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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7/11 14:17:48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log.naver.com/lwk1988/223929877899
Subject [일반] [서평]그들의 감정은 왜 다가오지 않는가: 《도둑맞은 교회》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수정됨)

책은 무엇보다 글쓴이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전달을 가장 강력하게 매개하는 것은 공감이다. 많은 글이 감정을 드러내는 이유도, 독자가 자기 안에 같은 감정을 인식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물론 감정을 범주화하여 공감하게 만드는 이 과정은, 이 글에서도 다루고자 하는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의 글쓴이 리사 배럿(Lisa Feldman Barrett) 식으로 말하면 감정 구성의 한 양상일 것이다. 배럿이 주장하는 감정 구성 이론에서, 감정은 뇌의 예측으로, ‘느끼는’ 것이라기보다는 배우는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반드시 공감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때로 감정은 너무 강해서, 전달을 넘어서 확인만을 요구하기도 한다. , 이미 같은 감정을 가진 이들과의 공동 소유를 반복하고 있을 뿐, 다른 감정의 타자에게는 닿지 못한다.

여기 그런 두 예가 있다. 하나는 민돈원의 《도둑맞은 교회》, 다른 하나는 배럿의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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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책은 전혀 공통점이 없다. 하나는 기독교 보수주의 목회자가 쓴 신앙 에세이이고, 다른 하나는 무신론적 진보주의 신경과학자가 쓴 과학 교양서이며 동시에 도발적인 철학서다. 신앙과 과학, 종교와 무신론, 보수와 진보, 이 모든 점에서 두 책은 정반대의 세계를 살아간다. 민돈원에게
과학은 신앙을 뒷받침하는 수단이며, 배럿에게 종교는 구성된 사회적 장치일 뿐이다. 과학과 종교를 본질적으로 대립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두 저자의 상호 대상에 대한 태도는 그야말로 얼음과 불처럼 화합할 수 없다.


배럿은 세계적인 학자이자, 한국어 번역서만으로도 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인물이다. 반면 민돈원의 책이 영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읽힐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밀리의서재 기준으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1 4천 명 넘는 독자의 서재에 담겼고, 《도둑맞은 교회》는 고작 17명에 불과하다. 폐간되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배럿이 보름달처럼 밤하늘을 밝힌다면, 민돈원은 화장대 위에서 얼굴을 비추는 손거울에 가깝다. 그리고 이는 단지 인기의 차이만이 아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그들이 쌓아온 경력과 영향력은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나는 감히 손거울을 달에 비유하려 한다. 물론 거울이 달처럼 밝게 빛나는 일은 없다. 하지만 이 둘은 빛을 반사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만약 이런 비교 자체가 무례하게 느껴진다면, 적어도 배럿은 그런 닫힌 태도를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배럿이야말로 감정과 인식, 그리고
세계 해석이 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다른 두 글쓴이가 쓴 이 두 책은 감정을 실어나르는 방식에서 기묘하게도 같은 실패를 공유한다. 글쓴이의 감정은 넘치도록 드러나지만,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감정은 고립되고, 공감은 차단된다바로 그 지점에서, 이 전혀 상관없는 두 책은 한 구조 아래 엮일 수 있다.


이 공통적인 구조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해서는 두 책의 전반적인 내용부터 먼저 살펴야 한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라는 전혀 다른 대륙이 해안선이 맞닿는다는 것을 알려면 먼저 그 둘을 지도에서 면밀히 봐야 하듯이. 그러면 전혀 다른 책이 왜 같은 느낌을 주는지 더 잘 알 수 있다.


민돈원의 책 서문은 "목회 여정에서 지치신 분이나 목회의 길에 막 들어선 분, 목회자로 인해 상처를 받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합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음을 변화시키는 성령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 목적대로 민돈원은 자신처럼 교회에서 섬기는 목사들을 1차 독자로 삼고 글을 쓰고 있다.


그렇다면 이 글은 그저 교희 안의 목사와 목사에게 상처받은 사람들, 곧 민돈원 자신과 감정을 공유하는(또 배럿대로라면 “공유된 감정을 예측하는”) 사람들만을 향한 것인가? 그러나 추천사와 프롤로그에서는 이 글을 통해 한국 사회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어지럽히는 악법들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기도 하다. 즉 이 글은 기본적으로는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향하지만, 2차적으로는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것을 바라고 있다. 


