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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3/02/19 10:08:04
Name OrBef
Subject 호구시지요?
보아하니 님도 호구이신 듯한데, 우리 호구들도 어떻게든 살아야 하잖습니까. 같은 호구들끼리 살아가는 팁 좀 공유해보려고 올리는 글입니다.

아래는 엔하위키에 나오는 호구의 정의입니다.

호구: 어수룩해서 이용하기 좋은 사람 혹은 이용을 잘 당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말. 원래는 바둑 용어로서,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있고 한쪽만 비어있는 모양을 가리킨다. 이 속에 돌을 둔다고 해도 당연히 상대에게 다음 한 수로 따먹히기 때문에 호구 안에 수를 두는 건 말하자면 상대에게 돌을 헌납하는 짓이다. 일반적으로는 남에게 이용당하기만 하는 '바보'나 '자체검열'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참고로 국어사전에 따르면 비속어가 아닌 표준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호구의 존재는 매우 유익합니다. 일은 열심히 하면서 자기 몫을 주장하지 않는 사람들 만한 모범 시민이 어디 흔한가요..... 라고 비아냥거리지 않더라도, 사실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손해를 볼 수도 있는 거고 구성원들이 서로서로 번갈아 5% 손해 보면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좋게 가져가는 것이 사회 전체의 조화를 위해서는 매우 좋지요. 다만 그건 사회 전체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그런 양보가 서로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분명히 호구와 포식자 간의 불평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정리되어있는 글을 읽어보면 마치 호구라고 부를 만한 소수의 사람들이 따로 있을 것 같지만, 현실 속에서는 오히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때로는 호구가 되고 때로는 포식자가 되어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좀 어수룩하거나 말랑말랑한 사람들은 인생의 80% 를 호구로 20% 를 포식자로 살아가는 것이고, 계산이 좀 빠르거나 내추럴 본 이기주의자들은 인생의 80% 를 포식자로 20% 를 호구로 살아가지요. 다만, 어수룩해서 호구인 것과 말랑말랑해서 호구인 것은 조금 다른 데, 전자는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고 후자는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전자는 솔직히 희망이 없는 경우이고, 저는 타고난 성격이 후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은 후자를 위해서 쓴 글입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지만, 타고난 성격이 호구라는 것이지 실제로 살고 있는 모습이 호구라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 신경이 허접하게 태어난 사람이더라도 노력 좀 하면 대충 섞여서 놀 정도의 운동 능력은 갖출 수 있듯이, 원래 성격이 호구더라도 노력 좀 하면 정상인처럼 살 수 있습니다. 물론 포식자가 되긴 힘들겠지만요.

후자 타잎의 호구가 되기 위한 가장 큰 덕목(?) 이라면, 뭐니뭐니해도 No 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욕심 많고 야심 많고 자의식 과잉인 사람이지만, 유독 남들에게 No 라고 말하는 방법을 어렸을 때 배우질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 딱지 수집 (요즘 식으로 하면 포켓몬 카드 정도랄까요?) 이 유행인 적이 있었는데, 오래오래 열심히 모아서 저희 반에서 독보적인 지존의 위치에 올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근데 어느 날 친구 중 하나가 '너 딱지 되게 많구나! 나 그중에서 후진 걸로 하나만 주라. ' 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거절하는 법을 제대로 학습한 적이 없었던 저는, 내심 내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나눠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하이에나떼가 몰려들 듯이 별로 친하지 않은 반 아이들까지 찾아와서 '나도 나도!!' 를 외치게 되었는데, 어린 마음에 생각해보니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는 건 뭔가 불공평한 것 같더군요. 그래서 결국 열심히 나눠주었고, 곧 앵꼬가 났습니다 푸헐. 근데 그렇게 빈털터리가 되고 나니까 갑자기 막 서러운 마음이 드는 겁니다. 해서 다음 수업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서 훌쩍거리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일이 어렸을 때 제법 자주 벌어졌었는데, 그 일들이 기억난다는 사실만 보아도 제가 '몰라서 당한' 것은 아니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자신이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을 한 것인데, 돌이켜보면 상대방이 뭐 대단한 포식자였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제가 호구 짓을 했으냐라는 의문이 들게 되는데, 저는 '남과 얼굴 붉히는 상황' 을 극도로 거리끼는 성격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고 봅니다. 타인과의 긴장 상태를 너무 불편해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에라이 내가 호구 잡혀주고 이 상황을 벗어나자' 라는 생각이 거의 자동으로 떠오르는 거지요.

