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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5 19:26:50
Name epic
Subject [일반] 남극점 경주 - 아문센, 스콧과 섀클턴(3)
4. 남극 탐험의 장애들

(1) 남극 탐험의 이점
제목의 '이점'이라는 표현은 탐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어떤 이익을 가리키는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탐험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 중 남극대륙에는 없어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것들을 말합니다.

- 원주민도 야생동물도 없다.
적대적인 원주민이나 사나운 육식동물이 남극에는 없습니다. 총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고 불침번을 서지 않아도 됩니다.
같은 극지인 북극에는 북극곰이라는 무서운 동물이 있죠. 난센과 아문센도 북극탐험 때 북극곰에 습격 당해
목숨을 잃을 뻔 하기도 했습니다.
남극에서 위험한 동물은 해변의 범고래 뿐이었습니다. 범고래에 대한 다큐를 봤다면 해빙을 부수거나 해안으로 돌진하여
물개를 잡아먹는 놀라운 사냥술을 알고 있을 겁니다. 스콧의 대원 중 한 명은 범고래가 물개로 착각하고 덤벼드는
아찔한 경험을 합니다.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요.

- 모기도 바이러스도 없다.
생선회를 안전하게 먹는 방법은 냉동실에 잠시 숙성시키는 겁니다. 기생충이나 바이러스는 고온으로 익혀도 죽지만
초저온에서도 죽습니다. 남극대륙은 그 자체가 거대한 냉동고인지라, 감기에 걸리지도 않고 토착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따위도 없습니다.

- 식품이 상하지 않는다.
냉장고 안에서 이동하는 마당에, 오래가지도 않는 염장이니 훈제니 다 필요 없습니다.

- 숲도 강도 없다.
울창한 밀림에서 나무를 베어가며 전진하거나 강을 우회하고 다리를 만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 물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
남극은 대륙 전체에 눈과 얼음이 지천으로 깔려...있는 정도가 아니라 눈과 얼음 그 자체 입니다. 물이 필요하다면 눈을
뭉치거나 얼음을 떼어다 녹이면 됩니다. 더구나 이 물은 세상 그 어떤 물보다 깨끗합니다. 무거운 물주머니를 운반하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물을 찾아 헤매거나 오염된 물 때문에 걸리는 질병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이점의 이면들
이제 저런 장점들이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원주민이 없다는건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자연환경에 적응하여 생존하는 기술을 익힌 전문가가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최초로 북극점 도달에 성공한 (성공했다고 알려졌던) 피어리도 에스키모들의 장비와 길안내에 크게 의지했습니다.

야생 동물이 없다는건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이 없다는 얘기도 됩니다. 해변 지대에서는 물개와 펭귄을 잡을 수 있지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야생 식물 또한 없으므로 도중에 채취하여 먹을 수 있는 열매나 잎, 뿌리도 없습니다.
남극점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동안, 도중에 식량의 보충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몽땅 싸짊어지고 출발 해야만
하죠.

숲은 커녕 나무도 없기 때문에 불을 피우려면 연료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도 따로 가지고 가야 합니다. 게다가 물이
풍부하다지만 바로 마실 수 없고 녹이려면 또 연료가 듭니다. (눈이나 얼음을 바로 먹는건 녹이는데 칼로리가 많이
소모되므로 수분섭취에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숲이나 강 같은 자연 장애물이 없다는건 경로의 기준이 될만한 지형지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남극점 탐험대들은
돌아올 때 길을 잃지 않으려고 행군 중간중간에 케른 - 눈으로 탑을 쌓았으며 트랙 - 자신들이 낸 썰매자국을 따라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케른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거나 트랙이 눈으로 덮여 사라지면 종종 길을 잃고 헤매곤 했습니다.
가면서 무게를 줄이려고 돌아올 때의 식량을 군데군데 두고 왔기 때문에 왔던 길 그대로 되돌아 가는건 목숨이 달린
문제였습니다.


(3) 자연 장애물
- 빙하지대


이 삽화는 실제 지형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않지만 시각적으로 알기 쉬워서 골랐습니다.

당시의 남극점 탐험은 지형을 놓고 볼 때 크게 3단계로 나뉘는데, 먼저 로스 빙붕을 통과하고 나면 거대한 남극종단산맥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이 산맥을 통과하고 나면 마지막으로 남극점까지 이르는 고원지대가 나옵니다.
가장 힘들고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역이 2번째의 산악지대로, 거대한 계곡을 뒤덮은 가파른 빙하 위를 이동해
통과해야 했습니다. 아문센과 섀클턴-스콧이 통과한 지점이 각각 '악셀 하이베르크 빙하', '비어드모어 빙하'로 불립니다.
사람 뿐 아니라 짐을 나르는 동물들에게도 이 빙하지대는 가혹했습니다. 탐험대들은 빙하지대를 전후하여 지친 개나 말을
도살해야만 했습니다.

