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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30 04:37:17
Name 눈시
File #1 성골_계보.png (159.8 KB), Download : 987
Subject [일반] 만들어진 전통 - 성골 (수정됨)




어느 왕조나 특권층은 존재했죠. 특히 고대 왕족들은 자신들을 최대한 신과 연결하려 다양한 신화들을 만들었구요. 그런 신화와 나라마다 볼 수 있는 다양한 계급들은 아주 오래된 전통으로 기록되지만, 사실 지배층이 권력을 키우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한테 제일 친숙한, 한국사의 폐쇄적인 계급으로는 골품제가 있겠죠? 그 최상위로 성스러운 뼈, 성골이 있습니다. 삼국사기만 믿으면 무려 700년이나 자기들끼리 해먹었다는 무시무시한 뼈죠.

"나라 사람들은 시조 혁거세부터 진덕왕까지의 28명의 왕을 일컬어 성골이라 하고, 무열왕부터 마지막 왕까지를 진골이라고 하였다." - 삼국사기, 진덕왕의 죽음에서

하지만 경주 쪽 6촌의 쪼그만 나라에서 시작한 나라, 그것도 박석김이 돌아가면서 왕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 나라, 삼국 중 중앙집권이 가장 늦게 된 나라에서 이런 특권층이 그렇게 오래 유지될 순 없습니다. 그 몰락 과정도 두번이나 남자가 없어서 여자가 왕을 하는 형태가 될 순 없겠죠.

* 신라시대 초기 박석김 이야기가 정말 재밌을 건데 너무 옛날이라 너무도 다양한 가설이 있어서 제 수준으로는 보는 거 이상으로는 즐길 수 없네요

실제로 어땠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건 정말 다양한 설이 있겠지만, 큰 줄기는 비슷합니다. 짧게 본다면 정말 만들자마자 망한 수준이고, 길게 봐도 150년 정도밖에 안 되죠. 삼국유사에서부터 이미 법흥왕에서 성골이 시작됐고, 진덕여왕에서 성골을 끊고 이 짧은 시기를 상중하 중 "중고"로 따로 묶고 있습니다. 다 불교에서 따온 왕명이거든요. 승려인 일연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죠.

자... 정말 간만에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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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우기도 쉽게 500년에 즉위한 지증왕은 왕명을 마립간에서 "왕"으로 바꾸고 국호를 "신라"로 확정합니다. 503년에 만든 걸로 추정되는 포항 냉수리비에는 아직 지증왕도 포함된 부족간의 회의하고 합의를 하는 게 기록돼 있고, 참가자 7인을 왕이라고 적습니다. 다만 김씨 쪽 사탁부에서 3인이 참가해서 제일 많죠. 중앙집권의 과정이라 하겠습니다.

지증왕은 키도 크고 거기도 커서 왕비를 못 구했다가 아주 큰 변...을 보고 큰 처녀를 만나서 결혼했다는 그 전설의 주인공입니다. 근데 즉위했을 떄가 64세입니다. 자식이 없을 가능성은 0%는 아니겠지만 배우자가 없었을 가능성이 있었을까요? 어떤 권력다툼 같은 뒷배경이 있었을가 궁금한 부분입니다만.

14년 즉위하다 사망해서 그 아들이 즉위하는데 저대로 믿는다면 바로 낳았다 해도 10대 초중반이네요? 그건 그렇다 치고 장남이라네요? 그냥 왕 되기 전에 결혼하고 낳았고 왕 될 때 처가의 역할이 컸던 게 변...과 키가 컸다는 걸로 해석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요.

이 아들이 신라 역사에서 나름 중요한 분기가 되니, 바로 불교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고구려 백제에 비해선 늦었지만, 지증왕 때 발전시킨 왕권을 불교를 통해 더 강화시키려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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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때 유명한 게 바로 이차돈이죠. 불교를 도입하려는 왕, 반대하는 귀족들, 유일한 지지자, 하지만 귀족들 때문에 지지자를 베어야 된 왕, 목을 베니 일어난 기적 - 목에서 피 대신 우유가 나고 땅이 흔들리며 꽃비가 내렸다는 - 까지... 이차돈이 죽은 게 527~529년인데, 왕은 죽고 최초의 불교식 시호를 받으니 법흥왕입니다. 그가 죽고 불과 10여년 사이에 왕명을 불교식으로 해도 될 정도로 퍼뜨린 거죠. 대체 어떻게 한 걸까 싶지만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니...

