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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4/01/21 21:14:51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고시, 수능, 과거제도
최근에 배우게 된 바를 정리한 노트입니다.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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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부터도 관리선발 시험이 쭉 있어왔겠지만, 송나라 때 만큼 이 시험이 급격히 팽창하여 하나의 사회현상을 만들어낸 적은 없었습니다.

무신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 필생의 염원이었던 송 태조/태종 형제와 그 측근들은 당나라 과거제도의 전면 확대가 좋은 대안이 될 거라고 믿었죠.

이 제도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습니다만,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건 이 제도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공정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총화였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실제로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는 거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 찜찜한 기분을 해결해줄 공정성의 어떤 화신 같은 제도를 더 바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서양 학자는 서양에선 그것이 "투표"였던 반면 중국에서는 "시험"이었다고 병치하더군요.

서양 사람들이 투표를 통한 선출이 이상과는 다르게 현실적으로 썩 공정하지만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를 쓰고 투표제도에 매달려서 이렇게 개선해보고 저렇게 개선해보고 했던 것처럼, 중국인들은 과거제도가 그 취지만큼 공정하지 않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를 쓰고 시험제도에 매달려서 이렇게 개선해보고 저렇게 고쳐보고 했던 거라구요.

그런데, 이 시험의 통과가 가져다주는 위신과 힘, 권위, 번영이 워낙 대단했던 탓에, 시험을 둘러싼 하나의 사회현상이 구축됩니다.

1. 시험 개요

일단 워낙 경쟁이 치열합니다. 시험은 3단계로 이루어지는데 1차는 지방에서, 2차는 도시에서, 3차는 수도에서 봅니다(물론 변천이 많았지만 송나라 때로 좁혀보자면 그렇습니다). 3차는 사실상 의례적인 인터뷰 정도에 해당하므로 여기서는 탈락자가 안나옵니다. 대부분 1차와 2차에서 걸러지지요. 1차 시험의 경쟁률만 놓고 이야기했을 때 송나라 초기에 1:5 정도이던 것이 말기엔 1:200까지 치솟습니다. 이게 명-청 대에 오면 무려 1:4000 ....... 후덜덜한 비율이지요.

그러다보니 시험은 개인의 일이 아니라 가문 전체의 일이 됩니다. 가문에서 쓸만한 애 하나 뽑아서 총력을 기울여 투자하는거죠. 합격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이었다고 합니다.
이게 가문의 투자이니만큼 그 보상을 개인이 아니라 가문이 누리는 것도 정당하다는 인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온 집안이 총력을 기울여서 애 하나 합격시켜놨는데 금마가 마치 자기 개인의 비즈니스일 뿐 가문과는 무관한 것 처럼 행동하면.... 먹튀였던거죠^^;


2. 난이도


일단 자유롭게 인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각종 [경전]을 외워야합니다. 한 일본인 학자가 이 경전들의 글자 수를 더해봤더니 약 50만자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영어판 성경의 단어 수가 70만 단어 정도입니다. 즉, 현재 성경의 2/3 정도는 자유자재로 인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외워야 했던거죠.

그 뿐 아니라, 이 경전의 실험장이요 실제 적용 사례가 되는 [역사서]들을 빠삭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고금의 흥망성쇠를 모르면서 경전만 외고 있으면 설득력 있는 시험답안을 써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따라서 사기...한서...삼국지... 당서... 등등 역사서를 꿰고 있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는 관료들에게 괴력의 암기력만 요구하지 않죠. 도덕성을 갖추어야합니다. 도덕성을 종이 위에 드러내는 [그나마] 좋은 수단으로 [시]가 선호됐습니다. 그래서 시를 잘 써야 합니다. 시를 잘 쓰려면 기존의 유명한 시집을 또 달달 외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젠장.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시험문제들은 당대의 사회가 처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빼먹지 않습니다. 이처럼 경서와 역사, 문예에 능한 인재에게 오늘날 조정이 처한 위기를 어떻게 처리할지 묻습니다. 북쪽의 요와 서쪽의 서하의 압박을 어떻게 해결할지, 재정문제를 어떻게 개혁할지 등등... 골치아프죠. 따라서 수험생들은 현재 나랏일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며 현재 조정의 권력분쟁이 어느쪽 당파에 기울었는지 등등도 꿰고 있어야 합니다.


3. 학무보


상황이 이정도 되면 이제 정보전입니다. 수험생을 서포트 할만한 가문들이 가문 내에서 후보를 찍었으면 이제부턴 도회지를 돌아다니며 현재의 조정의 문제와 조정내부 상황을 전파하는 찌라시들을 구매하고 수집합니다. 신문이 없는 시대니까요. 뿐만 아니라 당대의 지적 트렌드를 파악하러 다니기도 하고 유명한 당나라 문인의 시집을 사서 모으기도 하죠.


4. 합격하면!?

난리가 납니다. 배너와 플래카드가 붙는 거야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합격 발표 대자보 앞에서 합격했다고 환호성 지르고 좋아하면 납치[???]됩니다. 헐.

딸 가진 부모들은 보통 합격자(30대)에게 시집을 보내거나 합격할만한 놈(20대)에게 시집을 보내거나 택일을 해야하는데, 보통의 경우 적령기 문제도 있고 해서 후자에게 시집을 보낸 후 제발 로또 터지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하죠. 공동 투자도 흔합니다. 싹수 보이는 사위를 얻었으면 이제 이 사위의 합격 여부가 사돈네만의 문제가 아닌거니까요.

하지만 권세가 좀 있고 재력도 더 되는 집안의 딸부모들은 이런 위험한 로또를 긁어보기엔 이미 가진게 너무 많습니다. 합격자를 그냥 데려와서 사위삼는게 더 좋죠. 그래서 머슴들 시켜서 합격 발표장 근처를 어슬렁거리게하다가 합격했다고 좋아하는 놈 있으면 보쌈을 해옵니다. 보쌈당한 합격자가 도착한 곳은 으리으리한 부잣집 정원. 부끄러워하는 아리따운 규수가 저 뒤쪽에 보이고(부끄러워도 남자 얼굴이 너무 궁금해서 나와있다능) 딱 봐도 있어보이는 장인장모 후보님들이 무례를 용서하라며 융숭한 대접을 해주고.... 그런 그림이 그려집니다.


5. 못하면!?


시험은 계속 칩니다. 시험준비생 자체가 하나의 아이덴터티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죠. 부모 얼굴도 있고..

