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결과론?

개인적으로 결과론에 의거한 논리구조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쩄든 막았으니 잘한거고 맞았으니 못한거고 라고 평가하는 것은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해당 상황에서 어떤 근거로 어떤 판단을 내렸고 그것이 그 이후의 결과를 초래하는 것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쳤냐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을 해서 최대한 그렇게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안그러면 뭐 이번 경기 이전까지 김경문은 승자조 준결승까지 올라온 명장으로 포장될 수도 있는 셈이죠. 애초에 러프하게 보면 이번 경기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5-2로 진 것은 아주 정상적인 범위 내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팬으로서 아이 XX 그러니까 왜 짜증나게 지고 난리야라고 반응하는게 이상한건 아니지만 감정 분출은 그 선에서 끝나야지 야구를 이야기하자면 좀 더 냉철하게 보는게 옳다고 봅니다. 그러지 않으면 국감에 끌려가서 해명까지 해야했던 선동렬 참사가 되풀이 될 뿐 아니겠습니까? 지금에서야 사람들이 뻘짓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지만 당시 분위기를 회상해보면 그런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 만큼은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국민들의 분노와 질타가 하늘을 찔렀었습니다.



1. 탭댄스

탭댄스로 조롱을 당하고 있는 고우석의 1루 베이스 커버에 대해서는 실책이란걸 부인하기 어렵겠지만 그것이 경기를 말아먹을 수준의 큰 사고까지는 아니었다는 생각. 포인트를 이야기하자면 그 이후에 계속 두들겨 맞은게 문제지 탭댄스 자체는 사소한 실책 정도로 넘어갈 수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여기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고우석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세레머니를 하려다가 그 꼴이 난 것도 아닌데 조롱까지 당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을 하는 편. 이것은 결국 그 상황에서 투수가 1루 베이스를 커버하는 것을 어느정도의 난이도로 보느냐에 따라 책임 정도를 따질 수 있겠죠. 이것에 대해서는 시각이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일어날 수는 있었던 일 정도로 보는 편인데, 장면 자체가 워낙 임팩트 있다보니 오늘 이후로도 계속해서 밈으로 소비가 되고 여러 방면으로 계속 되풀이 되는 핵심장면으로 남지 않을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이후의 주자의 진루 의사 여부가 꽤 관심거리였지만 국제 룰은 좀 다르다는 말을 불판에서 들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습니다. 몸만 잠깐 틀다가 진루 의사로 간주되어 아웃당하는 장면을 예전에 봤었거든요.



2. 고우석

위에서 말했듯 고우석의 패착이라면 탭댄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투구 내용. 포수가 공을 흘려서 주자가 더 쌓이게 되더라도 불펜 투수라면, 특히 리그 소속팀에서는 마무리 투수로 뛰고 있었던 것까지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시련 정도는 충분히 감내하고 이겨낼 수 있었어야 합니다. 한두번 흔들릴 수는 있어도 그 이후로는 투구 내용이 별로더라도 꾸역꾸역 막는 그런 모습이 연출되기도 해야 탑클래스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다 생각을 하는데 고우석은 이전부터 그러한 것에 약한 편. 최근 들어서는 그 흔들리는 역치가 다소 높아졌다는 생각은 들지만 본격적으로 흔들린다 싶으면 여지가 없었습니다.

오늘 투구 내용도 결국 리그에서는 익숙하게 연출이 되던 그 시나리오가 아닐까 싶네요. 물론 마무리 투수라고 두들겨 맞지 않는 투수가 세상 어디있겠느냐만은... 주자가 쌓이면서 제구가 흔들라고 결국 만루에서는 초구에 정타를 허용하며 정말 홈런을 간신히 면했습니다. 고우석에 대해 비판을 하고 싶다면 탭댄스가 아니라 위기 관리 능력 쪽에 초점을 맞추는게 맞다고 생각을 하네요.

그리고 만약에 김경문이 이러한 사실을 주지하고 있었다면 교체 타이밍은 한 타이밍 빨라야 했던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탭댄스 이후에 바로 바꾸는 것은 솔직히 지나치게 급진적이라고 생각을 하고요. 실제로 구위도 그 이전까지는 꽤 좋았습니다. 여기서 좀 더 밀어봤다고 본헤드 소리 들을 판단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만루가 되고 나서는 바꿨어야 하는게 맞지 않나 생각을 하네요. 특히나 고우석의 그러한 성향들을 알고 있다면... 그 다음 김진욱이 나온걸 보면 투수 자체가 준비되지 않은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 다소 부진한 타자들

확실히 이번 경기에서는 2점 이상으로 점수를 더 뽑아낼 기회들이 많았습니다. 일본 투수들의 퀄리티가 좋기도 했지만 꽤 좋은 득점 찬스들을 날려버린 것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던 것 같네요. 양의지와 오재일의 타격감이 매우 부진한 것은 참 아쉽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지난 이스라엘 전에서 감각을 꽤 찾은 듯 보이는데 이 두 선수는 아직 헤메는 것 같더군요.

황재균 2루수 같은 기용도 꽤 무리수라고 생각은 하는데 아직까지 사고가 안터져서 그렇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 만약에 탭댄스 같은 것이 여기서 나왔으면 단순 실수 소리 들을 수 없는 무조건적인 기용 실착이라고 봐야 할테니까요.

패배했음에도 이번 대회 내내 분전하고 있는 박해민에 대해 놀라고 있고, 이정후의 타격 스킬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OPS 같은 것들은 다른 선수들에게 뒤쳐져있어도 기록만으로는 평가할 수 있는 기량을 가지고 중요한 순간마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4. 분전한 투수들

대회 시작 전부터 투수진이 너무 불안한거 아닌가 싶었는데 정작 걱정되던 선발 및 중계 투수들은 대체로 선전해주고 있네요. 고영표 선수도 오늘 수고 많았습니다. 굉장한 호투였습니다. 오늘 패배를 포함해도 한국 대표팀의 평자책은 3.86입니다. 대회 끝까지 호투를 이어나가주면 좋겠네요.

물론 오늘 같은 상황에서 더 믿을만한 전문 셋업맨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뭐 그 이야기는 국대 선발 당시에 닳고 닳도록 했으니 패스.



경기가 아직 남아있는데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미련없이 대회를 마무리 했으면 합니다. 크보와 국대에 대해 안좋은 논란이나 감정들이 많지만 거기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뭔 죄가 있다고...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본인의 기량으로 나라를 대표하겠다는데 후회가 남지 않을 정도로 선전하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