- 크레바스
고산 등반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흔히 들어본 용어일 겁니다. 크레바스는 빙하의 갈라진 틈새를 가리킵니다.
(크기에 따라 크랙과 크레바스로 분류 됩니다.)
여러 크레바스가 불규칙적으로 엉켜있는 크레바스 지대는 조심스럽게 천천히 지날 수 밖에 없고 너무 위험하거나
커다란 크레바스 지대를 만나면 우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위험한건 '히든 크레바스'라 불리는, 입구가 쌓인 눈에 가려진 크레바스 입니다. 걷다가 갑자기 발이 푹 꺼지면서
깊은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죠. 자연이 만들어낸 함정 입니다. 떨어졌을 때 운좋게 썰매에 묶인 줄에 지탱되거나
입구 근처의 튀어나온 얼음에 걸려 다시 살아나온다 해도 골절이나 타박상 또한 극지 탐험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1차 탐험 때 섀클턴이 크레바스에 떨어질 때의 출혈로 고생했으며 3차 때의 에반스는 뇌진탕에 시달리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

- 사스트루기
걸을 때마다 푹푹 꺼지는 눈은 도보 이동을 힘겹게 만듭니다. 미끄러운 얼음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남극에서는
이게 일상이니 특별한 어려움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사스트루기'라 불리는 지형 혹은 자연현상은 좀
다릅니다.
사스트루기란 쌓여있는 눈이 바람에 들춰져 주로 물결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얼어붙은 지형을 말합니다. 나무 등
바람을 가로막는 별다른 장애물이 없는 남극의 벌판은 사스트루기가 생겨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 됩니다.
쉽게 통과했던 매끄러운 설원지대가 돌아올 때에는 사스트루기로 바뀌어 있기도 합니다. 충분한 바람이 불면 언제든
생겨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짐을 썰매에 싣고 이동해야 했던 탐험대원들은 사스트루기를 힘겹게 통과하거나
심한 경우 그냥 우회해야만 했습니다.

- 블리자드
블리자드는 어떤 게임회사 이름이나 RPG 게임의 전형적인 마법 이름으로 익숙한 용어죠.
남극은 연간 강수량이 사막보다 적어서 눈이 거의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쌓여 있는 만년설은 바람이 불면 떠오르게 되죠.
흩날리는 눈을 동반한 강한 돌풍을 블리자드라고 부릅니다. 탐험대들은 강한 눈보라가 지속되면 텐트를 치고 그칠 때까지
머무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식량 부족 등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억지로 나아갈 때도 있었지만
극심한 체력 소모와 함께 평소의 몇 분의 1의 속도 밖에는 내지 못했습니다.

- 화이트 아웃
남극은 사방에 눈이 쌓여 있으며 건축물이나 나무, 암석 등 '흰색 외의 색채'를 더해줄 무엇인가가 전혀 없는 지역이
많습니다. 예외가 있다면 지구 어디에나 존재하는 푸른 하늘이죠. 그런데 그 하늘이 구름에 덮힌다면? 거기에 짙은 안개나
눈보라가 시야를 방해한다면? 이제 전후 좌우 상하 모두 흰 색 뿐인 세상에 서있게 됩니다. 이러면 방향감과 거리감을
상실할 뿐 아니라 균형감각 마저 잃어 버립니다. 사면을 통과 중이었다면 이제 그 경사도를 의식할 수 없게 됩니다.
화이트 아웃 상황에서는 전진이 힘들거나 어렵습니다. 블리자드와 동반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죠.


(4) 질병들
비록 감기 따위의 바이러스성 질환에 걸릴 일이 없다고 해도 극지에서 겪을 수 있는 질병이 몇 가지 있습니다.