그래도 생계는 유지해야하니 선생님이 됩니다. 다른 시험준비생들을 가르쳐주는 선생님들은 보통 이렇게 실패자들 사이에서 나오죠.

그리고 자식을 보면 다시 못다한 과업을 이루기 위해 자식에게 시험준비를 시키고.... 그렇게 됩니다.


6. 폐해


말도 못합니다. 일단 암기왕들이 다른 모든 창의력 돋는 괴짜들을 찍어누르고 승리하는 구도가 그렇고, 하나로 확정된 교육과정이 모든 젊은 학생들의 커리큘럼을 장악하면서 생기는 [보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더욱이 40살 넘도록 매달렸으나 결국 실패하는 그 많은 인생낭비는 계산불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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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이야기 아닌가요?

경전을 법전으로, 역사서를 판례집으로 바꿔놓으면, 놀랍게도 이 모든 인식, 문화, 역사가 비슷하게 겹쳐집니다. 심지어 1차 2차 3차의 구분도 비슷해요.

수능으로 바꿔도 마찬가지죠. 교과서와 기출문제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학부모의 활약, 수능강사들의 존재, 그리고 자식에게 전승되는 못다한 과업.... 전반적인 인상이 겹칩니다.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현대화된 형태로 연속되었다는 건데.... 왜 그럴까요? 바로 "시험봐서 당락을 가리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공정한 방법이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살아남았기 때문 아닐까요.

면접, 수시, 입학사정관, 추천서, 이력서 등등을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방식은 (사실 동양에서 전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서양으로부터의 수입품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반면에 대규모 시험을 통한 선발은 (서양에서 전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중국발이라고 보면 옳구요. (서양권에서 관료선발의 일환으로 시험제도를 도입하게 된 사례가 19세기부터 등장하는데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이라는 걸 당시에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법고시냐 로스쿨이냐를 두고, 대학 입학 전형을 두고 설왕설래 하면서도 "국가에서 보증하는 하나의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공정한 방법이 아닐까" 라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그것, 그 이념의 뿌리가 참 깊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직 판단은 유보중입니다만, 얼마전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되는 비용이 사법시험을 준비해서 변호사가 되는 비용보다 더 싸다는 논증을 이곳 pgr에서 보고 나서 어쩌면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을 대체할만한 분명한 장점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노선에서 수능 역시 어떤 치명적인 단점이 있고, 그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냥 뜯어고치는 수준 이상의 개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계속 가지고 있구요.

과연, 시험 한 번으로 당락을 정하는게 진정 공정할까요?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획득한 공정성이 다른 폐해들을 상쇄할 만큼 클까요. 예컨대, 판검사와 변호사들이 대개 보수적인 건 궁극적으로 사시 제도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고민되는 밤입니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2-20 16:41)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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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정 칼괴기
14/01/21 21:16
수정 아이콘
과거는 2차랑 3차가 정말 무섭죠.

2차 되면 일단 관리는 합격인데 문제는 3차 못보면 친구는 5급 사무관 할 때 자기는 9급 해야 하니 말이죠.
14/01/21 21:36
수정 아이콘
그래서 율곡은 사실 희대의 트롤러가 아니었나 하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이미 장원 먹어놓고는 남들 장원 먹는 거 방해하고 다녔죠. 무려 아홉 번이나...
로하스
14/01/21 22:06
수정 아이콘
결국 율곡은 다른 사람이 개인과 가문의 영광이자 출세루트인 장원이 될 기회를
몇년동안 계속 막아버린거군요 흐흐. 차석 입장에서는 참 어이없는 일이겠네요.
상상력
14/01/22 10:30
수정 아이콘
구도장원공이라고 불렸던 율곡도 과거에서 불합격한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로하스
14/01/21 21:31
수정 아이콘
근데 로스쿨제도도 시험 한번으로 당락을 정하는건 결국 똑같습니다. 로스쿨을 졸업해도 변호사 시험을
합격해야 변호사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 변시 합격률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떨어져서
20%대까지 간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럼 사시낭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변시낭인도 심각한 문제가 될테구요.
larrabee
14/01/21 21:51
수정 아이콘
변시낭인을 막기위해 총 5회의 시험제한을 뒀습니다...........만 효험이 있을지는 잘모르겠네요
원시제
14/01/21 22:08
수정 아이콘
그래서 로스쿨 교수들이나 로스쿨생들은 지속적으로 합격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론이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걸 그냥 공부하기 싫은 로스쿨생들의 투덜거림으로 보고 있지요.
14/01/21 21:31
수정 아이콘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것중 하나는..

위에서 추천으로 하는건 다 비리가 있다. 라고 생각하는 풍토랑도 크지 않나 싶습니다...
낭만토스
14/01/21 21:32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인간세상에서 사는 이상
공평한 사회란 '우리에게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어'
겠죠

어떤 법이나 제도로도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요

최대한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든 후
사람들이 모두 힘써 좋은 사회를 위한
선순환 상태를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선순환 상태를 만드려면
최초 어떠한 큰 힘이 필요하고 유지시킬수
있는 지속적인 힘도 필요한데
가능하진 못할 것 같습니다
14/01/21 21:33
수정 아이콘
좋은 글이네요. 추천 드리고 갑니다.
SugarRay
14/01/21 21:34
수정 아이콘
저도 예전 부의 세습화라는 문제 때문에 로스쿨을 반대하던 사람인데,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어차피 일반인들은 평생 살면서 변호사를 만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사시 찬성론자들의 주장처럼 변호사의 질이 약간 하락할지라도 일반인이 크게 그 피해를 입는다곤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호사 공급을 늘리면 그들의 특권적 지위와 상관없이 가격은 떨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부를 '세습'한다는 관점도 장기적으론 틀린 이야기가 됩니다.

