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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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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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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이 글입니다.
#9
몇 번이나 전송 버튼을 누를까말까 망설였다.
나는 이상한데서 용기가 없다는 걸 그때 어렴풋이 느꼈는데, 이런 비겁함이 우리 관계에 그다지도 역겨운 영향을 끼치게 될줄 그때는 미처 몰랐었다.
#10
병원 일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소수문해서 알게된 정보로는 새벽마다 집계되는 약품을 병동마다 배달해주는 업무가 있다고 했는데
온 병원을 돌아다니며 신경을 써야할 일은 전혀 없었고, 약국 내에서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비롯해 퇴원하는 환자에 대한 일차적인 창구 역할이나
주사용으로 사용되는 수십 수백여가지의 앰플이나 바이알을 신경써서 챙기는 정도가 다였다. 함께 일하게 된 약사들도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주었고
나는 차츰 병원 일에 적응해나갔다. 처음엔 하늘같이 높아보였던 약사라던가, 간호사나 의사를 대함에 있어서도 차츰 내성이 생겼고
응급 상황 속 결국 사망한 환자에게 미처 투약하지 못한 약품들을 반납 받는데에도 익숙해졌고, 밤마다 울려대는 사이렌 소리도 일상이 되어갔다.
그렇게 병원일을 하고 처음으로 10월 10일, 월급을 받았다. 오랜만에 일곱자리의 숫자가 통장에 찍힌 것을 보았는데 왠지 눈물이 핑돌았다.
#11
대구에는 번화가가 그다지 많지 않다. 특히 학생 신분에서 즐길 수 있는 번화가는 더더욱.
몇 안되는 번화가 가운데에 하나인 광장코아에서 오랜만의 부사수 후임병을 만났다.
원래 울산에 살고 있지만 대구에서 대학생활을 하기 때문에 대학 선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왔다가, 문득 내가 생각나 연락을 했다고 한다.
나이트 일을 끝마치고 한숨 푹 자고 나니 와 있는 카톡에 나는 반가운 마음으로 후임을 만나러 나갔다.
한참을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후임병은 이제는 달라진 생활관의 분위기나, 자신을 괴롭히는 내 아래 자기 위 병사에 대한 가십거리를 털어놨다.
나에게 전역하니 참 좋아보인다고, 달라져보인다고, 예전의 다크포스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자기도 전역을 하고 싶다고도.
아마 내가 너도 인마 빨리 전역해, 사회 정말정말 좋다.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쯤이였다. 010으로 시작된 낯익은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어라, 야 잠깐만 전화좀 받고올께, 하고서 서둘러 술집을 나와 전화를 받았다.
#11
"야, 오랜만이다?"
"응? 여보세요?"
"여보 아니야 인마 나야."
"야! 야 영혼! 야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수가 있어"
"응? 무슨.."
"술마셔!?"
그 아이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격앙되어 있었고 나는 그럴만도 하다, 싶기도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그게 4월쯤이였으니, 내가 건넨 락앤락의 정성 이후로 무려 반년동안이나 마땅한 연락이 닿지 않았었고, 전역은 했다는데 휴대폰은 답장이 없고
아무리 싸이월드에 방명록을 쓰고 친구들을 수소문해도 나에 대한 소식을 들을수가 없으니 너무나 답답했다는 말을 나중에야 들었다.
"야~ 썬 인마 내가 부모를 죽였냐 나라를 팔았냐 크크 왜 이렇게 역정을 내"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너 어디야"
"나? 지금 두류. 후임 만나고 있어. 넌 어디야"
"당연히 집이지. 낼 모레가 시험기간인데"
"아, 그러고보니까 그러네. 휴학을 너무 오래하니까 시험기간이 뭔지도 가물가물하다..."
"으이구"
그 아이는 한참을 나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했고, 대체 그간 무얼하고 지냈느냐는 그 아이의 말에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너스레로 일관했다.
이제 막 신변잡기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통화의 본론이 시작될때쯤이였나, 후임이 날 따라나와 여자냐? 하고 입모양만으로 물었고
나는 이응이응이라고 입모양만으로 대답했다.
후임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만지작하더니 메모장에 쓰여진 텍스트로 '나 선배 이 근처에 있다해서 만나고 있을께, 문자해 dogbird야' 라며 웃었고
나는 미안이라는 입모양으로 끄덕끄덕거리며 담배를 한 대 꼬나물었다.
#12
"야.. 내가 오랜만에 연락해서 이런말하면 미안한데, 나 요즘 고민이 있어"
"응? 고오오민? 야 너만큼 이쁘고 공부 잘하는 애도 고민이란걸 하냐?"
