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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8/28 15:07:11
Name 플레스트린
Subject [일반] 인싸 애니 스파이X패밀리 + 원작 + 극장판까지 모조리 감상후기 1 (수정됨)
최근에 스파이 패밀리 TV 애니 시리즈를 2쿨 다 보고 완전히 푹 빠졌습니다. 과연 대중픽은 이유가 다 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고 웃음이 끊이질 않는 엔터테인먼트의 극한이었습니다.

저는 작품이 구리거나 특정 부분에 치명적 결함이 있으면 머리 속에서 이거 왜 이렇게 구리지? 뭐가 문제지? 라는 생각이 폭풍같이 떠오르곤 하는데요. 반면 좋은 작품은 뇌를 비우고 순수하게 몰입하게 즐기는 편입니다. 스파이 패밀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원작까지 찾아먹었고 또한 만족했습니다. 원작을 보고 나니 애니는 원작 구현을 매우 잘한 편이라는 사실, 원작자 못지 않게 애니메이션 제작진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높고 이해도도 훌륭했단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작과 애니 모두 고유한 매력이 있어 둘 다 봐도 재미있습니다. 어느 쪽을 먼저 보건, 둘 중 하나를 이미 봐서 스토리를 알고 봐도 그냥 맛있었습니다.

스파이 패밀리를 간단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에이스 스파이인 로이드. 상부는 그에게 오퍼레이션 올빼미라는 작전을 지시한다. 작전 내용은 전쟁을 획책하는 적국의 야당 정치인 데스몬드에게 접근해서 전쟁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는 것.]

[데스몬드는 야당으로 밀려난 뒤 거의 은둔 중이며 명문학교 이든의 사교 행사에만 나타난다고 한다.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선 가짜 가족을 만들어내서 자녀를 이든에 입학시켜야 한다.]

[다급히 가족을 급조하는 로이드. 그런데 그가 꾸려낸 가짜 가족은 모두 범상치 않은 인간들이었고 온갖 소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다음으로 스파이 패밀리가 어떤 매력이 있는 작품인지 간단한 포인트를 뽑아 보자면요.

1. 딸 아냐의 기상천외하고 엉뚱한 행동이 굉장히 귀엽고 웃기다. 핵심 매력 포인트.

2. 유머와 시리어스를 절묘하게 뒤섞는 전개 덕분에 보면 기분이 즐겁고 웃음이 나옴. 진지한 첩보 에피소드가 펼쳐지다가도 아냐 같은 인물이 망상을 하거나 이상한 계획을 짜는 유머가 간혹 섞이는데 이게 위화감없이 굉장히 유쾌함. 요즘에 이렇게 순수한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 잘 없기 때문에 굉장히 유니크한 매력이 있음.

3. 1급 일상물이기도 함. 아냐와 친구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장면들이 짱구를 못말려 급으로 굉장히 즐겁게 묘사됨. 거기에 아냐가 자기 나름대로 뭔가 첩보를 해본답시고 다미안과 티격태격 하는데 이 과정의 오해와 착각이 굉장히 웃기고 재미짐.

4. 주인공들은 자기 정체과 능력을 숨긴 채 가짜 가족을 구성하고 있다. 이런 착각물적 면모로 인해 굉장히 재밌는 상황이 많이 뽑힘. 캐릭터극으로서도 훌륭함. 캐릭터가 자기 성격에 맞게 행동만 할 뿐인데 굉장히 재밌는 상황극이 자연스레 연출됨.

5. 가족 드라마로서도 마음을 울리는 구석이 있음. 고아원에서 외로웠던 소녀 아냐가 스파이 아버지와 암살자 어머니를 만나고, 두 사람에게 애착을 가지며 가짜 가족이 해체되지 않게 안간힘을 쓰는 드라마가 제대로 작동한다. 유머러스한 연출일지라도 아냐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몰입하게 만듬.