반대로 일반 사람들이 훨씬 더 자주 보는 쪽은 의사인데, 때문에 의전의 입학이 과연 공정한가는 서민들에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올바른 의료 서비스의 제공은 곧 건강과 직결되니까요. 사람들은 로스쿨 선발의 불공정에 대해서 많이 말하지만 의전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는 것이 전 잘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일각여삼추
14/01/21 21:38
수정 아이콘
의대가 살아있으니까요. 완전 의전으로 대체되는 게 아니죠.
SugarRay
14/01/21 21:43
수정 아이콘
이제는 다시 의대로 돌아가는 추세지만 마찬가지로, 사법고시-로스쿨이 동시에 유지됬던 것과 마찬가지로 의대-의전이 있었죠. 동시에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에 선발의 불공정성에서는 둘 다 얘기할 만했다고 봅니다.
일각여삼추
14/01/21 22:18
수정 아이콘
그때도 완전히 대체한다는 계획은 아니었을 겁니다.
14/01/23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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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계획은 병행을 하다가 완전히 대체한다는 쪽이었습니다
뭐 물론 너무 까여서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상황입니다만...
오카링
14/01/21 21:42
수정 아이콘
그리고 의전은 너무 마르고 닳도록 까여서 까지 않는 측면도 있죠. 다들 까는 입장이라 파이어도 잘 안나고 굳이 나서서 말할 이유도 없고...
14/01/21 21:44
수정 아이콘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는 사실상 상당수 의과대학 예과 체제로 '롤백' 되어가고 있죠. 따라서 '덜 부각'되는것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맹독은 내핏속을 구르고
14/03/08 07:56
수정 아이콘
로스쿨의 문제가 더 시급합니다.

의전원은 입학시험이 불공정해도 엄격한 4년의 교육과 수련의 전문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교육의 성적이 공개되어 앞으로의 진로가 결정됩니다.


사법시험의 경우 합격생은 동질적이어서 합격생내의 분류가 불가능했습니다.

로스쿨은 학교 성적도 시험결과도 공개되지 않습니다. (로클럭 임용시는 법원에만 알려준다는데 안그런단 얘기도 있습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분류됩니다. 1. 인서울여부 2. 혈연과 지연

과거엔 변호사라면 동질적 집단이고 시험과 사법연수원 성적이 공개되서 변호사사회 안에서라도 실력이 알려졌지만, 지금은 오로지 로스쿨 이름 혈연 지연 나이 만으로 분류됩니다. 취업과 진로에서 법적 실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닙니다
14/01/21 21:42
수정 아이콘
소위 고시라 불리우는, 정부부처 직급 기준 5급 이상 채용에 있어 특채가 대거 도입됨으로 인한 부작용은 이미 몇년전 있었던 '유명환 외교부 장관 딸' 사건에 총화되어있기에 이로써 짧게 대변할 수 있을 것 같구요. 여기에 트윗으로 자기 집사람이 입학사정관으로 있으니 해당 대학에 지원하면 뒤를 잘 봐주겠다고 한 어느 (대단히 멍청한) 유명인사도 떠오르네요. 자제의 5급 공채(행정고시) 3차 면접 관련 청탁 문자를 국회의원에게 보냈다가 (너무나도 재수없게) 딱 걸린 사례도 있구요. 참으로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던 굵직한 일들입니다.

시험을 통한 인재선발의 여러 부작용이야 당연히 이미 수십년간 제시되어 온 바, 그 존재를 부인하기는 힘들죠.. 하지만 그에 대체되어 도입되려하는 특채 및 면접, 추천 등과 같은 전형의 부작용은 그것을 너무나도 사소하게 보이게 할 만큼 큽니다.
개인적이고 또한 원론적인 생각이지만 '대한민국 사회'에는 맞지 않아요. 국토는 좁고 천연자원은 빈약하며, 다만 인적자원만이 넘치는 이 나라에서 '정성적' 평가를 주류로 하는 선발전형은 늘 치명적인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시험 점수로 사람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는가 없는가는 둘째 문제죠 (물론 시험점수 잘 받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유능한 인재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건 상식이겠죠)
(주로 노무현 정부때 대거 도입되었던) 정성적 평가 기반의 여러 교육 및 입시 정책이 지금까지도 많은 비난을 받는 것은, 이상만 바라보며 현실을 외면했다는 것 뿐이 아니라, 정작 그 지향하는 이상과는 (종전의 방법보다도 더) 반대의 경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본문에서 언급하신, '도덕성'이라는 것을 과연 특채 및 면접류의 전형으로 판별할 수 있을까요? 저는 매우 회의적입니다만...
또한 예시하신 '학부모의 정보전' 은 어떤가요.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 이러한 '엄마들간의 경쟁'은 심화되었으면 심화됐지 반대는 절대 아닐겁니다. 이건 너무나도 기본적인 귀납이죠.

덧붙여 사법시험 제도 때문에 '판검사와 변호사들이 대개 보수적' 이라는 말씀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어떤 의미로 쓰신건지요?
또한 논의하고자 하시는 바가 '사법시험'제도에 국한된 것인지 아니면 기타 공무원이나 대학 입시에서의 입학사정관 및 추천 전형 등 공적영역에서의 인재선발을 모두 포괄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14/01/21 21:51
수정 아이콘
한가지 더 던지고 싶은 의문은,
(주로 지필로 이루어지는) 시험제도를 대체하여 도입하고자 하는 추천, 입학사정관, 특채와 같은 부류의 선발제도로 획득할 수 있는 '사회적 효용'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주 관대하게 공정성 문제는 일절 없다고 가정했을 경우에 조차 말이죠.
저의 답은 '아니오'입니다.
펠릭스
14/01/21 21:45
수정 아이콘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 "공정성"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총화였다는 것입니다."

이게 수능이라는 제도가 존재해야 하는 유일한 이유이지요. 노무현과 이명박. 혹은 장승수. 이들이야 말로 불공정한 현대사회의 체제를 안정시켜 주는 유일한 신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지속되어야 하구요. 벌써 절반쯤 망가진 신화지만 최소한 그러한 신화가 없는 사회보다는 훨씬 더 밝고 건전한 사회가 아닐까요.

당장 세습제와 고시제 중 어느것이 더 밝은 선진조국에 도움이 될까요. 고시가 사라자는 순간 사회를 지배하는건 세습제도입니다.
데오늬
14/01/21 21:48
수정 아이콘
상고이유보충서를 쓰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간략하게 쓰겠습니다.
1. 사법시험을 외워서 치는 시험, 암기왕이 승리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신다면 그거 아닙니다.
한참 많이 뽑을 때에는 천 명 언저리나 뽑다 보니 외우기만 해도 붙는 사람이 있기야 있었지만 마치 암기가 절대적인 기준이라고 오해하시면 곤란.
2. 한국의 사법제도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빨리 자리잡아서 잘 돌아가고 있는 편인데,
그 상당 부분이 (변호사는 차치하더라도) 능력이 한번 검증된 판사와 검사 개개인의 자질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능력이든 도덕성이든...
누가 들어와도 오판과 부패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개개인의 자질이 떨어지면 뻥뻥 터지죠. 동부 전검사 춘천 전검사...
모든 면에서 완벽한 제도는 없습니다. 사회와 문화에 적당한지 적당하지 않은지의 문제일 뿐.
3. 법조인이 보수적인 건 사법시험 제도 때문이 아니라 업무의 성격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늘 누군가가 뭔가를 잘못해서 그걸 픽스하고 손해를 과실만큼 배분시키는 일을 하고 있죠. 트러블이 발생하는 경우만 보니까
이런 골치아픈 일이 안 생기게 하려면 이것도 조심하고 저것도 조심하고... 매일 생각하는 일이 그러니 보수적일 수밖에요.
기아트윈스
14/01/21 22:28
수정 아이콘
1. 과거제의 경우도 암기가 모든 걸 결정하지 않았지만, 최소한 상위 10%급의 암기력이 안 되는 학생들은 1차를 통과 못했습니다. 아마 사법시험도 그렇지 않을까요? 제가 사시를 보지 못해서 장담은 못하겠습니다만 암기력은 필요조건은 될 거라고 봅니다. 충분조건처럼 묘사했다면 제 실수이니 너그러이 봐주시길^^;


