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21/05/05 20:42:09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어디야 지금 뭐해? 별 보러 가자 (수정됨)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면은
밤 하늘이 반짝이더라

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네 생각이 문득 나더라

어디야 지금 뭐 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하나 걸치고서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지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찬 바람이 조금씩 불어 오면은
네 생각이 난 그렇게 나더라

긴 하루 끝 고요해진 밤거리를 걷다
밤 하늘이 너무 좋더라

어디야 지금 뭐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어디든 좋으니 나와 가줄래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이 너무도 많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을게
그치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너와 나의 걸음이
향해 가는 그곳이
어디 일진 모르겠지만

혼자였던 밤 하늘
너와 함께 걸으면
그거면 돼

------------------------------

설득과 유혹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요소가 하나 있다. 바로 변명이다. 좋은 유혹은 단지 구미가 당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적당한 변명 거리도 함께 제공한다.

영화 <트랜스포머>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차에 타면서 메간 폭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무릎에 앉을래?"

이 말을 듣고 곧이 곧대로 따를 사람은 없다. 심지어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도 따르지 않는다. 그 말을 그대로 따르는 순간 상대를 좋아한다는 속내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적절한 변명 거리가 있어야 한다.

"시트가 고장 나서 가끔 스프링이 튀어나와 찌르거든. 위험해서..."

그럼 상대는 마지 못해,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표정으로 무릎에 앉는다.

사실상 모든 유혹은 이 구도를 바탕으로 돌아간다. "밥 먹을래? 영화 볼래? 산책 갈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던가? "내가 보고 싶어서 그런데 나 보러 나올래?"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맘에 드는 사람의 취향과 욕망을 알면 유혹하기가 쉽다. 너무 보고 싶었던 전시회, 개봉만 기다리던 영화, 10년 넘게 팬질 중인 가수의 콘서트 티켓, 특히 구하기 힘든 해외 가수의 내한 공연 티켓... 이런 걸 흔들면서 "같이 보러 가지 않을래?"라고 말하면 없던 호감도 생길 수밖에 없다. 물론 겉으로는 "난 콘서트를 가는 거지 널 보러 가는 게 아니야."라는 티를 내겠지만, 어쨌든 당신도 보게 되어 있다.

게다가 호감의 원천 중 하나는 공감이다. 그리고 공감은 '경험의 공유'다. 기대하던 콘서트를 함께 본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고, 맛있는 걸 함께 먹었던 사람에게 호감이 생기는 건 인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

조금 더 무섭게 말하자면 "인간은 변명 거리만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준 심리학 실험이 바로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이다.

밀그램은 "징벌에 의한 학습 효과"를 실험한다며 참가자를 교사와 학생 2그룹으로 나누었다. 학생은 의자에 묶인 채 전기 충격 장치가 연결되었고, 교사는 학생이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생도, 전기 충격 장치도 가짜였다. 이 실험의 진짜 목적은 인간의 도덕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밀그램은 아무리 명령이 있어도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심에 따라 행동할 것이라 생각했다. 수치로 말하자면, 피실험자들이 450V까지 전압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65%의 피실험자가 450V까지 전압을 올렸다. 심지어 그동안 학생을 연기한 사람들이 비명을 질러도 전기 충격은 계속되었다. 실험 진행자가 "괜찮아요. 실험을 계속하십시오."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유는? 그저 상관이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아이히만은 수많은 학살을 저지른 악마라기보다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가까웠다. 한나 아렌트는 그런 아이히만을 관찰한 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끌어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밀그램의 실험과 아이히만의 사례는 책임없는 자유가 얼마나 무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잘 보여준다. 책임이 없다는 것은 적당한 변명 거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런 게 있을 때 인간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

그렇다. 인간은 변명 거리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즉 당신과 데이트를 나갈 수도 있다. <대부>에서 돈 콜리오네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설득과 유혹의 1등 전략이라면, '적절한 변명 거리'는 2등 전략 쯤 된다. 거부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거부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셈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니 "잠깐 나올래?"라고 하지 말고 "별 보러 가자."라고 말해보자. 그런 되도 않는 변명 거리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

덧. 만약 이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면, 내가 제시한 변명 거리가 충분히 적당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도록 하자. 나는 아주 아주 그럴 듯한 변명 거리가 필요하더라... 하...

* 손금불산입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7-18 00:0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 게시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샤오미
21/05/05 20:5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잘 읽었습니다. 저도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는 중이었어요. XD
김연아
21/05/05 20:57
수정 아이콘
존잘이면 그냥 나 보러 나올래로 끝.
마스터충달
21/05/05 20:58
수정 아이콘
존잘 = 거부할 수 없는 제안

그러니 존잘이 아니라면 적당한 변명 거리를 준비하심씨오 휴먼!
재가입
21/05/05 21:46
수정 아이콘
존잘이명 보고싶어 아닐까요? 나올래 할 필요도 없음
김연아
21/05/05 21:56
수정 아이콘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보고 싶어 할 필요도 없이 나오라면 나온다는 뜻이었어요
21/05/05 21:01
수정 아이콘
하 최준 내 머릿속에서 나가
호야만세
21/05/05 21:05
수정 아이콘
피글렛 꼬리 밟힌 표정이랑 소리가 떠오름...아아아아~~~아아~~~~~
-PgR-매니아
21/05/05 21:37
수정 아이콘
저도...유투브 알고리즘이 알려준 그 영상을 보지 말았어야 ㅠㅠ
재가입
21/05/05 21:46
수정 아이콘
저도 이 노래는 사실 최준버전 밖에 몰라요…
21/05/05 21:04
수정 아이콘
아레가
데네브
알타이르
베가

암튼 별보러 가봅시다
술라 펠릭스
21/05/05 21:53
수정 아이콘
아레가 행성 아시는구나!

