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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5/17 09:46:45
Name 여기
Subject [일반] 미신에 대한 생각


대학교에 다닐 때, 교환학생으로 온 독일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종종 생일 하루 전쯤 미리 선물을 주고 축하하는 경우가 있어서, 저도 그 친구에게 생일 전에 선물을 건네며 축하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표정이 썩 좋지 않더군요.
나중에 그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해주기를, 독일에서는 생일 전에 미리 축하하는 것이 매우 안 좋은 일, 심지어 불운을 가져온다고 여겨진다고 했습니다. 생일 전에 축하를 받으면 진짜 재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라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공교롭게도 그 친구 집에 정말로 안 좋은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정말 마음이 불편하고 찝찝했습니다. 친구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하니 괜찮다고는 했지만, 제 탓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처럼 의도치 않게 찝찝한 경험을 하게 되더군요.

비슷한 예로, 제 친구 중 한 명은 친형의 결혼식을 며칠 앞두고 다른 친구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어머니께서 "장례식에 다녀올 거면 형 결혼식에는 오지 말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친구나 형은 "요즘 시대에 무슨 그런 미신을 믿느냐"며 괜찮다고 해서, 친구는 장례식에 다녀온 후 결혼식에도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몇 달 후 형이 이혼하게 되자, 어머니께서는 "내가 그래서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지 않았느냐, 왜 굳이 다녀와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느냐"는 식으로 친구에게 가끔씩 그 일을 언급하며 아직도 뭐라 하신다고 합니다. 그 친구 역시 형의 이혼이 자신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깨닫게 되는 점이 있습니다. 설령 제 스스로는 어떤 행동이 단순한 미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만약 상대방이 (그것이 미신적인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 행동을 매우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꺼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행동을 하기 전에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그 이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비록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더라도, '혹시 내 그 행동 때문이었을까?' 하는 찝찝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당사자에게도, 그리고 어쩌면 저에게도 불필요한 마음의 짐을 지우거나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생각이나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을 넘어, 만약 상대방이 특정 행동을 분명히 꺼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행동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한 번쯤 더 그 의미와 결과를 헤아려보는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나 후회를 만들지 않고, 스스로에게도 떳떳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이와는 반대로, 안 좋은 일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단순히 미신적인 이유로 특정인의 행동 탓으로 돌리며 원망하는 것 또한 우리가 지양해야 할 태도일 것입니다. 모든 일에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서로를 배려하는 작은 노력들이 모여 더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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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5/17 10:20
수정 아이콘
사회적인 강화학습이 곁들여져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대부분 문제없다가도 우연히 한번 발생한 문제가 그거랑 연관되어 사방에 도시전설처럼 퍼지며 사람들에게 강화되는 방식처럼요.
이게 사회적으로 보면 미신이고, 개인으로 보면 징크스라는 단어가 더 적당할지도 모르겠네요.
한번은 손없는 날에 이사하자고 가족이 자꾸 고집하길래 전세계적으로 그 날에만 이사하는지 물어보고, gmt몇시 기준으로 귀신이 없는지까지 물어보면서 설득(아닌 강요)했던 기억이 나네요.
포도씨
25/05/17 10:41
수정 아이콘
이사는 손있는 날만 합니다. 크크
결혼 초창기에는 거의 반값이었는데 요즘은 좀 차이가 덜 나서 아쉬워요.
제가 어렸을 때에는 첫손님으로 안경쓴 사람 태우면 재수없다는 택시기사, 개시로 여자끼리 온 손님 안받던 음식점 사장, 4층이 없는 5층건물 등등 알지도 못하는 미신까지 넘쳐났는데 우리나라도 많이 발전하고 사람들도 달라져가는게 느껴지네요.
그런데 왜 최상류층은 아직도?
25/05/17 11:15
수정 아이콘
잃을게 많은 사람들일수록~~~
바이바이배드맨
25/05/17 18:23
수정 아이콘
어지간한 최상류층일수록 보통 인생이 운이 많이 결정된다는걸 아는데 운은 제어할 수 없는데 제어하고 싶은 욕망때문이죠
서쪽으로가자
25/05/17 10:55
수정 아이콘
단순 불운, 우연에 대해 무언가 탓할 거리를 찾는건가 싶기도 합니다. 인간은 비이성적인 면이 다분하니 어쩔 수 없지만요.
25/05/17 11:02
수정 아이콘
남녀노소 할거 없이 가장 많이 믿는건 본문에 있는 경사/조사 관련이더라구요.
임산부는 장례식장 가지마라. 경사 앞두고 가지마라 등등
혹여나 잘못되었을때 그 찜찜한 리턴값이 다른 미신들보다 훨씬 커서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최근에 안 믿는건 아홉수, 손없는날, 숫자4관련 정도??
25/05/17 11:13
수정 아이콘
> 왜냐하면 혹시라도 그 이후에 좋지 않은 일이 발생했을 때, 비록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더라도, '혹시 내 그 행동 때문이었을까?' 하는 찝찝한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충분히 알고 있지 않아서, 즉 내심 어느 정도 미신을 믿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거라 생각합니다. 조금도 믿지 않으면 조금도 찜찜하지 않습니다.
Gottfried
25/05/17 12:07
수정 아이콘
'I told you so' personality + 미신과 징크스를 중히 여기는 스타일이 만나면 정말 민폐 캐릭터가 나오긴 합니다...
마일스데이비스
25/05/17 12:43
수정 아이콘
아무 잘못 없이도 그냥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납득하기 쉽지 않죠
안군시대
25/05/17 12:56
수정 아이콘
이게 핵심인듯 합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는 믿음이 미신을 만들죠.
유사과학도 비슷한 맥락에서 만들어지고요.
如是我聞
25/05/17 13:36
수정 아이콘
요즘 장례식은 시신을 냉장보관합니다만, 옛날에는 집에서 상을 치렀죠. 세균이 가득한 상태로 보관되고 있을 주검 곁에서 예를 차려야 할테고, 특히 병사의 경우 집 자체가 병균이 들끓었을겁니다.
계면활성제가 없던 시절이었을테니 환자가 쓰던 그릇과 숟젓가락에서 병균이 제대로 제거되지도 않았겠죠. 그 그릇과 숟젓가락 그대로 써서 먹어야 할테고.