2. 공감합니다.


3. 글쎄요. 업무의 성격이 어떠한가를 논하기 이전에, 다양한 길에 발을 담궈본 사람이 외길로 달려온 사람보다 덜 보수적이지 않은가요.

예컨대 초등-중등교육->수능->명문대->사시준비->법조인이 되기까지 이 서사구조를 충실히 따라서 경쟁을 모두 이겨낸 사람보다는 여러 샛길을 경험해보고 거쳐서 법조인이 된 사람이 좀 더 다양한 인생서사를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요?
일각여삼추
14/01/21 22:44
수정 아이콘
지금 로스쿨 입시를 보시면 다양한 샛길을 경험한 사람은 훨씬 불리하게 되어있습니다.
원시제
14/01/21 22:49
수정 아이콘
그게 1~3기까지만해도 오히려 순수 법대생들이 좀 불리한 판이었는데
변시 합격률이 낮아지고, 기업이나 로펌, 그리고 로클럭이나 검사임용에서도 어린 친구들을 선호하다 보니
로스쿨 도입시의 취지가 많이 퇴색된게 사실이죠.
데오늬
14/01/22 01:38
수정 아이콘
1. 저 암기 잘 못합니다. 사법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법리의 이해입니다.
이해한 내용을 다시 풀어 쓰는 것은 쉽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재수없어 보이려나...) 그리고 그건 암기가 아닙니다. 그냥 아는 것이죠.
물론 물리적으로 다 알고 시험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종당에는 디립다 외우기도 합니다만 적어도 그게 포인트인 것은 아닙니다.
2. 법조시스템이 개개인의 자질에 의존해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걸 걸러내지 못하는 제도는 적당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시스템이 옳은가? 그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판사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한 검사'는 현재 상황에서 단언컨대 판타지입니다.
3. 아닙니다.
그리고 법조인이 보수적이라는 게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죠.
위험에 보수적이지 않은 법조인은 위험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맬프랙티스를 합니다.
그리고 경험상 경력법관이 계속 판사만 한 법관보다 재판 잘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으면 많았지...
판사가 다양한, 특이한 인생서사를 이해하고 특이한 상황도 그럴 수도 있다고 판단해 버리면 상대방한테는 굉장히 황당한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14/03/06 09:41
수정 아이콘
3. 보수적이라는 말이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 혹은 민주당 보수계열..? 지지 등의 정치색을 말한다면.. 좀 다른얘기겠지만,

판사/변호사/검사는 업무의 성격에 의해 성격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원천적인 사고방식은
( 배분정의차원을 떠나서 기본적인.. 사고방식)

진보 : 전체적으로 사회가 나아진다면, 혹은 현재 문제를 개선할 가능성이 있다면 , (뭔가를) 한다.
(왜냐하면, 고인물은 썩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시도가 인류, 사회를 발전시킨다.)
보수 : 전체적으로 사회가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면, 혹은 현재 문제가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뭔가를)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뭔가는) 예상치 못한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혹은 이득을 보는 사람은고마워하지않고, 손해를 보는 사람은 크게 반발하기 떄문이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베스트일 수 있다.)

정도로 보는 것인데..

판검사변호사등의 업무를 하다보면, 어떤 일을 할 때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의 반응, 피해 양상 등을 보게 되죠,..

하다보면 당연히 사고의 흐름이 보수적으로 갈수밖에 없죠..

번외로, 직업별로 사람의 성격은 변한다고 봅니다.
endogeneity
14/01/22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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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법제도는 '여러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빨리' 자리잡았다는 표현은
'해방 직후 "아무것도 없던" 한국에 급조된 사법제도는 "의외로" 빠르게 잘 정착했다'는 걸 암시하는 듯 한데

(1) 실제론 일제시대 때 육성된 실무가 그룹이 있었고
(2) 결정적으로 일제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실무 상 확고한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빨리 자리잡았다는 사실 자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마 말씀하신 '판사와 검사 개개인의 자질에 의존하는' 부분조차 다분히 일본 법조계의 유산일 텐데(이 주제에 관해 읽을만한 책으로 '법원과 검찰의 탄생'이 있죠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280121 )
그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 사법제도는 그 자체가 일본이 남긴 '비공식적 제도'의 일부였고, 일본이 남긴 비공식적 제도가 한국의 사회-문화의 토대가 되는 한 마치 몸에 잘 맞는 옷인 양 들어맞았던 것이겠죠.
데오늬
14/01/22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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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렇게 심각한 함의를 품고 있는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해방을 시작으로 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제시대 때의 비공식적 제도이든 뭐든 고마 다 때리 빠 삐지 않고
어떻게든 굴려서 여기까지 왔다는 뭐... 그런 거죠. 책은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목차를 보니 재미있을 것 같네요.
STARSEEKER
14/01/21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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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시험이나 사법시험이나 공부하는 내용은 같은데 이 무슨...
애초에 둘다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이라서
본문내용대로라면 둘다 똑같은 취급받아야죠.-_-;
STARSEEKER
14/01/21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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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양식(?)처럼 앗싸리 빽으로 들어오는 거면 문제터졌을때
그 지인이나 빽이 책임을 지는 등으로 안전장치가 있는데

