 도망간 후 다시 다이묘들에게 헬프를 날렸죠. 심지어 노부나가의 가신 아케치 미츠히데에게도요. 아직 혼간지는 건재했고, 서쪽의 모리와 북쪽의 우에스기도 가담합니다. 이걸 2차 포위망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겐이 죽었다 한들 다케다가는 아직 강력했습니다.

75년,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츠요리는 다시 도쿠가와를 노립니다. 하지만 이번엔 사정이 달랐죠. 포위망은 붕괴됐고, 주력을 다케다에 쏟을 수 있었으니까요. 이 때 일어난 나가시노 전투로 많은 무장과 병사들이 죽었고, 노부나가는 다케다에 확실한 우세를 점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고 이에야스와 함께 7년간 천천히 다케다를 몰아붙여 마침내 멸망시킵니다.

이후 우에스기에 맞서 시바타 가츠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 등 주력을 북쪽으로 보냅니다. 이 때 히데요시가 가츠이에랑 싸우고는 혼자 철수해 버렸고, 가츠이에는 그냥 재해인지 겐신의 수공인지 홍수로 큰 타격을 입고 겐신에게 대패해 버립니다. 이 테도리가와 전투를 전국시대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전투라고 합니다. 또 큰 위기가 오는가 했는데... 겐신의 영지는 나름 좋긴 해도 지형 때문에 쉽게 밖으로 뻗기 힘들었습니다. 이 때도 겨울되면 길 끊기니 기 모아서 봄에 가자고 했는데 병으로 죽어버리니 이 해가 78년... 이후 양아들 카케카츠가 뒤를 잇습니다만 가츠이에 등의 맹공으로 세력이 많이 줄어듭니다.


서쪽에서는 여전히 혼간지와 싸우고 있었고, 더 남쪽 기슈에 있는 사이가슈(잡하중. 조총을 장기로 하는 호족 집단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항복한 김충선이 여기 출신으로 추측됩니다) 등도 골칫거리였습니다. 모리는 직접 싸우지는 않고 뒤에서 수군(=해적)으로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혼간지의 본거지인 현 오사카는 생산력도 좋고 방어에도 좋았죠. 말려죽이려 했지만 뒤에서 모리가 도와줬습니다. 안 되겠다 싶어 자신도 해적들과 손잡고 싸웠지만, 패합니다. 이에 또 머리를 굴려 더 거대한 함선을 만들고 겉을 철갑으로 둘렀다 합니다. 테코센, 철갑선을 동원한 해전으로 모리 수군을 박살내고 혼간지를 고립시켰죠. 혼간지는 버티고 버티다 결국 조정의 중재로 항복하고 본거지를 노부나가에게 내 줍니다. 이 때가 80년, 10년에 걸친 전투였습니다. 이 때문에 노부나가의 진정한 적은 혼간지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 본격적으로 모리 가문이 지배하는 주고쿠(중국) 정벌에 나섭니다. 총대장은 하시바 히데요시였죠. 다케다가 무너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큐슈, 시코쿠, 혼슈 사이에 있는 세토 내해를 지배하는 것일 거였습니다.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 것이죠.


히데요시, 아버지는 하급 아시가루였다고 합니다. 그보다 비천해서 끌어올린 게 그 정도라고도 합니다. 노부나가에게 오기까지 참 많은 전설들이 있죠. 일단 다른 자의 밑에 있다가 노부나가를 찾아와 임관했고, 회계 등 다양한 일을 맡아서 잘 해냈다고 합니다. 전투를 할 때는 주로 조략을 맡았는데, 계략이란 뜻이지만 거의 적 다이묘의 가신들과 호족들을 회유하는 걸 말합니다. 이들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건 누구 편에 붙든간에 자기 영지를 보전받는 것(+상으로 더 받는 것)이었고 흐름에 따라 계속 여기저기 갈아탔습니다. 후삼국시대의 호족들처럼 말이죠. 이들을 얼마나 잘 꼬시는가가 중요했는데, 일반 무장들은 하기 싫어하는 걸 히데요시가 도맡아 한 겁니다.
출신이 천한만큼 가신들에게 무시도 많이 당했지만 노부나가는 그를 갈수록 키워줍니다. 그 주군에 그 가신이었던 것이죠. 히데요시는 차츰 큰 군공도 쌓아갔고, 이 때에 이르러 다른 가로들(주요 가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습니다. 뭐 그래도 눈치는 보였는지 성을 하시바로 바꿨는데 그게 필두 가로인 시바타 가츠이에와 니와 나가히데의 성에 한 글자씩을 따 왔습니다.