이 분도 아들이 없었고, 딸을 동생이랑 결혼시킵니다. 뭐 시대가 시댄데 별 문제 있나요. 동생은 갈문왕이었는데, 이 갈문왕이라는 게 어떤 개념인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대충 나라 남자 왕족 중 2인자 정도로 치고 넘어갑시다. 여왕의 남편이 갈문왕이기도 하고 사위가 받기도 하고 뭐 재밌지만 확정되기 힘든 떡밥입니다. 암튼 524년 울진 봉평리 신라비 등에 기록돼 있는 걸로 형을 잘 보좌한 걸로 추측된다 합니다.

540년, 그렇게 딸의 아들이자 동생의 아들이 즉위하니... 신라 역사에 빠질 수 없는 진흥왕입니다. 지증, 법흥 동안 갈고 닦은 포텐이 여기서 폭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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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 많이 봤죠?

성골 탄생의 1세대를 법흥왕부터 심지어 지증왕까지 끌어올리기도 하지만, 그게 맞다 해도 제일 중요한 건 이 시기입니다.

"아, 즉위 초기에 정권 장악하고 국론 통일할라면 다들 (전쟁) 하는 거 아니여?"
"대야성에서 내 딸레미 죽이삔 거 벌써 잊여삤나?
"느그 신라 XX놈들 554년 옥천 땅에서 우리 고조할아버지 성왕을 죽여서 얻다 묻었어? 지난 100년 동안 전쟁하면서 있었던 일 한번 씨부려 볼까?" - 영화 황산벌

나제동맹 깨지면서 참 오만 일들이 벌어지지만, 뭐 그것도 여기서 얘기하기엔 너무 기네요.

진흥왕은 정말 다양한 업적들을 만들면서, 성스러운 뼈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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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륜성왕, 고타마 싯다르타는 "전륜성왕이 아니면 붓다(부처)가 된다" 했습니다. 속세의 부처라 보면 되겠네요. 그야말로 불교 세계관에서 최고의 군주입니다. 동양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벤치마킹을 하게 됩니다. 백제의 성왕도 전륜성왕을 자칭했죠. 성왕이 죽지 않았다면 이정도로 했을지 모르겠는데, 진흥왕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이 전륜성왕도 급이 있으니, 금은동쇠가 있다 합니다. 그리고 그의 장남이 바로 "동"륜태자입니다. 그리고 그 동생 "사륜(혹은 금륜)"은 쇠로 추측하고 있다 합니다. 왜 동부터 시작하냐 할까 하니 아빠부터 자기를 금은으로 한 게 아닐까 추측되고 있구요. 혹은 위에 금은 형제가 있었는데 일찍 죽은 게 아닐까 합니다.

혹은 반대로, 동륜태자의 아들 이름이 "백정", 이게 우리가 아는 백정이 아닌 석가모니의 아버지 "슈도다나"입니다. 여기에 동륜의 동생에게 백반과 국반이라는 석가모니 삼촌의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에서 아들이 "은륜"으로 보기도 하죠. 그럼 그 아들의 아들은? 제일 위인 금이죠? 뒤의 상황을 보면 이게 더 그럴듯 하네요.

572년, 동륜태자가 죽습니다. 불과 4년 뒤, 진흥왕이 따라 죽습니다. 겨우 38세, 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일단 장남을 위해 온갖 걸 준비했는데 죽어서 충격 먹고 오래 못 산 거라고 봅시다. 손가락이야 다 아프지만, 그래도 제일 아픈 손가락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금은동 순서로 아들들에게 이름 준 게 맞다면 셋째까지 다 자기 뒤를 못 이었을 충격일 수도 있겠구요.

576년, 진흥왕의 둘째(금은동쇠 순서면 넷째) 사륜(금金륜)이 뒤를 이으니 진지왕입니다. 사기에서는 불과 4년도 안 돼서 579년에 죽었다 합니다. 반면 유사에서는 유부녀를 노리다 화백회의를 통해 쫓겨나 죽었고, 죽고도 정신을 못차려 유부녀를 결국 쟁취(?)하는 막장왕으로 나옵니다.

579년, 그 뒤를 이은 왕이 진평왕, 진흥왕의 첫째 동륜태자의 아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름은 백정(석가모니의 아버지), 왕비 이름은 마야부인(석가모니의 어머니), 금은동쇠 순서가 어떻든 간에 너무도 대놓고 지은 이름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진흥-동륜-진평을 이은 "아들"이 세속의 왕이 된 석가모니, 진정한 "전륜성왕"이 될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 일이 어디 마음대로 되나요 ^^...