- 동상
남극 하면 추위고 추위 하면 동상 이죠. 동상은 추위 속에서 부주의하게 장갑을 끼지 않거나 발을 잘 건조시키지 않는 등의
국지적인 원인 외에 오래 추위에 시달려도 말단 부위에 증상이 나타나며 영양 상태가 부실하여 몸이 허약해지면 추위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져서 쉽게 증상이 나타납니다.
심할 경우 까맣게 변한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절단해야 합니다. 탐험대에는 대부분 의사가 한 명 이상 포함되었는데,
그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절단 수술을 해낼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섀클턴 탐험대의 업적 중 하나가 최초로 에러버스산 정상에 오른건데, 이 때 등반에 참여한 젊은 귀족 브로클허스트 경은
동상에 걸려 발가락을 절단하는 바람에 극점 도전 참여 대원으로는 처음부터 후보에서 제외 됐습니다. 스콧은 마지막
탐험 때 일기에다 발에 동상에 걸린 오츠가 아침마다 신발을 신는데 1시간씩 걸린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 저체온증
섀클턴 탐험대의 의사 마샬이 극점 원정대 일원으로 가는 도중에 쓴 기록에 이런게 있습니다. '대원들의 체온을
재봤더니 34도 이하였다.' 며칠 후 다시 재어도 체온에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제가 확인한 저체온증에 관한 기록은
이게 전부입니다만 아마 영국의 모든 탐험대가 만성적으로 시달렸을 겁니다.  
저체온증의 두드러지는 증세는 오한과 판단력 및 시력 저하 입니다. 또 심장 박동이 늦어지고 그에 따라 혈액 순환도
완만해 집니다. 동상과 고산병이랑 나쁜 쪽으로 궁합이 잘 맞는 셈이죠.

- 설맹
설맹이 뭔지도 다들 잘 아실 겁니다. 설맹 예방법은 무조건 고글이죠. 그 당시에도 설맹의 원인이 알려져 있었고 물론 고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주의하게 고글을 쓰지 않아서 설맹에 시달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죠. 설맹에 걸리면 심한 통증과 함께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어버려 고생을 겪습니다. 대원 한 명이 앞이 안보인다고 해서 식량 축내가며 쉬어 갈 수는 없는
노릇이구요. 사람 뿐 아니라 말도 설맹에 걸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간 지나면 자연히 낫기 때문에 대체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 고산병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압이 낮아지고 또 그만큼 산소가 희박해져 몸에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고산병 또는 고소병이라 불리는
증세는 특히 히말라야의 고산 등반에서 자주 나타납니다. 남극점에 이르는 고원지대는 최대 높이가 일반적으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3,000미터 초반 정도로 아주 대단하지는 않고 또 급경사에서는 비교적 천천히 이동했으므로 적응할만한
시간도 어느 정도 있어 폐수종 등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고생하는건 어쩔 수 없었죠.
고산병의 일반적인 증세로는 두통, 호흡곤란, 식욕부진, 수면장애 등이 있습니다.  

- 괴혈병
비타민C 부족이 원인, 잇몸과 근육이 약해지고 쉽게 피로를 느끼며 혈관 확장으로 쉽게 출혈이 일어남.
영국 탐험대들은 모두 이 병에 시달렸습니다. 특히 1차 때 섀클턴은 괴혈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갑니다. 스콧의 3차 탐험 때
최후의 3인은 연료가 떨어져서 차갑게 굳은 식량을 조리하지 않고 그냥 먹곤 했는데, 괴혈병으로 약해진 치아로 씹느라
대단히 고통스러웠을 겁니다.


5. 탐험의 도구와 장비들
남극점 탐험 과정은 두 가지 문제로 요약 됩니다. '식량을 어떻게 운반할 것인가.',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남극점 탐험의 성공은 오직 탐험에 소요되는 기간 동안 충분한 식량(과 연료)을 공급할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도중에 식량을 보충하는 일이 불가능 했으므로 대원들이 극점까지 갔다 오는 동안 매일 먹을 식량을 죄다 싣고 가야 했는데
나를 수 있는 식량의 무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년설이 쌓인 자연환경으로 운송수단에도 제한이 있었구요.

운송할 무게가 늘어날수록 행군 속도가 떨어 집니다. 속도가 떨어지면 탐험 기간이 길어지고 또 그만큼 식량이 더
필요합니다. 효율적인 계획 수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문제 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은 무게와 부피로 고열량을 내는 휴대식 위주의 식단을 짜고, 미리 전진하여 저장 기지를 설치해
운반 거리를 줄이고, 보조팀을 꾸려 탐험 중간까지 운반을 돕거나 베이스 캠프 가까이의 전진 기지에 추가로 식량을
운송시키고, 경로 중간중간에 임시 저장소를 설치해 돌아올 때 필요한 식량을 남겨두어 무게를 줄이는 등 여러 수단이
사용 됐습니다.
어딜가나 쌓여있는 눈과 무거운 짐은 이동 수단의 문제 또한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식량 문제가 없다면 단순히 스키가
정답이었겠지만 스키를 탄 채 무거운 썰매를 끌기는 어려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뒤에 더 이야기 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당시 탐험대들이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장비들을
간단히 나열해 보겠습니다.