회사에서 공개채용을 표방하며 경쟁을 통해 지위취득하는 외형과 명분은 얻으면서
실제론 지인추천이면 그런 피드백도 없는게 함정이겠죠.
그냥 대놓고 뽑으라고..
원시제
14/01/21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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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이야기는 그냥 삭제하고 사법시험 또는 변호사시험. 이라고 바꿔도 딱히 문제 없을 글로 보이네요.
괜한 로스쿨 이야기때문에 처음 의도하셨던 내용과 다른 방향으로 댓글의 흐름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먼저 듭니다.
치탄다 에루
14/01/2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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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험이 굳이 공정할 필요는 없죠.
부가 세습되지 않아야 할 필요성도 사실은 없죠.
중요한건, 시험에 붙지 않아도, 부가 없어도 걱정 없이 잘 살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교육제도가 아니라, 경제구조를 바꿔야 하는 문제이지요.
왜 좋은 학교에 가야합니까? 돈을 잘 벌기 위해서죠.
그럼 학교에 안 가도 돈을 잘 벌 수 있다면? 학교를 굳이 갈 필요는 없죠.
교육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교육의 목적인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14/02/21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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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승자독식 구조를 바꾸면 간단하죠.
빈 문서 1.hwp
14/01/21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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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함. 우리나라의 최고(?)의 가치 중 하나죠.

이러한 것이 과도해지는 순간 - 기업의 비용문제라던지(삼성), 사회적 비용문제라던지(사교육-학원, 지역편중(인서울?), 부의 세습) - 공정함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요?

공정함을 유지한다고 해서 과연 사회전체적으로 이득이 될까요? 점수 1,2점이 앞섰다고 해서 과연 점수가 약간 높은 사람이 크게 뛰어날까요? 사회적으로 이익이 될까요?

공정함으로 인한 문제점이 과도해져서 대안을 도입한다면(ex : 사법고시폐지, 로스쿨 도입??) 그 대안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점도 있을텐데(학력으로 인한 (과도한?) 입시/입사시 차별 등) 어떤 방안을 선택하거나, 또는 보완해야 할까요?

그냥 우리나라가 모두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게 해답일려나요? 경쟁할 수 없는 사회를 교정하는것???

댓글이 횡설수설 하네요.
Judas Pain
14/01/2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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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증명해 오고 우리의 이웃나라들이 증명한 바, 국가의 관료에 한해선 고시나 시험보다 관료에 적합한 인재를 뽑아내는 방식은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 사회에서
(1)관료 이외의 직업이 관료에 준하거나 관료 이상으로 좋은 직업이어야 하고
(2)정치적 문제에선 관료 보다 투표로 선출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의 힘이 더 강하거나 관료조직을 선출직이 관리해야 하겠지요.

한국은 (2)는 그럭저런 괜찮지만 (1)이 심각한 문제라는 건 말할 필요가 없고 더욱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고작 9급의 공무원이 어떤 사기업보다도 매력적인 직장이 되는 현실과 승자가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극경쟁지향에 인맥-학맥-지연 등이 강력하게 얽혀 있는 사회에서 관료를 시험 외의 방법으로 뽑는 것이 대세가 된다면 제 생각엔 한국 사회가 극심한 갈등 뒤에 정치적 격변을 맞아버릴 것 같습니다.

따라서 공무원이 되지 않더라도 생존에 불안을 느끼지 않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사회안정망을 한국이 갖추고 있냐는 것과 한국의 고급 인재들이 어디로 가냐 그 유인이 무엇이냐가 문제지 관료채택에 있어선 고시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악군
14/01/2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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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반진반으로.. 법조인이 보수적인건 배운 게 법이라 그렇습니다.

법개정 되면 되게 짜증나요.. 공부를 다시 해야 되서..크크크크 특히 전면개정되면 왓더헬..

물론 새로운 연구를 하긴 하지만 일단 배워놓은 지식은 거의 대부분 영원한 진리이자 참인 이과계통의 지식과 달리
법적 지식은 법률개정되면 아예 틀린 지식이 되고 몰랐다가 아는 것 보다 덮어씌우는 게 헷갈려서..-_-
(왜 한번 틀리게 기억했던거 다시 고치기 쉽지 않은 거 아실겁니다..-.- 그런데 이건 맞았었는데 틀린게 됨orz)

솔직히 이 길을 걷다가 가장 회의를 느꼈던 것도 그런 게.. 의사는 다른 나라에 가도 의사지만 법조인은...
그야 뭐 새로 배우는 데 유리하기야 하겠습니다만 아무튼 쓸모가 없죠. 그래서 사회적 가치는 있으되
뭔가 본질적인 자연적 가치를 가지기 어려운 지식이 아닌가 싶어서..으으 역시 본질적으로 이과형 인간이어서
문과형 지식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가끔 느낍니다.
14/02/21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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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뭔가 이과에 대해 잘못 생각하신 것 같네요. 반대로 전 이과야말로 가장 학문이 많이 변하고 시간에 지남에 따라 새로 공부할 게 많다고 생각합니다. 배운 지식은 대부분이 얼마 후에 쓰레기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거든요. 예를 들자면 현대에 와서도 칸트 철학이야말로 철학의 최고봉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칸트와 비트겐슈타인의 저작들을 놓고 우열을 나누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과는 명백한 우열이 나뉘고, 나중에 나온 더 좋은 것으로 과거의 것이 '대체' 됩니다. 대표적으로 그런 발전이 크게 영향이 가는 분야가 IT와 의학 분야고요. 특히 의학의 경우에는 지금의 가장 좋은 치료를 10년 후에 그대로 했다간 고소당해야 마땅한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절름발이이리
14/01/21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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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14/01/2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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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서 쓰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고시, 수능과 현재의 수시+스펙 제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근시안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느냐 장기적으로 원하고 배우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소위 요즘에 중요시하는 사고력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느냐, 그 내용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할 수 있느냐가 결정적인 차이라고 봅니다.

흔히 사시등의 고시류의 시험이 단순 암기라고 생각하시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논리과정과 글 이해력이 정말 엄청난 수준이어야만 제대로 공부가 가능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수시제도나 스펙쌓기는 당장 눈 앞의 결과물에 급급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무슨 공부를 장기적으로 이해하면서 하고 싶더라도 당장의 단순 암기에 치중하는 학점이나 내신 그리고 대외할동에 목숨 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한 끗이라도 어긋나면 낙오자니까요.

