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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29 05:17:06
Name 계층방정
Subject [일반]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PAT_-_Western_Europe.gif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서유럽 지도. 프랑스(France), 독일(Germany) 사이에 네덜란드(Netherlands), 벨기에(Belgium), 룩셈부르크(Luxembourg), 스위스(Switzerland)가 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Map of Western Europe"

오늘날 유럽 지도를 보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같은 큰 나라 사이에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나라들이 끼어 있다. 이처럼 크기로나 위치로나 균형이 맞지 않는 나라들의 배치는, 유럽 지도를 마치 조각이불처럼 복잡하게 뒤얽히게 만든다. 이런 지형적 난맥의 뿌리는, 9세기 중반 인위적으로 형성된 중프랑크 왕국에서 비롯되었다.


Vertrag_von_Verdun_en.svg.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843년 베르됭 조약으로 쪼개진 프랑크 제국. 회색은 서프랑크, 노란색은 중프랑크(+교황령), 하늘색은 동프랑크 왕국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Partition of Francia after the Treaty of Verdun 843”

이 지역은 한때 중서유럽을 통치하던 카롤링거 제국의 중심부였다. 843년 베르됭 조약에서 루트비히 경건왕의 세 아들 로타르 1, 루트비히 독일인, 샤를 대머리가 제국을 중··서프랑크로 나누었다. 동프랑크는 독일, 서프랑크는 프랑스의 전신이 되었지만, 중프랑크는 로타르 1세 사후 870년 메르센 조약을 거치며 분할·소멸되어 하나의 나라로 발전하지 못했다. 그 영토는 오늘날의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서부, 프랑스 동부, 독일 서부, 이탈리아 북부를 포함한다.


지도를 보면 동프랑크와 서프랑크는 비교적 응집된 영토를 형성하지만, 중프랑크는 북해에서 이탈리아 북부까지 길게 이어진 좁고 긴 띠처럼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도 이 지역은 알프스 산맥이 남북 교류를 방해하고, 언어 면에서도 게르만어와 로망스어가 교차하는 혼합 지대다. 이는 중프랑크가 민족이나 문화가 아니라 제국 분할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된 경계였기 때문이다. 제국의 정치 중심지였던 아헨과, 정신적 권위의 상징이었던 로마를 모두 장자인 로타르 1세의 영향권 아래 두기 위해, 이 두 지역을 잇는 인위적인 영토가 중프랑크 왕국으로 형성되었다. 로마는 실질적으로는 교황령에 속해 있었으나, 황제권의 정당성을 보장받는 상징적 장소였기에 중요하게 간주되었고, 중프랑크 왕국은 그 대신 이탈리아 북부의 제국 도시 파비아를 실질적인 남방 거점으로 삼았다.


Vertrag_von_Meerssen.svg.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870년 메르센 조약을 통한 중프랑크 왕국의 분할. 회색은 서프랑크, 하늘색은 동프랑크, 분홍색은 이탈리아 왕국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Franconian division of the empire according to the Treaty of Meerssen 870".
 

이처럼 인위적인 분할은, 역설적으로 당시 카롤링거 제국이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이상적 질서를 지향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중앙집권은 카롤링거 가문의 권위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협조에 의존한 명목적 질서에 가까웠고, 실제로는 봉건 귀족들이 각지에서 자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분권 체제였다. 로타르의 권위가 약화되자 중프랑크 왕국은 빠르게 해체되었고, 그 자리는 프랑스와 신성 로마 제국이 나누어 차지했다.


Karte_Hoch_und_Niederburgund_EN-963px.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9-10세기 부르군디아 왕국. 지도 중앙에 현대 스위스 서부를 이루는 트란스유라니아(Transjurania) 지역과 로잔(Lausanne), 제네바(Geneva) 등의 도시를 볼 수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Burgundy in the 9th and 10th century”.

1005px-Territorial-development-Swiss_Confederacy-1005px.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스위스 동맹의 영토 확장.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Territorial development of the Old Swiss Confederacy 1291–1797".