역시 베우신 분.
아이고배야
21/05/05 22:04
수정 아이콘
아버지: 학생 수작 부리지 말고 Star Walk 2 어플 깔아~
판을흔들어라
21/05/05 22:32
수정 아이콘
그래서 별 잘 보이는 포인트는 어딘가요??? 중요한 걸 말해 주셔야죠!
상어이빨
21/05/05 23:22
수정 아이콘
중년인데 별 보러 가도 되나요?
미나리를사나마나
21/05/05 23:50
수정 아이콘
작년에 다른 변명들은 이상하게도 다 먹혔는데 제일 중요한 별 보러 가자만 까였습니다...
미세먼지도 없고 구름도 없고 달도 없고 코로나도 소강상태라서 천문대에서 별 보기 진짜진짜 딱이었는데, 너까지 없으면 어떡하니 ㅠ
들깨수제비
21/05/06 08:28
수정 아이콘
밤 늦게 만나서 어쩌면 밤을 새고 와야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별이 보고 싶어도 쉽게 갈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나 상대방 차를 타고 가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적재는 그냥 동네 산책하며 별 보자는 거지 천문대까지 차타고 가자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흐흐
미나리를사나마나
21/05/06 20:24
수정 아이콘
물론 흑심 500%였지만, 이래서 눈치 빠른 꼬맹이는!! 근데 안 가기에는 시기가 너무 아까워서 다른 너님들도 생각해봤는데, '별 보러 가자'는 첫 번째 꼬맹이한테 말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더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일단 별 보러 가면 자의로든 타의로든 어...
제랄드
21/05/05 23:51
수정 아이콘
존잘러 :
나랑 별 보러 갈래?
네!

피잘러 :
나랑 별 보러 갈래?
네??????
와신상담
21/05/06 00:22
수정 아이콘
뻘댓글인데 적재 노래는 취향 찾아 삼만리 떠날 가치가 있습니다. 음색이 부드럽고 포근해서 귀가 아프지 않습니다. 가성만 어떤식으로라도 처리한다면 노래방곡으로도 추천드립니다. 적재야... 가성이 너무 어렵다...
21/05/06 10:17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RK0t9JAelZU
개인적으론 이 버전이 제일 좋더라고요
설탕가루인형
21/05/06 11:10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추천합니다.
타인에게 하는 설득은 모두 명분이 있어야 하는 법이죠.
21/05/06 11:26
수정 아이콘
키드갱이 생각나네요
죽을까? 사귈까?
마스터충달
21/05/06 11:27
수정 아이콘
거부할 수 없는 제안 크크크크크크
메디락스
21/05/06 21:47
수정 아이콘
밀그램의 이 유명한 실험이... 조작이랍니다...

https://youtu.be/6sUjot4tbY8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310 코로나 시국에 기증한 조혈모세포 [42] bluff7369 21/07/20 7369
3309 드디어 잘랐습니다! (feat 어머나 운동본부) 긴머리 주의! [26] 예쁘게 자라다오8681 21/07/20 8681
3308 [역사] 미원과 다시다, 전쟁의 역사 / MSG의 역사 [43] Its_all_light10390 21/07/20 10390
3307 오늘, 이유 없이, 그 친구가 생각난다 [8] 프리템포7113 21/07/19 7113
3306 아서왕 창작물의 역사, 또는 '아서왕이 여자여도 별로 상관 없는 이유' [149] Farce9829 21/07/19 9829
3305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불러 올 나비효과 [80] cheme14557 21/07/15 14557
3304 백수생활 두달째 [91] 녹용젤리8524 21/07/19 8524
3303 나는 운이 좋았지 [36] ItTakesTwo8375 21/07/16 8375
3302 홈짐을 만들 때 유용한 장비들 [17] chilling10201 21/07/15 10201
3301 <스포> 풍수지리 스너프 필름: "미나리" [23] Farce7147 21/07/14 7147
3300 중국 반도체 굴기의 위기 [136] cheme15943 21/07/12 15943
3299 포경수술과 성기능과의 상관관계 [125] 그리움 그 뒤14440 21/07/05 14440
3298 코로나 병동... 벌써 반년 [57] WOD13843 21/07/05 13843
3297 죽어 보지도 않은 자들의 말과 글을 믿지 말라 [38] 아루에9923 21/07/04 9923
3296 영화 1600편을 보고 난 후, 추천하는 숨겨진 수작들 [128] 최적화11407 21/07/02 11407
3295 한라산 국립공원 (국립공원 스탬프 투어 4) [44] 영혼의공원6847 21/07/02 6847
3294 현대인이 범하기 쉬운 대체역사물 실수 몇가지 [78] 아리쑤리랑18072 21/06/28 18072
3293 편파 중계 지역사: 남인도 시점에서 보는 인도사 [44] Farce8304 21/06/27 8304
3292 (삼국지) 삼국지의 호족은 어떤 자들이었나? [41] 글곰10052 21/06/24 10052
3291 [역사] 치킨 복음 / 국내 치킨의 역사 [54] Fig.110689 21/06/23 10689
3290 응급실 체험기 [22] ohfree7906 20/06/12 7906
3289 한강에 우뚝 솟은 구름 산 [45] 及時雨10118 21/06/21 10118
3288 중세에서 전쟁을 해봅시다. [67] Farce9978 21/06/10 997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