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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1/12 11:10:55
Name 윤여광
Subject [yoRR의 토막수필.#13]Rise And Fall.

-BGM-
-Find The Way(Instrumental) By Nakashima Mika-


  주택가의 창문들 사이로 새나오던 형광등 불빛이 하나 둘 사라질 때 즘 오히려 더 바빠지는 노점상 하나가 있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하루 힘들었던 속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 모이는 이 들이 대부분인 그 가게는 생긴지 얼마 되지 않아 굉장히 깔끔한 모습이었다. 어묵과 떡볶이 류의 간단한 분식을 주로 파는 그 가게는 특별나게 맛있다기 보다는 주변에 같은 음식을 파는 노점상이 하나도 없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처음 그 가게에 들어가게 된 이유 역시 다른 사람들과 별 반 다를 바 없었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술자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조금이나마 속을 달래보고파 들어갔던 그 가게를 그 이후로 꽤나 자주 찾아가게 된 이유는 주인의 따뜻한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술 마시는 건 좋은데 취하지는 마요. 젊은 사람이 술 따위에 지면 쓰겠어?”

  아직 서른도 넘지 않아 보이는 얼굴에 그래도 듬직한 덩치의 사내가 젊은 사람이라는 말을 쓴 것이 조금은 우스워 피식 웃으며 네..하는 짧은 대답을 남기고 가게를 나왔을 때 맛은 그럭저럭 보통인것에 비해 손님이 많은 것은 사내의 입담 때문이라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의 가게에 매일 같은 시간 늦은 밤에 찾아오는 한 사내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골 손님 정도로 생각됐던 그 사내는 정리를 하지 않은 듯 한 긴 머리칼에 까칠까칠한 턱수염의 지저분한 모습이었다. 혼자 상상해보기에 그래도 조금만 정리하면 주인 사내와 비슷한 또래로 보일 법 한 그는 입이 심심할 때 마다 가게를 찾을 때 마다 그의 앞에 서서 조용히 국물을 컵에 따라 마시고 있었다. 주인이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반해 그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행색으로 봐서 어느 평온한 가정의 가장다운 모습은 없었기에 나는 그가 혼자서 조용히 살아가는 단 외모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미혼남 정도로 생각했었다.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그 날도 술자리에 나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인의 말 한 마디가 그리워 그 가게를 찾았을 때 나를 반긴 사람은 주인이 아니라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긴 머리칼의 그 사내였다. 조금은 당황해서 머뭇거리는 나에게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오늘도 술 마시고 오는 거요?”

  그 역시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 보다는 오늘도 술이냐는 그의 빈정 섞인 말에 비위가 상했다. 대꾸 없이 어묵 하나를 집어 들고 입김을 불어가며 천천히 먹는 나에게 그는 주인보다는 차가운 손길로 나에게 컵을 건넸다.

“술 마신 속에 어묵 많이 먹으면 안 좋아. 느끼하니까. 이게 더 낫지.”

  그래도 나름대로 배려해주는 마음이 담겨있었기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숚여 감사하다는 말을 대신했다. 손에 든 어묵을 먹기 보다는 그의 행동이 더 신경 쓰였기에. 나는 잠시 먹는 것을 멈추고 핸드폰을 건드리는 척 하며 그를 살며시 쳐다봤다. 꽤나 능숙한 손놀림에 오늘부터 이 가게를 그가 인수받은 것이라 생각하던 나에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주인은 조금 있으면 올거야. 집에 잠깐 다녀온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

  상대가 느낄 만큼의 경계심을 품었던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다 식어버린 어묵을 한 입에 집어넣고 다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많이 먹으면 속에 좋지 않다는 그의 말이 떠오르긴 했지만 2개로는 많다고 할 수 없는 양이니까 그 역시 잠자코 있는 모양이었다.

“친구분이세요?”

  조심스레 건넨 나의 말에 그는 대답하지 않은 채 조용히 둥둥 떠다니는 파 따위를 건져내고 있었다. 친구가 아니라면 형이려나 하는 생각에 나는 내 질문이 답과 다른 것이라 그가 대답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먹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입에 그것을 집어넣는 속도는 평소에 비하면 많이 느렸다.

“어이이. 춥다아. 고생했네.”

  주인 사내가 들어온 것은 내가 2번째 어묵을 다 먹고 하는 수 없이 이제 돌아가려는 생각으로 주머니에서 동전을 끄적이던 때였다. 기회는 지금이다 싶어 동전을 집어내던 손을 꺼내 다시 어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많이 먹으면 속 안 좋다니까.”

