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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0/30 13:30:01
Name 삭제됨
Subject [일반] [잡생각] 인문학의 무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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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왕 김수면
15/10/3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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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영어로 하면 humanity, 이라는 학문들의 묶음은 인간에 관한 학문들을 두루뭉술하게 포괄하는 정말 거대한 틀이죠. 그렇지만 그런 인문학을 꿰뚫는 하나의 공통적 질문은 그것이 인간에 대한 학문인가, 혹은 인간만이 가진 어떤 것에 대한 학문인가로 집약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들이나 고도로 정제된 사유의 산물들 모두가 그런 부분에 속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어느 특정 인문학의 분과학문이 한 부분에 집중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문학 전체의 인간과의 괴리를 이야기하는 근거가 되기에는 약간의 비약을 피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인문학이라는 묶음 자체는 너무나 많은 하위 학문들을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철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이러한 인간의 정제된 사유의 문제에 집중하는 만큼 문학과 같은 학문에서는 인간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려고, 그리고 해석하려고 노력하기도 하니까요.
두괴즐
15/10/3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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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공감합니다. 사실 제가 사회생활(시민활동가)을 하다가 기회가 생겨서 인문학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는데, 하면 할 수록 마음이 참 어려워지더라고요. 저는 학부 때는 문학을 했고, 석사 때는 사회학을 했거든요. 그때도 전공을 바꿔 진학한 이유가 '인간'을 제대로 묻기 위해서는 '사회'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겠다는 문제의식 때문이었거든요. 이후에 실천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시민활동가 생활을 했는데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그만두었고, 지금 다시 인문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제대로 묻기 위해 '사회'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요즘은 '자연과학에서 해명하고 있은 인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분과에서는 이러한 고민이 공감을 받기 어려운 듯 느껴지기도 하고, 현재 학문장의 현실상 무리가 있기도 하고. 큰 맘 먹고 다시 시작한 공부인데, 여러모로 상념에 빠지기 일수네요.
일간베스트
15/10/3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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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인문학자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인간의 생물학적 기초'에 기반한 인문학도 있고, 반대로 생물학적 기초가 인문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입장, 또 그렇게 봐야 한다는 입장 등도 있습니다.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생물학자와 철학은 구분되지도 않았었지요. 그런데 글 쓴 분이 얼마나 많은 인문학을 접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것들을 모두 뭉뚱그려 '인문학의 무심함'이라고 쓰신 것을 보고, 저는 글 쓴 분이 인문학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잡생각을 해봅니다.
두괴즐
15/10/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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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지적입니다. 흠칫했습니다. 제가 접한 인문학이라고 해봐야 사실 폭이 좁죠(제가 접한 인문학적 궤적은 포스트모던(해체) 이후 새로운 개인성 규정에 기반한 공동체의 구성에 관한 담론들입니다). 제가 글을 너무 거칠게 쓴 것 같네요. 다만 제가 느낀 점은 이런 거예요. 제가 기독교 광신자인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실 실현 불가능한 명령에 가깝잖아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만 해도. 그런데 제가 그동안 배운 인문학적 개념, 예를 들어 단독성(singularity)과 같은 엄밀한 자기 반성적 언어가 굉장히 매력적이잖아요. 소히 말해 깔데가 없는 개념이랄까. 그런데 그런 것에 집착할 수록 우리가 실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과도 괴리되는 느낌을 받는달까요.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선량함 만큼이나 매혹적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도피적인 계기가 되는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무조건적이고 평등주의적이면서 인류애적인 사랑이 불가능한 이유를,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과 더불어 다른 여러 요인)에 대해 고찰해 보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독성'과 같은 학문적 개념도 같은 맥락에서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게 되었어요. 제가 별 재주는 없지만 운이 좋아서 박사과정까지 하고 있는데 하면 할수록 신앙인으로서의 나와 인문학 연구자로서의 내가 상호 비판적이지 않게 되는 느낌이 들고 있답니다. 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그런걸까... 흑.