'니가 아까부터 줄 서 있었지만 내가 급하니까 내가 먼저 갈게요' 라는 상황이 벌어지면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저는 뭐 한가해서 줄 서 있는 게 아니잖아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그 경우에는 그 사람과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인 상태에서 25 초간 추가의 대화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냥 '그러세요' 라고 해버리면 저만 안 좋은 감정을 감수하면 상황이 바로 종료되는 거지요.

서로 친분 관계가 제법 쌓인 관계라면 호구 vs 포식자의 관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친분이 쌓이면 쌓일수록 제 쪽에서 싫은 소리를 한다 해서 저쪽에서 나쁘게 받아들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물론 '오늘은 내 생일이니까 니가 커피 사' 와 '오늘은 니 생일이니까 니가 커피 사' 라는 말을 닷새 간격으로 구사하면서 뭐가 문제인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는 아니지요. 보통은 '야 색기야 (속어를 써서 죄송하지만 문맥상 이것 말고는 옵션이 없네요) 빈대도 낯짝이 있지!' 라는 말 정도만 해 줘도 잘 알아듣습니다. 호구들이 제일 절망적인 상황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사회생활에서 벌어지는 '별로 친분이 있지도 않고 앞으로 친분이 생길 일도 없지만 계속 보긴 봐야 하고 이런저런 이해관계가 얽혀있는데 같이 일은 해야 하고 이득은 자동 배분이 아닌 각자 찾아 먹어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일할 때는 No 라고 못하니까 조금 더 하게 되고 결과물을 나눠 먹을 때에는 No 라고 못하니까 조금 덜 먹게 되어있습니다. 더구나, 호구 짓을 하다 보면 추가로 받게 되는 스트레스가 있는데, 호구는 분명히 자기 몫을 남에게 넘겨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래 너 착하다' 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라 '이건 뭐 xx 도 아니고? 넌 뭐야?' 라는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원해서 자원봉사를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타의에 의해 손해를 본 것이니, 그 비난은 정당합니다). 하지만 사람 성격이란 게 어디 쉽게 고쳐지나요.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호구로 태어난 사람은 절대 포식자가 될 수 없습니다. 포식자로 태어났지만 가정 교육을 호구가 되도록 받은 사람도 본성을 되찾으려면 매우 힘듭니다. 고로 이 경우의 해결책은,

- 남을 잡아먹을 능력과 기개는 없으니 잡아먹히지나 말자. No 라고 말하는 훈련을 하자.
- 기왕 호구 짓을 해줬으면 그것이 양보라는 점을 상대에게 확실히 각인시킨다.
- 여러 번에 걸쳐서 호구 짓을 해줬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는 상대라면, 관계를 끊는다. 세상에 사람은 많고 그딴 놈 말고도 같이 일할 사람은 널렸다.

라는 자세를 갖추는 정도라고 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저 같은 소심쟁이들도 쉽게 시전할 수 있는 스킬들입니다. 문제는 첫 번째 스킬이지요. 상대방과 얼굴 붉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No 라고 말할 때에도 좋게좋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 정도 해서 상대방이 알아들으면 다행인데 저쪽에서 더 세게 '에이 그냥 좀 해 줘~~~!!??' 라고 나오면 아 이거 정말 난감한 경우입니다. 다행인 것은, 그런 강력한 적들을 만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간 나름대로 사회생활 해 오면서 깨달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식자보다는 호구에 가깝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부담 주지 않거든요.

다른 호구님들은 포식자를 만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사족: 얼마 전에 아들놈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하도 울적해하길래 뭐가 문제냐고 물어봤더니 '애들이 과자 사달라고 하면 거절을 못 하겠어. 근데 열 번은 사준 것 같은데 자기는 한 번도 안 사는 애가 오늘 또 사달라는 거야. 그래서 사주긴 했는데 너무 기분이 안 좋아' 라고 하길래 옛 생각이 나서 적은 글은 절대로 아닙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3-18 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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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Side
13/02/19 10:18
수정 아이콘
그냥 저는 인생 자체가 호구인 것 같습니다 .... ;;
iAndroid
13/02/19 10:18
수정 아이콘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줄 알기 때문에 빨리 NO 하는 법을 익혀야 하죠.
NO 해서 인간관계가 끊기는 걸 두려워 해서는 안됩니다. 그걸로 끊기면 둘 사이는 그정도 관계밖에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정당한 이유로 NO 해도 받아줄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이겠죠?
이런 대표적인 관계가 남녀관계더군요.
여자가 요구해도 NO라고 하면 관계가 끊길까봐 NO를 못하는 남자들, 정말 불쌍합니다. 흐흐.
13/02/19 10:22
수정 아이콘
아 이글 진짜 공감되네요. 노라고 좀 부드럽게 말하면 그걸 알아좀 쳐먹으면 좋을텐데...알아쳐먹지를 않으니..
참고 참고 참다가 결국 3번이 되더군요 ㅠ
근데 사실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은 애초에 그런 대상들은 걸러진 친분들이라 호구짓 하더라도 주고받고가 되는데..
별 면식도 없거나 친분이 없는 상대가 뻔뻔하게 요구하는 인간상들이 생각보다 참 많더라구요..;