"뭐? 크크크 너 뭐랬어 방금"
"어 아니야. 뭔데?'
"야 너... 능글맞아진거 같아 크크크"
"왜 싫냐 인마"
"아 그놈의 인마.. 진짜 오랜만에 듣네. 아니 내가 요즘..아니다 잠깐만"
"어 응."
카톡이 왔는지 잠깐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 아이는 다시금 휴대폰을 고쳐잡고 나에게 고민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가 그때 했던 고민이 어떤 것이였는지 정확하게는 기억하지 못한다. 스스로 떳떳한 일에 대해서 남들이 왈가왈부한다는 식의
'나는 잘하고 있는데 딴사람이 욕하는게 신경쓰여' 따위의 고민이였고, 나름대로 말재간이나 글재간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나는
'다른 사람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너가 그 사람들의 피고인일 필요는 없으며, 너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너의 배심원이 될 자격은 없다'면서
'너가 스스로 내딛는 한발에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며, 나는 너를 믿고 응원한다. 심지어 너가 너를 믿지 못할때에도, 내가 너를 믿는단걸
너가 믿지 못할때에도 나는 너를 믿는다'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삼십분쯤 그런 이야기를 하며 그 아이를 다독였다. 그 아이는 목이 메이는 목소리로 겨우 응,응 하며 대답을 했다.
이야기를 매듭 지으니, 한참을 할말을 찾지 못하던 그 아이는 마음이 좀 편하다며, 고맙다고 전화를 끊을 모양새를 취했고
나는 눈치껏 오야 그래, 너 인마 공부 하기 싫어서 나랑 통화한거지 인마 빨리 공부해 너 자기전에 카톡 꼭해라 너 몇시까지 공부하나 감시할꺼야
라며 타박을 한껏 주며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그 아이는 참, 사실, 우리가 했던 통화를 녹음해뒀는데 다른 의미가 있는건 아니구
힘들때마다 들으며 힘을 내고 싶다며 말꼬리를 늘였다. 나는 왠지 모르게 쑥쓰러웠지만 으쓱하는 기분이 들어 야 힘들때 나한테 전화하면 되지 뭐하러
녹음한걸 듣냐. 항상 엔진을 켜둘께 몰라 인마? 크크 암튼, 공부 열심히 해. 답답하면 언제든 연락하구. 그래. 알겠어. 응. 그래. 끊어. 안녕.
이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담배를 한 대 다시 꺼내 물었는데, 왠지 모르게 그 담배의 맛이 달달한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13
후임은 근처 카페에서 여선배를 만나고 있었다.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오겠다는걸 굳이 들어가 인사를 했고, 오른손을 슥슥 닦아내어 악수를 청했다.
그 여선배는 후임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는지 나에게 한참동안 후임의 군생활이 어땠느냐고 물었고, 나는 조금씩 과장을 섞어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열한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 되어 여선배는 집에 가야겠다며 짐을 챙겼고, 나는 후임의 눈치를 보며 집이 어디세요? 라고 한마디 얹어보았다.
아 저요? 저 상인동이요, 라는 여선배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후임의 어꺠를 툭, 하고 치며 야 인마 너 상인동에 친구 보러 간다하지 않았냐 아까
하고 후임에게 눈치를 줬다. 후임은 이 dogbird가 술을 먹더니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거창하게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불현듯 눈치를 챘는지
아 맞다, 야 깜빡할뻔 했네 고마워. 누나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하며 씩 웃었다.
둘과 헤어지고 집으로 나서려는데 진동이 왔다. 스팸이려나 하며 담배를 한대 꺼내 무는데 진동은 멈추질 않았다.
아니 뭐야 요샌 김미영팀장도 먹고살기 힘든가 이렇게 성의있는 광고라니 하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고
나 이제 잘꺼야. 자지 말라고 하지마 잘꺼야 졸려 공부 다했어 안해 안할래 라는 단발성의 카톡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피식하며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휴대폰을 고쳐잡았다.
늦가을이였던지라 늦은 밤엔 슬슬 추워지기 시작했었는데, 그 날 집에 오는 길에 휴대폰을 다잡은 두 손이 춥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5부에 계속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연재가 늦었습니다.
일단 비축분은 여기까지입니다. 놀이터에 대한 언급은 왜 한마디도 없냐고 여쭤보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워낙 소중한 추억이기도 하고해서 계속 아껴둘 작정인데, 어쩌면 에필로그에 쓸지도 모르겠습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2-15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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