터부가 생기는 것도 나름 과학적 까닭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뒹굴뒹굴
25/05/17 13:45
수정 아이콘
미신은 일종의 문화 컨텐츠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믿는거야 개인 취향이지만 진짜라고 얘기하거나 남에게 강요만 안하면 될것 같습니다.
완전연소
25/05/17 13:51
수정 아이콘
전 미신을 믿지 않지만...
모든 사람이 저랑 생각이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신을 믿는 주변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의 터부를 굳이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25/05/17 13:59
수정 아이콘
미신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굳이 설득을 하진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나쁘지 않지 하는 식인데
계속 놔두면 자꾸 엄한데로 돈이 새더라구요..
내 정신 건강은 어쩔건데..
25/05/17 14:11
수정 아이콘
TCG나 가챠겜을 하면 맨정신으론 못하거든여....ㅠㅠㅠ 어디든 빌고 미신에라도 기대야 함....
이카리 신지
25/05/17 14:26
수정 아이콘
관습이나 예절로 생각하면 될텐데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거부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25/05/17 17:17
수정 아이콘
공포영화에 보면 금기를 안믿는 사람은 1순위로 죽거나 액이 끼이죠. 
재미 납니다. 
호비브라운
25/05/17 17:51
수정 아이콘
아무리 미신을 안 믿는 사람이어도 빨간펜으로 가족들 이름 적을 사람은 없죠. 미신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긁어부스럼을 만들지 않고 싶은 심리가 더 큰 게 아닐까 합니다.
+ 25/05/17 19:33
수정 아이콘
자기 이름 빨간색으로 적어보기 반복 실험을 해본사람은 빨간색 이름 미신을 믿지 않죠.
아니면 다른 지역 빨간색 이름의 금기가 없다는걸 알아도 믿지 않구요.

교육과정에서 실험을 해보거나 여타 지식이 늘어나며 사고력이 강화되므로 미신을 믿지 않는 비율은 학력과 반비례 경향을 보입니다.

다만 사회적 압력 영향도 있어서, 전체 교육수준이 낮던 60년대생까지 미신을 믿는 강도가 강한 편입니다.
조직장들이 70년대생으로 바뀌면 슬슬 미신들은 그냥 재미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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