성골 진골 얘기로 돌아가볼게요.

김춘추는 진골의 시작입니다. 보통 왕족-왕족 혈통이 성골이고 왕족-비왕족 혈통은 진골이고 뭐 그렇게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사기고 유사고 이런 걸 구체적으로 적어놓진 않습니다. 그리고 왕족-왕족으로 본다면, 김춘추는  위에서 다룬 진지왕과 진평왕의 후손입니다. 왕족-왕족이라는 거죠. 근데 왜 성골이 아닐까요? 사기에 따르면 진지왕은 그냥 죽었는데? 유사에 나오는 대로 폐위돼서? 아니 폐위된 걸로 성골에서 쫓겨나면 대체 성골이 어떻게 이어진 걸까요?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이, 성골의 범위가 좁아도 너무 좁다는 것이죠. 길게 가야 법흥-진흥-동륜-진평계라는 겁니다. 하다못해 진흥의 둘째 진지왕까지도 성골로 인정 못 받았다는 거죠. 그리고 그 한계가 너무 빨리 와 버렸죠. 동륜이 너무 빨리 죽고, 진평왕은 마야부인이랑 석가모니를 낳으려고 온갖 애를 썼겠습니다만... 실패합니다. 안되겠다 해서 후비로 승만부인을 들입니다만 역시 안됩니다.

"제27대 선덕여왕이름은 덕만이다. 아버지는 진평왕이고, 어머니는 마야미인이며, 김씨이다. 성골남자가 다하여, 까닭에 여자가 왕이 되었다." - 삼국유사

선덕여왕을 위한 온갖 미화가 있지만, 그녀가 왕이 된 건 잘나서가 아닙니다. 진평왕이 아들은 못 낳고 성골은 지켜내야겠고 해서 나온 이상한 결론일 뿐입니다. 왕의 부계상속이 제도가 된 사회에서, 여자가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정권을 잡는 건 이미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거죠.

"여왕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다"

암탉이 울면 어쩌니 하지만 여왕이 있는 거 자체가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 혹은 주도적으로 정권을 잡은 거면 숙청을 통해 잡은 걸테니 적어도 이런 시대에선 자신의 능력이 어떻든 여왕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게 되는 거죠.

뭐 어쨌든... 석가모니가 될 아들 대신 딸이라도 석가모니를 만들려고 진평왕, 혹은 그 세력이 애쓰긴 한 모양입니다. (밑에서 얘기할 진지왕 후손 쪽의 도움도 있었겠지만) 황룡사 9층탑부터 첨성대, 그녀에게 딸린 긍정적인 설화까지 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진덕여왕, 진평왕의 둘째 남동생의 딸입니다.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 성골입니다. 법흥왕부터 시작하더라도 514년에서 진덕여왕이 죽은 654년, 성골의 실제 역사는 그 정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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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왕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어쨌든 진흥왕의 아들인데 그 자손이 성골 취급도 못 받게 됐을까요? 진흥왕의 뜻일까요 진평왕 세력의 힘이었을까요. 그 진평왕은 그렇게 성스러운 뼈를 만들어놓고 아들을 못 낳았다는 이유로 다 망해버렸으니 얼마나 한스러웠을까요? 여기서부터 김춘추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는 많은 사학자들의 분석과, 작가들의 창작으로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집니다. 딱 삼국시대 최고의 소재인 삼국통일전쟁 시기랑 맞물리기도 하구요.

사기에선 그냥 죽었다는 진지왕, 유사에선 색을 밝혀서 화백회의 끝에 쫓겨났다 합니다. 이걸 보면 그냥 죽었을 거 같진 않죠? 진지왕계VS진평왕계의 싸움 끝에 진지왕계가 졌다고 봐야 될 겁니다. 다양한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아쉽지만 아래 얘기가 더 재밌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이러면 그 자손들이 몰락해야 되는데 그건 또 아니었습니다.

