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지방 살기도 해서 별로 기회도 없기 때문에, 살면서 했던 e스포츠 직관은 작년에 지방에서 열린 롤드컵 경기를 (장사 오전에 망해서 홧김에 찾아간)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장사하는 가게가 공사 관련으로 이틀 정도 못 열게 되자 기회다 싶어 마음이 동해서 롤 좋아하는 친동생과 같이 직관하려고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특별히 응원팀은 없고 동생은 아프리카 팬이라 아프리카 VS 킹존을 보고 싶어 했는데, 시간상 되는 게 그리핀 vs 한화였는데 뭔가 좀 켕기는 느낌이 있었는데 시간이 그거밖에 안되더라구요. 그리고 서울 교통편이나 시간이 어떤지 모르니 차 타고 가기로 하고 서울 근처로 오니 차 밀리는것 부터 해서 한 6시간은 걸려서 올라왔는데,
그리핀 vs 한화전 픽 할때부터 느낌이 별로더니... 1세트 끝날때 암담하더군요.
하루 전에 자리 잡은거라 특별히 골라서가 아니라 남은 자리라 그리핀 응원석에 앉았는데, 1세트 끝나고 반대쪽 한화 응원석은 '한화 화이팅' 목소리도 힘이 쭉 빠진게 느껴지고, 반대로 그리핀석 응원석은 저번에 실패했던 소나로 완승을 거두기도 해서 기세가 올라서 등등했고,
그리핀에 원한은 없지만 워낙 한번 오기도 힘들다보니 3세트는 보고 싶어서 내심 한화가 좀 잘 좀 해보라는 심정이었는데 2세트도 그냥 뭐...
상황 상 동생이나 저나 한화에 동조하는 마음 가짐 상태에서 2세트 신지드픽 나올때 딱 보기에도 그냥 '어쩌라고 픽' 느낌이 나서 "저거 한화 선수들 발끈해야 한다." 이러면서 한화가 뭐라도 분노의 경기력을 보여줄까 싶은 기대를 함께 했는데 한화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상윤이 스펠도 못 쓰고 잡히면서 2세트도 그냥 시작부터 터져나가버렸고...
경기 끝나니까 기껏 오자고 꼬신 동생 한테 진짜 무안하더군요.
같이 오는 거라 교통비도 같이 반땅을 하는데 지방에서 차 끌고 오다보니 왕복 기름값만 십수만원에 톨게이트, 식비, 주차비(롤 파크에서 나올때 뭐 받으면 할인 되는것 같았는데 그것도 나중에 알게됨), 티켓 이런저런거 합쳐보니 한 두어시간 한화가 그리핀에게 무기력하게 얻어터지는거 보자고, 나야 그렇다치고 엄한 동생 데려왔으니...
뭔가 서로 찜찜한 마음으로 사람들 빠져나가길 기다리다가 "이제 갈까." 하는데 저 위쪽에 중계부스가 보이는 겁니다.
한 열명 정도 대기하고 있길래 혹시나 하고 보니 전용준 캐스터, 클템 해설 등등이 있던데 일일히 사진을 찍어주고 있더라구요.
형제끼리 같이 사진을 찍었는데 사실 동생이 클템 해설을 엄청 좋아합니다. 운동 선수라 늘 운동만 하고 달리 취미 생활 할 시간도 여건도 안나는 편인데 쉴때는 늘 클템 방송 자주 보면서 쉬더군요.
그래서 클템 해설 직접 보고 선선히 사진도 찍고 하니 엄청 좋아하던데 "클템 tv 잘 보고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순간 긴장해서 말 못해서 아쉽다고 하던.... 롤파크 아레나에 레전드들 벽화 있는것에 클템 사진 있는거 나중에 혼자 찍더군요.
그리고 전용준 캐스터. 박정석 vs 임요환 결승전에서 붙던 시절부터 진짜 초등학생 시절부터 봤던 TV에서 봤던 분인데... 사진 같이 찍어 되나 싶었는데 흔쾌히 계속 찍어주시더군요. 사인 요청하는 팬들도 몇분 있었는데 시간 때문에 그건 정중하게 거절하고 대신 사진 촬영은 마지막 분까지 다 기다려서 찍어주셨습니다.
전용준 캐스터이야 그 긴 경력 동안 사진은 정말 질리도록 같이 찍고 했을테니 지겹다운 지겨운 일이겠고 그냥 기계적으로 찍어만 줘도 달리 바라는건 없었는데, 형제끼리 같이 전용준 캐스터랑 같이 자세 잡고 사진 한방 찍으니 갑자기 이러시더군요.
전 캐 : "좀 사진 잘못 찍은것 같은데? 흔들린거 아니에요? 다시 찍어봐요."
줄선 팬들하고 한참 같이 찍어주고 해서 귀찮을 수도 있었을텐데 저나 동생이나 말도 안했는데 먼저 그러시면서 다시 찍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다시 찍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또 붙잡고 말 걸으시더군요.
전 캐 : "진짜 형제에요 아는 형동생 사이에요?"
저 : "아 친형제 입니다."
전 캐 : "어디서 오셨습니까?"
저 : "지방에서 6시간 정도 걸려서 왔습니다."
전 캐 : "아 혹시 PGR에 지방에서 오신다고 글 쓰신 분인가?"
순간 귀를 의심했는데 진짜 저렇게 PGR 언급 하면서 말씀 하시더군요. 글 쓴 것도 아니고 불판에 "지방에서 보러 간다." "(1세트 끝나고) 6시간 걸려서 왔는데 이건 좀..." 이라고 댓글 한두개 날린 정도였는데, 아마도 중계 중에도 중간마다 관련 커뮤니티 반응 확인하시면서 일하시던듯...
아무튼 그렇게 인사하고 돌아다는데 경기 끝날때만 해도 하루 종일 돈쓰고 차타고 와서 너무 무기력한 경기 보니까 뭔가 뒷맛이 좀 그렇던데
해설진 분들 매일매일 늦게까지 중계한 뒤에 저렇게 정중하게 팬서비스 해주고 하니,
돌아가는 길에 저도 그렇고 끌고 온 동생도 그렇고 기분 좋아져서 나름 흐-뭇 하더군요. 경기 내용보다도 저게 더 기억에 남을듯 싶네요. 사자분들에게는 작은 친절일수도 있지만 그거 하나로 하루 느낌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니, 괜히 팬서비스가 중요한게 아니구나 하고 느껴졌습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내 둘 다 괜히 전용준 캐스터가 이 업계에서 최고인게 다른 이유가 아니라며 한동안 찬양회(?)를 했던건 덤이고, 동생은 아예 뭉클(?) 했다 이러기도 하던데 덕분에 저도 어깨 좀 핀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