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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08/29 17:35:44 |
Name |
퉤퉤우엑우엑 |
Subject |
[소설] 殲 - 6.심음 (深音) |
교실로 도망치듯 올라온 후에, 무슨 수업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누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난 단 하나의 생각만 하고 있어도 머리가 복잡해 죽을 심정이었으니까.
누가 말을 걸었는데 무시를 했다거나 수업내용을 전혀 듣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충분히 미쳐버릴 것 같아-
현관문을 열고, 아파트의 복도를 따라 걸어서 계단으로 내려갔다.
아파트 출구로 나와서 그저 걸었다.
이 동네에서 쉴 만한 곳이라면, 공원 뿐이려나.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때 이른 낙엽들을 걷어내고 벤치에 앉았다.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 몇개 없지만 맑지 않은 건 아니다.
남자 둘이서 싸우고 있는 듯 둘이 마주서서 서로 노려보고만 있다.
뒤에선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다.
"정말...인가요?"
"그렇다고. 그러니까 이제 여기서는 내버려둬줘. 그게 약속이잖아?"
"......"
철컥.
"제 직분일 뿐이에요."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그 전에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겼어."
"뭐...라구요?"
한명이, 나에게 돌진하고 있다.
돌진하고 있다기 보단, 돌진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 앞에서,
나이프를,
내 복부로,
깊이,
찔러 넣으려...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 낯이 익어.
그리고, 저 목걸이도─마음에 들지 않는 저 목걸이도─말이야─
「기억이 끊어졌다」고? 글쎄.
난 충분히 기억하고 있는 걸.
그 자식이 칼로 날 찌르려 했지. 하지만 약해 빠졌어. 겨우 그런 속도와 힘으로 날─
오른쪽으로 피해서, 칼을 들고 있는 팔목을 붙잡았다.
날도 썩 날카롭지도 않아.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역겨워.
그래. 인간들이란, 이런걸로도 충분히 죽는다 이건가.
그렇다면 이걸로는 어떨까? 예를 들어 나와 마주본다던가, 말이지.
아니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잖아. 조금은 자비를 베풀어 주자구.
뭐, 한 손 정도면 될까─
"으아아아아악!!!"
정신이 들었다. 아니, 정신이 있었는데 정신이 들었다고 생각을 했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의 비명소리는 뭐...지. 아아, 그래. 내가 아까 생각했던 것에서 아마-
"서...선...선생님!"
이건 성준이의 목소리.
내가 생각했던 게 틀린건가. 아마 아까의 비명소리는 성준이가 질렀던 건가보지.
그보다 지금은 무슨 상황인거야. 왜 비명 같은 걸 지르고...
"아......?"
난 바닥에 쓰러져 있다. 한쪽 다리만 의자에 살짝 걸친 채로 바닥에 완전히 누워 있다.
왜 쓰러져 있는가. 난 분명히 정신도 차리고 있었고, 내 몸을 쓰러지게 했다던가 한 적은 전혀 없는데.
괜히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쓰려져 있으면 일어나면 그만인거잖아?
"초한이랑 같이 양호실 갈 사람?"
몸을 일으키려는데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과학 담당 강태연 선생님.
과학 담당이라는 말보단 담임선생님이라고 하는 편을 더 좋아하겠지만. 저 선생님은.
"아, 아니에요. 아무 문제 없어요."
"조금 어지럽다거나 하면 그냥 양호실 가봐. 같이 갈 사람 붙여줄게."
누가 손을 드나 보려는지 다시 교실을 훑어본다.
"정말 괜찮아요. 그냥 쓰러져 있던 것 뿐인데요 뭘."
"그냥 쓰러져 있었다니! 넌 어제도 한번 정신을 잃었었어. 이건 과학적으로 어쩌면 너의 뇌 중에서..."
우- 하고 교실 전체가 웅성거렸다. '그만' 이라든가, '제발' 이라는 말도 들린다.
"아아, 조용!"
선생님이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애꿎은 성준이의 책상을 두번 크게 치자(성준이는 크게 움찔했다) 다시 조용해졌다.
"정말 괜찮은거지? 양호실 안가도 되겠어?"
"네. 겨우 이 정도로 양호실까지 갈 정도는 아니에요."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다거나 하면 바로 말해. 공부보단 건강이 우선이잖아."
그 마지막말에 조금 악센트를 넣어서 말하자, 교실 전체가 또 다시 우- 하고 야유를 퍼부었다.
상당히 신뢰가 가지 않는 말이어서, 모두들 진지하게 야유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도 교탁에 지휘봉을 두어번 휘두르는 일로 마무리 됐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바로 이런 게 내가 사는 현실인거야.
공원에서 사람을 죽였다거나 하는 일 따위는 나와는 거리가 먼 건 너무나 당연한 일(아니)이잖아?
비록...이 즐거운 현실도 얼마가지 못할 것 같기는 하지만.
이미 사람은 죽었고 내가 죽였으니까, 내가 도망가는 일만 없다면 늦어도 내일 쯤엔 잡히겠지. 범인이 말이야.
모자와 마스크를 눌러 쓴 그 추악한 범인은 바로 여기 있는 '평범한' 나 일거고.
이런 생각이 들면 오히려 마음만 더 답답해질 뿐이다.
차라리 전부 체념하고 지금 이 상태에 더 집중해 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생각하고, 서른 여섯명이 가사상태에 빠져있는 교실 안에서 생존자로 남았다.
마지막 수업이란 거, 이런 느낌이었나 봐.
학교에서의 일과를 완전히 끝냈다.
터벅터벅 발소리를 내며 집으로 향한다.
마땅히 방향이 같은 사람이 있는 건 아니어서(성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계만 아니었어도 지각 안하는건데!"), 가는 길에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 요행을 기대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집으로 향하는 길을 혼자 걷는다.
가로등은 켜져 있지만 그래도 많이 밝지는 않는 건 마찬가지.
앞에는 공원 울타리가 보인다. 또 저 공원을 보면서 지나갈 수밖에 없겠지.
정작 이럴 땐 '선배!'라고 외치며 달려오지 않는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뭐, 별 문제는 없겠지. 이런저런 생각 하다보면 집이야 금방 도착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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