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3/11/17 00:17:43
Name 안전제일
Subject 애정과 혐오. 그 동시다발적인 행각들.
저는 무언가를 설명할때에는 사건의 본질을 바로 들어가고 싶어한다고 여기는 편입니다.
실제로는 어떻게 보일런지 모르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그러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매우 자주 심각한 심리추리극을 찍어대는 가정 환경상 사건을 설명할때는 그 주변 부터 더듬어가는게 사실입니다.으하하--;;
(바로 이문장 처럼요.)

그러한 경향은 원인이자 결과인 환경을 설명할때 더더욱 심화되기 마련이지요.
아아 뭔가 불편하군요. 편하게 말해도 될까요?^_^;(싫다 하셔도 안들립니다!)


본인에게는 많은 가족이 있습니다.
정말 많지요. 뭐..저만큼 많은 가족을 가진사람을 몇몇 보기는 했습니다만 또래중에는 별로 없었으므로 단호하게 무효!를 외치고
전 그냥 많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 전 이정도를 제 가족의 범주에 넣습니다만
실제적으로 남들에게 말할때에는 이 외에도 제 형제들에게 딸린 식구들도 제 가족이라 부르긴합니다.

나름대로 저 꼴리는 데로 살아온 편이기는 합니다만
험한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막내로 살아남기위한 처세술과 눈치, 무엇보다 강력한 생존력!(생명력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생존!)을 갖추어야 했지요.
이는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매우 성격좋고 밝은 사람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한 조건이었으므로
아직도 제 첫인상은 '성격좋아 보이네..'인게 된겁니다.

사실 형제많은 집 막내로 살아본 분이 꽤나 많이 계실것 같습니다만
제 경우 에는 성격드센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더 드세어 질수 밖에 없었지요.
일반적으로 여자형제들 사이에서 오고갈 싸움인 옷, 장식품등등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말안들었다고 혼나고 게긴다고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오죽하면 아직도 언니님들께서 저만 보면 하는 말이 '서열은 불변이다!'겠습니까.

거기에 매우 바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바..
사춘기 시절 적절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삐뚤게.....나간건 아니고.
오히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니 내 살길 내가 찾아야겠다란 심정으로
악착같이 도시락 싸서 다니고는 했습니다만.
그때에는 늘 어머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렸지요
'엄마죽으면 나 절대 언니들 안본다.'라고.
어머님께서는 그런 말을 하는 막내딸을 아주 의연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라'라면서요.

여튼.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진 저는 제 가족들을 매우 사랑합니다.(절 아는 사람이면 마구 비웃으며 돌을 던질지 모르지만 감히 이곳에서 절 아는척하지는 않을것 같군요.)
그러나 그 애정이라는 것은 본능적인 혐오를 동반하지요.
어쩌면 어린시절 보상받지 못한 애정에 대한 굶주림일지도 모르고
아직도 해소되지 못한 불균형에 대한 분노일지도 모릅니다만.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끔은 (?) 아주 이가 갈리게 보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에게 신세지기는 싫지요.
가족을 사랑하지만 가족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건 싫습니다.
라고 정리할수 있겠군요.
아아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제 스스로가 너무 귀엽습니다.
아직도 이런 사춘기적 감상과 분노에 몸을 떠는걸 보면 말입니다.(그렇지요?우훗-)

이런것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관심을 택했었고 피하기도 했었습니다.
(큰언니님께서 내려오신다는 소식을 접하기가 무섭게 약속을 잡아서 나가곤 했군요.오호.)
마루에서 tv를 보며 크게 웃는 언니님에게 뜬금없는 분노가 솟기도 합니다.
(어머님께서 왜 갑자기 문을 열고 나오셔서 언니님께 화를 내시는지 알것 같았습니다. 너무 시끄럽다고오~!)


근데요..가만히 생각해 보니까말입니다.
너무 억울한거란 거죠.
나 클때 그사람들은 자기사느라 바빠서 내고민한번 들어준적 없었고
자기들도 다 그렇게 학교다녔다는 이유로 밤마다 술독에 빠져살면서도 내 도시락한번 챙겨준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근데도 아직도 나에게 서열을 불변이다!를 외치면서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하려는걸 보면 억울한거죠.
(그리고 왜 늘 충고는 필요 없을때 하는 겁니까? 내가 필요해서 찾아갔을때에는 알아서 하라메요.--;;)
그래서 말입니다. 앞으로는 안봐주기로 했습니다.
'에이..우리언니가 무슨 돈이있어..'라던가
'에이...애들때문에 바쁘잖아..'라던가
'집에 왔으면 쉬어야지..'라던가...이딴 어설픈 배려를 그만둬야 겠습니다.

