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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5/15 20:32:56
Name Bar Sur
Subject [잡담] 그 꽃이 너무 붉어서.
'오롱조롱'이라는 단어를 아니? 한데 얽혀서 사람 사는 것이 이렇게 오롱조롱한 모양새인 것 같아. 성년의 날이라고 장미꽃들을 들고다니는 아이들 모습을 보았어. 그들 역시 오롱조롱하게 몰려다니며 시끌벅적하게 학교 안을 달궜지. 그런데 그렇게 한명한명이 붉은 꽃을 들고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거야. 그네들의 모습에도 봄이 왔고 생생지리대로 그네들 가슴가슴에도 붉은 꽃이 피어난 거 아니겠어? 어쨌든 그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거야.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없어도, 혹은 나처럼 아름아름하게, 지망지망하게 살아왔어도 누구에게나 봄은 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버린 지금의 나에게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이지. 저 꽃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정말 짧은 마찰로 인한 불꽃처럼 피었다 지는 한 순간이라는 걸 저들도 알고 있을까? 그 짧고 격렬한 충둘로 불꽃의 잎새가 바닥에 흩날리게 되었다는 것은, 그 다음 순간은 마찰을 일으켰던 그 거대한 수레바퀴가 쉴세 없이 굴러간다는 것에 다름 아닌 거야. 그걸 우리도 그때에는 잘 알 수 없었던 거지. 단지 그 꽃의 색이 붉어서, 너무 선연하게 붉어서.

사람들 안에는 누구나가 공막한 황야가 있고 거기엔 공몽히 새벽의 안개가 끼어있는지도 몰라. 그 이율배반적인 열기와 습기를 품고 몸의 꽃을 피워내는 거지. 그러니 그 꽃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그렇게 붉을 수 있는 거야. 내가 아주 어렸을 때 교회 앞의 화단에서 벌에 쏘인 거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나도 그땐 교회를 다녔었지. 인형극을 보고 초코파이를 얻어먹고,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기 위해서. 딱 한해 동안, 크리스마스까지만. 성경 구절 하나 기억나지 않는데, 내게는 그 벌에 쏘인 기억과 도저히 우리 집엔 들일 수 없을 것 같은 교회의 그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만이 기억나. 꽃은 그렇게 피었다가 향기만 남기고 지는 거야.

내가 버스를 타고 통학하는 건 말했던가? 꽤나 길고 지루한 시간이야. 난 대부분을 책을 읽거나 종종 바깥 풍경들을 관찰하는데 할애하곤 해. 이게 아주 외로된 사업이란 말이지. 그런데 한 달 사이에 버스를 타고 가는 바깥 풍경의 한 페이지가 바뀌어 있었어. 도로 한쪽의 화훼상가가 철거되고 새로이 무슨 건설을 위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었지. 한달 전만해도 "정부는 물러가라. 화훼 상가 철거 결사 반대!"라고 붉은 글씨로 휘갈겨놓았던 현수막이 "축 건설우수업체 선정 하 - XX건설"로 아주 건전한 문구와 색깔로 바뀌어 있었던 게 눈에 들어왔어.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지? 이상해? 하지만 그게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닌거야. 단지 그걸 아는데 우리가 긴 시간을 소비한 것 뿐이지. 그 꽃이 너무나 붉어서. 우리가 한데 얽혀 살아가는 오롱조롱한 세상에서 꽃이 시들고, 공막한 황야, 공몽히 끼인 새벽의 안개를 걸어가면서도 꽃의 향기만은 오롯이 남아서.


--

03학번이라 하니 당최 믿지를 않습니다.

사실 그래요. 안면의 액면가가 좀 많이 높아요.

당신들이 동안이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생각해보니 그건 무리.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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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
06/05/15 20:42
수정 아이콘
요센 더더욱붉어진거 같습니다. 아니면 내눈이 붉어진걸수도....
ps03학번이라는 걸안믿으면 5수했다고하면 믿을거에요///
You.Sin.Young.
06/05/15 20:56
수정 아이콘
본문과 관계 없는 이야기..

얼마 전에 꽃사진을 봤는데.. 참.. 아름답더군요.
그런데 단순히 아름답다는 건 아니었어요.

뭐랄까.. 이효리 씨가 허벅지 내밀고 춤추는 동영상보다 더 섹스어필하더요.

왜 경국지색을 꽃에 비유하는지 알 거 같았다고 할까요.
06/05/15 21:28
수정 아이콘
한국어 공부 또 하네요^^
다른 분들을 위해 네이버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오롱―조롱'[부사][하다형 형용사] 몸집이 작은 여러 개의 물건이, 생김새와 크기가 저마다 다른 모양.
'공막―하다'(空漠―)[―마카―][형용사][여 불규칙 활용]
1.아무것도 없이 아득히 넓다.
¶공막한 황야.
2.(이론 따위가) 막연하여 종잡을 수 없다.
'공몽―하다'(空―·―)[형용사][여 불규칙 활용] 이슬비가 많이 내리거나 안개가 몹시 끼어 보얗고 자욱하다. 공몽-히[부사].

산문이지만 음악성이 느껴져요. 'ㅇ'의 비음섞인 음악성과 'ㅁ'의 따뜻함 그리고 오롱조롱의 밝은 이미지와 공막하고 공몽한 어두운 이미지의 댓구가 멋지네요. 승(경치)과 정(감정)의 어우러짐도...

저는 동안이라서 나이를 속이고 삽니다. 나이값 못하는 동안과 나이 이상의 연륜을 지닌 노안(죄송)이 어우렁더우렁 사는 세상사 아니겠습니까?
옌 n 엔
06/05/15 22:46
수정 아이콘
참.. 잡담이라 하셨지만, 뭉클하게 느끼고 가네요.. ^^ 글 잘 읽었습니다.
06/05/16 09:37
수정 아이콘
안면의 액면가가 좀 높으시면 어때요? 이런 기막힌 글솜씨를 가지고 계시는데...^^
06/05/16 10:17
수정 아이콘
저 역시 03 학번이라고 하면 믿지 않는군요. 낭패 스럽더군요...



사실 93 학번 입니다.
06/05/16 10:45
수정 아이콘
최근에 학교에 가야할 일이 있어서 들른 김에 예전에 활동하던 동아리방에 들렸더랍니다...
불쑥 들어가서, "안녕하세요 96학번...." 여기까지 얘기하니까, 동아리방에 있던 학생들이 전원 기상하더군요.. 하아... -_-;
(주제와 그닥 상관없어 보이는 댓글 죄송합니다.. 학번 얘기가 나오길래.. ;;)
06/05/16 13:45
수정 아이콘
03 학번이라고하면 당췌 믿지를 않더군요. 재수까지 했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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