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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4/15 02:50:54
Name 모노크롬
File #1 kyungkug_271862_2[422112].jpg (37.6 KB), Download : 56
Subject [일반] 법치와 정의



요즘 이쪽에 관련된 서적들과 동영상들을 즐겨 찾아보고 있는데 어제 경인일보에 근래 접하기 힘들었던 따뜻한 휴머니즘을 다룬 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것도 다름아닌 썩어 버릴대로 썩은 줄로만 알았던 한국 법조계의 일화여서 더욱 그 감동이 컸다. 주인공은 서울가정법원 김귀옥 부장판사이다.


"이 아이는 가해자로 재판에 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삶이 망가진 것을 알면 누가 가해자라고 쉽사리 말하겠어요? 아이의 잘못이 있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을 찾게 하는 처분을 내려야지요." 그러면서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렴. 자, 날 따라서 힘차게 외쳐 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A양에게 따뜻하게 말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A양이 나직하게 "나는 세상에서…"라며 입을 뗐다. 그리고 판사를 따라 점점 더 크게 외쳤다. A양은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고 외칠 때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법정에 있던 A양의 어머니도 울었고 재판 진행을 돕던 참여관도, 법정 경위의 눈시울도 젖었다.

(기사 링크 :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21242 )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이미 14건의 절도 폭력 전과가 있던 어느 한 여학생에게 가중처벌을 커녕 아예 불처분 결정을 내린 것은 단지 법률적인 관점으로는 조금 의아해 할 노릇이다. 설령 그 학생이 집단 폭행이라는 무시무시한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일탈행동 했음을 감안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는 불처분이라는 법률용어에 가려져 오역된 김귀옥 판사의 대인다운 진정한 '처분'이야말로 과연 법조인들이라 불리우는 자들이 무엇을 해야되는 사람들인지를 다시금 상기시키고 있다고 본다. 울먹이며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라고 외친 그 소녀의 머릿속에는 그때 무슨 수천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쳤을까. 처벌만이 목적인 사회에서, 하물며 죄값까지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위대한 자본주의 산하의 법적 불평등이 버젓이 용인되는 세상에서, 왜 O.J. Simpson 이 무죄고 최철원이 집행유예로 석방되는지 한탄하는 것은 현실 감각이 없는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Michael Sandel 교수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법의 진정한 힘은 구속력이 아니라 인간 본연의 양심을 움직여야 되는 것이고, 그것이 진정 법치(法治)라면 이런 판결문은 예외적이거나 감동의 소스가 아닌 평범한 기사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만큼 우리가 바라는 세상과 차가운 현실은 지나치게 엇갈려 있다. 나는 그 학생이 또 더 큰 죄를 짓고 다시 끌여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김귀옥 판사의 불처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혹은 비판도 받을까.



그러나 나는 다른 시나리오를 소원해 본다. 그 아이가 제자리로 돌아와 먼 훗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평범한 엄마가 되었을때 이제 막 사춘기를 접하는 자기 딸에게 수십년 전 오늘 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흐릿하게 떠오른다.


"자, 엄마를 따라해 보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생겼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나는 이 세상에 두려울 게 없다.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





























블로그에 먼저 올렸던 글이라 경어체가 아님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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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컴비네이션
11/04/15 03:55
수정 아이콘
진정 법치(法治)라면 이런 판결문은 예외적이거나 감동의 소스가 아닌 평범한 기사가 되어야 마땅하다.

