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행 영업의 꽃은 프라이빗뱅커 혹은 RM 이라 불리는 자산관리사이지만
시중은행 창구직원으로 입행한 나는 여엉 투자상품 영업은 자신이 없었다.
막연히 돈을 많이 벌어서 자산관리를 받고 싶었지, 남의 돈관리를 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될 줄은 학생땐 참 몰랐다.
문과 치고는 숫자를 좋아했지만 숫자를 불리는건 나의 재능이 아니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시중은행 창구에서 근무하면서 남의 통장 정리만 해주느라 내 자산을 불리는 것엔 서툴렀는데
2017년 비 오던 공휴일, 재미삼아 한 번 들어가볼까 했던 분양 모델하우스가 문을 닫은 바람에 홧김에(?) 부동산에 들렀다가
다음 날 계약을 하고 대출을 잔뜩 받아 서울에 내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집값이 폭등을 했다.
아, 서울 아파트는 무조건 오르는구나. 그때부터 포트폴리오고 뭐고 없고, 부동산 몰빵을 했다.
#2.
영업에 소질이 없었던 나는 다행히 외환 업무에서 재미를 찾았다.
정기예금 하러 오신 고객에게 펀드 한 번 해 보세요, 신용카드 하나 만들어 주세요, 권하기가 어려웠는데
외환은 필요로 하는 고객이 제발로 찾아오니 이렇게 좋을 수가..?
창구에서의 외환은 FX 딜링같은 거창한게 아니라
여행 경비를 환전해 주고 좀 더 하면 해외 송금을 보내거나 입금해주는 정도.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 질문이,
환전하러 왔는데요. (어떤통화로.... 알고보니 동전을 지폐로 바꾼단얘기...)
환전 수수료가 얼마에요? (외환거래 쌩초보)
노마진으로 해주세요 (...아니 왜??) 이런 식이다.
그러던 와중에 귀찮음을 가중시킨 지침이 내려왔는데,
'김치프리미엄을 노리는 불법 송금이 늘어나고 있으니 암호화폐거래로 의심되는 거래는 지체없이 신고하라'
는 것....
아니, 코인을 해외로 돈을 보내서 사는 건지도 몰랐는데 암호화례거래로 의심되는 거래라는게 무엇이며..
이게, 나와 상담하고 송금을 취결한 것도 아니고 인터넷뱅킹으로 깨작깨작 보낸걸 내가 무엇을 어찌알고 신고를 하라는건지.
됐고, 김치프리미엄이라는게 뭔지도 모르겠는데 마약거래에 이용된다는 암호화폐가 이렇게 찌질하게 거래를 한다고?
그저 한심하고 귀찮기 그지없었다.
#2-1.
유일하게 나의 외환업무 담당자의 이점을 활용한 재테크가 엔화였는데...
엔화가 천원 밑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오르겠지 꿀이네!
...라고 외치며 950원 대에샀는데 천원 회복은 커녕, 880원이 되었다...
#3.
은행원을 친구로 둔 사람은 주로 친구로부터 신용카드를 발급할 것을 부탁받고 (거절한다)
친구에게 대출 싸게 받는 방법을 묻는다. (도움이 안 된다)
올 해 2월 말, 친구가 다짜고짜 전화로 대출에 대해 물어왔다.
나는 대출 담당자와가 아니지만 부동산 투자를 하느라 대출을 많이 비교해 봤기에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다.
그런데, 그러고보니.. 집도 이미 있는 애가, 왜 2억을 추가 대출을 하려고 하는건지 물었더니
비트코인을 사기위해서라고...?
얘가 미쳤구나.
자금세탁의 온상인 도박판에, 그것도 빚까지 내서 빠지러 간다니 이 불쌍한 개미를 살려내고자
한심한 김치프리미엄 투기꾼 (그때까지도 사실 김치프리미엄이 뭔지 몰랐다)
소탕을 위해 내가 창구에서 했던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그런게 있을리가..?)
설득을 하려다가 내가 사실 제대로 아는게 없다는걸 알았고,
당시 흘려 듣고 의외라 생각했던 미국 SEC의 비트코인 현물ETF승인 기사를 정독하고,
알트코인이 뭔지, 채굴이 뭔지, 반감기가 뭔지 제대로 팠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다.
아, 내가 그 한심한 김치프리미엄 투기꾼을 그때 잡아서
그거 어떻게 하는거냐고 물어봤어야 했구나.
#4.
뭔가 거창한 제목을 걸고 시작했지만
사실 이 새로운 세상이 차아암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는 말밖에 없다.
보수적이라 주식도 안 하고
오로지 부동산은 장기우상향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보유하고 있는데
당시 반감기를 앞둔 비트코인은 무조건 폭등한다는 서울 아파트보다 더 강한 확신이 생겼다.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에 나름 똑똑한 지인들에게 비트코인 말을 꺼내면
도박판 얘기냐며 손사레를 쳤다.
나름 비트코인의 오해와 음해에 대해서 정리해서 브리핑을 해도
오히려 걱정의 눈길이 돌아왔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나에게 결정적인 트리거가 된 것이 무엇일까.
튤립버블을 운운하기엔 이미 15년 이상을 폭풍성장했고,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전세계 자산 10위안에 들어 은을 넘어서려 하고있다.
블록체인의 기술력을 알아보다 AI 열풍에 맞닿았고,
부동산 투자할 때보다 더 미국 금리 결정에 더 예민해졌다.
부끄럽지만 금본위제 폐지를 이제서야 듣고 경악을 했고 (이 양아치들!)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으로 그 가치의 90%를 이미 상실한 화폐를 대신하게 될 것이라 믿게 되었다.
달러를 쥔 미국이 가만두지 않을거라고?
비트코인 ETF가 승인되었고 이미 전세계 자산이 무섭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암호화폐의 내재가치가 있느냐는 이제 의미가 없다.
가격이 이미 증명하고 있고, 모든 경제활동이 비트코인으로 귀결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5.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가족에게는
비트코인과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냥 코인(알트코인)은 다르다고 얘기한다.
비트코인은 잘못이 없다.
코인으로 망했다는 것은 대부분 롱숏 선물, 과도한 레버리지 때문이다.
비트코인보다 더한 변동성에 날뛰는 알트코인에 도박을 하다 망하고
트레이딩이라 말하며 사팔사팔하다 손실을 보는 것은 지양할거라고.
한동안은 흥분상태로 주변에 비트코인을 전파하고자 했말으나...
이젠 좀 자중하고 반감기를 숨죽여 카운트다운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멀지 않은 미래에, 나도 꼭 말해보고 싶다.
내가 그 때 비트코인 사라고 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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