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에 처음 오신 분들은 대뜸 논쟁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시는 것을 자제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제가 쓰는 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제 생각이 전달되고, 제 생각의 옳음을 동의받고, 그름을 지적받고, 그 생각들을 받아들이며 반대하며, 제 글에 담겨있는 고민들을 발전시켜 나가고 싶습니다.
물론, 세상의 게시판 중에는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좀 더 자유롭고, 자신의 일상생활을 편안히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pgr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1. pgr은 매니아 사이트이다.
스타크래프트, 그리고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들과 게임방송, 게임단, 팬들 .. 모든 스타크래프트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지닌 매니아 들이 모여드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pgr은 매니아 사이트이고, 회원 여러분들의 기본적인 "애정"을 높은 수준에서 신뢰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회원여러분들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큽니다.
2. pgr은 정중한 사이트이다.
정중함과 다른 것은 편안함 입니다. 캐주얼 셔츠와 드레스 셔츠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가격의 차이, 높낮이는 없습니다. 취향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편안하게 자신의 생각, 일상생활을 이야기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 게시판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는 pgr이 "편안함"위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으면 하는 가장 큰 경향중의 하나인 "상호존중의 상실"은 편안함으로부터 옵니다.
편안하게 이야기 하는 동안에, 서로의 글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몇번이고 고쳐 생각하고 이해하며, 그 반론을 논리적으로 준비하는 과정이 생략됩니다.
솔직한 것과 직선적인것도 다를지언데, 아예 막무가내로 되받아치는 경우가 빈번해 집니다. 편안한 분위기에 익숙해진 분들은 "깊이 생각하고, 재삼 고려하여 글 하나를 힘들게 쓰는"일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상시의 글에는 꼭 어려운 생각이 필요하지 않은것이 사실입니다. 저도 그렇구요.
하지만, 서로의 의견이 어긋날때, 모두가 좋아하는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해야 할때는, 쓰는 이도 되받는 이도 몇번이고 고민을 해 봐야 합니다.
"축하드립니다"란 말은 사실 조금 무성의하게 건네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저런, 실수하셨습니다."와 "당신, 왜 이러지?" 의 차이는 엄청나게 됩니다.
따라서, "편안한" 사이트에서의 논쟁은 구성원들이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이해를 기반으로 한 경우 (예를들면 고등학교 동창회, 같은 학번 커뮤니티)에서나 가능하다고 봅니다.
신속하게 글을 써내려가는 분위기에서는, 논쟁은 결국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것이, 불행하지만, 사실입니다. 고려가 부족해지기 때문입니다.
pgr은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매니아분들이 모였기 때문에 단편적인 인기와 승부의 결과를 떠나서, 한 선수의 플레이스타일과 그 효용성, 한 경기의 맥락과 그 안의 전략적 요소들.. 그리고 전체 게임계의 흐름과 문제점 까지 많은 주제들이 토론됩니다.
감히, pgr의 이런 논의들이 스타크래프트 게임계의 발전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러한 논의들은 게임계 현장에서 일하시는 PD님들, 기자님들, 게이머들, 감독님들, 협회 관계자분들께 전달되고 (직접 읽으시거나 전해들으시거나) 그 논의의 결론은 반영되어 발전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pgr은 지금껏, 정중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진정 가치있는 주제에 대해서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고 그 "차이" (옳고 그름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며 결론을 향해 좁혀가는 발전적인 논의를 많이 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위에 언급한 많은 분들이 그 과정과 결론들을 주목해 주셨고, 이는 우리(pgr회원인 매니아 모든 분들)들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게임계의 발전으로 환원되는 효과를 낳았습니다.
이러한 미덕을, 결코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pgr이 계속 "정중한 배려"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그럼, 제가 생각하는 게시판의 바른 이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제한이 아닌 부탁입니다. 물론, 강압적인 느낌을 받으신다면 죄송할뿐입니다.)
이곳은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열린 공원"과 같은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1. 비통신체와 존대말이 적절할 것 같습니다.
다만, 조용한 토론터 입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무를 기대기도하고, 편안히 앉기도 하며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하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당연히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그리고 다수를 상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존칭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딱딱한 대화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가벼운 농담을 할수도 있고(유머게시판), 조금 친한 사람들에게 다소 편안한 표현을 할 수도 있습니다. 애교스런 말투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하는 일도 아주 좋은 현상이겠지요. ^^
하지만, 여전히 서로는 타인이기 때문에, 조심해야하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처음 본 낯선이가 나의 생김새를 비하하는 말을 듣기 싫은것 처럼, 나 역시 상대의 허물에 집착하거나 상대를 함부로 말해서는 안되며, 나이나 성별에 의해 차별해서도 안됩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어투가 조금 딱딱할수도 있지만, 저는 이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도 날릴수 있고, 여러분 감사합니다.~ ^^너무좋네요!! 같은 쉽고 기분좋은 표현도 얼마든지 존칭어 속에서 가능하니까요. ^^
서로를 잘 모를때는 "많은 이들이 가장 꺼려함이 적은" 행동을 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생각입니다.