6. 스파이극, 가족극 두 요소가 혼재되어 있지만 코믹한 가족 시트콤으로서 더 가치가 있다고 느낌. 작가가 본작의 냉전 스파이물적인 요소를 준비를 덜 한 건 아니고 조사도 철저히 한 편이라고 생각. 그러나 비유하자면 하드 SF보단 스페이스 오페라적인 접근법이며 만화적 과장이 크게 이루어지는 세계관임. 스파이물 요소가 두드러진 에피소드를 볼 때 자체적으로 굉장한 몰입을 시켜주진 않는다고 생각함. 어디서 봤을 법한 익숙한 소재를 무난하게 그려내는 정도로 느낌. 다만 아직 애니화가 덜 된 원작 최신 연재 구간의 첩보물 에피소드나 전쟁 에피소드는 좀 더 몰입감의 질이 좋아졌다고 생각.

더해서 애니와 원작을 비교해 보자면,

1. 애니판
- 아냐의 귀엽고 엉뚱한 모습들이 훨씬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원작에선 뒷배경에서 지나가듯 그려지는 아냐의 바보 같은 행동과 망상이 애니에서는 화면 전체를 투자해 제대로 그려짐. 아냐 팬으로서 대만족함. 예를 들어 원작 유람선 에피소드에서 아냐가 아버지를 떼놓기 위해 탁아실에 들어가 노는 척 하는 장면이 있음. 원작에선 탁아실 문만 묘사되고 아냐가 대충 노는 시늉 하다가 도망갔다는 뉘앙스만 나타난 장면이었음. 그런데 이 부분이 애니에서 자세한 디테일이 확 살아남. 애니판에서 아냐는 공으로 드리블 연습을 하다가 2초만에 질렸다고 말하는데 원작에 안 나온 내용이지만 아냐가 지극히 할 법한 행동이었음. 애니 제작진의 아냐 이해도가 매우 높음.

- 성우의 아냐 연기 해석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음. 원작에 비해 애니의 야나는 좀 더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느껴진다. 특히 아냐가 모든 것을 어린애인 자기 수준으로 맘대로 좋게 해석하는 망상을 할 때, 바보같은 엉터리 연기를 하고선 주변이 다 속아넘어갈거라 좋을 대로 생각할 때 성우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아냐 팬으로서는 애니판이 훨씬 만족도가 높았음. 아냐는 원작에서도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애니에서 훨씬 풍부하게 이해됨.

- 좀 더 아버지 로이드가 자상하게 그려지고 전반적인 톤이 온화하고 따스한 편이다.

- 캐릭터가 꽁냥꽁냥대는 캐릭터 뽕빨물적 요소를 파자면 애니가 굉장히 좋음. 원작에서 가볍게 다룬 유머와 소동들을 극한으로 파고들어서 과장한 느낌이지만 아무튼 웃김.

- 원작에서 무난했던 액션신이 애니에서 작화, 연출 보정을 받아 스펙타클해지는 보정이 있음. 스파이 패밀리가 귀멸의 칼날처럼 원작, 애니의 평판 차이가 나진 않지만 귀칼 애니 효과 같은게 작용함. 유람선 에피소드에서 불꽃놀이 쇼가 벌어지는 도중에 난전이 벌어지는 장면이 좋은 예시. 원작의 연출도 좋았지만 애니판의 연출은 극장판급으로 끌어올려져 굉장히 연출적, 심미적으로 훌륭한 인상을 주었음. 다미안과 친구들이 야외 학습을 간 뒤 호수에서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 아냐의 필살기 시전 장면도 매우 그림이 예쁘게 뽑혔음.

2. 원작
- 애니에 비해 과장이 적고 담백하다. 애니는 전형적인 일본 애니스럽다고 느낄 요란한 과장이 있는 반면 원작은 좀더 슴슴하게 볼 수 있다. 일본 애니 포비아가 있는 사람도 원작은 무난하게 볼 것.