그 결과, 이 책은 공감과 확신의 이중 구조 속에서 작동하게 된다. 내부적으로는 감정을 다정하게 재확인하지만, 외부를 향해서는 감정이 이미 옳다는 전제하에 사회를 설득하려는 정서적 전략을 취한다.


민돈원은 또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목회자가 타락하고 의심받는 것을 개탄하고 있다. 그는 잘못된 목회자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는다. 겸손함을 내세우고 잘못을 직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그렇기에 교회에 사람들이 헌신하는 것을 피하게 하는 것이라면 모두 하나님의 적으로 먼저 생각한다. 그 때문에 범유행성전염병 때문에 교회에 모이지 않는 것은 교회를 위기에 빠트리는 것이라 믿고, 또 병을 피해 예배당 문을 닫은 교회를 위해 "자기가 죄 지은 것처럼 회개하자" 한다.


《도둑맞은 교회》를 읽고 있으면, 한 사람의 내면이 여러 얼굴로 말을 건네는 듯하다. 담담하게 하루를 돌아보는 글이 있는가 하면, 신앙 앞에서 흔들리는 이들에게 따뜻하게 손 내미는 문장도 있다. 때로는 교회와 사회를 향해 분노와 슬픔을 토해내는 장면도 만난다. 글쓴이의 삶은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그가 프롤로그에서 말한마음의 생수를 전하고자 하는 바람은, 바로 이 다층적인 감정들 안에서 진심으로 다가온다.


이런 글쓴이의마음의 생수는 글쓴이의 의도대로라면 또자유와 절대 진리를 파괴하는 세속적 세계관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는 정화의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반지성주의, 반과학, 반공주의적 음모론에 젖은 역겨운 글에 불과했다. 2장은 거의 전체를 들어서 코로나19 백신 반대 운동과 방역 정책 비판을 전개하며, 그 논거는 대부분 조작되거나 악의적으로 편집된 자료에서 기인하는 음모론에서 비롯한다. 1장 역시 문화 마르크시즘이 교회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또 다른 음모론을 설파한다.


나는 이 책을 무작정 배격하지 않기 위해 내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글을 읽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느낀(배럿의 표현대로라면 '예측한') 글쓴이의 중심 감정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위기감이다. 위기 앞에서는 숙고하고 천천히 행동하기보다는 서툴더라도 빠르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과잉되었고 이성은 마비되었다. 이렇게 과잉된 감정은 결국 세계를 둘로 가른다.


결국 민돈원은 교회는 위협받는 안식처고, 세상은 위험으로 가득찬 곳으로 그려낸다. 그래서 교회 사람들을 향해 질타한다. 세상을 믿지
말고, 하나님과 거룩한 교회, 거룩한 목사를 믿으라. 물론 그가 말하는 거룩함은 모든 교회와 목사를 말하지 않는다. 독자 스스로 거룩하다고
여길 만한교회와 목사를 분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속한 단체가 감리회거룩성회복협의회라는 점은, 민돈원 본인의 이상을 거룩함으로
그려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민돈원의 감정적 글쓰기는 감정을 공감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만 공명하게 되어 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민돈원이 예측 오류를 수정하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위기감이 너무나 넘쳐나는 나머지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돈원의 글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힘이 있다. 그러나 그건 전혀 사람을 움직일 힘이 되지 못한다. 분노와 개탄, 절규는 쏟아진다. 하지만 그 감정의 물결은 이미 준비된 사람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다가가지 못한다. 감정이 넘치면, 오히려 다가가지 못한다. 스스로 끓어오르는 말은 많지만, 상대의 마음에 닿는 말은 없다. 감정만 쏟아내는 사람은 자기 안을 비울 수는 있어도, 남의 마음을 채울 수는 없다.



배럿은 민돈원과는 다르게 글을 썼다. 민돈원이 자기의 경험과 확신을 토대로 감정을 표출했다면, 배럿은 자신의 연구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견해와 생각, 연구 결과까지도 폭넓게 인용하며 조심스럽게 자기 학설과 근거를 차분히 설명한다. 어느 지점까지는 배럿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신중하다. 덕분에 글을 읽는 이들은 감정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있는 본능이라는 통념을 자연스럽게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배럿의 중심 주장, 즉 감정은 구성되고 학습되는 것이며 인류 문화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현상임에 살포시 젖어들게 된다.


