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10/22 01:59:08
Name 눈시BBbr
Subject 부마항쟁
더 이상 미룰 수가 없군요. 애초에 17일에 유신글 쓴 후 부마항쟁의 끝인 20일에 쓰려고 했는데... 더 늦출 순 없으니 간략하게라도 다뤄보겠습니다. 이런 식이면 [오늘]의 의미가 없는데 말이죠 -_-a

최대한 중요하다 싶은 부분을 짚어가는 식으로 써 보겠습니다.

- 왜 부마인가

4.19의 시작은 마산이었습니다. 박정희에 대한 대규모 항쟁의 시작 역시 부마였죠. 단지 우연은 아닐 겁니다.

일제시대부터 분단까지 가면서 수도권 이외에 가장 부각된 지역은 부산권이었습니다. 한국으로 뭐가 들어오는 데는 이 곳이 가장 먼저였죠. 마산의 경우 수출자유지역으로 선정됐구요. 여기에 독재자들이 원하는 것만 들어왔을 리가 없죠. 거기다 산업화의 수혜를 입은 만큼, 산업화의 그림자 역시 먼저 받는 곳이었습니다.


"역사의 진로를 민주회복으로 바꿔야 할 시점이 지금이라고 확신하며, 정부는 이제 안보를 빙자해서 억압정치를 할 명분이 없으며, 오히려 안보를 위해서 민주회복을 해야 할 시점에 섰다."

"이 암흑적인 정치, 살인정치를 감행하는 이 정권은 필연코 머지 않아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

"나를 제명하면, 박정희는 죽는다."

여기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당시 김영삼의 영향력입니다. 당시 김대중은 박정희 최대의 라이벌로 두들겨맞을대로 맞은 상태였고, 그나마 양지에서 박정희에게 맞설 수 있는 것이 김영삼이었죠. YH 사건을 시작으로, 김영삼은 그 어느때보다 강력하게 싸웁니다. 그 대가는 처음이자 현재까지는 마지막인 의원직 제명이었죠.

- 어땠는가

부마항쟁의 오프닝으로 가장 유명한 건 역시 잘라라 -_-; 겠습니다만... 이 말이 퍼진 건 역시 유신대학이라 불렀던 부산대가 시작이었다는 것 때문이겠죠.

15일의 불발 후 16일에 시작된 시위,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대학생을 넘어서 많은 시민들이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내려가기 전까지는 남민전이나 학생이 주축이 된 데모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지에서 보니까 그게 아닙니다. 160명을 연행했는데 16명이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 일반 시민입니다. 그리고 데모 양상을 보니까 데모하는 사람들도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에게 주먹밥을 주고 또 사이다나 콜라를 갖다 주고 경찰에 밀리면 자기 집에 숨겨 주고 하는 것이 데모하는 사람과 시민들이 완전히 의기투합한 사태입니다. 주로 그 사람들의 구호를 보니까, 체제에 대한 반대, 조세에 대한 저항, 정부에 대한 불신 이런 것이 작용해서, 경찰서 11개를 불질러 버리고, 경찰 차량을 10여 대 파괴하고 불지르고, 이런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 김재규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시민들이 동참했고, 직접 참여하진 않더라도 학생들을 숨겨주고 먹고 마실 것을 주는 등 학생들을 도왔습니다. 이제까지 대충 시위대를 분산시킨 후 체포하면 된다 했던 경찰들은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밤이 되면서 시위는 폭력적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 목표는 경찰서와 언론, 여기서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의 불만이 어느 쪽이었는지가 드러나죠. 체포된 이들 역시 학생은 30%에 불과했구요.

18일, 정부는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그러고도 시위가 번지자 20일에는 마산, 창원 일대에 위수령을 선포합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처럼 계엄군이 부산 시내에 들어오죠.

하지만, 이 때 부마에서의 양상은 달랐습니다.