  말 한 마디 하지 않던 그가 나에게 일침을 놓으며 그러나 손에 든 그것을 뺏으려는 하지 않은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떻게 보면 주제넘은 참견이었기에 나는 그의 말을 가볍게 흘려 넘기고 다시 입을 열었다.

“친구분이세요?”

  질문의 내용을 바꾸지 않은 것이 실수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막 들어온 주인 사내와 내 앞에 서있는 무뚝뚝한 그가 살며시 웃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런 생각은 말끔히 사라졌다.

“에 뭐. 왠수지 뭐.”
“손님한테 장사 시켜놓고 지 볼 일 보러가는 놈은 뭐냐.”

  그는 여전히 거친 말투로 주인에게 투정을 부렸다. 주인이 들어오자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국자를 조용히 구석에 잘 세워둔 채 내 옆으로 나와 섰다. 입고 나갔던 두꺼운 파카를 벗고 앞치마를 두른 그가 다시 국자를 집어 들었을 때 내 옆에 서있는 그 역시 어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내가 판 어묵 개수만큼 먹는다.”
“어이쿠. 누가 들으면 뭐 수 백개는 판 것처럼 말한다?!”

  서로 말하는 모양새로는 친구가 맞는 모양이었다. 아까 왜 대답하지 않았냐는 말을 하기엔 그들 사이에 주제넘은 참견인 것 같아 조용히 먹을 뿐이었다. 내가 굳이 묻지 않아도 천천히 열리는 그들 사이의 말 덕에 천막 안은 더 따스해졌다. 괜한 말로 그들의 대화를 끊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좀 어땠냐.”
“뭐 그냥 그렇지. 오늘이라고 짊어지는 벽돌이 가벼운 것도 아니고.”

  공사판에 막일을 나가는 듯 했다. 그래도 그렇지 얼굴 좀 신경쓰고 다니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다 다시 삼키느라 애 먹었다. 지금 상황에서 제3자의 참견은 독이 될 것이 뻔했기에 나는 그의 옆에서 한 걸음 물러나 섰다. 나는 지나가는 손님에 불과하다. 지나가는 이에게 벗들의 작은 대화는 끼어들기에 너무나 벅찬 하나의 벽 같은 것이기에.

“힘들었구만.”
“후으. 조금만 버티면 끝나는 일이야. 공사도 마무리 단계고.”
“언제까지 막일만 찾아다니면서 살 순 없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그다지 길이 안 보인다.”
잠시 그 둘의 얼굴에는 어두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고 주인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 아직도 지난 꿈에 젖어서 허우적대고 있냐?”
“....”
“좋았던 시절 다 간거다. 잊으라고 했잖아. 그렇게 기고만장해 있다가 다 잃어버리고 펑펑 울던게 너다. 그거 벌써 잊은거냐?”
“그래도 말이지...”
“그래도 라는 건 없어. 지난 건 지난 거고 지금은 앞 일만 생각해. 너 계속 옛일 못잊고 한탄만 하면서 살거면. 때려쳐라. 너 옛날에 나더러 뭐라 그랬냐. 이런게 해서 어디 먹고 살겠냐 그랬지? 그래 나 지금 이걸로 먹고 살잖아. 비록 젊은 혈기에 사고까지 쳐서...”

  주인은 감정이 격해졌는지 말소리를 높이다가 내가 옆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말을 멈췄다.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는 내가 가게에서 나가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3개의 어묵값을 그에게 내밀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그들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는 그래도 그 목소리는 들리는 천막의 바로 옆에 서서 잠자코 그들이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염탐하는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마누라랑 딸내미 지금 다 웃으면서 산다. 비록 내가 지금 이런 별 볼일 없는 오뎅 장사나 하고 있지만. 다 웃으면서 살아. 그러다 보면 더 좋은 날이 오게 되겠지 하고. 난 너처럼 좋았던 날도 없고 이 날 지금까지 까고 말해서 바닥에서 살다 그나마 좀 형편 좋아져서 이렇게 오뎅 팔고 살아. 예전에야 네가 나보다 훨씬 잘 나가고 돈도 많고 여자도 잘 꼬이고 그랬겠지만. 이 친구야. 좀 잊어라. 계속 과거에 묶여 있어서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버리기에는 그 날들이 너무 달았던 것 같다. 나는 언제나 승자였고 모두가 날 위로 올려다 보곤 했지. 나와 맞붙게 되면 상대는 항상 미리 다가올 패배에 벌벌 떠는 모습이 너무 재밌었어. 오히려 승리보다 그 맛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넌 지금 누가 봐도 패배자야. 명백한 패배자.”
“....”