처음 해야 했던 것은 오다와 모리 사이에 있던 하리마를 오다 편으로 돌리는 일, 여기서 자신을 천하로 이끌어준 구로다 간베에 요시타카를 만나게 됩니다. 모리를 두려워했던 호족들은 여기에 넘어가 오다로 갈아탔지만, 모리가 대군을 동원하면서 다시 배반하고 혼간지를 공격하던 오다의 가신 아라키 무라시게까지 배반하면서 고립되는 상황까지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구로다 간베에의 도움 등으로 그들을 다시 깨뜨리고, 서쪽의 우키타 가문도 항복해 오면서 차츰 우위를 가지게 되죠. 이 때 그만의 공성전을 보여줍니다.

당시 일본의 성들은 방어에 극화돼 있었습니다. 주로 산에 지었고 방어에 좋은 시설들을 뒀고 성벽도 이중삼중으로 지었습니다. 외성을 깨뜨리고도 내성으로 가려면 빙 둘러가야 했고 그 동안 공격을 다 받아야 했죠. 임진왜란 때 울산성 전투에서도 외성까지 먹어놓고 졌었습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공성전, 대포도 없었던 그 시대에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다양한 방법이 동원됐죠. 위에서 말한 조략으로 내부의 반란을 이끌어내거나 굶겨 죽이거나, 땅굴을 파거나 진짜 그냥 힘으로 밀어붙이거나 (...) 등등으로요. 히데요시가 주로 한 것은 굶겨 죽이기였지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포위 전에 미리 그 지역 쌀을 비싼 값으로 사서 비축식량을 없애기도 했고, 수공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러면서 별 출혈 없이 진격해 나갈 수 있었죠.

그렇게 수공을 펼치고 항복을 기다리던 빗츄 다카마쓰성(비중고송성) 전투 도중, 히데요시는 경악할 소식을 듣게 됩니다.


빨간색이 이 때인데, 참 많이 커졌죠?

영지가 넓어지면서 노부나가는 직접 싸우는 대신 가신들을 다이묘로 삼고 각 지역을 공략하게 했습니다. 북쪽은 시바타 가츠이에 등으로 우에스기를 상대하게 했고 동쪽은 다키가와 카즈마스를 보내 다케다를 멸망시키고 호조를 견제하게 했죠. 다른 방면에도 아케치 미츠히데와 니와 나가히데를 보냅니다. (이상 오다 사천왕이라 불립니다) 여기에 모리를 맡게 한 히데요시까지... 이렇게 각 방면을 맡았기에 후대엔 노부나가 휘하의 '군단' 혹은 '방면군'이라 불리게 됩니다.

선교사였던 루이스 프로이스는 그가 다이묘들에게 거만했으며, 마치 유럽 절대왕정의 왕처럼 행동했다고 기록합니다. 네, 일본에서 보기 힘든 중앙집권을 시도한 겁니다. 이전의 막부가 유력 다이묘들의 연합체였다면, 그 모두를 밟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겠다는 거였죠. 이러니 강한 다이묘들이 모여서 포위망까지 만들게 된 거죠. 이건 약한 다이묘나 호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바라는 건 자기들의 땅을 유지하는 것, 하지만 노부나가의 가신들의 가신이 되고 노부나가 편을 들어도 자기 땅을 뺏길 지경이었습니다. (다른 좋은 땅을 받은들 대대로 지배하던 땅을 잃는다는 거니까요)

노부나가 휘하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부나가 자신이 일벌레였고, 일 잘하는 자들을 중용했습니다. 그게 설령 배신을 한 자라 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필두 가로 시바타 가츠이에부터가 그를 한 번 배신했었고, 마츠나가 히데히사도 배신했지만 용서했죠. 하지만 일 못 하는 자에겐 아니었습니다. 대대로 자신을 모시던 사쿠마 노부모리를 혼간지와의 전투를 질질 끌고 부패했다는 이유로 잘라버립니다. 철저한 능력주의였죠.