PGR에서도 자주 당하시는 상징적인 분 한분 계시죠 ㅠㅠ EVA님 ㅠ
미메시스
13/02/19 10:26
수정 아이콘
"웃으면서" no 라고 해보세요. 제경우 훨씬 하기 쉬워지더군요
설탕가루인형형
13/02/1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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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읽었습니다~
전 상식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대부분 매몰차게 거절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나름 잘 퍼줘도 호구 소리는 안듣는 것 같습니다.
tannenbaum
13/02/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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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어린이 콤플렉스가 원인이 아닐까요?
어른들 말 잘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희생하며 착하게 살아라 라고 한평생 교육 받고 살아온 사람들을 영악한 이들이 갈취하며 사는거죠 아무런 죄책감 없이
13/02/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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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은건 관계 유지 혹은 개선하면서 호구짓 안하기지만,
호구라도 관계유지 VS 호구안하고 관계가 소홀해짐 or 끊어지고 사라짐
이런 갈등에 놓이고 전자를 +- 계산에서 좀 더 +로 보기때문에 호구가 되지않나싶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어릴 때 ~~빵을 안 당하게 겉늙어보이는 얼굴같습니다.
10년 전 고딩과 얼굴이 변함없어... 엉엉ㅠㅠ
summerlight
13/02/1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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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재수 없는 이미지를 가지면 저런 류의 부탁 자체를 잘 안 하더라구요. 대신 친구도 없어진다는게 함정 ...

여튼 호의의 주체는 니들이 아니라 나다, 라는걸 각인시키는게 중요한 듯.
켈로그김
13/02/19 10:44
수정 아이콘
저는 어무이가 호구잡혀서 십수년을 고생하고 재산 다 날리는걸 겪고 나서는 다소 변화가 있었습니다.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수준이 꽤 낮은 축에 속할거라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속아서 혹하는 경우나, 포식자의 패기에 반사적으로 "네..네;;" 하는 경우, 연애시절의 "남자니까" 하는 요구에도
1~2사이클 내로 바로 회복을 하는 편입니다. 반복되게 두진 않지요.

스스로 아쉬운 점은..
네네~ 하고 받아들일 때의 모습과 '생각해보니 이건 아닌데?' 하고 정색하고 '되돌려놔라' 라고 요구하는 태도가
필요 이상으로 차이가 나는건 아닌가 한다는거..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또 받아들일 때는 흔쾌히 받아들여주는 티를 내죠..)_
받아들일 때의 순순함을 줄이고, No할때의 공격성을 줄여서 자연스러운 보통인이 되는게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메지션
13/02/19 11:06
수정 아이콘
친절한 것과 호구의 차이를 어렸을 때부터 교육시켜야 된다고 봅니다.
베풀었을 때 나도 마음이 좋다면 친절한 것이고 베풀었을 때 내 마음이 불편하다면 호구인거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 베풀때는 좋았는데 계속 베풀기만 하다보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제게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갑을 관계에서도 대체할 수 없는 을이 되어야 내 몫을 주장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함이 필요하고요.
헬리제의우울
13/02/19 11:17
수정 아이콘
7년전 MT 깊은밤
양반다리를 하고 베개를 올려놓고 그 위에 팔을 얹은 상태로 선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여자후배가 "오빠 베개좀 주세요" 라고 하길래 호구잡히지 않기 위해 "내가 왜?" 라고 했습니다
제 MT의 끝은 거기였습니다
13/02/19 11:30
수정 아이콘
왠지 어제 유게에 올라온 간이식 건이 떠오르는군요!
그리드세이버
13/02/19 11:34
수정 아이콘
다시는 호구로 안살려구요..
허공에삽질
13/02/19 11:47
수정 아이콘
진정한 호구는 자기가 호구인줄도 모르는법이지요. 옛날에는 안그랬는데... 제가 배때기가 불렀는지 이젠 주위사람들에게는 좀더 제스스로가 호구가 되길 바라고 삽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네요 흐흐
Love&Hate
13/02/19 11:56
수정 아이콘
저역시 글쓴님 말씀대로 왕후장상 그리고 호구의 씨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글에서 처럼 상대적 호구 상대적 포식자들이고 먹이사슬관계에 따라 언제는 호구 언제는 포식자가 되는거죠.
저도 호구짓 많이 합니다. 흐흐흐
저는 특히나 본인을 호구라고 생각하는 포식자들을 가장 무서워합니다.
Darwin4078
13/02/19 12:25
수정 아이콘
호구였다가 먹고 살기 위해 포식자로 전직하려고 합니다.