아마 내 딸이 테어나고 내 남편이 생겨도 저사람들은
내 딸과 내 남편을 자신들의 딸의 쫄병으로 남편들의 쫄병으로 만들텐데
아무것도 받은거 없이 그꼴까지 보는건 억울하다는 겁니다.

이번 겨울부터는 이것저것 챙기게 만들꺼고 이것저것 해주게 하려고 합니다.
서로 피해주고 싶지 않고 영향받고 싶지 않았는데
어차피 피해갈수없는 거라면 받을건 받고 줄껀 줘야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조금 자란걸까요?
이제는 조금 여유롭게 주위를 받아들이게 된것일지도 모릅니다.
(좋게 말하면 이렇지만 사실은 분노의 표출인게지요.)

이 글을 왜 썼냐고요?
우훗- 앞으로 있을 언니들과의 혈전에서 다시는, 절대로! 지지 않으리라는 다짐입니다.
더이상 그사람들의 직무유기를 좌시하지 않을겁니다.으하하하!
(이 한몸 분노로 불살라 균형을 맞추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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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1/17 00:22
수정 아이콘
헤헷 재밌게 읽었습니다..안전제일님...^^
03/11/17 00:26
수정 아이콘
자꾸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부대낄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거..
님의 결의에 찬 선전포고문(?)을 읽고 새삼 하나뿐인 누나가 보고싶네요.
혼자살다보니 느는건 가족에 대한 그리움 뿐이군요.. 휴휴휴..

음.. 모쪼록 언니들과 좋은 승부.. 를.. 바랍니다. ㅡㅡ;;
03/11/17 00:48
수정 아이콘
참 공감 가는 글입니다.
저도 딸많은 집 맏딸인데..
암만해도 자식이 적은 집보다 사랑과 관심 물질적인것을 많이 나누어 가져야 하니깐, 언제나 투쟁과 싸움의 히스토리...
제가 만약 시집가게 되면 형제가 둘이상 있는집은 피하고 싶네요...*^^*
이젠 피곤해요...-_-;
사고뭉치
03/11/17 03:50
수정 아이콘
안전제일님의 글을 읽다보니. 조금전까지도 냉냉하게 싸운 제 동생이 보고싶군요.
동생이 지방에 있어서 요샌 좀 덜하지만,
우리 남매도 예전에 혈전을 치루곤 했었지요.
정말 좋은 승부를 보시기를... ^^V
낭만다크
03/11/17 04:39
수정 아이콘
가족은.. 태어나기 전부터 인연의 끈이 있는..
한마디로 같은 핏줄로 섞인 절대적인 관계같은 거죠 -_-;
한 때 미워할 수는 있지만.. 결국은 보고 싶고..
따뜻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소중한거 같아요ㅠ
03/11/17 13:26
수정 아이콘
전 4남매의 맏이인데, 막내 남동생이 올해 마흔다섯입니다.
막내동생은 중년답지 않게 전혀 배도 나오지 않고 키도 훤칠하게 크면서 선친을 닮아서 미남인데다,(전 선친을 닮지 않고 외탁했다는 말을 어릴적부터 숱하게 들었습니다 ㅠㅠ;;) 나이도 그다지 들어 보이지 않는 얼굴인데,
머리카락만 온통 하앟게 세었습니다.
그런, 머리가 하얗게 센 동생이 형제들 모임 자리에선,
"난 막내야! 막내 대접 좀 해 주라, 막내 대접 좀 받아 보자~" 라며 애교 떠는 모습은... 너무 귀엽습니다.
사무실의 신입여사원이 밥을 하도 빨리 먹어서, 어떻게 그렇게 밥을 빨리 먹느냐고, 천천히 먹는게 건강에 좋지 않냐고, 웃으면서 농을 건넨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오빠 둘을 둔 외동딸이자 막내딸인데, 오빠들 틈바구니에서 밥상위의 맛있는 반찬 뺏기지 않을려고 빨리 먹는 습관이 들었다고 하더군요.
핫핫 ^^ 얼마나 웃었던지...
안전제일님 글도 참 유쾌하고 재미 있습니다.
이제부턴 막내의 특권, 즐거움을 누리며 사시길 바랍니다. ^^v
As Jonathan
03/11/17 13:57
수정 아이콘
p.p님 정말 오랜만입니다.^^
안전제일
03/11/17 16:47
수정 아이콘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시니 용기백배하여 악(?)의 무리를 무찌를수 있을것 같군요 으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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