이런 혁신적인 태도가 그를 천하인으로 만들어줬고, 현대에도 본받을 지도자로 평가받게 해줬습니다. 하지만 이건 곧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밉보이면 자기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게 됩니다. 노부나가가 겪은 수많은 배신을 이걸로 설명합니다. 당장 위에서 말한 하리마의 배신도 이거와 연결되죠. 모리 편을 들면 자신의 영지는 보장받을 수 있겠지만 노부나가 밑에서라면?

일본 전체로 보면 작을지 몰라도 노부나가는 일본의 호조의 관동을 빼면 일본의 꿀땅을 다 차지했습니다. 모리도 무너지고 있고 시코쿠를 지배해 가고 있던 초소카베도 노부나가에게 굴복한 상태였죠. 이제 노부나가가 어떤 정권을 만들지가 관심사였습니다. 그게 어떤 식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죽어버렸으니까요.

1582년, 히데요시는 노부나가가 직접 주고쿠로 와 주기를 청합니다. 노부나가는 이를 받아들였고, 동시에 초소카베 역시 정벌하기로 합니다. 굴복한다 하지만 시코쿠에서의 지배자는 필요 없었으니까요. 초소카베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도사 이외에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였습니다. 그가 계속 있었다면 모리도, 큐슈를 지배해 가던 시마즈도, 관동의 호조도 그렇게 되었을 겁니다. 누구도 자신에게 반항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력... 그가 바라던 거겠죠.

이를 지켜보던 조정에서는 쇼군직을 주겠다 했고, 나중에는 태정대신, 관백, 쇼군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합니다. 노부나가는 이에 대한 답을 주지 않은 채 죽습니다. 이 때문에 그가 아예 덴노까지 갈아치우려 했다는 추측까지 나왔고, 이를 두려워한 조정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를 이용해 그를 제거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쇼군 같은 경우는 그가 헤이시 쪽이었기에 관습적으로는 할 수 없었지만, 조정에서 주겠다 한 걸 보면 못 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진심이 무엇이었을지 참 궁금한 부분이죠. 그냥 답을 미뤘고 쇼군이 됐을거라고도 합니다만. 아무튼 우대신(우의정?)까지 오른 그였지만 조정의 관직을 다 내려놓고 주겠다는 것도 관심 없는 모습을 보이긴 했습니다.

1582년 혼노지의 변의 원인은 참 다양합니다. 위에서 얘기한 조정이 배후라는 점, 편지도 여러번 보낸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배후라는 것, 심지어 히데요시랑 짜고 죽였는데 히데요시가 배신때린 거라든가 (...) 서양 선교사들인 예수회가 배후 조종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 아케치 개인으로 보면 막판에 노부나가와 의견 차이로 계속 욕 먹긴 했던 모양입니다. 거기에 히데요시에게 원군으로 가면서 자기 영지를 다 뺏기고 모리를 잡으면 그 땅을 영지로 주겠다 했다는 점이 중요하게 나옵니다. 그 자신이 67세였고 뒤를 이은 자식은 19세였기에 자기 가문이 어떻게 될지 몰랐다는 점 말이죠. 대립이 계속되는 마당에 노부나가의 성격상 자기 가문에 대한 걱정, 거기에 노부나가만 잡으면 상황이 아예 바뀐다는 야망까지... 뭐 전 이런 쪽으로 봅니다.

아무튼 미츠히데는 노부나가의 명령으로 히데요시를 지원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고, 서쪽으로 가는 대신에 노부나가가 머물고 있는 혼노지를 공격해 그를 죽입니다. 노부나가는 아츠모리라는 노래에서 인간 오십년은 세상에 비하면 덧 없는 꿈(몽환)과 같다는 부분을 좋아했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 49세였습니다. 혼노지의 변을 다룰 때 도주를 포기하고 불을 지른 후 이 노래를 부르면서 할복하는 장면이 많죠.