- 로이드가 애니에 비해 좀 더 시니컬하고 투덜이같은 인상이다. 물론 애니판 로이드가 원작과 많이 다르진 않고 원작의 행동과 대사를 똑같이 하는 와중에 좀 더 톤이 따스한 정도의 미세한 차이임, 이 부분은 작가와 애니 제작진의 성향 차이인듯.

-작가가 (꽃미남) 로이드는 여러가지로 포기한 결과물이고 썩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아니라고 밝힌 적이 있음. 이 부분에서 뇌피셜을 뽑아 보겠음. 작가는 스파이 패밀리 이전에 진지하고 다크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함. 자연히 캐릭터도 입체적 어둠을 가지고 있었을 것. 애니판의 로이드는 지나치게 능력이 만능이고 성격도 따뜻하고 잘생긴 왕자님같은 무결점의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위험이 살짝 있음. 로이드가 인기는 좋긴 한데 작가는 이런 부분을 좀 경계할 것 같음. 특히 원작 최신 에피소드에서는 로이드의 트라우마적 어둠과 행동 동기를 자세히 묘사한 편임. 로이드에 대한 접근법은 애니가 대중적이고 원작 만화판이 좀 더 깊이있지 않나 생각함. 개인적으론 만화판의 로이드가 더 맘에 듬. 마냥 포용해주고 보듬어주는 것보단 살짝 까칠한 사람이 당황하다가 잘해주는 게 더 매력있음.

- 첩보물 에피소드는 원작이 좀 더 재미있다. 애니판에서 캐릭터 대사 독백이 굉장히 많은 편임. 만화판에서 인물들의 생각으로 빠르게 넘어갔던 독백 (코난이 탐정 추리하는 느낌의)을 애니는 모두 대사로 처리하고 있는 편. 개그씬에선 괜찮았지만 애니에서 진지한 시리어스 전개를 할 때는 이 부분이 살짝 지루할 수가 있다. 그 외의 요인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왜인지 원작 첩보 에피소드가 똑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흡입력이 있고  집중이 더 되는 듯한 인상이었음.


대충 이 정도네요. 그리고 애니 1쿨, 2쿨에 더해 3쿨이 될 원작의 최신 에피소드들은 좀 더 비극적이고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전 여기서 원작자인 엔도 타츠야 작가가 껍질을 한 겹 깼다는 인상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작가가 보여준 냉전, 시대 사회상 묘사는 잘 만든 외적 표피에서 머무르고 있었다고 느꼈는데요. 그래서 전 스파이 패밀리의 첩보적 요소보다는 가족 시트콤, 착각물로서 더 마음에 들어했지요.

그런데 근래 원작의 비극 전개는 전쟁의 아픔과 본질에 대해 더 세게 마음을 울리기 시작했어요. 엔도 타츠야 작가가 빛을 못봤던 예전의 발표작들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을텐데 이번에 불꽃 드라이브를 달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작품의 품질을 한층 끌어올릴 수 있을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리얼리티와 디테일로 인해 작품의 후반 클라이맥스가 훨씬 설득력과 몰임갑을 얻게 되겠죠.

곧 나올 애니 3쿨이 너무너무 기대됩니다.


극장판애 대한 얘기는 이 글에서 다 못했는데요. 전 극장판은 전형적인 양산형 애니 극장판, 평점 5~6의 흔해 빠진 작품으로 보았기 때문에 따로 분리해서 글을 적겠습니다. 원작에 한참 못 미치기 때문에 원작팬이 아니라면 볼 이유가 전혀 없죠. 왕창 까게 되겠군요.