군대가 왔으니 기세가 좀 죽긴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위 자체가 죽은 건 아니었습니다. 폭력까지 동반한 시위가 계속됐고, 진압군의 강경 진압도 있었죠. 이런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는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광주에서처럼 수많은 피해자가 생긴 것 같진 않습니다. 또한 진압군과 시민들간의 대규모 대치도 없었죠. 계엄사령관까지 습격당하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일단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때 계엄령이나 위수령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이 정도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거라고 생각도 못 한 것이죠. 아무리 강경진압을 생각했다 한들 시민들 전체와 맞서야 되는 수준까진 생각할 수 없을 때였으니까요. 애초에 그런 명령이 내려오지도 않았습니다. 10.26 그 날, 박정희와 차지철이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떠올려 봅시다.

이런 점은 5.18의 원인이 강경한 시위였다는 것을 반박해 줍니다. 강경진압으로 시민들이 분노했던 광주와는 달리, 이 때 부마 시민들은 이미 분노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정도의 대규모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죠.

오히려 이 때 공수여단과 같이 투입된 해병대의 모습은 군인의 귀감으로 삼아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해병대는 국민의 군대다. 시민들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 절대 시민들에게 손대지 마라. 다만 총은 뺏기지 마라"

당시 공수부대와 함께 투입된 해병 1사단 7연대장 박구일은 소규모 부대만 투입하고 전훈을 통해 무력 진압을 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그 자신은 이에 대한 대답을 거부했다고 합니다만, 해병대 예비역들은 이렇게 증언하죠. 이게 얼마나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해병대가 강경 진압을 하지 않은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시위진압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지만요 -_-; 이들은 서로 팔을 동여맨 채 맞아도 전진만 했다고 하고, 그 선두에는 간부와 병장이, 마지막줄에 이병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된 미담들도 있구요. 해병대가 상대를 안 해 주니 시민들이 오히려 시위대를 말렸다거나, 재미없어서 시위대가 해산했다거나, 이후 눈 맞아서 결혼했다거나 하는 것 등 말이죠. 5.18에서도 미담까진 아니더라도 나름 친하게 지냈다는 식의 얘기는 있지만 이 정도는 없습니다. 다만 이전 5.18 글에서 적었듯 공수부대를 제외한 이들은 기지 경비가 아닌 이상 충돌을 자제했고, 시민들이 합류하면서 협상 등 온건책을 선택했습니다. 공수부대가 이런 정상적인 명령계통을 거부하고 시위대와 끝까지 싸우면서 비극이 시작됐었죠.

결국 윗선의 명령과 그에 대한 준비, 유사시의 방침이 얼마나 큰지를 말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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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와 5.18, 6월 항쟁까지... 한국 민주화 운동, 반독재 항쟁의 역사에서 부마항쟁은 소외된 편입니다. 민주당 계열에서 부마항쟁을 포함시킨 건 최근이고, 찾아보니 통진당에는 있는데 민노당 때도 없더군요. 에 새누리당이요? 그게 뭐죠? (...) 아무튼 전체적인 관심 면에서 부마항쟁의 인지도는 크게 떨어집니다.

그 이유를 찾기야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부마항쟁이 유신 자체를 쓰러뜨리진 못 했으니까요. 박정희를 쓰러뜨린 건 김재규가 쏜 총알이었고, 김재규 자신이 부마항쟁에 대해 어떻게 말했다한들 부족하죠.


거기다 민주화 이후 사람들의 관심은 5공에 집중됩니다. 5.16을 쿠데타로 정의하고 유신은 당연히 독재가 됐지만, 분노와 관심면으로 본다면 유신보단 5공으로 갔죠. 김종필은 신민주공화당으로 박정희의 계승을 외쳤고, 김영삼은 3당 합당으로, 김대중은 DJP 연합으로 손 잡습니다.
거기다... 12.12 때 쿠데타에 맞선 것으로 떠오른 정승화와 장태완은 박정희에게는 충성을 바친 군인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5.18은 너무나도 컸죠.