그러나 이 지역 사람들은 이미 프랑스인도, 독일인도 아닌 각자의 지역성과 문화를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중프랑크 왕국의 쥐라 산맥 서쪽 자락, 곧 트란스유라니아(오늘날 쥐라·보 주와 프랑슈콩테 일대) 1291년 알프스 북쪽 농민 칸톤들(우리·슈비츠·니트발트)이 결성한 스위스 서약동맹에 14-15세기를 거치며 차례로 합류했다. 베른(1353), 프리부르·졸로투른(1481) 등 서부 도시·칸톤이 참여하면서 이 지역도 제국과 합스부르크 지배에 맞서 싸우는 연합의 일원이 되었고, 그 동맹은 훗날 다언어 연방국가 스위스로 발전했다.


Karte_Haus_Burgund_4_EN.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발루아부르고뉴 가문 부르고뉴국의 마지막 공작, 용담공 샤를 치세(1465-1473)의 부르고뉴국. 붉은 점은 샤를이 참가한 전투.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The House of Valois-Burgundy 1465–1477 during the reign of Charles 'the Bold'”.

한편 북쪽 저지대에서는 부르고뉴 공국이 혼인동맹과 외교, 정복을 통해 이 지역을 다시 통합하려는 시도를 벌였다. 이는 사실상 중프랑크 왕국의 부활을 꾀한 마지막 시도였다. 그러나 부르고뉴의 야망은 스위스 동맹과 충돌했고, 낭시 전투의 패배로 끝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둘은 과거 중프랑크 왕국에서 '부르군디아'라는 같은 지역권에 속했던 세력이었다.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 두 정치 실험이 서로를 거부하고 끝내 충돌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을 하나로 묶는 시도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어려웠는지를 잘 보여준다.

 Nederlanden_1621-1628-es.svg.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80년 전쟁 후기의 1621-1628 저지대. 주황색 계통은 네덜란드 공화국과 그 점령지, 연두색 계통은 스페인령 네덜란드와 그 점령지, 붉은색은 리에주 주교후국.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Krijgsbewegingen in de tachtigjarige Oorlog. 1621-1628".


부르고뉴가 무너진 이후에도 저지대 지역은 합스부르크의 지배를 거쳐 독자적 정체성을 형성했고, 80년 전쟁(1567-1648)과 벨기에 혁명(1830)을 통해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라는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했다. 스페인 합스부르크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1579년에 저지대 도시들이 맺은 위트레흐트 동맹의 상호 방위와 세금 자체 결정 조항은 중세와 근대 자치 모델로 이어졌다. 이러한 정신은 네덜란드의 강압적인 벨기에 지배에 저항한 벨기에 혁명으로도 이어졌다.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저지대 역시 위로부터의 통합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자치와 연대를 통해 독자적 정체성을 획득한 것이다.

 

알프스 이남의 북이탈리아는 메르센 조약으로 프랑스·독일(동프랑크)에 분할-편입된 다른 중프랑크 영토와 달리, ‘이탈리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신성 로마 제국에 느슨하게 속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에서 중세 자유도시 전통과 지방 분권 구조가 이어졌고, 19세기에는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외교·군사적으로 주도권을 잡아이탈리아 민족주의담론과 결합함으로써 통일을 이뤄 냈다. 이 글은인위적 통합자생적 질서의 대비를 다루려 하므로, 이탈리아 사례는 이 정도로만 짚어 두고 이제 프랑스와 독일에 편입된 중프랑크 지역으로 논의를 옮기겠다.

 France_1552-1798.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1552-1798, 앙리 2세부터 프랑스 혁명까지 프랑스의 확장.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France_1552-1798.png".

프랑스는 1453년 백년전쟁을 끝내고 중앙집권을 이룩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서부를 이루는 중프랑크 왕국 영역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먼저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방계가 다스리던 프로방스(1481)와 부르고뉴 공국(1477)을 후사가 끊겼다는 이유로 왕국에 병합했다. 다만 부르고뉴 자유백국(‘프랑슈콩테’)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간섭으로 마지막 부르고뉴 공작 용담공 샤를의 딸 부귀공 마리의 상속 권리를 보장할 수밖에 없었고, 혼인으로 합스부르크령이 된 이 지역은 네이머헨 조약(1678)을 거쳐 프랑스에 넘어갔다.