여하튼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일간베스트
15/10/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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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해봤는데 말씀하신 그 현실(혹은 사람)과의 '괴리'는 학문 그 자체의 특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돈보스꼬
15/10/30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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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염두에 두는 '생물학적 기초' 내지는 조건이 어떤 것인지 잘 와닿지 않는데요.
[우리는 진공속의 인간이 아니며, 생물학적 욕구로부터 쉽게 달관할 수도 없습니다. 특혜 받은 학문의 장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이들이 우리 사회의 토대입니다. 세속적 욕망이 상호경쟁하는 것은 생물학적 인간의 기초이며, 그러한 사회가 우리의 현장입니다. ] 이러한 의미에서라면,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인간사회를 설명하려던 (맑스를 비롯한) 몇몇 유물론적인 관점들이 있을 테죠. 물론 유물론적인 관점이 인문학 내에서 다소 비주류의 위치를 점하는 것을 지적하시는 것이라면, 저도 이 지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혹은 학문으로서의 과학-생물학 측면에서 인문학이 괴리되어 있다는 말씀이시라면, 심리철학-인지과학 등에서 어느 정도 생물학적 관찰과 결부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싶은데요. 혹은 체계이론과 같이 생물학적 논의를 이론에 포괄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도 있고요.
두괴즐
15/10/30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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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무심코 떠오른 잡생각을 썼는데, 좋은 조언들이 많이 나오고 있네요. 감사합니다.
제가 글을 거칠고 모호하게 써서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흑.

위의 댓글에서 보셨겠지만, 제가 시민활동가 생활을 했었고, 교회 개혁운동을 하고 있고, 또 문학/독서운동이란 것도 제 딴에는 하고 있는데(제 전공은 현대문학이랍니다) 학문의 장에서 배우는 것과 제가 만나고 겪어야 하는 관계들은 너무나 다르거든요. 그 사이의 공백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요즘 제가 인간에 대한 질문을 어떤 관점에서 더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던 분과는 '뇌과학'이나 '진화론(심리학)' 쪽이예요. 하지만 이쪽은 그냥 교양 수준으로 읽고 있는데 본격적으로 학과에서 접목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잘 될지도 모르겠고,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그렇긴 해요. 미처 몰랐는데, 심리철학-인지과학 쪽이 제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학문일 것 같아 보이네요.
두괴즐
15/10/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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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인지과학 쪽에 좋은 입문서 있으면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체계이론은 루만에 대해서만 좀 읽어봤는데(열정으로서의 사랑, 루만 체계이론 입문) 제 관심사와 연계해서 읽을 만한 책이 있으면 이쪽도 조언해 주시면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돈보스꼬
15/10/3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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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철학 전공이 아니다 보니 가볍게 추천드릴 책이 잘 생각나진 않네요. 김재권 선생님의 <심리철학>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인지과학 쪽에서는, 급진적 구성주의의 관점을 소개하는 논문집인 지크프리트 슈미트 편, <구성주의>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네요. 후자는 루만을 비롯한 체계이론과도 연관되는 부분이 있고요.
두괴즐
15/10/3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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넵. 저도 좀 찾아보도록 할께요. 추천 감사합니다.