5공에 대한 항쟁과 민주화는 결국 광주에서의 항쟁과 피로 시작됐습니다. 그 피는 너무나도 컸고, 영향도 컸죠. 이에 비하면 부마항쟁은 의의야 어떻든 유신과 함께 종결되는 것이었습니다. 김영삼은 부마항쟁에 대한 재평가 역시 시작했지만, 그 전에 5.18이 있었습니다.

5.18 때 얘기한 적 있지만, 이런 "피의 값"에서 본다면 차라리 이게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광주에서도 역시 피가 덜 흐르면서 끝났고 항쟁의 하나 정도로만 기억됐다면... 전두환이 죽어야 할, 뭐 처벌받아야 될 정도로 순화하죠. 어쨌든 그래야 될 결정적일 이유 하나가 없어진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설령 더 잊혀진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독재가 더 오래 갔더라도... 그게 더 낫다는 생각은 듭니다.

여기에 하나 더, 아니 결정적이다 할 것은... 이걸 당당하게 계승했다고 할 세력이 없기 때문이겠죠.


"우리가 남이가."

민주화 이후, 정작 민주화 세력이 갈라집니다. 지역감정을 고착시키면서 말이죠.


"문민정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정부 실세들도 한때 여기서 최루탄에 눈물을 흘려가면서 농성을 했습니다. 명동성당 유린은 정권 탄생의 모태를 짓밟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 김수환

김영삼은 이런 지역감정을 아주 잘 이용해 먹습니다. 3당 합당으로 지역구도를 완성시켰고, 굳혀버렸죠. 단지 이것뿐이 아니었습니다. 군사독재정권도 건드리지 못 한 민주화의 성역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한 게 그였습니다. 자신이 그 가치로 자랐고, 그 가치를 이끌고 갔음에도 말이죠.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이 그 때의 여당에 들어갔고 지금의 여당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당의 모습은 어떻죠? 지금 대통령부터가 6.3을 이끌었고 그 계열의 거두들은 예전에 무엇을 했고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리고 그 지지층은 어떨까요?

이해할 수 없다거나 하는 일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가 너무 잘 되는 일이죠. 프랑스 혁명으로 민주주의의 시작이라 평가받는 프랑스, 하지만 그 후는 어땠습니까? 나폴레옹의 "정복"부터 프랑스의 제국주의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건국 자체를 혁명이라 하는 미국, 이들은 인디언부터 식민지, 흑인들에 대해서 어떻게 했죠?

결국 이권 싸움이죠. 빛나던 과거조차 망각하게 하는 이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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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부족은 곧 연구의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부마항쟁에 대한 연구는 극히 부족하고, 그 때의 희생자에 대한 특별법조차 없는 상황이죠. 지금 슬슬 이슈가 되는 걸 보면 누가 되든 다음 정권에서는 이에 대한 특별법이 생길 것 같긴 합니다만...

연구하고 분석해야 될 부분이 많습니다.

역시 중요한 건 민주화 운동과 당시 사회와의 관계, 4.19를 지지했던 세력, 국민들과 5.16 이후 박정희를 지지했던 세력, 국민들을 쉽게 가를 순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마항쟁 당시 시위를 지지했던 시민들과 지금 여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습니까. 흔히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로 비교합니다만 "배부른"에 대한 욕구는 이런 항쟁에 큰 원동력이 돼 줬습니다. 반면 그 욕구가 사라지면 힘도 줄었죠.

그렇다고 이걸 천박하기만 한 것으로 몰 수도 없습니다. 어쨌든 배를 채우는 것은 가장 중요한 욕구니까요. 그게 생존으로 연결된다면, 그건 최소한 민주주의보다는 중요하죠. 또한 경제적인 안정이 혼란을 막아주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아무리 지금 문제가 많다 해도 6월 항쟁을 높게 봐야 되구요. 경제적으로도 잘 나갔으면서 독재정권에 거대하게 대항한 것이었으니까요. 흘린 피도 적었구요.