간단한 예로 수시제도나 스펙으로 뽑는 로스쿨에서는 절대로 장승수씨나 피지알에 호가든 님 같은 분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호가든 님 수기 읽어보신 분은 알겠지만 호가든님은 자기 스스로의 공부를 위해 학창 시절 내내 도서관에서 살면서 의학 철학, 과학 등 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하셨습니다만 학점이 사시 면접 때 지적 받을 정도로 낮으셨다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시는 2년, CPA는 변호사 생활 하시면서 붙으셨습니다. 이 분은 말 그대로 인문계 최종병기이고 학습능력이나 지적 능력에 관련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겠지만 만약에 로스쿨 제도였다면 변호사 되기조차 어려웠을 겁니다.

사실 어느정도 공부를 하신 분이라면 학점과 내신이 어느정도로 의미가 없는지 잘 아실 겁니다. 당장 오늘 제가 13학번 후배 경제학 공부 봐 주는데 내용에 대한 이해는 전혀 없이 그냥 PPT 파일 내용을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울려부터 합니다. 그래야 내신과 학점받는데 유리하니까 지금까지 그냥 그렇게 한 거죠. 그리고 현재 제도에서 그렇게 하는 게 맞구요. 근데 행시 경제학 시험은 절대로 이렇게 단순히 외워서는 손조차 못 댑니다. 학점이나 내신이라는 것은 그 내용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 내어주는 자료를 그냥 외우는 것만으로도, 외우는 데 시간을 투자함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단기적으로 가장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율적입니다. 소위 주입식으로 공부하는거죠. 그러나 행시나 사시같은 시험에선 이게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정말 완벽하게 원리와 개념을 이해를 해야만 한 줄이라도 씁니다. 즉 이렇게 단기적으로 시간을 투자해서 좋은 학점과 대외 스펙을 쌓은 사람과... 수많은 책을 읽고 스스로 공부하며 생각한 사람의 사고력은 정말 어마어마한 차이가 난다고 보는데 현재의 로스쿨 제도나 수시제도에서는 단기적인 스펙엔 조금 소홀하지만 정말 사고력이 높고 유능한 사람이 경쟁의 허들을 넘을 기회도, 넘지 못 했을 시의 패자부활전의 기회도 부여받지 못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수능, 행시, 사시 같은 시험이 오히려 정말 지적으로 유능한 사람을 선발하는 시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시험성적이 업무능력과의 연관성은 딱히 상관도가 높지 않다고 보긴 합니다만....
원시제
14/01/2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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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로스쿨이 스펙으로 뽑는다는 인식이 가득한지 모르겠습니다.
소위 SKY 로스쿨을 위시한 몇몇 대형 로스쿨은 학벌+학점+리트+영어의 4박자를 갖추기를 요구하는 곳이 많긴 합니다.
하지만 그 외 지방 국립 로스쿨이나 미니 로스쿨등은 꼭 그렇게 무시무시한 스펙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리트점수가 높다면 2점대 학점이나 700점대 토익으로도 얼마든지 합격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논술이야 뭐, 점수가 공개되지 않으니까
논외로 치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리트점수가 높은 사람들은 논술에서도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래서 오히려 로스쿨 제도 이후 지방대 출신이 변호사되기는 훨씬 더 수월해졌지요.

호가든님의 예를 드셨습니다만,
학창 시절 내내 도서관에서 살면서 의학, 철학, 과학 등 수많은 책을 읽고 공부했다면 학점이 2점 이하더라도 리트와 논술에서 남들보다
압도적인 점수를 내었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면접과정에서도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었을겁니다.
리트와 논술, 그리고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내었다면 철저하게 완벽한 스펙을 요구하는 SKY 로스쿨같은 대형 로스쿨에 가기는 좀 어려웠겠습니다만
지방 로스쿨이라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겁니다.

반드시 대형 로스쿨에 들어가서 대형 로펌에 가는게 정답이다. 라는 생각이라면 스펙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 로스쿨 제도가 좀 불리한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단기적인 스펙엔 조금 소홀하지만 정말 사고력이 높고 유능한 사람" 이 변호사가 되고 싶어한다면 로스쿨 제도는 딱히 불리할게 없습니다.

굳이 기준점을 SKY 로스쿨로 잡을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Sigh Dat
14/02/20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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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출신이 변호사 되기는 훨씬 더 수월해졌지만, 지방대 출신이 능력을 바탕으로 대형 로펌에 가기는 매우 힘들어졌죠. 예전에는 그래도 사시 잘보고 연수원에서 성적 좋으면 대형, 중형 로펌이라도 갔지만 지금은.. 당장 S 로스쿨 30% 이하는 컨택도 안온다고 징징대고 있는데요. 사시와 연수원은 "성적" 이라는 명확한 능력의 기준이 있었지만 로스쿨 체제에서는 그 기준이 없습니다. 변시 성적 공개도 안하고, 학점은 각 로스쿨 별 수준 차이에 의해서 일관적으로 적용하기가 힘들고.. 학벌의 영향력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고요.
원시제
14/02/2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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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 출신이 능력을 바탕으로 대형 로펌에 가는건 사시 시절에도 거의 없던 일입니다.
지방대 출신이 능력을 바탕으로 가던건 사시 시절에도 검사와 판사였죠. 그리고 로스쿨 시스템에서도 능력있는 지방대 출신은
검사 판사 많이 갑니다.

사시와 연수원에서 '성적'이 기준이 되는건 '법관 임용'입니다. 당장 10대로펌 사시출신 소속 변호사중 지방대 비율을 따져보면
사시 잘보고 연수원에서 성적 좋으면 대형로펌에 갔다. 라는게 왜 공허한 이야기인지 아실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변호사가 대형로펌에 가는것'이 능사가 아니고, 능사여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지방대출신이 대형로펌에 가지 못한다는것이 로스쿨의 폐해라고 인식되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대형로펌에 가지 않고, 중소형 로펌에 취업해서 혹은 지방에 사무실을 내어서 소시민을 돕는 변호사가 늘어난다.
이게 로스쿨의 취지에 훨씬 더 맞는 일이라고 보거든요.

S로스쿨 30% 이하는 대형로펌에서 컨택이 안온다고 징징대는 사람에게는 그래서 어쩌라는거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변호사가 부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사시 시대'의 당위성일지는 몰라도 '로스쿨 시대'의 당위성은 아닙니다.
왜 '사시 시대'처럼 변호사가 부자가 될 수 없다는게 로스쿨의 문제점이 되어야 하나요.
14/02/2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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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ise님의 말씀에 별로 동의가 가지 않는 것이, 호가든님이 학점 관리를 못한 건 그 당시에 학점이 법조인이 되는 데 미치는 영향력이 낮았기 때문이지 호가든님이 학점을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왜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그렇게 학점이 좋을까요? 당연히 학점이 영향력이 크고, 그걸 열심히 준비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는 '고시만 붙으면 학점은 중요하지 않다'라는 생각을 모두들 갖고 공부했을 것입니다. 저부터도 그랬는걸요.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점은 소홀히하고, 고시는 열심히 했을텐데 그 상황에서 나오는 결과물을 갖고 학점/고시 유형에 있어 결정적인 학습방법-지적 능력의 차이가 있다는 증거로 삼으면 안되죠.