 

로렌 공국(옛 로타링기아의 핵심)은 점차 프랑스 문화권에 포섭돼 공작가(로렌 가문)도 프랑스 귀족 사회의 일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마지막 공작 프란츠 슈테판(프랑수아 에티엔) 1736년 합스부르크 상속녀 마리아 테레지아와 결혼하면서 오스트리아 쪽으로 기울었다. 그 대가로 폴란드 왕위계승전쟁(1733-38)의 빈 조약(1738)에 따라, 프란츠는 로렌을 포기하고 토스카나 대공위를 받았으며, 로렌은 루이 15세의 장인 스타니슬라프 레슈친스키에게 평생 영지로 넘어갔다. 스타니슬라프가 사망한 1766, 로렌은 프랑스에 완전히 병합되었다.

 

그보다 앞서 프랑스는 30년 전쟁에 개입해 베스트팔렌 조약(1648)으로 상부 알자스(란트그라프령)와 데카폴리스 제국도시에 대한 권리를 얻었다. 이어 1681년 스트라스부르를 점령했고, 레이스베이크 조약(1697)으로 이를 확정했다. 서쪽에서는 프랑스-네덜란드 전쟁(1672-78) 중 네이메헌 조약(1678)으로 프랑슈콩테(부르고뉴 백작령)를 획득했다. 이렇게 17세기 후반 알자스와 부르고뉴, 그리고 18세기 중반 로렌까지 차례로 흡수하면서 프랑스는 라인 서·남단 국경선을 사실상 완결했다.


Cisrhen.Rep.1797.jp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라인 북중부 4데파르트망의 전신인 시스레니아 공화국의 지도. 이 지역은 프로이센에 양도된 뒤에도 자유주의의 본산으로 남았다.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Datei:Cisrhen.Rep.1797.jpg"
 

북·중부 라인 좌안의 중심지 아헨은 9세기 말 한때 서프랑크 군에 점령되기도 했으나, 프랑스가 다시 본격 진출한 것은 나폴레옹 시대였다. 캄포포르미오 조약(1797), 이를 제국 차원에서 확정한 뤼네빌 조약(1801)으로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이 라인 좌안을 양도하자, 프랑스는 이 지역을 뢰르(Roer), 랭에모젤(Rhin-et-Moselle), 몽토네르(Mont-Tonnerre), 자르(Sarre) 등 네 개 데파르트망(오늘날 아헨·쾰른에서 자르브뤼켄·팔츠까지)으로 재편했다.

 

나폴레옹 몰락 뒤 빈 회의(1815)는 이들 데파르트망 중 대부분을 프로이센라인 주’(후일 라인란트 주)로 넘기고, 남서부 일부(팔츠·라인헤센 서부)는 바이에른·헤센에 배분했다. 프로이센령 라인란트는 풍부한 석탄·철광과 19세기 루르 공업화 덕분에 독일 제국 통일(1871)의 핵심 산업 기반이 되었고, 동시에 나폴레옹 민법전과 도시 자치 전통을 이어받아 1848 혁명, 바이마르 헌법, 1949 서독 기본법으로 이어지는 독일 자유주의의 산실이 되었다.

 Alsace_Lorraine_departments_evolution_map-en.svg.pn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알자스-로렌의 영토 변화.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File:Alsace Lorraine departments evolution map-en.svg


알자스-로렌은 1871 보불전쟁 패배로 독일제국 영토가 되었다가 1918 파리 강화 이후 재프랑스화되었다. 1940-45년 나치 독일 강제병합·점령기를 거친 뒤, 오늘날 프랑스 국민 다수는 알자스-로렌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알자스어·로렌 프랑코니아어(Lorraine Franconian) 등 독일어계 방언은 20세기 초중반 학교·공공기관 사용 제한 정책을 겪었고, 지금은 지역어 보호법(1999) 이후 축소된 형태로나마 보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알퐁스 도데의 단편 〈마지막 수업〉(1873)은 바로 그러한 경계 문화의 상실과 애착을 상징적으로 그려 낸 작품이다.