호구 벗어나는거 어렵지 않아요.
좋고싫은거 확실히 표현하고, 내영역과 감정을 건드리면 너의 영역과 감정 또한 침범당할거라는걸 각인시켜주면 돼요.
사실, 호구 벗어난게 자영업자 되면서 벗어났지 말입니다.
이건 뭐 틈만 보이면 가차없이 파고들어서 호구씌우려는 사람들 천지네요.

포식자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감정을 공감해서는 안돼요. 사실, 이건 호구 벗어나는데도 필수적이긴 합니다.
타인의 사정이 어쨌건간에 '그건 니 사정이고'라는 마인드가 항상 깔려 있어야 포식자가 돼죠.

포식자가 돼도 먹고 살기 참 힘들어요. 더 큰 포식자들이 널려있거든요.
적정선에서 내안의 호구와 포식자 비율을 맞춰주는게 좋을듯.
몽키.D.루피
13/02/19 12:27
수정 아이콘
저는 남에게 부탁을 잘 못하고 남의 부탁은 잘 들어주는 성격입니다. 호구인가요? 그 성격이나 행동의 밑바탕에는 거절받기 싫어하는 심리가 있는 거 같습니다. 남에게 부탁을 했을 때 겪어 내야 하는 작은 거절감조차 견디기 힘들어 하는 거죠. 그래서 반대로 남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겁니다. 사실 사람 사는게 오는게 있으면 가는게 있는게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오늘 내가 과자를 사줬으면 내일 당당하게 과자를 대령하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되는데 전자는 되면서 후자가 안되는게 문제인 거죠.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갑을 관계와 같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이 있을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거절감에 대한 상처를 생각해보거나 자신의 자존감에 대해 되돌아 볼 만한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자존감이 낮고 자신의 자존감을 타인의 반응에서 확인하는 심리를 가진 사람일 경우 이런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은 거 같습니다.
가만히 손을 잡으
13/02/19 12:47
수정 아이콘
취학전 아들내미가 자기가 받은 세배돈도 주위사람에게 뿌려가며 호구짓을 했었죠. 누나가 먹고 싶은 것도 자기가 다 사주고 그러더니,
학교에 간 후 니꺼 내꺼가 아주 분명해 졌습니다. 어제 저녁 집 앞 트럭에서 계란빵을 자기 용돈으로 산다더니 딱 자기것만 사오더군요.
이제 호구에서 벗어난걸 축하해야 할까요? 일찍 어른을 닮은 세태에 아쉬워 해야 할까요?
13/02/19 13:05
수정 아이콘
글을 읽으며 생각해보니 저도 호구이긴 합니다만, 별 상관없는것 같습니다.
나이먹어가면서 느끼는것 중에 하나가 인생이란게 원래 남들에게 퍼주면서 손해보면서 사는게 행복한거 같습니다.
또한 점점 확실히 안것중에 하나는 세상에 공짜는 정말 없다는겁니다.
내가 들인 노력보다 더 큰 걸 얻을수 있는 상황에서, 욕심내지 않는건 정말 쉽지 않더군요. 그걸 지키려는 마음을 키워나가기도 벅차다고 느끼면서는 내가 하는 호구짓은 그다지 신경 안쓰이게 된 것 같습니다.
인간실격
13/02/19 13:48
수정 아이콘
친밀도 정도와 관계없이 지인들에게 자발적으로 절대 밥 한번 사 주지 않는 저같은 매정한 사람한테는 호구라는 건 정말 남 얘기네요... 세상에서 제일 자신있는 것 중 하나가 No하는 겁니다.
13/02/19 14:14
수정 아이콘
저도 이랬는데, 일하면서 사람 500원짜리로 아는 별 꼰대색히들의 온갖 G-roll을 몸으로 겪다보니 이제 거절이 익숙합니다.
제 거절 프로토콜은 안됩니다↗하면서 눈도 화살표 방향으로 돌려버리는거죠…
13/02/19 14:46
수정 아이콘
제 아내는 제가 호군줄 알고 결혼했습니다. 물론 아내에게만 그러길 바라겠지만 사실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호구로 보인적이