이렇게 전국시대를 거의 평정한 영웅은 사라집니다. 아케치 미츠히데는 자신이 그 뒤를 이을 거라 생각했지만, 아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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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군의 천하가 열렸습니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히데요시, 그는 일생일대의 도박을 시도합니다. 아직 모리가 그 소식을 모른다는 것을 이용, 다카마쓰성의 성주가 할복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모리와 화친을 맺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토로 달려갑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돈을 다 병사들에게 주면서 이런 강행군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 멘붕한 히데요시를 설득한 것이 구로다 간베에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천하를 잡긴 했지만, 이 때문에 그를 경계하게 됐다고 하죠. 간베에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를 실행한 히데요시가 대단하긴 합니다. 모리는 뒤늦게 이를 알았지만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가 히데요시를 치지 않기로 합니다. 화친을 맺은 직후니 배신하면 안 된다는 것, 히데요시가 다음 천하인일테니 은혜를 베풀자는 거였죠. 이게 잘 돼서 모리는 영지를 전혀 잃지 않고 히데요시 정권에서 넘버 2, 혹은 (이에야스에 이은) 넘버 3가 됩니다. 하지만 다음 도박은...

https://pgr21.net/?b=8&n=53887
자세한 건 이 글을 봐 주세요~

미츠히데는 주변 다이묘들에게 자신을 지지할 것을 요구했지만 다들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고, 단 12일만에 히데요시가 돌아와 버립니다. 북쪽의 시바타 가츠이에를 더 경계했지만 정작 우에스기의 반격에 제 때 오지 못 했죠. 이렇게 준비가 안 된 채로 히데요시와 싸웠지만 대패, 그 자신도 죽게 됩니다.

뒤늦게 오다가의 중신들이 모입니다. 노부나가라는 카리스마가 죽은 상황에서 가신들은 군벌화 되었죠. 하지만 명분은 오다가에 있었습니다. 둘째와 셋째 중 누구를 다음 주인으로 옹립할 것인가에서 히데요시는 또 신의 한 수를 둡니다. 노부나가와 함께 죽은 첫째 노부타다의 어린 자식을 옹립한 것이죠. (저 노부타다는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죠. 그가 살았다면 또 어찌됐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래서 조조의 첫째아들 조앙과 많이 비교됩니다) 노부나가의 원수를 갚은데다 명분까지 틀어쥐었으니... 이제 히데요시의 세상이 열립니다.

+) 저 산보시는 커서 오다 히데노부가 됩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편을 들어서 망하게 되죠. 히데요시에게 이용됐지만 저 시대에 히데요시 없었으면 죽었을지도 모르니 이해가 됩니다.

이에 반격하는 셋째 노부타카와 필두가로 시바타 가츠이에를 격파하고, 또 반항해온 둘째 오다 노부카츠와 그와 손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맞섭니다. 이에야스에게는 계속 깨졌지만 전략을 바꿔 노부카츠를 압박해 화친을 맺었고, 명분을 잃은 이에야스에게 동생과 결혼시키고 어머니까지 인질로 보내면서 굴복시켰죠.

+) 이에야스를 이 때 없앴으면 더 강해졌겠지만, 이에야스는 후방의 호조와 손 잡고 있었고 전투에서 확실히 강하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오다와 오랜 동맹을 계속 맺은것도 있고 해서 함부로 다룰 수 없었죠.

이렇게 노부나가를 이은 천하인이 된 히데요시, 천하에 총무사령을 선포합니다. 사사로운 전쟁을 금지한 것이죠. 이를 어긴 시마즈가를 규슈 정벌을 통해 굴복시키고, 역시 거부하던 관동의 호조가를 멸망시킵니다. 각기 항복한 다이묘들까지 20만 대군을 동원했고, 이에 동북쪽의 (다테 마사무네라든가) 다이묘들까지 굴복하면서 천하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힙니다. 오다의 옛 중신들은 쳐 없애거나 영지를 옮겨버렸고 차츰 숙청했죠. 이에야스도 호조가 있던 관동으로 보내버리는데, 꿀땅이긴 해도 주인이 바뀌었기에 쉽게 다스릴 수 없을 것이고 이에야스가 약해질거라 예상했겠지만 이에야스는 훌륭히 그 지역을 다스려 버립니다. 이렇게 히데요시 정권의 넘버 2가 돼 버리죠. 이에야스는 이래서 못 건드렸고, 모리는 결정적일 때 자기편 들어줬으니 안 건드렸고, 나머지 중에 자기한테 위협될만한 세력은 철저히 밟아줬습니다.

+) 시코쿠의 초소카베나 큐슈의 시마즈나 관동의 호조나... 그냥 자기 땅을 인정해줬으면 히데요시한테 딱히 반항 안 했을 겁니다. 하지만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나 이런 대세력을 남겨둘 순 없었죠.

