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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0/19 23:45:29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4046792285
Subject [일반] <어쩔수가없다> - 기묘한 합리화. (강스포)
<어쩔수가없다>를 방금 보고 왔습니다. 상당히... 늦은 만큼, 그냥 스포를 포함한 이야기를 짧게 풀어볼까 합니다.

<어쩔수가없다>는 25년간 일해온 회사에서 짤린 남자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한 결심을 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의 상당히 많은 부분들은 엇박자와 기묘한 감각의 개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많은 측면에서 '블랙 코미디'라는 정의에 상당히 부합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만, 이 이야기가 '완전히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어쩔 수가 없다'라는 이야기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변명으로 쓰이기 적합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내가 그런 선택 밖에 남지 않아서' 그렇게 했다는 이야기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는, 기묘하고도 미묘하게 상대에게 원인을 돌리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그런 점에서 '어쩔 수가 없다'라는 표현이 과연 누구에게 적합한 방식의 이야기인지 조금은 궁금해졌습니다. 자르는 쪽의 이야기인지, 혹은 살인자의 입장에서 어쩔 수가 없는 건지. 어찌보면 둘 다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요.

유만수와 다른 실업자, 혹은 피해자들은, 많은 부분에서 닮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다른 가능성'에 가까운 인물들이긴 해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는 만수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던 범모,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본 살인 장면 중 가장 기괴하고 웃긴(!) 장면이 아닐까.) 가장 심리적으로 가까웠던 모습을 보여주는 고시조, '술'에 대해 일종의 사건이 있었고, 현재 진행형으로 술 문제가 좀 있는 최선출까지. 인물 간에 가지고 있는 어떤 동일한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서 일 수도 있고, 혹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겠습니다.
(다만, 이 모든 인물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고시조'라는 인물은 지나치게 장식적인 모습이 보이긴 합니다. 지나치게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사용된 느낌이 든다고 해야할까요.)

기묘한 건, 영화 내에서 유만수가 바라는 건 '예전과 같은 삶'이라면, 그 모든 것들이 지나가고 나서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 강하게 드러나는 이야기겠죠. 마치 비와 진흙으로 더러워진 복도와 계단을 닦아내더라도, 흔적이 지워질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강하게 품고 있습니다. 어떤 '공통적인 비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비밀 자체가 기묘하게 뒤틀려 있으니까요.

완성도는 굉장히 높지만, 그것과 별개로, 영화는 '과장된 느낌'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러니까, 약간은 '연극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요. 근데, 그렇다고, 영화가 자극적이거나 혹은 강한 느낌은 아니긴 했습니다. 저는 그러니까, 이 모든 상황이 결국에, 앞서 말한 '완전히 유효'한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블랙 코미디의 특성 상 영화가 완전히 극적인 맛도 아니고, 또, 그런 재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재밌는 영화' 혹은 '대중적인 영화'인지는 좀 헷갈리는 지점이 있긴 합니다.

영화의 결말로 가봅시다. 영화의 결말은 딸, 리원이 드디어 첼로를 연주하며, 만수는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결국 재취업에 성공합니다. 다만 공장은 무인 공장이며, 아내 미리는 첼로 연주를 듣지만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시원은 다시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구요. 시원하지 않은, 굉장히 찝찝하고 미묘한 '블랙 코미디'스러운 결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좀 '의뭉스러운' 결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어떤 칼날이나 지적이라기보단, 그냥 의뭉스럽게 뭉개는 느낌의 결말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영화의 모든 것이 약간은 그런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가 없다'는 명목 하에, 영화가 전반적으로 '흐릿하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는 감정을 품게 만드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라고, 기묘하게 합리화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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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아 아즈나블
25/10/20 00:18
수정 아이콘
원작 소설(액스)은 또 영화와 전혀 다른 물건이더군요. '올드보이'만큼이나... 원작도 나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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