  친구를 큰 목소리로 꾸짖는 주인의 목소리는 거기서 또 멈췄다. 마찬가지로 친구라는 그 역시 말이 없었다. 지난 날 지금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 있던 두 사내가 마주한 지금의 현실이 꽤나 안타깝게 보였지만 주인의 말이 별반 틀린 없었다. 지난 날은 잊어야 한다. 더욱이 예전에 비해 못한 날을 살고 있다면 더더욱 잊어야 한다. 지금의 나 역시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 말이기에 한 편으로 주인의 친구에게 일종의 동정을 느끼고 있었다.

“또 이길 수 있어. 조금만 더 견디면 또 지난 날들처럼 떳떳하게 승리자로 살 수 있다고. 그러니까 지금은 잊어라. 예전의 승리 따위 있지도 않았어. 너는 여태껏 지금과 같은 날들을 살아온 거야. 네가 남겨온 지난 승리자의 모습은 다시 날아오른 다음 추억해도 늦지 않아.”

  그 둘의 대화는 거기까지만 듣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냐는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그의 심정이 조금은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마도 부끄러웠겠지. 내려다보던 친구에게 지금은 오히려 꾸중을 듣고 있는 모양새가 마음에 걸렸겠지. 달콤한 시절의 꿈을 잊기에는 그 미련이 너무 컸겠지. 그에게 지금의 힘든 날들은 견디기 벅찰 만큼 큰 시련이겠지. 하지만 이렇게 날개를 접고 지난 날만 그리고 살기엔 이미 몸이 배어버린 승리의 쾌감이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은 받아들이는 것이 전부겠지만 다시 날개를 보살펴야 할 것이다.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더 많이 남은 만큼 오늘은 살아가기 위해선 잠시 그것을 잊어야 하는 것이 그에게 답이 될 것이다. 예전의 모습으로 어묵을 파는 친구 앞에 서게 될 내일을 위해선 그는 끝이 보이지 않던 좋았던 날을 그토록 그리는 과거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시작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힘들겠지만. 그것을 견뎌내고 못하고의 문제는 오로지 그의 역량의 문제. 이제 다시 천천히 올라가야 할 때다.


-작성한 것은 화요일인데 어째 올리는 날 상황을 생각하니 KTF팀의 모습과 조금 겹치네요. 4대0의 패배가 충격적이긴 하겠지만 언제까지 그 패배에 젖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조용호 선수의 CYON결승, 그리고 남아있는 그랜드 파이널.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강이라 하여 그 이름이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우승했다 하여, 한 번 1위를 차지하였다 하여 그 최강이라는 이름이 그들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최강이라는 호칭을 다른 이들로 부터 뺏어오고 지켜내는 것입니다. 한 번 실수했을 뿐입니다. 정규리그 23연승을 달릴 때 그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우리는 지난 리그 쭈욱 1위였으니까...따위의 안일한 생각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기에 따라서는 KTF가 예전의 KTF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약팀으로 불리는 예전의 삼성으로 돌아갈수도 있습니다. 힘내세요. 어제의 패배로 지난 날에만 매달리는 약자로 남기에는 앞으로 남아있는 당신들의 무수한 기회들이 아깝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K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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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6/01/12 11:14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더불어…… KTF, 제발 파이팅!
06/01/12 12:16
수정 아이콘
음 제목을 본 순간 헬로윈의 Rise And Fall이란 노래에 관련된 글인줄 알았더니 분위기가 전혀 아니군요. -_-;; Rise And Fall, 흥망성쇠란 말이 KTF의 입장에선 너무나도 절실하겠죠.
06/01/12 13:26
수정 아이콘
KTF, 파이팅!! 다시 일어나세요!
kiss the tears
06/01/12 14:09
수정 아이콘
제목이 제가 좋아하는 곡의 제목...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You.Sin.Young.
06/01/12 14:34
수정 아이콘
하아.. 책 하나 내시면 사서 사인 받으러 가겠습니다..
06/01/12 17:13
수정 아이콘
언제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
06/01/12 22:38
수정 아이콘
매번 감사합니다. Fall의 이미지가 가슴에 와 닿네요.
정성어린 글이라 댓글 다는데에 신경쓰이네요^^
산문이나 수필을 좋아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좋은 수필 하나 소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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