이제 히데요시가 어떤 정권을 만들 것인가가 관심사였는데... 특이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무사 출신이 아니었으니까요. 다른 가문들이 겐지, 헤이시의 후예를 칭한 것은 그나마 무사였기에 가능한 거였고 히데요시는 할 수 없는 거였습니다. 이 때문에 모리가 항복한 후 모든 걸 다 포기했던 아시카가 요시아키에게 양자로 삼아달라 했는데 참 근성의 사나이 요시아키는 거부했다 합니다. 이후 그는 히데요시의 말상대로나 살다가 죽습니다.

+) 요리토모와 맞섰던 고시라카와나 이 때의 요시아키는 음모나 꾸미는 찌질한 악역으로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들이 권력을 조정으로/막부로 되찾으려 온갖 애를 쓴 건 인정해야 될 겁니다. 막부와 맞선 고다이고 덴노도 포함해서 말이죠. 마치 마의태자나 이성계와 동맹이라도 맺어서 고려를 이으려 했던 공양왕처럼요. 물론 그게 그들이 정치를 잘 했을 거란 얘기는 아닙니다.

히데요시는 대신 조정에 접근합니다. 조정이 허수아비가 됐기에 실권이 없던 간파쿠, 관백직에 도전한 것이죠. 이건 쇼군보다 더 심해서 몇몇 귀족가문들이 돌아가면서 하던 상황이었는데, 그 중 관백을 맡던 후지와라의 고노에 사카히사에게 접근해 양자가 된 겁니다. 이렇게 관백이 된 것이죠. 명분상 쇼군보다 더 높은 자리였고, 조정을 이용해 일본을 통치하려 한 겁니다. 조정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그에게 도요토미(豊臣)이라는 성을 하사합니다. 미나모토, 타이라, 후지와라, 다치바나에 이은 제 5의 성을 만든 것이죠.

https://pgr21.net/?b=8&n=64120&c=2506559
+) 이런 성에 대한 설명은 로사님의 댓글을 참조해주세요.

히데요시의 권력은 막강했지만, 무사들처럼 오래 섬겨온 가신이 없는 게 그의 큰 약점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각 정벌을 끝낸 후 자기가 키워온 자들을 다이묘로 곳곳에 박았죠. 이렇게 다이묘가 된 자들이 고니시, 가토, 구로다 가문... 네 임진왜란의 1, 2, 3군이 바로 히데요시가 직접 키운 자들입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토지조사를 실시하고(태합검지라고 합니다) 백성들의 무기를 수거하는 도수령을 선포하는 등 일본의 안정에 나섭니다. 노부나가의 영향을 받고 자신의 능력도 있는지라 확실히 일본을 안정시키기에 좋은 정책들이었죠. 이에야스의 에도 막부도 이런 걸 거의 이어받습니다. 이대로만 갔다면 그 오랜 전국시대를 끝낸 영웅으로 남았겠습니다만... 호조 정벌을 끝내고 일본을 통일한 1590년, 그 후 2년만에 일본 역사에 없었던 전쟁을 일으켜버리니...

+) 새로 전쟁을 해야 하니 도수령 따위 나가리됩니다

임진왜란의 원인으로는 여러가지가 꼽힙니다. 현실적으로 공을 세운 무사들에게 더 큰 땅을 주겠다는 거라 합니다만, 그러기엔 욕심이 커도 너무 컸죠. 이게 틀린 말은 아닌 게 임진왜란의 주역은 자신이 키운 고니시, 가토, 구로다 등이었고 역시 확실한 자신의 편인 모리가문이 총대장이었습니다. 그 외에 시마즈 등 히데요시에게 맞섰다가 패배한 자들이 있긴 했지만요. 하지만 고니시가 화의를 주도하고 구로다 간베에도 화친을 밀어붙이다 잘리는 등, 이들도 끌려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애초에 새로 받은 영지도 제대로 관리 못 하고 전쟁을 시작했으니... 자신의 부하들의 입지도 세우고 땅을 늘려주려고 전쟁 일으켰다가 조선인들을 납치해 올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 오히려 힘을 약화시켜버립니다. -_-; 정작 전쟁에 못 나간 이에야스의 힘만 늘어버렸죠.