김용수(용춘), 황룡사 9층 목탑의 감독자입니다. 동일인물이냐 타인이냐 하는데 '황룡사 구층목탑 찰주본기'를 통해 용수=용춘설이 정설이 됐습니다(김유신의 동생 김흠수=김흠춘의 예도 있습니다) 화랑세기 필사본이 이 둘을 다른 사람으로 서술해서 위서론(혹은 창작론)의 결정적인 근거가 되기도 하죠. 이 사람이 누군고 하니 진흥왕의 둘째 진지왕의 아들입니다. 좀 희한하죠? 선덕여왕의 주요 업적을, 숙청해야 될 진지왕 후손에게 맡긴다? 여기서 유사에 나오는 귀신 하나와 연결시키는 학설이 있습니다.

비형랑, 유사에 기록된 진지왕의 아들인데 반인반귀로 진지왕 막장 설화의 주인공이죠. 진지왕은 도화랑이라는 유부녀를 건드리는데 그 쪽에서 남편이 있다고 버티고 죽어도 못하겠다 합니다. 어 그럼 남편 없으면 받아주겠냐 하니까 그렇다 하고, 의외로 그 말을 들은 왕은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 후 왕은 폐위되고 죽었고 도화랑의 남편도 죽었죠. 뒤끝 있는 왕이 죽어서라도 그녀에게 가고 그녀도 더이상 거부 못합니다.

"왕이 평시와 같이 나타나 여인의 방에 들어와 말하길 “네가 옛날에 허락한 것처럼, 지금 너의 남편이 없으니 되겠느냐?”라고 하자, 여인이 쉽게 허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 부모가 말하기를 “임금의 교시인데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하고 딸을 방에 들어가게 하였다. [왕이] 7일 동안 머물렀는데 늘 오색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7일 후에 홀연히 종적이 사라졌다. 여인은 이로 인하여 임신하여 달이 차서 해산하려 할 때 천지가 진동하며, 한 사내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비형이라 하였다." - 삼국유사

이 비형의 얘기를 들은 진평왕이 신기해하며 그를 불러서 기릅니다. 비형은 귀신과 도깨비를 부리며 밤마다 성을 나가서 놀았다 하고, 왕은 그걸 확인하고 그에게 일을 시키죠. 하루만에 돌다리를 놓고 (그래서 다리를 귀신다리, 귀교라 불렀다 하고), 다른 일도 시킵니다. 길달이라는 도깨비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얘가 도망가자 비형이 잡아서 죽이기도 했죠.

이 비형랑의 정체에 대한 학설들이 있는데, 그 중에 재밌게 볼만한 게 바로 비형=김용수 설이죠. 진지왕의 아들인데, 진평왕계에서 인정받고 토목공사를 맡기는 모습에서요. 그가 부린 귀신과 도깨비는 바로 "진지왕 세력"인 거고, 진평왕이 그들을 품은 거죠. 왜 그랬을까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죠. 진짜 진지왕만 문제였다든가, 그래도 사촌간이니 서로 친했다든가, 당시 신라의 현실이 진지왕계라도 잡을 수밖에 없었다든가...

둘이 동일인물이 맞다면 이런 해석도 가능합니다. 진지왕이 죽은 건 생물학적으로 죽은 게 아닌 정치적으로 죽은 것, 폐위된 걸 죽었다 한 거였고 김용수는 그 후에 태어난 거죠. 뭐 김용수가 평민이나 노비에게서 얻은 서자일 수도 있고요. 성골에서 진골된 강등된 이유가 이런 걸로 볼 수 있긴 하겠네요.

어찌됐든, 진평왕은 김용수에게 자신의 패를 하나 더 넘겨줍니다. 천명공주, 왕의 딸, 선덕여왕의 자매를 그와 혼인시킨 것이죠. 이 둘의 결혼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아들이 603년생이니 그 이전엔 했겠죠. 이 시기를 최대한 늦게 (결혼하자마자 아들을 낳았다)고 보고, 선덕여왕이 580년대생 출생이고 그 후로도 줄줄이 딸이라서 아들 낳는 걸 포기하고 성골이든 진골이든 왕족을 남기기 위해, 그것까진 아니더라도 보험으로 했다고 보기도 합니다. 진평왕은 560~570년대생 출생으로 추정되니 600년대면 40대, 그 때라면 할아버지 나이대긴 했죠?

* 이 천명공주를 진평왕의 서녀로 보고 서자(김용수)-서녀 조합이라 그 아들이 성골이 못 된 거라 보기도 합니다. 뭐 그럴듯 하네요.

자, 여기까지 보면 그래도 진흥왕 아들인데 대우가 너무 불쌍한 진지왕계가 그래도 아들 대에서부터 살아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진평왕이 딸만 낳아서 현실적으로 타협한 걸수도 있고, 그보다 훨씬 복잡한 권력다툼의 결과일 수도 있죠.