민주화 운동 및 정치에서의 지도자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죠. 5.18에서도 해당되는 얘기지만, 이 항쟁 과정에서 김영삼, 김대중을 필두로 한 이들의 역할이 컸고, 민주화 이후 이 둘을 따라 갈라졌습니다. 이런 보스정치인에 대한 비판 역시 쭉 제기돼 왔지만 이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죠.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이상, 아무리 욕하더라도 정치인들은 필요하니까요.

어디까지 분석해야 되고, 어디까지를 이해해야 되며, 어디까지를 비판해야 하는지, 정치인들의 역할은 어디까지이며, 이를 감시하는 국민, 민중들의 역할은 어디까지인지... 이런 것들을 말이죠.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운 것은 결국 국민들의 요구였습니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그들을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죠. 국민들의 요구가 없었다면 아예 아무 일 없이 잘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 뭐 사실 여기서도 5공의 비자금 문제가 먼저였다는 참 짜증나는 사실도 있습니다만...

지금도 마찬가지죠. 자신의 이득, 자기가 믿는 바에 따라 투표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역감정에 얽매이는 건 분명 치명적인 문제고, 이득만으로, 자기 편이라고 감추는 것 역시 큰 문제죠. 여기에 관심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있던 많은 비리들은 없었겠죠. 자신의 지지율에 대한 걱정은 공주님이 독재정권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이보다 더 전에 그랬다면 아예 나오지를 못 하거나 나오더라도 할 건 다 하고 나왔겠죠. 정치인 본인의 진심이 어떻는가는 두번째입니다. 잘못된 것이라면 진심이 어떻든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하는 것이 먼저죠. 그렇게 해야 정말 진심인 정치인들이 더 잘 나갈 수 있을 거구요.

민주화 운동, 항쟁들은 성역이 아닙니다. 그 뜻을 기리는만큼 그 성과와 한계, 지금까지 이르는 문제점들을 연구하고 분석하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을 만들었으니까요. 빛도, 그림자도요.

부마항쟁은 유신을 무너뜨리진 못 했습니다. 하지만 유신에 맞서 가장 크게 일어났고, 거대한 충격을 줬습니다.

이를 기억해야 합니다. 독재에 맞서 싸웠던 그 때를.
그만큼, 그 때의 한계를 분석하고, 지금의 모습을 비판해야 합니다.

그 때의 뜻에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1-06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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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10/22 07:21
수정 아이콘
김영삼.... 여러모로 신박한 사람
12/10/22 08:26
수정 아이콘
일제의 전파를 먼저 받은 부산... 어제 정수장학회 관련 글을 찾아보다가 정수장학회 전신이 부(산)일(보) 장학회라는 점과 나아가 그 이면에 박정희씨의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기증을 빙자한 강탈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고 참 충격적이더라구요. 경제 민주화가 화두로 떠오른 요즘 다시 유신의 영향력이 박근혜 후보로 버젓이 이어지는 것 같아 뭔가 오묘하고 씁쓸했습니다. 박근혜 대표는 아버지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참 어렵고 중요한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리메
12/10/22 08:35
수정 아이콘
권력의 속성이란 본시 그런 듯 합니다. 권력 앞에서는 개인의 이념도 사상도 없어지죠.
끝으로 이문열씨가 삼국지에서 했던 이야기 중 하나를 발췌해봅니다. "권력을 다투는 이여, 인생은 유한한 것을..."

부마 항쟁 잘 봤습니다. 폭력이 일부 개입되었었단 것을 제외하면 가장 군경과 시민의 역할은 분명하게 나누어져 있었네요. 사실 5.18의 경우는 군에게 너무 자율권을 (물론 상부 - 대머리님의 묵인 없이 불가능하지만) 부여해서 발생했던 비극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12/10/22 08:4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설탕가루인형형
12/10/22 09:2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흑백수
12/10/22 10:01
수정 아이콘
중간에 공수부대의 오타라 생각되는 궁수부대가 있네요. 혹, 부대이름이 궁수인가요.
눈시BBbr
12/10/22 10:47
수정 아이콘
수정했습니다 '-'
시지프스
12/10/23 17:58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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