다른 이유로 꼽히는 건 역시 히데요시 자신의 열등감이었습니다. 쇼군도 못 됐고 조정의 힘을 빌어서 천하인이 된 상황, 조선 먹고 명까지 먹으면 그 권위는 일본 역사에서 다시 없을 거였으니까요. 비천한 출신이라는 열등감, 그런데 천하인이 됐기에 나온 끝없는 과시욕 (히데요시의 사치는 무시무시했습니다 -_-a), 해외에 관심 많은 노부나가보다 더 앞서나가겠다는 생각 등이 꼽힙니다. 뭐 노부나가도 해외 진출=조선 침략을 원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히데요시는 한국사에 참 커다란 피해를 주었죠. -_- 이렇게 바다를 건너 침략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권력이 엄청났다는 걸 의미합니다만, 실패로 돌아가고 자신도 죽으면서 오히려 그 권위를 크게 깎아버립니다.

히데요시 정권의 큰 문제는 자식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포기하고 여기저기서 양자를 들였고 그 중 히데츠구에겐 관백의 자리를 물려줬죠. 관백이 물러난 후 앉는 자리인 다이코(태합), 흥선대원군이 대원군의 대명사듯 그도 태합의 대명사입니다. 아 이 글의 주제가 섭정이었죠? 히데요시는 이렇게 덴노의 섭정인 관백에 앉았다가 양아들에게 물려주고 또 그 섭정이 됩니다. (...)  임진왜란 등 그의 주요 행적이 다이코일 때 나왔죠.

근데 새로 얻은 아내 요도도노에게 아들이 생겨버렸으니... 관백 히데츠구의 잘못을 트집잡아 죽여버립니다. 근데 그렇게 얻은 아들이 또 죽었죠. 안 그래도 미친듯이 양아들을 죽여버렸는데 친아들 죽은 후 조선 침략을 미친듯 밀어붙여서 일본에서도 확실히 노망들었구나 하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러고도 다시 아들을 얻었고, 애기 때 관례를 치러서 히데요리라 부르게 되었죠. 크면 관백에 앉히고 뒤를 물려주고 도요토미의 세상을 오래오래 이어가고 싶었겠습니다만, 너무 어릴 때 자신이 죽어버립니다.

노부나가가 죽은 후 중신들의 연합체가 됐고 그 중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았습니다. 이번에도 다를 바 있겠습니까. 히데요시는 모리, 도쿠가와, 마에다, 우에스기 등 큰 다이묘들을 불러 히데요리를 부탁합니다. 이들 다섯을 오대로라 불렀고 결국 다시 유력 다이묘 연합체가 돼 버렸죠. 이들 중 가장 강력한 건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말 불쌍할 정도로 히데요리의 뒤를 부탁했습니다만... 그게 될 리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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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 대하드라마 공명의 갈림길에서 히데요시 죽음을 듣고 울면서 기뻐하는 이에야스 ( ..) 천하를 잡을 명령을 내린 다음에 길었다~ 기다렸다~ 뭐 이런 말입니다.
옛날은 안 그랬나본데 요새는 히데요시의 노망난 말년을 드라마에서도 다룹니다. 조선 침략하는 모습도 적지만 나오죠. 애초에 히데요시는 연기력이 좋은 배우가 해야 하는만큼 망가지는 모습도 참 불쌍하게 나옵니다. 일본인들에겐 그런 히데요시를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겠죠. 마치 연산군이 미쳐가는 모습을 보고 동정하는 것처럼요. 아무튼 드라마마다 다양하게 노망나는 모습도 재밌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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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23 00:59
수정 아이콘
일본 전국시대도 재미있는 것 같긴 한데, 이름 외우기가 너무 어려워요 흑흑
16/03/23 01:27
수정 아이콘
유력 다이묘 -> 휘하무장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하나 사건을 따라가면 이름을 외우기가 그럭저럭 할만해집니다.
저번 댓글에도 달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게 로마사 인물 외울때도 쓰던 방법이었습니다.
이름 구성은 정 반대지만요 ㅠㅠ
16/03/27 14:23
수정 아이콘
이름도 길면 8글자고, 관직명으로 부르거나 별명으로 부르거나 이름도 자꾸 바꾸거나... 참 많습니다 =_=; 익숙해지기 정말 힘들죠;
지금뭐하고있니
16/03/23 01:01
수정 아이콘
센코쿠 때가 재밌긴 하죠. 일단 발도장만 찍고 나중에 다시 읽겠습니다.
16/03/27 14:23
수정 아이콘
크크 감사합니다 ^^
16/03/23 01:16
수정 아이콘
엄청 기네요...덜덜
나머지는 아침에 일어나서 읽겠습니다.
꿀잼이에요~~흐흐
16/03/27 14:24
수정 아이콘
참 어쩌다 이렇게 길어졌는지 크크
감사합니다~
피로하당
16/03/23 01:27
수정 아이콘
신겐의 죽음의 원인은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저는 암살설이 왠지 드라마틱 해서 선호합니다. 소설 대망이나 영화 카게무샤 등에서는 위에서 언급하신 대로 조총으로 저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겐이 음악에 조예가 있다보니 공성 중에 수비측에서 성안의 음악가에게 피리를 불게 한 후 매번 같은 위치에서 감상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 위치에 조총 조준을 맞춘 후에 발사하죠.
16/03/27 14:24
수정 아이콘
진짜 암살설이 사실이라면 일본의 역사를 바꿨을지도 모를 한 방이죠 크크
16/03/23 01:34
수정 아이콘
히데요시의 가장 큰 실책은 자식이 없는것도 있었지만 역시나 후계구도를 지켜줄 직신을 만들지 못한겁니다.
5대로와 5봉행 체제는 그 시대상으로는 맞을수도 있지만 그것을 위해서는 안정된 집권구조가 필요했었죠.