뭐 아무튼 각 세력들의 정치질은 계속됩니다. 어찌됐든 그 다음 왕은 성골인 선덕여왕이 됐죠. 그 뒤를 이은 것도 여왕인 진덕여왕입니다. 이 때 우리도 잘 아는 네임드들을 볼까요.

비담, 여왕은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며 647년, 선덕여왕 말년에 반란을 일으킨 자입니다. 진골만 할 수 있다는 최고 관직 상대등이었던 점, "비담"과 "용수"라는 이름 모두 불교적인 뜻이 있다는 점으로 그 역시 진지왕의 아들, 그것도 용수보다 더 형이라는 설이 있죠. 이러면 그가 반란을 일으킨 게 더 드라마틱해집니다. 그도 용수처럼 진평왕에게 중용되었다 본다면 선덕여왕까진 봐줬는데, 또 여왕이 즉위한다네요? 아니 솔직히 이제 내 차례 아니냐고? 나 나이도 많은데?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반란을 진압한 이들까지 보면 더 드라마틱해지죠.

629년, 용수는 파진찬으로서 고구려 낭비성 공격에 투입됩니다. 이 때 보게 된 이들이 있으니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 구형왕 아들 김무력의 아들 김서현, 그리고 그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비담의 난을 진압한 게 바로 김유신이죠. 그리고 용수의 장남은 "김춘추"입니다.

통일신라를 이끈 두 가문의 결합은 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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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덕여)왕의 시대에 알천공 (중략) 유신공이 있었는데 이들은 남산에 있는 우지암에 모여 나라의 일을 의논하였다. 이때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좌중에 뛰어드니 여러 공들이 놀라 일어섰는데 알천공만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담소하면서 호랑이 꼬리를 붙잡아 땅에 메어쳐서 죽였다. 알천공의 완력이 이와 같아서 윗자리에 앉았으나 모든 공들은 유신공의 위엄에 복종하였다." - 삼국유사

  백제와 고구려의 공격이 계속되고, 김춘추가 외교에서 김유신이 전투에서 에이스로 떠오르는 와중에 나오는 사람이 바로 알천입니다. 선덕여왕 때 대장군이 되고 비담의 난 이후에 상대등이 된 걸 보면 업적도 적지 않고 일단 춘추 유신보다는 윗자리였습니다. 심지어 진덕여왕이 죽고 김춘추보다 더 먼저 왕으로 추천됩니다.

"알천이 굳이 사양하며 말하기를, “저는 늙고 이렇다 할 덕행이 없습니다. 지금 덕망이 높기는 춘추공 만한 이가 없는데, 실로 세상을 다스릴 뛰어난 인물이라고 할 만합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그를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춘추는 세 번을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왕위에 올랐다." - 삼국사기

그 김춘추가 세번이나 사양할 정도면 알천의 사양을 진심으로 볼 수는 없겠죠? 명분상으로는 알천이 춘추보다 더 위였다고 봐야 될 겁니다. 비담 때처럼, 알천이 용수의 아들이고, 춘추의 형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복형일 가능성이 높겠지만, 뭐 친형일 가능성도 제로는 아니겠죠. 그의 출신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걸 보면 이복 쪽이 더 맞지 않겠냐 싶습니다만. 아무튼, 김춘추는 자신의 능력으로 밀리는 명분을 덮고 알천을 넘어선 거라고 봐야겠죠. 알천의 본심이 어땠든지는 모르겠지만요. 이걸 가능하게 한 게 김유신과의 동맹이었습니다.

김유신은 김춘추와 놀다가 일부러 옷을 찢어 자고 가라 하고, 그 둘째 딸은 서라벌을 다 뒤덮을 오줌을 싼 언니의 꿈을 사고, 사실상 밤시중을 들라는 명령을 언니가 거부하자 자기가 대신 합니다. 다들 눈치가 있다는 전제 하에 김유신이 그만큼 오버를 한 거고, 첫째는 그걸 거부하고 둘째가 베팅을 한 거죠. 애를 가졌다 하자 김유신은 선덕여왕이 볼 정도로 딸을 불태우려는 화형쇼를 벌입니다. 이게 김춘추와 얼마나 짜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신라 정통 빼다구 진골과 가야출신 개빽다구의 결합이 이정도로 어려웠다는 걸 볼 수 있죠. 어쨌든 성공합니다.