제 얘기를 좀 해보자면, 저는 사시 1차를 어린 나이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지만(23살, 등수로 10등대였습니다.), 2차 시험 볼 때 건강문제가 생겨 마지막 민법 시험을 아예 응시하지 못하고 사시공부에 질려서 진로를 로스쿨로 돌렸는데요. 그 때까지 제 학점은 2.8x였어요. 1학년 때 학교를 거의 안나가다시피 했고 수업도 안들었으니까요. 근데 로스쿨로 돌리기로 결정하고, 세학기 다니면서 학점을 3.7x까지 올렸습니다. 그리고 올해 원하는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었구요.

갑자기 학점형 인간이 아니었던 제가 학점형 인간이 된걸까요? 겉으로 드러난 지표는 그냥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마음을 쓰느냐의 문제지 학점/고시 능력의 문제가 아니란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그렇다고 학교 학점과 고시류의 시험이 차이가 없다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그 차이는 Realise님이 지적하는 것과 같은 '사고력을 위한 공부 내지 철저한 이해 vs 주입식 암기'와 같은 것은 절대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혼자 공부하느냐 강의를 통해서 공부하느냐 정도의 차이죠. 좋은 강의를 접할 수만 있다면, 학점제로 공부를 해도 사고력을 갖추거나 철저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물론 현행 로스쿨에서 그런 강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느냐는 논외로 하구요). 애초에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의 실력을 담보한다는 사법연수원은 4.3 만점의 학점제인데요 뭐.
14/01/2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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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3번에서 학무보는 학부모의 오타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질문드려봅니다.
해울림
14/01/22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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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취지와는 살짝 어긋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학원에서 제 전공이 문화&사회심리학이다보니 서양에 '투표'가 공정성의 상징이라면,
동양에서는 '시험'이 그 역할을 한다는 부분, ' 공정성 이데올로기의 총화' 부분은 매우 의미심장하네요. 놀랐습니다.
제 전공에서는 공정성에 관하여 이렇게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회심리학에서의 귀인이론이라고 하면 다들 들어보시고 또 익히 알고 계시리라 짐작합니다. 결과에 대한 원인을 어디에 두느냐에 관한 이론이라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척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능력-노력' 차원의 귀인양식입니다. 개인 행위의 결과를 두고 그 결과를 개인의 타고난 능력에 따른 것으로 여기는지, 노력에 따른 것으로 여기는지를 구분해볼 수 있다는 것이죠.
문화적으로 보았을 때, 서양은 능력 귀인 양상이 두드러지고, 동양은 노력 귀인 양상이 두드러집니다.
(일전에 그런 실험이 있었죠. 수준보다 어려운 과제가 부여되면 서양 아이들은 능력 부족이라 여기고 일찍 포기하는 반면,
동양의 아이들은 해결 가능할 때까지 좀 더 오랜시간 과제를 붙잡고 씨름하는 경향성이 드러난다는 결과를 보여준 실험.)

소위 말해, '하면 된다' 의 정신. 미친듯이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게 없다는 사고방식은 동양 문화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특징이 과거제도나 고시, 수능 등 한반도의 교육 역사에 이어져 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어쩌면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란 것이, '노력 귀인'에 대한 믿음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Starlight
14/01/22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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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가 마치 미국의 제도에 의해서 다시 리셋되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늘날 한국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건 조선사회였죠.
시험에 의한 성공,공공영역에 대한 광신(=시장에 대한 불신), 이공계/기술직에 대한 멸시 등등 셀수도 없이 많은 부분에서도 한국내 조선문화를 찾을수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14/01/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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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가 암기가 바탕이 되는 시험이지만 암기가 전부는 아닐수 있겠죠
리걸마인드라는걸 타고 나면 쉽다고도 하죠

개인적으로 사시에 단순 암기의 요소를 최대한 배재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사시볼때 인터넷 되는 노트북 들고 들어갈수 있게만 해도 되죠
그리고 바로 출력 가능하도록 하구요
어짜피 실무볼때 기억력에 의존하는 방법 보다는 빠르고 정확히 검색해서 쓰는 방법이 더 강력하지 않습니까?
도들도들
14/01/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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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합니다
want2behappy
14/01/2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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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시험 한 번으로 당락을 정하는게 진정 공정할까요?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 획득한 공정성이 다른 폐해들을 상쇄할 만큼 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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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험 한 번으로 당락이 결정되지만, 탈락이 결정되면 재도전의 기회가 있습니다. 당락이란 결국 결단의 문제이고, 결단의 방법이 객관적인 채점의 기준이 존재하는 시험이라면, 그것은 응시자에게 가혹한지 여부의 문제가 될 뿐 공정성에 의문을 가질 여지는 적어 보입니다.

2. 본문에 언급된 폐해는 암기왕의 득세, 보수적이고 전체적인 분위기의 형성, 인생낭비 3가지로 압축됩니다.

먼저, 암기왕의 득세에 대해 보겠습니다. 법조계 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기초적인 지식의 암기가 기본이 됩니다. 응용의 기초는 암기이니까요. 소위 천재들은 암기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암기할 필요 없이 그 내용을 이미 이해,체득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고, 본문의 '창의적인 괴짜'들도 그 분야에서 1인의 몫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암기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이죠. 특히 법조계와 같이 사회규범에 기초하여 주장, 판단하는 것이 업인 사람들은 기준이 되는 법령, 판례 등의 암기, 이를 통한 사례 응용능력을 사전에 검증하는 것이 합리적이죠. 고시가 암기에 그치는 시험이 아니라는 점은 다른 분들이 이미 설명해주셨습니다.