극장판에 대한 다음글은 여기입니다.

https://pgr21.net/freedom/10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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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chemist*
24/08/28 15:19
수정 아이콘
스파이패밀리 저도 와잎님이랑 같이 즐겁게 봤습니다. 본도상을 처음 보고 제 배를 보더니 저보고 본도상이라고... ㅡ.,ㅡ;;
아무튼;; 말씀처럼 크게 무겁지 않게 즐겁게 볼 수 있는게 참 좋은 거 같습니다.
플레스트린
24/08/28 16:30
수정 아이콘
요즘 우중충한 작품만 주구장창 나오는데 이렇게 가볍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작품이 있어서 너무 행복합니다
*alchemist*
24/08/28 18:12
수정 아이콘
맞아요. 웃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한 듯 핮니다 흐흐
시린비
24/08/28 15:22
수정 아이콘
극장판은 여러모로 아쉽죠... 너무 날림이지 않았나... 애들영화를 목표로 한건 알겠지만서도
똥의신 장면이 그렇게 길어야 할 이유도 모르겠고.. 애들을 위해? 애들 그장면 좋아하나...
플레스트린
24/08/28 16:30
수정 아이콘
다들 똥의 신 장면에서 크게 깬 반응이더라고요, 저는 개연성 병자라서 그 부분보다는 극장판 자체의 엉터리 개연성이 조금 더 걸렸지만...

다음 글에서 극장판을 왕창 깔 때 언급한 내용이지만, 극장판 감독이 원작을 그냥 아냐가 개그치고 꽁냥거리는 작품으로 단순하게 이해해서 너무 안일하게 접근한 느낌이었습니다.
MurghMakhani
24/08/28 15:35
수정 아이콘
저도 스파패 배우자랑 즐겁게 정주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음 시즌도 금방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미안이 친구한테 속아서 작별의 춤 추고 선물 주는 씬이 아직까지 저희 부부 웃음벨인데 그게 왜 그렇게 기억에 남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흐흐
플레스트린
24/08/28 16:28
수정 아이콘
저도 그 장면 굉장히 웃겼습니다. 그 외에 제 최애이자 배꼽잡고 웃은 씬은 아냐가 유람선 탑승 경험을 마구 자랑하다가 친구들이 시큰둥하자, 유람선에 대단한 사람 있었다면서 암살자 사슬낫을 자랑하는 장면이었는데요. 전 그 장면이 엄청 웃겼어요.
강동원
24/08/28 15:55
수정 아이콘
원작이든 애니든 참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 로이드는 어쨋든 작중에서 평화를 위해 본인의 손을 더럽힌다는 점이 납득이 가는데
요르는 한 번 씩 그 살인 행적들이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어서 턱턱 걸리곤 합니다.
하지만 아냐가 귀여우니 넘어가도록 하죠! 원작자가 알아서 풀어주겠지!
플레스트린
24/08/28 16:2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원작 유람선 에피소드에서 요르의 암살자로서의 동기부여에 대한 감정적 성장을 다루긴 했는데요. 저도 그 부분이 살짝 편의주의적이라 느껴서 좀 아쉽네요. 요르가 인기가 많은 캐릭터이지만 저는 선량한 요르가 굳이 암살자 생활을 하는 이유에 대해선 납득을 좀 덜 하고 보고 있습니다. 암살자로서의 컨셉이 앞서고 있다고 느껴요. 로이드나 아냐에 비해 캐릭터의 진지한 어둠(가난한 유년시절과 동생과의 이야기)이 살짝 약하고 단면적이라 느끼고요.