2. 분위기 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참 "새 내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나름의 결론을 내린 후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참가자가 불쑥 들어와 "이번 내각 어떻게 생각하시지요?" 라고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참 답답하지요. 여러분 주위에도 꼭 그런 친구분들이 계실 겁니다. 저도 그런지 모르지요. 친구들은 가슴을 칩니다. "넌 어쩌면 매번 뒷북이냐?"
하지만, 인터넷 게시판은, 자신이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과거에 진지하게 많이 이야기 되었었던가 하는 여부를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너무 다행스럽지요. 검색이나 과거 글 읽기를 통해서 "분위기"를 알아가는 것은 새로 오시는 분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pgr의 글들이 많아지면서 자신이 온 시점에서 최소한 과거 1달의 글을 읽어주시고, 1달 정도는 우선 글을 읽으면서 분위기를 알아가시라는 부탁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의 "역량껏" , "벅찰정도로 최대한" 이곳의 원래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애쓰시다보면, 그 안에서 제가 말씀드린 pgr만의 미덕을 꼭 발견하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는 문을 두드리세요. 내가 도착한 곳은 이런곳이라는 충분한 짐작을 가지게된 당신은 꼭 환영받으실 겁니다. ^^
3. 자신만의 이야기는 어디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법입니다.
분위기 파악도 잘 했고, 어투도 참 공손하지만, 특별히 다른이들에게 전할 내용도 없고, 기분좋은 대답이 나올만할것이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서 떠드는 친구가 있습니다. (저도 약간 그런 수다쟁이입니다만-0-) 참 난감합니다. 그 친구의 사람좋은 말투 앞에서 뭐라고 핀잔도 하지 못한 채, 잔만 비우며 몇시간을 들어줘야 하니까요. 그러는 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화제 저편으로 밀려버리고 답답함과 지루함이 파노라마로 머리속에 펼쳐집니다. "나 돌아갈래~" -_-
어쩌면 그건 자신에게는 중요한 이야기일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에게도 그렇게 들릴수 있도록 하세요.
그렇지 않다면,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만, 4-5개 이상의 댓글이 달릴것 같지 않은, 즉 나 이외의 사람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아닌 일기와도 같은 이야기들이 많아지는 것은 중요한 말들을 화제 저편으로 recall해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저도 한때는 신변잡기를 쓰기를 참 즐겼습니다만, 그럴때마다, 한창 빨간 +표로 리플이 올라가는 글들이 사라지는 것이 죄송스러웠습니다. ^^
신변잡기라도, 일기라도, 정말 중요하게 잘 쓰면 상대에게도 중요한 일이 됩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소중한 기회가 됩니다. 하지만, "오늘 경기있었군요"라는 똑같은 내용의 글들이 자꾸 올라오는 것은 조금 안타깝습니다. ^^;;
4. 배려, 배려, 배려,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곳에는 서로 다른 게이머들의 팬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입장에 선 분들이 너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이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발전해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금.상.첨.화" 입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면, 자신의 게이머가 최고, 자신의 입장이 최고가 되고, 부지불식간에, 시나브로, 상대는 불쾌함을 느낍니다. 어느새 그것은 같은 경로로 자신의 불쾌감이 되고, 결국은 "지.리.멸.렬"이 되고 말 겁니다.
"저는 최인규 선수 팬이지만 오늘 성학승 선수 플레이는 너무 환상적이네요. ^^ 최인규 선수에게 미안해 질 정도로 성학승 선수를 열심히 응원한 하루였습니다."
"음, 성학승 선수가 잘하긴 했지만 최인규 선수에겐 아직 안될듯.. ㅎㅎ 어림도 없죠 솔직히. 인기로 보나 뭘로 보나"
(단순한 예일 뿐이며, 두 게이머와는 상당히 친하기에 이름을 언급해 보았습니다. 팬 분들께 죄송합니다.)
위 두 글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하지만 차이가 극명하지 않아 스스로 못느끼는 동안에도 상대를 괴롭게 하고, 상대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은 늘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스승의 그림자만 안밟을 것이 아니라, 있을지도 모를 타인의 맘의 그림자를 밟아 아프게 하는 일을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너무 답답하시다구요?
천만에요. pgr에서 조금만 더 계셔 보십시오. "완전한 타인"들이 모여 이렇게 친해지고, LAN파티 까지 열어 서로를 보기를 원했던 공간은 바로 정중하고도 어려운, 그러나 속깊고 행복한 사람들이 모인 이곳 - pgr이었습니다.
잊으셨던 분들, 또 새로 오신 분들과 새로 오실 많은 분들께.
pgr을 더 사랑해 달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당신에게 분명히 소중한 공간이 될 테니까요.
한 시간을 고민하고 다시 한 시간을 들여 글을 씁니다. 10분 더, 10분 더, 그나마 나쁘지 않은 글이 되어 제 진심을 전할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랍니다.
그만큼, 상대에게 "내 생각"을 전하기는 어려운 것이라는 걸 번번히 확인하면서 썼습니다. ^^
무더운 밤에. 건강하세요.
항즐이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