결국 토시이에가 가고 나서 히데요시가 길렀던 무장들은 전부 이에야스에게 넘어가고, 3중로도 전부 넘어가고
이러고도 이에야스가 세키가하라에서 질뻔했다는게 크크크크

모리는 아들들을 거의 다 지방의 유력영주에게 양자로 보냈습니다. 물론 장남은 빼고.
깃카와나 고바야카와는 전부 적대가문이었죠. 양자로 보내고 모살하는건 일도 아니고....
이짓을 오다도 배워서 오다 노부카쓰(기타바타케 노부카쓰)도 종가를 암살했다는게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죠.
사람사는 곳 다 똑같아요....
16/03/27 14:27
수정 아이콘
실책이라기엔 시간이 너무 없었죠 뭐 ㅠ 한 10년 정도 더 살았다면... 모리, 우키타 애들 양자로 삼고 끌어들이고 했고 죽은 후지만 이에야스의 손녀랑 히데요리랑 결혼시킬 계획도 했고 했지만 뭐 ㅡ.ㅡa
히데요시가 오래 못 살았던 게 가장 클수밖에요
대호도루하는소리
16/03/23 02:52
수정 아이콘
그래!!이글을 기다렸다(..)
사실 어느작품보다 이에야스가 후덕하게 나와 너구리팬들의 질타(...)를 받지만 도쿠가와삼대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공명의 갈림길 이에야스..

저 장면만 봐도..몇십년을 눈치보고, 기다려가며 숙이고 엎드려있다가 기회를 잡은모습이 너무 인상깊었습니다. 크크 도쿠가와삼대에서는 바보 히데타다였는데...
16/03/27 14:28
수정 아이콘
크크 저도 공명의 갈림길 이에야스가 제일 좋아요 (...) 도쿠가와 삼대에서 멍청한 모습도 대충 봤는데 크크 히데타다에게 쇼군 물려주는 부분에서 바보녀석 그러는데 진짜 배우개그가 크크크
대호도루하는소리
16/03/28 01:38
수정 아이콘
생각해보면 자학개그..
이제 다시 입지전에 빠지시겠네요(...)

전 시작은 상큼하게 세이브로드 신공으로
사나다노부시게의 너구리압살(...)을 택했습니다.

이 글보고 죽이니 천하잡으려 꽤 기다렸을텐데
미안하네요
하심군
16/03/23 08:15
수정 아이콘
어떤 일본인이 만화로 그린 오다 노부나가의 생을 보고 느낀 거긴 합니다만 개인적인 노부나가의 평은 당시의 다이묘들과 비교해서 어설프게 사람이 좋았달까...책략에 밝고 신분고저에 관계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재를 기용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번번히 사람들에게 얕보인달까요. 만만해보이니 쳐버리자!라는 모습이 자주보이죠. 참 당시 전국시대에 있던게 안타까웠던 인재였다고 봅니다.
16/03/27 14:29
수정 아이콘
희한하게 그런 부분에선 또 인간미가 느껴져요. 히데요시의 마누라 네네한테 보낸 편지라든가...
16/03/28 09:1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읽으며 상쾌하게 하루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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