요르가 그저 맹하고 순한 아가씨가 아니고 국가나 전쟁, 폭력에 대해서 나름의 아픔이 있는 캐릭터였으면 좀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요르가 평범한 인간성이나 상식적 사회성을 띄지 못하고 겉도는 아웃사이더인 이유도 엮으면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매국노를 증오하고 복수한다는 동기는 충분히 말이 되는데 그걸 요르가 수행하니 말이 안 되는 거라서...
강동원
24/08/28 16:32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그게 깔끔하게 해소가 안되고 있으니 요르의 해피엔딩이 제 머리 속에선 그려지질 않아서 마음 한켠이 불안불안하단 말이죠... ㅠㅠ
모두안녕
24/08/28 15:57
수정 아이콘
과거 일본 만화와 애니의 황금기랑 달리 요즘시대에 수작이라고 불리울 만한 만화와 애니가 드문데 원작과 애니 둘다 우수하게 나와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애니화가 진행되면 작붕이나 각색에 의해 품질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은데 해당 작품은 매우 우수하더군요.
플레스트린
24/08/28 16:27
수정 아이콘
저도 스파이 패밀리 시리즈 전체적으로 소장 욕구를 강하게 느끼네요. 덕후가 덕후되는 심정을 매우 절실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Mephisto
24/08/28 16:04
수정 아이콘
원작의 장점이 작가가 그동안 뜨지 못한 이유.....
플레스트린
24/08/28 16:27
수정 아이콘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것에 차이가 분명 있지요...
24/08/28 16:35
수정 아이콘
만화에서 느끼기 힘든걸 성우가 너무 잘 살렸어요. 저도 애니부터 너무 재밌게보고 만화 봤습니다
플레스트린
24/08/28 16:43
수정 아이콘
저도 애니를 통해 아냐가 완성된다는 느낌이라 너무 행복했습니다.
及時雨
24/08/28 18:22
수정 아이콘
위에도 나왔지만 저도 요르라는 캐릭터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워요.
애나메이션 2기에서 한화를 통틀어서 행동 동기를 풀어놨는데 그 정도 소요시간을 들였는데도 공감이 단 하나도 안되는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냥 아냐가 행복하길... 그거 하나만 믿고 가는 만화인걸로...
플레스트린
24/08/28 18:2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원작에서 가볍게 보고 소흘히 했다가 크게 돌아온 숙제인 것 같습니다. 유람선 에피소드에서 일본만화식 감동 각성 전개로 요르의 동기를 대강 처리했는데 대단히 아슬아슬했죠. 이 만화를 매우 사랑하는 저도 납득이 안 될 정도니까요.

만화 캐릭터를 보면 기호화된 컨셉으로 떡칠되어 그저 외적인 컨셉이 전부인 캐릭터가 있는데요. 요르가 그 선에서 머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평소에는 야마토 나데시코 비슷하게 일관하다가 컨셉상 전투씬 때 눈 매서워지는 그림 정도만 보여주는데 깊이나 진실성은 딱히 없는...

하지만 그럼에도 요르 인기는 폭발인 거 보면 역시 예쁘고 잘생기면 다 필요없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저도 요르랑 아냐가 서로 부비부비만 해도 다 필요없으니 정말 진리인가봐요.
及時雨
24/08/28 18:34
수정 아이콘
로이드는 사람을 죽이더라도 동기와 신념이 납득이 가는데 요르는... 싸이코패스 그 자체...
플레스트린
24/08/28 18:3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차라리 사이코패스적 어둠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요르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냥 선한 캐릭터인데 억지로 잔혹한 암살자 컨셉만 쑤셔박은 느낌이 강해요. 그러니 요르가 일상 생활 도중에 누군가를 죽이는 발상을 하거나, 초반부 미술관, 레스토랑 장면에서 길로틴이나 나이프를 보고 매혹되는 장면 등은 설득력이 딱히 없이 보여주기식이라고 느껴집니다.

일시적 컨셉이었을 뿐 요르는 딱히 피나 살육에 매혹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상이 아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고 쟤가 정말 저런 사람이 맞나? 싶어 납득이 안됩니다.

지금처럼 단면적인 캐릭터 설계로 일관할 거라면 요르는 겉보기에만 신기할 뿐인 잔혹한 컨셉 없이 선량한 인물인 게 좋았을 겁니다. 사실 작중 묘사 구도도 그렇고요. 저 포함한 대부분의 팬들도 요르를 선하고 온화한 사람이라 좋아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나 그렇게 전개하자, 선량한 요르가 사람을 마구 죽이고 다니는 행적이 도저히 설명이 안된 나머지 개연성 폭발 직전에 이르렀는데요.

유람선 에피소드에서 요르가 나는 왜 이 암살 생활을 하고 있는 걸까? 고민하는 장면은 결국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작가가 안간힘을 썼지만 잘 되진 않더군요.