다음으로, 보수적이고 전체적인 분위기의 형성.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그야말로 양반들의 유일한 직장인 조정의 입사시험입니다. 나라의 모든 양반이 단 하나의 시험으로 줄세우기 되고 있으니 보수적, 전체적이 될 수도 있었겠죠.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사시나 행시는 사회 진출의 여러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많은 분들이 말씀하셨듯이 법률를 다루는 특성 때문에 보수적일 수는 있으나, 무엇을 보고 전체적이라고 판단하신 건지는 의문이네요(사실 보수가 반드시 나쁜 것인지 또한 의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생낭비. 고시낭인의 인생낭비가 심각하다는 점, 그러나 변시낭인의 폐해도 다르지 않다는 점은 앞서 말씀해주셨습니다(5번의 변시 응시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20대 후반으로부터 5년도 상당한 공백이죠). 하나 더, 로스쿨낭인도 많습니다. 로스쿨도 형태가 다를 뿐 당락이 결정되는 제도이고, 법조계로의 유일한 입구이기 때문에 로스쿨 N수 및 반수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보고 있습니다. 사시든 로스쿨이든 떨어지면 인생낭비라는 건 똑같다는 거죠.

위와 같이 본문에서 말하는 사시의 폐해는 사실상 사시만의 폐해가 아니거나 업계의 특성 정도에 해당합니다. 인생낭비는...사회적 비용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죠.

이에 반하여, 공정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시에 떨어진 경우에는 내가 공부가 부족했구나, 어쨌든 붙은 사람은 나보다 점수를 잘 받았구나, 하고 결과에 승복할 수 있지만, 로스쿨의 경우 누가 잘한다 못한다 하기 애매한 리트 성적에 면접 등이 결합되니, 유수한 집안 자제들이 합격하는 경우 자신의 부족함은 인정하지 못하고 당락 판단 과정을 의심하게 되지요. 이렇게 선출 과정의 공정성이 의심되는 법조인으로부터 불이익한 일을 당한 민원인, 또는 의뢰인은 자질부족의 법조인이 일을 망쳤다고 탓하기도 수월하고요.

결국, 공정성이 무너지면 사회는 불신과 분열의 수순으로 가게 됩니다.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너무 가벼이 여기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원시제
14/01/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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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다른 부분은 제법 공감이 갑니다만 로스쿨 입시에 대한 말씀은 좀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1. 리트는 누가 잘한다 못한다 하기 애매한 시험이 아닙니다. 명확하게 수치화되는 시험이고, 당연히 좋은 점수를 받은 사람이 잘한 시험이지요.
다만, '노력하는 사람이 반드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며, 지능이나 재능과 연관성이 꽤 있는 편이다.' 라고 볼 수는 있겠습니다만
세상에 노력과 성과가 반드시 정비례하고, 지능이나 재능과 연관성이 없는 분야라는게 과연 있을까요?

2. 면접과 논술이 결합되기 때문에 당락 판단 과정을 의심하고, 민원인 및 의뢰인은 그 자질부족을 의심하게 된다?
이건 조금 확대하면 면접과 논술이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버립니다. 그럼 수능 이후 논술과 면접을 통해 대학 입학을 하는
경우에도 수능은 잘 봤지만 논술과 면접에서 좋은 성적을 못 낸 사람들은 선출 과정의 공정성을 의심할 것이며,
그럼 논술전형이나 면접전형을 치르는 대부분의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면접을 거쳐 취직한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인은
선출 과정의 공정성이 의심되는 자질부족의 직장인이 됩니다. 좀 극단적이지만 논리만 가져오자면 그렇게 되겠지요.

이 부분은 '선발 과정이 공정해져야한다' 의 문제라기보다 조금이라도 선발과정이 불투명하다면 그것을 신뢰할수 없는가. 의 문제가 되는것 같습니다.
want2behappy
14/01/22 23:55
수정 아이콘
1. 리트 점수가 높다고 법률분야 공부/지식습득을 잘했다 못했다 말할 수는 없다는 의미였습니다. 법학시험이 아니니까요.
2. 극단적인 논리의 확대에는 공감하긴 어렵고 '조금이라도' 선발과정이 불투명하면 신뢰할 수 없는가의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률의 특성이 공정과 정의를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자 직역이기 때문에 업계 종사자/일반인들이 선출의 공정성을 더 엄격하게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다만, '그렇게 획득한 공정성이 다른 폐해보다 가치가 있느냐'는 본문 마지막 문단의 취지가, 로스쿨보다 사시의 선출과정이 공정하다 라는 전제로 이해되어 단 댓글인데, 갑자기 로스쿨 선출과정이 불공정한 것은 아니다 라는 취지로 댓댓글을 다신 것 보니 제 댓글 취지를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상당히 신선한 논지의 글이지만 pgr은 피드백이 예의라 배워 의견 달아봤으니 기분 상하지 마세요!
14/01/22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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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애매호모
14/02/20 22:4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공정과 세습 사이인가요~
저도 이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런지
시험이 가장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로스쿨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요.
기아트윈스
14/02/20 23:41
수정 아이콘
예전에 썼던 글에 댓글알림이 떠서 와보니 추게에 와있네요 덜덜

잘 봐주셔서 감사하고 또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스카야
14/02/21 15:22
수정 아이콘
굉장히 뒤늦게 잘 읽었습니다. 글 너무 잘 쓰시네요 부럽습니다 흐흐
하단쯤에 학무보는 학부모의 오타신것 같습니다. 물론 글의 내용이 너무 좋아서 티가 잘 나지는 않지만요~!
14/02/21 17:47
수정 아이콘
'공정성 이데올로기의 총화' 이거 3어절 딱 보고 추천을 드리고 싶었는데 이미 추게에 있는 글이네요^^; 추게에 있는 글을 추천할 수 없다는 것도 덕분에 알게 됐습니다. 투표와 선거의 대비는 정말 탁월한 식견이네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투표에 대해 그렇게 관대한가 싶기도 하고... 어디 가서 저 말 좀 읊으면서 잘난 척 좀 해야겠습니다^^

글 내용에 대해서는, 위에 댓글 다신 분의 리플에 좋아요를 하나 달고 내려왔는데, 문제가 사실 로스쿨이냐 사시냐 혹은 '품질인증'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선별할 것이냐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선별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과도하게(저는 과도하다고 생각합니다.) 떨어지는 대우를 받게 되는 구조가 문제죠. 모든 사람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이상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간극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로 포커스를 옮기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선별 과정에 대한 각론은 사실 '완전히'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부먹 찍먹 수준이라고나 할까요? 답도 없고 장단점 열심히 따져봐야 사실 거기서 거기 수준이죠. 결국은 문화적인 취향 수준에서 결론이 나는, 말만 남는 싸움이 되는 셈이죠. 사실 소스랑 고기가 따로 나오지 않으면 되는 건데 말입니다.

선거와 과거. 참 흥미로운 대비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14/02/22 16:3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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