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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25/03/20 22:29:33 |
Name |
Poe |
Subject |
[스타1] 낭만 넘치던 25년 전 승부 (수정됨) |
2000년의 일이다. 미루고 미루던 영장이 언제 나올지 몰라 늘 두근대며 살던 나이였다. 당시 내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건 스타크래프트. 인터넷이라고는 대학교 컴퓨터실에서나 제한적으로 맛볼 수 있던 작은 변두리 국가에서 살다가, 골목마다 PC방이 있는 한국에 이제 막 도착했던 터였다. 컴퓨터만 패는 것에 시들해졌다가 사람 대 사람이 붙는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낭만의 때였다. 정형화 된 빌드오더나 유닛 컨트롤 개념이 상식처럼 굳어지지 않았었다. 모두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자려고 누우면 낮에 했던 게임이 떠오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 빌드를 짜고, 짠 빌드를 집에서 컴퓨터 상대로 실험해봤다. 그래서 손에 익으면 PC방으로 가서 사람을 상대로 써먹었다. 그런 날들을 수없이 반복한 끝에 나는 드디어 최강의 프로토스 빌드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지금에 와서 이름을 붙이자면 초패스트 멀티 투게이트 캐리어? 공방(헌터스+로템) 승률도 꽤 잘 나왔었다.
25년만에 이 초특급 빌드를 공개한다.
1) 9 프로브까지 생산
2) 400모아 넥서스
3) 100모아 파일런
4) 투 게이트 + 포지
5) 적당히 캐넌과 질럿으로 방어
6) 테크 올려 캐리어 생산
7) 시간과 돈 남을 때마다 투 게이트에서 드라군 생산(캐리어가 비싸니 게이트를 두 개 유지하는 게 핵심)
이 빌드로 나이 차 한참 나는 사촌동생들을 제압하고 승승장구했던 나는 어느 날 로템에서 한 테란을 만났다. 나는 2시, 상대는 8시였다. 느지막히 정찰을 갔을 때 깜짝 놀랐는데, 그 나약한 테란 따위로 앞마당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테란들은 대부분 벙커를 입구 쪽에 여러 개 박고 시작했었다.) 하지만 9프로브로 넥서스 박은 다음 캐넌 부지런히 짓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건 훗날의 캐리어를 기약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테크가 순조롭게 올라가지 못했다. 상대가 앞마당 자원의 힘 때문인지, 별별 공격 유닛들을 다 만들어내면서 중앙 진출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나올 때마다 뭔가 조금씩 달랐는데, 꽤나 위협적이었다. 마린 파이어뱃 레이스가 섞이기도 했고, 탱크와 골리앗이 띄엄띄엄 줄서서 나오기도 했다. 나는 오로지 드라군으로만 막았다. 두 게이트에 생산 예약을 잔뜩 걸어두고 있었기에 캐리어에 쓸 자원이 없었다.
내 두 게이트들의 랠리는 전부 맵 중앙에 찍혀 있었는데, 상대가 한 줄로 끌고 나오는 그 별별 공격 유닛들을 의도치 않게 학익진으로 맞이하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둘은 이미 그 때 클래시로얄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게이트 랠리 컨트롤로 맵 중앙에 박격 내지는 석궁을 깔고 있었던 것이고, 그는 넘쳐나는 엘릭서를 가지고 그 때 그 때 쿨 차는 대로 카드를 냈던 것. 그리고 맵 중앙의 자동 전투를 둘이 긴장한 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자동 전투는 아슬아슬했는데, 늘 내 드라군들이 서너 마리 살아남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부랴부랴 생산 예약을 걸고, 혹여 모를 상황에 대비해 멀티 입구 쪽에 캐넌을 한두 개 추가했다. 그가 뭘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나, 확실한 건 우리 둘 다 더 이상 확장 기지를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막상막하의 숨 막히는 시간이었다. 사실 나는 예약 생산만 하면 됐기에 왜 그 때 숨이 막혔는지는 모르겠다. 상대는 그래도 유닛 모아 어택 땅이라도 찍었으니 인정.
결국 그 쪽이 먼저 항복을 선언했다. 상대는 GG를 치면서 “와, 물량이 어마어마하네요”라는 식으로 칭찬했다. 상대 조롱이 흔치 않던 시절, 나 역시 예의를 갖췄다. “게이트 쉴 새 없이 돌렸네요.” 그는 궁금했다. “게이트가 몇 개였어요?” 말 못할 이유가 없었다. “두 개에서 한 번도 안 쉬었네요.” 그는 납득했다. “아, 역시.” 그는 게임이 끝날 때즘 몇 개의 배럭과 팩토리를 보유하고 있었을까? ‘아, 역시’라는 힌트만 남긴 그는 그대로 나에게 승을 주고 사라졌다. 우린 다시 만나지 못했다.
25년이 흘렀다. 이제 아이들이 제법 컸는지, 묻는 단어의 수준이 높아진다. 어느 날은 ‘낭만적’이 뭐고, ‘낭만’이 뭐냐고 딸 아이가 물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까맣게 잊혔던 그 날의 승부가 떠올랐다. 말한들 딸 아이가 이해할 리 없는 낭만의 예시에 나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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