- 식량
당시 극지 탐험대들의 식단은 대동소이 했습니다. 페미컨, 비스킷, 분유. 이 세 가지가 주식이었습니다. 특히 '페미컨'이
중요합니다. 페미컨은 말린 고기를 지방과 과일에 섞어 굳힌 것으로 주로 쇠고기가 들어갔는데 탐험대들은 배로 싣고 간 것
외에 남극 현지에서 물개고기로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로마 군대에서 유래해 유럽 해군들의 주식이 된 유서깊은 보존식
비스킷은 밀가루를 장기 보존할 수 있도록 가공한 것으로 보면 됩니다. 눈을 녹여 물을 끓이고 거기에 페미컨과 비스킷을
넣어 스프로 만들어 먹는게 전형적인 식사였습니다. 거기에 끓인 물로 분유를 타서 마셨구요.

그밖에 초콜릿, 코코아, 차, 귀리, 조미료(소금, 설탕, 후추, 카레가루 등), 마가린 등 여러가지 부식이 있었고
(아문센 탐험대는 초콜릿이 주식 중 하나 였습니다.) 담배와 술 같은 기호식품도 조금 가져 갔습니다. 술은 얼어붙지
않도록 도수가 높은 종류로 준비해(그래도 얼었습니다.) 기념할만한 날에만 조금씩 마셨습니다.

식량을 나르던 동물들 또한 식량이 필요 했습니다. 육식성인 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주로 물개로 만든) 페미컨을 먹었지만
말은 그럴 수 없었죠. 섀클턴은 옥수수로 만든 사료를 가져갔으며 스콧은 배로 60톤에 달하는 건초를 남극에 가져 왔습니다.

개와 말은 개나 인간의 식량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섀클턴 탐험대는 식량이 부족해지자 말 사료도 먹었습니다.

식량을 조리하고 (데우고) 난방까지 되는 조리기구는 탐험 내내 필요한 장비 입니다. 조리에 사용하는 연료는 파라핀 오일이었으며
이 또한 만만치 않은 무게를 차지 했습니다. (파라핀 오일은 스콧이 사망에 이르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 입니다.)
섀클턴 탐험대는 말 사료를 빻을 절구를 따로 싣고 다녔습니다.

그밖에 비상용으로 코카인도 가져 갔습니다. 섀클턴 탐험대는 돌아오는 길에 저장소에서 식량을 찾을 때까지 무려 40시간을 굶주린
적이 있는데 이 때 코카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 운송 수단
일단 식량과 장비를 썰매에 싣습니다. 썰매의 긴 활주부는 스키와 마찬가지로 무게를 분산시켜 눈과 얼음 위를 효율적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합니다. 그 다음에 이 썰매를 어떻게 끌고 갈지 선택이 남았습니다. 아문센은 개들에게 썰매를 끌게 했고
영국 탐험대들은 다양한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개, 말, 사람, 기계.

개는 속도가 빨랐지만 비교적 자주 쉬어야 했고 말은 느리지만 꾸준히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였구요.
그리고 영국 탐험대들은 최초로 남극에서 '썰매차'를 사용했습니다. 섀클턴은 바퀴가 달린 형태의 차를 가져갔으며
스콧은 바퀴 대신 궤도가 달린 차를 가져 갔습니다.

짐이 가벼울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탐험대들은 썰매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문센 탐험대는 기지에 머무는
동안 썰매 무게를 거의 1/3 수준으로 줄이는데 성공했고, 스콧 탐험대도 도중에 텐트 안에서 썰매를 개조해 무게를 줄였습니다.

- 보행 장비
개썰매의 장점은 속도가 빨라서 인간이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아문센 탐험대는 주로 개가 썰매를
끄는 동안 스키를 타고 함께 달렸습니다. 스키는 그냥 걸어가면 발이 눈에 계속 빠지는 지면에서 무게를 분산시켜
'눈 위'를 미끄러져 이동할 수 있게 함으로서 체력 소모도 줄입니다. (여기서 스키는 높은 데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오는
활강이 아닌, 평지와 언덕을 이동하는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말합니다.)

영국 탐험대의 가장 중요한 운송 수단은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썰매를 끌 때에도 스키를 타면 효율적이었지만
짐이 너무 무겁지 않고 지면 상태가 좋아야만 가능했으므로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됐습니다.
스키를 착용하지 않더라도 스키 폴대는 썰매를 끄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히든 크레바스를 탐지하는 효과도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남극 탐험대들은 지면에 따라 크렘폰(아이젠)을 착용 했습니다. 크렘폰은 쇠발톱이 달려있는 덧신으로, 대표적인
고산 등반 장비 입니다. (생소한 분들은 스파이크가 달린 축구화를 연상하면 됩니다.) 단단한 눈이나 얼음 위를 걸을 때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지탱해 주어 대단히 편리 합니다.