 

결국 중프랑크 왕국의 영토는 각기 다른 정치적 길을 걸으며 오늘날 다음과 같은 국가들로 나뉘었다.

1. 저지대 지역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의 베네룩스 3국을 형성했다.

2. 라인란트는 독일에, 알자스-로렌과 부르고뉴, 프로방스는 프랑스에 편입되었다.

3. 트란스유라니아는 스위스 동맹에 가입해 연방국가 스위스를 형성했다.

4. 북이탈리아는 도시국가와 외세의 간섭기를 거쳐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이 되었다.

 

스위스 연방은 지금도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다언어 연방국가다. 중프랑크와 동프랑크 왕국 산하 도시 동맹에서 출발한 이 나라는, 중프랑크 왕국이 지니고 있던 자치성과 다양성이라는 잠재적 가능성을 현실화한 정치 실험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성과 통일성의 공존은 왈롱과 플란데런이라는 이질적인 지역이 결합된 벨기에에서도 확인된다. 또한, 네덜란드 역시 단일 언어 국가처럼 보이지만, 원래는 지역 자치권을 보장한 7개 주의 공화국 연합으로 출발했으며, 지금도 중앙집권보다는 연합적 전통이 강한 나라다.


500px-Lothar_I.jp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로타르 1세의 초상화.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File:Lothar I.jpg


로타르 1세가 쥐라에서 로마까지 뻗은 인위적 왕국을 일으켰지만, 그의 사후 왕국은 곧바로 조각났다.


Charles_the_Bold_1460.jp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황금양모 기사단복을 입은 용담공 샤를, 로히에르 판 데르베이헌 작.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File:Charles the Bold 1460.jpg


용담공 샤를이 부르고뉴의 군사력과 혼인 외교로2의 중프랑크를 꿈꾸었으나, 낭시에서 쓰러지며 시도는 좌절되었다.


The_Emperor_Napoleon_in_His_Study_at_the_Tuileries,_by_Jacques-Louis_David_(1812)_-_National_Gallery_of_Art_(Samuel_H._Kress_Foundation)_-_2.jp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Napoléon dans son cabinet de travail aux Tuileries. 자크루이 다비드 작.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The Emperor Napoleon in His Study at the Tuileries


그리고 나폴레옹이 혁명 군대와 위성국 체제로 거의 전역을 프랑스 패권 아래 묶었지만, 불과 십여 년 만에 빈 회의의 잉크가 그것을 지워 버렸다.


Bundesbrief.jpg 서유럽 지도를 걸레짝으로 만든 원인, 중프랑크 왕국
1291년 스위스 연방헌장.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The Swiss Federal Charter of 1291


이렇게 위로부터의 통합은 세 번 시도되었고 세 번 모두 무너졌다. 반대로, 아래로부터 형성된 스위스·네덜란드식 자치 연합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지역성과 다원성을 증명한다.

중프랑크 왕국의 분열은 단지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역성과 자치의 실험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기반이기도 했던 셈이다. 물론, 자립 대신 주변 거대 국가에 흡수되는 길을 택한 라인란트, 알자스-로렌, 프로방스의 역사 역시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 지역은 거대한 민족국가의 틀 안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대안을 제시하며, 중프랑크 지역의 다양한 역사적 경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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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째도피중
25/06/29 08:54
수정 아이콘
라인 동맹이 프랑스의 방어벽이었다는 정치적 해석만 생각했었는데 '중프랑크의 부활'이라는 명분이 있었군요.
하나 배우고 갑니다.
에이치블루
25/06/29 09:17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구 서독의 로망 가도가 딱 중프랑크 라인이거든요. 뭔가 통일성이 느껴졌는데 이거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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