진흥왕의 첫째 동륜 / 둘째 진지로 성골 진골이 갈릴 정도면, 진평왕은 확실히 아들이 없을테니 비담과 알천이 진지왕 계보의 아들들인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왕 되겠다 반란 일으키고 제일 먼저 왕 후보인 사람이 진흥왕의 핏줄조차 아닐 순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김용수, 그 아들 김춘추는 자기들 왕 자리를 뺏은 진평왕의 마음에 들고, 가야계를 끌어들이고, 여왕이라도 성골을 잇겠다는 걸 최대한 보좌하고 (물론 실권은 그들이 잡았겠지만) 하면서 마지막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냥 기다린 것도 아니죠. 김춘추는 일본부터 고구려 당나라까지 목숨 걸고 돌아다녔고, 김유신은 신라 최대의 명장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렇게 654년 김춘추, 태종 무열왕이 왕위에 오르니 그의 나이 무려 51세였습니다. 한국사에서도 보기 드문 존버의 승리자라 봐야 될까요. 아무튼 이렇게 성골은 사라집니다. 신라 말 진성여왕 때 또 굳이 여왕을 만들 정도로 성스러운 뼈를 만들려고 했다 합니다만 그게 맞다 해도 멸망 전의 마지막 몸부림일 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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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정말 간만에 올리는 역사글이네요.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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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원
25/06/30 05:4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25/06/30 09:11
수정 아이콘
이렇게 어지러운 가계도 보니까 짧게 끝난게 다행이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네요
드라고나
25/06/30 11:45
수정 아이콘
김춘추 부인은 김유신 딸이 아니라 여동생입니다
콘칩콘치즈
25/06/30 14:26
수정 아이콘
비형이 여기서 나온거였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 25/06/30 16:52
수정 아이콘
눈마새?
샤한샤
25/06/30 14:29
수정 아이콘
지증왕 이야기도 기억하고 있고 법흥왕 이차돈도 기억하고 있고 진흥왕이 으라차차 나라를 일으킨것도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세명이 시리즈인줄은 몰랐네요
25/06/30 16:07
수정 아이콘
신라가 최약체 국가에서 시작해서 삼한일통을 이룩할 수 있었던 이유죠. 지증왕~성덕왕까지 2백년간 명군들이 줄지어서 나왔습니다. 중간에 선덕여왕, 진덕여왕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권력을 전횡하지 않고 김춘추 김유신을 믿고 국사를 맡겼다는 점에서 범용한 수준은 되고요.
정부수립 이후 80년도 안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도 때때로 수준이하의 위정자가 나오는데 신라의 200년 명군 릴레이는 신기할 정도에요
25/06/30 16:16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간단히 말하면 진골밖에 없었는데 진흥왕이후 왕스스로의 석가모니화를 추진하면서 그 직계를 따로이 성골로 우상화한 것이라는 말이죠. (백두혈통같이..) 진평왕이 자기 아버지인 동륜태자의 직계를 따로 성골이라고 선포했다고 생각하면 아귀가 딱 맞죠.
율리우스 카이사르
+ 25/06/30 16:52
수정 아이콘
아 그런건가요? 전 박석김 세가문에서만 혼인한 사람들이 성골인줄 알았어요..
+ 25/06/30 17:24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_UvCzipcDmU 영상으로 보시면 이해가 더 쉽습니다.
에인셀
+ 25/06/30 17:38
수정 아이콘
정말 오랜만에 눈시님의 재미난 역사 이야기를 읽습니다. 연재물이 아닌 게 아쉽지만 올려 주신 것만으로도 좋네요. 휴재(?)중인 삼국통일전쟁 시리즈 연재를 다시 시작하실 마음은 없으신가요? ㅠㅠ
+ 25/06/30 18:02
수정 아이콘
오오 오랜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如是我聞
+ 25/06/30 18:19
수정 아이콘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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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59979 10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63534 4
104420 [일반] 팀장이란 무엇이길래 : 공무원의 직급과 직위 [2] 글곰194 25/06/30 194 0
104419 [일반] 공리와 포화 [1] 번개맞은씨앗523 25/06/30 523 0
104418 [일반] [스포 유의] '오징어게임3'에서 보이는 '데블스플랜' [55] 슈퍼잡초맨4507 25/06/30 4507 5
104417 [일반] 만들어진 전통 - 성골 [13] 눈시3931 25/06/30 3931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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