그나마 그 장면들에서 좋았던 부분은 따로 있었습니다. 요르가 '그래, 난 결국 내 곁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이 싸움을 계속하는 거야' 식의 전형적인 소년만화식 각성 전개를 보이는데 이건 정말 좀 그랬고요.

오히려 요르가 '칼을 들고 덤비니 죽였다. 미안하다. 그러나 칼을 들었다면 죽을 각오를 하는게 당연하지 않는가' 같은 냉철한 부분을 보인 모습이 훨씬 더 와닿았습니다. 요르가 뭐 민간인들 죽이면서 희열을 느끼는 건 아니잖아요? 이 부분을 파고 들면 요르가 죽이는 자들이 왜 죽어야 하는가를 보여줄 수 있겠죠. 매국노는 징역 그런 것도 없이 바로 죽어야 하는가? 그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해볼 수 있겠고요. (근데 이 전개를 보여주기엔 그간 요르는 너무 예스걸이었고 국가, 부패나 부조리에 대한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국 한 번 더 요르의 동기 보강을 에피소드로 풀어야 되나 싶기도 합니다. 어쟀든 지금 어떻게든 해당 문제를 파묻고 처리했으니 사족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도 아슬아슬해서요.

원피스도 초반에 샹크스 팔뚝 날려먹고 나서 나중 나온 패기, 오버파워 전개랑 앞뒤가 안맞아서 겁나 고생하잖아요. 그걸 유구한 세월동안 없었던 일인양 얼버무렸었는데요. 그러다 어떻게든 포장하려고 이게 다 샹크스의 빅픽쳐였다는 흐름으로 간다고 하더군요. 이게 실제 전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대충 수습하고 묻고 넘어가려 해도 발목을 어마어마하게 잡은 건 부인할 수가 없지요.

이런 걸 보면 주간 연재가 참 어렵습니다. 대충 안일하게 처리한 문제는 반드시 나중에 뒤통수를 치네요.
플레스트린
24/08/28 18:56
수정 아이콘
사실 컨셉충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긴 해요. 컨셉으로 시작하면 스타트는 쉽죠. 캐릭터라는게 처음부터 완성된 건 아니고 겉껍데기 컨셉에서 시작해서 살을 차차 채울 수도 있는 건데요. 그럼에도 요르는 처음 진로를 너무 어렵게 잡아가지고...
24/08/28 20:32
수정 아이콘
여친이 재밌다고 해서 1쿨은 정주행했는데 극장판까지 보려니 뭐가 좀 많이 남았네요
근데 이거 때문인지는 몰라도 슬슬 결혼 주제를 언급하던데 흠 무섭다...
플레스트린
24/08/28 21:12
수정 아이콘
(수정됨) 극장판은 그닥 재미없기 때문에 굳이 안 보셔도 됩니다. 2쿨도 1쿨에 비하면 분량이 많이 적은 편이네요. 전 볼 내용이 뭐가 좀 많이 남으면 오히려 좋은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오타니
24/08/28 22:39
수정 아이콘
비슷한 애니 추천해주세요
플레스트린
24/08/28 23:29
수정 아이콘
저도 애니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라서... 그리고 제가 이 작품이 맘에 들었던 건 비슷한 작품들이 딱히 없는 고유한 테이스트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VinHaDaddy
24/08/29 11:14
수정 아이콘
저는 원작은 이북으로 갖고 있고, 애니는 대충 본 입장인데, 뒤늦게 1기 오프닝곡 믹스넛에 꽂혀서 계속 듣고 있습니다.

가사가 너무 좋더라구요. 나무열매 속에 섞여들어가서 자기도 나무열매인 척 하는 땅콩 비유도 적절해보이고(게다가 아냐가 땅콩을 좋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2절에 "별(스텔라) 하나 없는 밤 번개(토니트)만 가득한 날도 좋아" 같은 가사는 감탄이 나오게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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