꽤 있었을 겁니다. 근데 요즘엔 아내에게도 호구가 아닌 것 같다고 불평이 대단하긴 하죠.
뭐 저도 느끼고 있는 건데 호구잡힌다는 건 아직도 여유가 있을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계속 호구잡혀도 여유가 있었으면 하긴 합니다.
이젠 정신적인 여유도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 삶이 팍팍하긴 하지요.
sprezzatura
13/02/19 14:48
수정 아이콘
호구잡히며 살 바엔 슈킹하면서 살자는 인생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13/02/19 15:05
수정 아이콘
보통 심한 상황을 겪으면서 NO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죠.
저도 어렸을때는 누구의 부탁(특히 친한사람이나 윗사람)이면 아주 어렵게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조금 귀찮을거 같다' 라는 느낌만 받아도 0.1초의 지체도 없이 '안해요' 라고 말합니다.
이 '안해요.' '안되요' 라는 말은 시간을 끌면 끌수록 꺼내기가 어려워 지고, 상대를 오해하게 만들죠. 가장 빠르게 거절하는게 가장 좋은 거절인 것 같아요. 부탁을 들어주는건 '정말 이 부탁을 들어주면서 나는 행복할거 같다' 라는 느낌이 들때만 합니다.
저글링아빠
13/02/19 15:07
수정 아이콘
호구탈출(?)을 위해 거절의 기술을 익히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만, 부탁의 기술을 익히는 것도 좋은 방법인듯 합니다.
에프컵스쿨
13/02/19 15:21
수정 아이콘
저랑비슷하시네요;; 저도 no라고 외치면서 살고 싶은데 잘 안되더라구요..
확실히 제가 납득할 만한 상황이라면 no라고 외치면서 살려고 노력중입니다 그래도!
홍승식
13/02/19 15:31
수정 아이콘
세상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선 호구들만의 세상이 있으면 좋겠죠.
서로서로 위해주는 세상.
그런데 이 세상은 어쩔 수 없는 약육강식의 밀림인가 보네요.
사회생활도, 군대도, 남녀사이에서도 호구는 언제나 호구일 뿐.
포식자는 영원히 잘살지만 호구는 쓰러져서 울뿐이죠.
스스로 치사하고 더러워서 안한다고 자기위안을 하고 있지만, 누구나 갑이 되고 싶어하죠.

그런데 성격 강한 사람들이 부딪히는 장면을 봤는데 좀 많이 무섭더라구요.
저라면 그냥 계속 호구 잡히며 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honnysun
13/02/19 16:01
수정 아이콘
100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1씩 달라고 해서 모두 주고 0이... 아니 마이너스가 되었는데도 그게 행복한 사람도 호구일까요???
그럴때, '너 호구냐'면서 주위에서 뭐라고 하는 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 같기도 한데 말이죠.
딱 착한 남자 컴플렉스 같아요. 그게 뭐 좋은거라고 그리 배워왔는지 허허허허...
무플방지위원회
13/02/19 16:05
수정 아이콘
요즘 읽은 글 중에 제일 재미나네요 ^^;;
진솔한 감정이 제대로 묻어나서 저절로 감정이입이 됩니다.
전 호구짓도 잘하고 포식자 짓도 잘해서 한편으론 공감되고 한편으론 안타깝군요.
전형적인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타입.
아무리 나한테 피해를 입혀도 불쌍한 눈빛으로 측은지심을 유도하면 에이 그냥 손해보고 말지하고 넘어갑니다.
그냥 여기서 그치면 천하에 둘도 없는 호연지기이겠으나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 보면 왠지 속았다거나 그때 바보같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후회를 한다는 게 함정.