- 측량 기구
산 정상이라면 더 이상 오를 데가 없고 주변에 더 높은 데도 없다는걸 한 번에 알 수 있는데 반해 남극점은 관념상의 선이
한데 모이는 관념상의 점일 뿐, 주변의 다른 지점과 다를게 하나도 없는 장소 입니다.

경로를 올바로 유지하려면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남극 탐험대들은 육분의, 경위의 등 항해에 사용된 측량 기구를
사용해 태양의 고도를 가지고 위치를 측정했습니다. 나침반의 경우, 자남극점과 남극점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자남극점은 나침반의 자석이 가리키는 지점이며 매년 위치가 조금씩 이동합니다. 남극 탐험대들의 출발지점인 로스빙붕을
기준으로 남극점이 정면이라면, 자남극점은 오른편 해안 근처 내륙에 위치했습니다.) 보정이 필요했습니다.

정확한 측량은 경로 설정 뿐 아니라 탐험 성공을 입증하는 데에도 중요합니다. 1909년 북극점 도달을 둘러싼 논쟁은
3차 탐험대에 교훈이 되었습니다. 아문센은 극점 도달 후에 무려 3박 4일, 스콧은 2박 3일을 머무르면서 철저한 측량을
실시하여 둘이 각각 정한 남극점은 불과 800m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밖에, 물을 끓여보아 끓는점을 확인해 고도를 측정하는 고도계, 그리고 썰매에 달려있는 거리표시계 등도 유용하게
사용 되었습니다.

-기타 장비
옷, 장갑, 양말, 신발, 모자 등이 극지의 추위에 맞게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더구나 남극의 여름은 기온이 영상까지도 올라가고
행군하다보면 땀을 흘릴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텐트와 슬리핑백 또한 중요한 장비 입니다. 특히 텐트는 가벼우면서도
강풍에 날리지 않아야 합니다. 설맹 예방을 위한 고글, 개채찍, 썰매와 몸을 연결하고 크레바스에 빠졌을 때 구원하는 등 다양하게
쓰인 로프 등도 신경써야 할 필수 장비였습니다.


이 모든 장비들은 단지 극점 원정대를 위한 것으로, 탐험대가 남극에 가져온 것들 중 극히 일부에 불과 합니다. 남극 탐험대는
거주할 오두막을 지을 자재와 2~3년간 대원들이 먹을 식량과 난방용 연료, 그리고 기지에서 매일 수행하는 과학 관측을 위한 장비들을
몽땅 배에 실어 왔습니다.    





(2)편 마칩니다. (3)편부터 드디어 주인공들이 본격적으로 등장 합니다. ...쓰다보니 (4)편까지 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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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5 21:17
수정 아이콘
두편 모두 정말 잘 읽었습니다 !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11/12/15 21:39
수정 아이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음 편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겠군요!!!
ReadyMade
11/12/15 21:51
수정 아이콘
정말 흥미롭네요. 재밌게 잘 봤습니다~~
내일까지 논문 제출해야 하는 처지인데 1편부터 정독했네요ㅠ 추천 날리고 갑니다~
11/12/15 21:55
수정 아이콘
흥미진진하게 잘 읽었습니다!
이런 극지탐험 이야기는 어렸을 때 읽었던 (첫 글에서 언급하셨다시피 과장, 축약된)위인전에서만 접해본 것 같은데,
미처 알지 못했던 다양한 이면이 있었군요.
다음 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캐리어만킬
11/12/15 21:57
수정 아이콘
굉장히 재미지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빨리 3편 올려주세요^^ [m]
블루드래곤
11/12/15 22:14
수정 아이콘
2-1편까지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네요
지식의 양도 상당하시고 필력도 좋으시네요
역시 PGR의 퀄리티란~~~

2-2편은 조금 아껴두고 내일 읽을려구요~~
잘보고 갑니다 추천하나 꽝!
몽키.D.루피
11/12/15 22:17
수정 아이콘
이 글만 보면 당장 남극으로 떠나고 싶어지네요 크크
sisipipi
11/12/15 22:53
수정 아이콘
추천~쾅! 담편이 기대됩니다. [m]
Je ne sais quoi
11/12/15 23:08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어서 나오기 기대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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