--> 아니에요...이런게 평범한 기사가 되면, 판사 재량이 중점이 된다는건데...과연 그게 좋은 사회일까요? 법치국가가 아닌건 당연하구요. 이런게 기사화가 되는게 당연한 겁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를 읽으셨다니, 첨언하자면...
법이념에는 정의와 법적안정성이 주로 충돌을 일으키는데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정의를 추구해야 하는거 아냐? 이렇게 됩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어디까지가 정의인지? 정의개념자체가 포괄적일수 있죠.
개개인마다 어디까지 정의인지 의견차이는 당연히 있잖아요.
이 사안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어떤애는 판사 잘만나서 몇번 외치고 끝. 어떤애는 판사 잘 못 만나서 가중처벌. 이런 일이 벌어질수 있는데, 이게 과연 정의일까요?
솔직히 이 사안의 판결도 정의추구라고 보진 않지만...정의라고 일단 보고 얘기를 한다면, 법이 너무 정의를 추구하면, 오히려 피해자가 더 많이 생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같은 성문법 국가에선 조문대로 판결함으로써, 최대한 판사 개인이 독단적으로 하는걸 피하려 하죠. 그래서 법적안정성을 최대한 추구하되, 도저히 안될것 같을때만 정의를 추구해야지 진정한 법치국가가 완성되는 거라고 봅니다.(물론 이것도 학자들마다 의견차이는 있을겁니다)
법적안정성을 추구하는게 너무 고리타분해 보이죠?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최선을 추구하는건 힘듭니다. 하지만, 최악을 피하는건 그나마 쉽죠. 법철학자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걸로 책한권만 나오겠어요? 하지만 부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건 그나마 쉽죠. 그래서 완전한 부정의를 빼는 방식, 부정의에 대한 반증방식을 이용해서 최악을 피하려 하는겁니다.

그리고 오히려 저런 판결을 칭찬할수록, 법조계는 더 썩어갈수밖에 없을겁니다. 법조인이 무엇을 해야할 사람인지 상기시켜준다고 하셨는데, 저러면 당연히 안됩니다. 주로 판사가 까이는게, 판사재량이 많다고 까이는거 같은데...이건 오히려 글쓴분이 우려하시는 상황이 아닐까요? ^^;

물론, 저도 보면서 훈훈하긴 합니다. 저도 안 매정하구요...ㅠ
좋은 판사분 같기도 해요.
하지만, 좋은 판결은 아닌것 같네요...물론, 오토바이를 훔쳤다고 하고, 전과만 기록되어있을뿐, 구체적인 사안은 봐야되긴 하겠지만;;;

그리고...불문법국가의 법철학과 성문법국가의 법철학은 좀 다를수밖에 없습니다. 요새, '정의란 무엇인가'가 유행하긴 하지만...그 점은 잘 알고 봐주셔야 우리나라 법철학자들이 안 서운할거에요 ^^;; (저도 좀 이쪽에 관심이 있어서)
그루터기
11/04/15 04:33
수정 아이콘
법이란게 어려워서 한마디 적기가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론 법은 정의 추구보단 안정성이랄까 일관성이이랄까 이런게 더 중시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를 추구하는게 참 좋은 말이긴 한데 정말 어렵죠.. 때로는 서로 다른 정의가 충돌하기도 하구요. 정의라는게 너무 철학적이예요.
그래서 서로 다른 정의가 충돌할때 어느걸 우선시 할지 어느 정도로 할지 정해 둔게 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덕치라는게 참 이상적이긴 한데 현대사회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법치가 답인거 같습니다.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서 법을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면 그만큼 악용되는 경우도 비례해서 늘어날거 같아요.

ps: 본문의 마지막 말은 정말 멋있네요.
11/04/15 12:46
수정 아이콘
상당히 감동 받은 가운데, 댓글이 너무 심오해서;;

그냥 저는 인간이 먼저 나고 법이 생긴거지 법 나오고 인간이 생긴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구마줄기무
11/04/15 16:35
수정 아이콘
사실 유럽쪽은 군주의 너무나도 자의적인 통치를 스스로 전복시켜(?) 버리고 국가의 공권력 남용에 대한 방패로써 만인에게 평등한 형식적인 법적용과 법적안정성을 중시하는 전통을 쌓아온데에 비해 우리나라는 서구식의 제도만 본받아 온 경우이고 전통적으로 중시하던 가치도 다르다보니 저런식의 판결을 옹호하는 경향이 큰 듯 합니다. 조악하게 말하자면 법적안정성에 대한 절실함의 차이라고 해야할까요.
저는 저런 판결을 볼 때마다 심정적으로는 공감하지만 약간 섬뜩할 때가 있습니다. 거대국가권력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으므로' 라거나 '국익에 어긋나는 일을 했기 때문에' 같은 허망한 이유를 붙이면서 자의적인 수단으로 처벌을 남발하는 세상이 슬쩍 스쳐지나간다고 해야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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