하지만 돈 있는 놈들에게는 당연히 내 밥은 니가 사야되는 거고 내 술값도 니가 내야 되는 거다라는 신조로 삽니다.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하니 이젠 친구들도 의례히 그래야 하는 걸로 생각하죠. 이 단계까지 가면 세상 살기 참 편해집니다 하하.
피지알뉴비
13/02/19 18:44
수정 아이콘
어디나 마찬가지만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돈없고 빽없으면 호구되기 쉽습니다.

남한테 잘보이는 방법이 호구가 되어주는 것밖엔 없거든요.
엄마를부탁해
13/02/19 21:45
수정 아이콘
조절하는게 참 어려운것 같습니다.
'착한아이 컴플랙스' 비슷한게 있어서 예스맨이 되었다가도,
정작 진짜는 착한아이가 아니니 결국 폭발하거나 어디선가 문제가 생기게 되더군요.
사실 한번 적당히 양보해주고 호구잡혀주면 아무래도 친해지기 쉬운면이 있는데
그걸 계속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고 고마워하며 친해지는 사람도 있으니
처음 대응할때도 어렵고요;;
그 중간에서 잘 거절하는 법을 익혀야 할텐데 아직은 배워나가는 중이네요.
부기나이트
13/02/20 01:05
수정 아이콘
'호구이기만한 사람' 이나 '포식자이기만한 사람'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해요. 100명에 한두명정도?
일반적으로 사람은 비율은 다소 다르겠지만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호구와 포식자를 동시 수행하죠.
밥이나 술사는 경우만 봐도 내가 많이 사주게 되는 사람들과 내가 많이 얻어먹게 되는 사람들이 공존하구요.
저 위에 댓글처럼 본인도 분명 포식자 일때가 있는데도 자기는 늘 피해만 보는 호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문제죠.
멀면 벙커링
13/02/21 17:26
수정 아이콘
친구사이인데 뭐 좀 어때??
같은 동료인데 뭐 좀 어때??

이런 마인드때문에 호구가 생기는 거 같은데 문제는 주는 사람 정해져있고 받는 사람 정해져 있고 이게 일관적으로 흘러가더라구요.
그게 싫어서 정색하고 '노'라고 하면 찌질한 존재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구요.
중학교 때 겪었습니다. 점심시간 보면 돌아다니면서 남의 반찬 얻어먹는 애들 따로 정해져있고 그냥 반찬 주는 애들 따로 정해져있죠.
1학기 때 계속 반찬 내줘서 2학기때부터 걔네들한테 싫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반장선거 때 보복질이 들어오더군요.
저희는 학기별로 반장/부반장 뽑았습니다. 후보로 오를만한 애들 정해놓고(보통 성적순으로 끊습니다.) 여기서 애들한테 후보추천 받으면 그중에서 투표로 반장/부반장을 뽑았죠.
그 선거후보에 오를 수 있는 인원중에 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거에 나올 맘도 없었고 나와봤자 반장할 능력도 못된다고 생각했었는데...한 녀석이 저를 후보로 추천하더군요. 후보로 추천되면 맘대로 사퇴도 못했습니다. 정말 엿같은 제도죠.
추천한 녀석은 제가 몇번 반찬 얻어먹으러 오면 싫다고 했던 녀석 중 하나였습니다.
결과는 뻔했죠. 저 자신도 저한테 투표를 안했으니 후보중에 유일하게 0표 였습니다. 반애들 몇명은 "바보같이 왜 니 자신한테 투표 안했냐?"고 묻더군요.
속으로만 "1표나 0표나 똑같은데...뭐하러 그 놈들 보복질에 같이 응해주겠냐"고 생각하고 아무말 안했습니다.
근데 후회는 좀 되더군요. 후보 추천한 놈한테 "기분좋냐?? 지금 기분 찢어지겠네~"라고 비아냥이라도 날려줄 걸 그랬는데 말이죠.
13/03/19 23:37
수정 아이콘
본문에는 성별이 아닌 인간대 인간의 관점에서 보았으나
남녀간에도 호구관계를 적용한다면 어떨까요?
알면서도 당하는 호구도 있고
자신은 극구 호구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호구도 있을것이고
이렇게 보면 호구란


"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상호간에 어떤 가치를 두고 매개물을 주고 받는가가 결정"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남녀관계를 포함한 인간대 인간의 관계에서
주는 사람이 주면서도 아까워하거나 모르고 준다면 호구인것이고
그것이 아니고 알면서도 선뜻 기꺼이 내준다면 호구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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