구밀복검
15/10/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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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제대로 하려면 인간의 생물학적 토대와 물상의 성질, 사회의 자원들이 배치되고 생산되는 과정 등에 대한 이해부터 제대로 해야겠지요. 그래야 인간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이해할 수 있을 테고...여하간 한국의 아카데미 인문학(특히 대륙철학이나 문학에 기반을 둔)의 경우, 과학/공학/경제학/법학 등 각 분야의 전문지를 경시하는 경향성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혹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저러한 학문들에 대한 학습 수준이 부족하거나요. 테리 이글턴이라는 문학이론가는 '정치철학자가 쓴 소설은 매력적일 수 있지만, 소설가가 쓴 정치철학서는 그럴 리가 없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그 말이 갖는 의미가 인상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잉여잉여열매
15/10/30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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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서두에 말씀하신 부분과 관련된 읽어볼만한 도서나 글들 중 추천해주실만한게 있나요? 시작은 하고 싶은데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ㅜ
구밀복검
15/10/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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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측면에서 인문학적인 통찰과 자연과학적인 연구 성과가 결합된 책을 내는 저자들이라면 대니얼 데닛이나 스티븐 핑커, 리차드 도킨스, 재레드 다이아몬드 등이 있죠. 한국에서 요즘 각광받는 분이라면 최재천 교수나 장대익 교수가 계실 테고요. 이외에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가 팟캐스트나 동영상 강의로 이것저것 입문 루트를 제공하시던데, 가볍게 그런 것으로 시작해도 괜찮다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KLRQs_nOxM
잉여잉여열매
15/10/30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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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영상과 작가들 위주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두괴즐
15/10/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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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제가 전공은 현대문학이고 귀 동냥으로 철학, 문창, 사학 등을 들어왔고 또 듣고 있는데, 다들 깊이있고 굉장한 성취들이 있지만, 자연과학이나 공학 쪽에 대해서는 그냥 무심한 편인 것 같아요. 수업시간 때 얘기해보면 우스운 사람이 되기 일수죠. 제가 듣고 읽는 폭이 좁아서 새로운 협업에 대해 무지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공부를 하는 이유가 실용성 추구(불순하게도!)에 가깝거든요. 나를 바꾸고 싶고, 관계를 바꾸고 싶고, 사회를 바꾸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을, 관계를, 사회를, 세계를 알아야겠더라고요. 직업인으로서의 시민활동가 생활을 하다가 좌절했고, 지금은 학생 신분의 자연인 시민활동가인데, 요즘은 제 정체성과 자리잡기를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부터해서 고민이 드네요. 흑.
15/10/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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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생명관련 분야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째든 인간에서 시작됐가네. 조에와 노모스로 분리하는 푸코의 생명관리정치나 아감벤의 호모사케르가 읽어보세요.
노르트롬
15/10/3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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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인문학에 대해서 자세하게 배운 바는 없지만, 인문학과 생명관련 분야를 차이가 없다고 하신 말씀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선 생명관련 분야나 인문학이라는 것에서부터 이미 광범위한 학문 분야이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맞지 않는 것도 있고, 살아있는 생명체 내의 메커니즘을 알아내는 생명과학 분야는 아무래도 인간을 다루는 학문인 인문학과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두괴즐
15/10/3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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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경우는 <성의 역사>,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을 읽었고, 그 외에는 발췌독을 했고, 아감벤의 경우도 <호모사케르>는 꽤 이전에 읽었습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문제제기는 이러한 맥락이 아니었는데 전달이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는 뇌과학과 진화론/진화심리학/생명공학 쪽 분야책들을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르트롬
15/10/3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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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분께서 진공 상태에서의 자연과학 실험이 현실에서 큰 괴리감을 준다고 하셨는데, 어떤 분야에서의 실험인지를 떠나 그런 실험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그 실험을 통해 얻어내는 데이터가 이론 형성 및 확인을 위해 필요한 절차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얻어낸 결과를 통해 현실에 다시 적용을 하고 일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물로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공 상태에서의 자연과학 실험이라는 것 자체만 놓고 보면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괴리감을 느낄 수 있지만, 이것이 공학에 적용이 되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져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는 인문학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인문학적 사고 실험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사고 실험에서 무엇인가 사람에게 실질적 의미로 다가올 수 있는 성찰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요?
두괴즐
15/10/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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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문장을 쓰다보니 그렇게 됐는데, 노르트롬 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자연과학의 실험). 사실 인문학적 사고실험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창안하고자 하는 분투이기 때문에 현실과의 갭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는 지향이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을 따름이고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보니, 제가 발 담고 있는 학문장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저의 진학이 저의 진로의 방향성과 다르다는 것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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