이렇게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태도는 배럿의 주장이 매우 미묘하고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럿은 감정은 외부에서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실제로는 외부의 자극이 없는데 감정이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배럿의 진짜 주장까지도 오해하게 할 위험이 있는 표현이다. 그러나 감정은 철저하게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통념을 조금이라도 떠올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배럿은 신중하고 교묘하게 낱말들을 골라 썼다. 여기까지는 배럿은 세심하고, 배려 넘치고, 친절한 교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전환의 조짐은 이미 조금씩 있었다. 이 책에서 자주 나타나는 단어는 신화. 영어 myth를 직역했음이 명백한 낱말로, 이 말은 신화가 아니라 근거 없는 믿음이나 오류, 폐기되어야 할 통념 등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자신의 견해와 반대 주장을 신화라고 부르는 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는 점에서, 친절할지언정 자신의 에게는 결코 타협의 여지를 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단호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적에 대한 철저한 논파의 의지, 때로는 조롱과 멸시의 의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배럿은 신화라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배럿이 친절한 교사에서 전의를 고양시키는 전사로 변모하는 지점은 본질주의다. 감정 구성 이론의 기반이 되는 철학인 구성주의 철학의 반대인 본질주의 철학을 논하면서, 원색적인 비난과 논리의 비약, 과학이 아니라 역사에 기댄 정당화 등이 드러난다. 이후로는 배럿의 글은 확고한 논리보다는 정서적인 서사와 이를 뒷받침하는 가설 단계의 추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내가 글을 읽다가 멈칫한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배럿은 다윈이 종에서는 구성주의, 감정에서는 본질주의를 주장했다며 이를 자기부정이라고 맹폭했다. 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다윈이 그렇게 단순한가? 구성주의만이 참이고 본질주의는 거짓인가? 그 순간, 배럿 역시 본인이 지적하는 예측 오류를 수정하기 어려워하는 현상을 보인다고 느꼈다. 그 뒤로 독서는 불편해졌다. 배럿의 설득에 넘어가기보다, 그 주장에 있는 허점, 근거 누락 등을 의식하며 읽게 되었다.


마침 본질주의와 구성주의를 논한 이후, 배럿은 감정 구성 이론을 더 설명하기보다는 현실 세계에 이 구성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그 논리 전개는 새로울지언정, 결론은 기존의 낡은 심리학 이론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는 낡은 감정 이론과 배럿의 이론이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롯한다.


예를 들어, 배럿은 신체를 다스리면 신체 자원 관리 회로에 영향을 주어 감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최근 심리학의 동향을 소개한다. 마음챙김, 요가, 운동 등이 이 이론의 실천적 결과로 강조된다. 그는 감정이 신체 자원 관리에서 정동을 거쳐 구성된다는 고유한 경로를 제시한다. 이는 감정을 자극에 대한 본질적 반응으로 보았던 기존 이론과 달리, 감정을 신체 변화의 부차적 산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감정이 신체 상태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기존 이론과 실질적인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배럿은 이것이 마치 새로운 방식인 양 설명한다. 자신의 이론으로 낡은 감정 이론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하면 그 모든 설득이 쓸모 없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본질주의와 구성주의에서 분노를 터뜨린 배럿은 이제는 초조함을 느낀 것이 아닐까, 배럿의 이론대로 남의 감정을 예측해본다.



이 점에서 배럿과 민돈원은 묘하게 닮았다. 둘 다 자신이 옳고, 옳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확신 속에서 글을 쓴다. 그래서 감정은 넘쳐나지만, 설득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도 있다. 민돈원은 한때 기득권이었던 개신교 지도층이 사회적으로 밀려났다는 위기의식에 반응한 사람이다. 반면 배럿은 아직도 비주류에 머무른 자신의 이론을진리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오랫동안 외면당한 선지자의 분노를
보여준다.

기득권을 잃은 자와, 아직 얻지 못한 자. 이 둘은 서로 다른 전선을 마주하고 있지만, 그 감정의 무게는 닮아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책의 가치는 결단코 다르다. 《도둑맞은 교회》는 사회의 압박 속에 교회가 참 모습을 도둑맞았다는 위기의식을 그려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성을 사탄의 도구로 떨어트렸다. 지성이 교회와 기독교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면 폐기할 것인가? 지성을 포기하고서는 현대 사회와 결코 대화할 수 없다.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역시 무신론적 책이기 때문에 민돈원과 직접 대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간은 외부와 칼같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통찰이 화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민돈원의 반지성주의적 현실 인식 역시 하나의 사회적 실체다. 그와 그의 신앙 공동체는문화적 마르크시즘이 실재하며, ‘동성애가 전염된다는 세계 속에 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아무리 과학적 반증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의 감정에 말을 걸지 않는 한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정보가 아니라 감정을 설득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인식이 두 책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민돈원의 책을 읽고 배럿에게 손을 내밀기는 어렵고, 배럿의 책을 읽고 민돈원을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둔 쪽은 분명히 배럿이다.


결국 묻게 된다. 목사가 아니라, 과학자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민돈원과 리사 배럿은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 둘은 둘뿐만이 아닌 세계 안의 서로 다른 세계들을 상징한다. 우리는 비록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더라도, 시작하는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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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
25/07/11 14:40
수정 아이콘
제가 앞의 책은 못 읽어 봤지만,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감정에 대한 이해에 있어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베렛의 주 도서입니다.

저자는 단순한 정동(쾌/불쾌, 릴렉스/고조됨)과 감정을 구분하고,
감정은 뇌에 하드코딩된 어떤 반사적 작용이 아니라, 사실 인식과 신체적 대응을 맥락에 맞게 해석한 결과라고 봅니다.
고대인이나 현대 한국인이나 비슷한 신체반응이 일어나더라도, 이에 대해 현대인은 그에 맞는 해석을 하고 다른 감정을 느낀다는 겁니다.

배럿의 주장을 연장하면, 감정은 개인이나 문화권의 노력을 통해 정교화 할 수도 있고,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더 낫게 행동하게 하는데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신체적 반응 만으로 감정을 읽으려는 시도들 (예를 들어 AI가 표정을 감지해서 어떤 감정인지 예측하는 류의)은 정동 이상을 감지하는데 실패할 것이라는 말도 됩니다.
25/07/11 14:51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얼마 전에 읽은 책 이야기라서 반갑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저는 야훼신앙을 포함한 절대주의라는 것 일반이
우리 사회의 헌법, 민주주의, 다원주의라는 사회계약과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체계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우리 공리계에서 절대주의는 '악'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절대주의는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전제하고, 보통은 그 진리를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비해 민주주의는 다원성과 절차, 대화와 타협을 핵심 원리로 삼습니다.
과학적 방법론 역시 언제라도 새로운 설명이 기존의 설명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입니다.
절대주의는 모든 것은 '이미 주어진 정답'에 맞춰져야 한다고 보는 반면에
민주주의와 과학적 방법론에는 '계속 변화/진화해가는 공론들'이 있을 뿐입니다.

(저는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은 meme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고,
gene과 마찬가지로 meme이라는 것은 주위 환경에 적응하며 끊임없이 진화해가는 것이니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며, 절대주의라는 건 넌센스라고 생각합니다.)


글에서 언급된 질문,
"민돈원과 리사 배럿은 서로 이해할 수 있을까?"
"화해의 가능성을 열어둔 쪽은 분명히 배럿이다."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공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기준일 것입니다.

한 쪽은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열린 언어로 표현하려 하지만,
다른 한 쪽은 그 신념을 폐쇄적인 계율로 주장합니다.
공존이 가능한 언어와 구조를 선택하는 쪽만이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특징 중 하나는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여
심지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의견조차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반민주적인 말을 하는 사람, 여성을 비하하는 사람, 독재를 찬양하는 사람도
국가는 제재하지 않습니다.
경찰이 잡아가지도 않고 기본권을 제한하지도 않죠.

(절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중국, 북한, 이란, 중세 기독교 국가 같은 절대주의 사회에서는
본문의 민돈원과 같이 자신의 주장을 담은 책을 낼 수도 없을 겁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주의 사회이니 어떤 주장을 하거나 책을 펴낼 수 있는 거죠.
그들은 그저 체리피킹을 하고, 응석을 부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민주주의 사회는 제도만으로 유지될 수 없습니다.
민주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그 구성원들 스스로가 감시하고 대응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민주시민의 책무입니다.

반민주적 발언에는 반대의견으로 응답하고,
차별적 언행에는 비판의 언어로 맞서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자정작용으로 유지되는 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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