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02/25 09:32:14
Name 具臣
Subject [일반] 심심해서 쓰는 무협 뻘글 2 (수정됨)
심심풀이로 읽어주세요.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
요즘 제갈민은 기분이 영 좋지 못하다. 제갈세가의 적장자인 자신이 있는데, 동생 제갈천이 후계구도에서 자신과 거의 대등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그렇다. 천은 제갈세가의 실세 장로와 만나는데, 자신은 실권도 없는 한림원의 오촌 당숙을 만나야 한다.

'천 이놈이 머리가 조금 좋기로서니, 장자인 나를 두고..끄응....'

한림원주 제갈린이 찾아와 수인사를 건성으로 나누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

ㅡ 자네, 공자가 죽은 뒤 그 제자들이 3년상을 치른 까닭을 아나?

ㅡ 그야 스승은 아버지와 같으니 그런 거 아닙니까?

ㅡ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닐 지도 모른다더군. 공자가 숨긴 걸 찾으려 했다는군.

ㅡ 공자가 뭘 숨겨요? 공자가 무슨 보물 같은 건 없었을텐데요....공자의 가르침도 무슨 비밀스러운 게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ㅡ 그게 이야기가 참 긴데... 우禹까지 거슬러 올라가네. 우가 임금이 되기 전에는 요순이 있긴 했지만 방邦이니 국國이니 하는 크고작은 나라의 제사장들이 우두머리였다지. 그런데 해마다 되풀이 되는 홍수가 큰 재앙이었나봐. 몇번이야 누가 잘못을 했네, 제사지낼 때 너희 정성이 부족했네하고 넘어갔겠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결국 홍수를 막지 못한 제사장들은 입지가 좁아졌고, 치수에 성공한 우는 득세했네.
별 거 아니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수많은 사람을 동원해 둑을 쌓고 물길을 트는 게 예사 일인가? 장마철 피하고 병무와 농사에 방해되지 않으려면 그 방邦이나 국國의 기후와 주 농업, 외부 사정을 알아야지. 동원할 인력과 자재, 도구와 식량을 할당하면서 인력과 물자도 파악이 되고.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와서 먹이고 재우고, 계획된 구역에 투입해서 일 시키고, 자재와 작업도구와 식량을 받아들이고 다시 각 현장에 분배하고... 이 모든 과정에서 쌓인 정보와 행정력은 자기 조직의 역량이 되었고, 접촉했던 여러 방邦이나 국國의 주요 세력들도 손에 넣은 게지.

그런데 우는 능력만큼 욕심도 컸던 모양이야. 요순과는 다른 길을 갔지. 우가 구주九州에서 청동을 모아 구정九鼎을 만든 건 잘 알려졌지? 그런데 주권을 상징하는 뭔가를 만들려면, 화씨벽으로 전국새를 깎듯 그냥 만들면 되지, 왜 굳이 전국에서 청동을 그러모아, 다른 것도 아닌 솥을, 하나도 아닌 여럿 만들었을까 생각해본 적 있나?

ㅡ 그러게요? 청동이 모자라서 그랬을리는 없고, 면류관이나 검도 아닌 솥으로 주권을 상징한다는 게 이상한데요?

ㅡ 우가 각 방邦이나 국國에서 청동을 모을 때, 그냥 대장간에서 아무거나 주는대로 받아왔겠나? 그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뭔가를 가져왔겠지. 그게 그 시대엔 청동으로 된 제기祭器였던 솥이었다더군. 문제는 왜 솥이 제기의 으뜸인가야. 제사상의 향로나 위패 쯤의 구실이었다면 좋겠지만, 그랬다면 솥은 그냥 뭇 제기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겠지. 그 때는 인신공양이 난무하던 시절 - 어쩌면 제의祭儀의 핵심은 인신공양이었을 가능성이 크네.

ㅡ 하긴...아조我朝에서도 선황들께서 붕어崩御하시면 비빈들을 순장해왔으니까요. 그 시절엔 오죽했겠습니까.

ㅡ 인신공양이 핵심인 제의에, 그 제의의 상징적 존재인 솥. 그게 뭘 뜻하겠나?

ㅡ 그럼 그 솥에...!!
하긴 춘추시대만 봐도 흔한 일이었군요.

ㅡ 전국에서 걷어들인 걸 후대의 진시황처럼 금인金人이란 전혀 다른 상징으로 창조한 것도 아니고, 실용적으로 낫과 보습을 만든 것도 아니야. 가져온 솥을 그대로 쓴 것도 아니고 굳이 녹여서 다시 솥으로 만들었어.

그런데 솥의 주인인 제사장들은 우가 절대권력이 되는 걸 축복하며 기꺼이 자기 권위의 상징을 내놓았을까? 아니네. 당연히 우에게 필사의 저주를 걸었겠지. 하지만 결과에서 알 수 있듯 모두 패했고.

그러면 여기서 잠깐. 간장과 막야가 어떻게 만들어졌나? 간장은 명검을 위해 가장 사랑하던 막야를 쇳물에 던졌네. 천몇백년 뒤에 한낱 공장工匠이 그냥 왕명에 따라 칼을 만들 때도 그랬는데, 인신공양이 넘쳐나던 시절 무가지보無價之寶를 그냥 만들었을리 있겠나.

ㅡ 그...그럼?

ㅡ 그래. 우는 아홉번에 걸쳐 방해세력을 모두 격파했고, 그 때마다 사로잡힌 제사장들과 그들의 제기는 모두 솥이 되어버렸지. 구정에 여러 방邦이나 국國 최강의 술법들과 가장 영험한 제사장들의 원혼들이 봉인된 게야. 하긴 그 쯤은 되어야 처음으로 태어나는 나라의 상징에 어울리겠지.

그렇게 구정으로 중화의 모든 주술과 아홉 원귀군寃鬼軍까지 부리게 된 우 ㅡ 더는 거칠 것이 없었네. 마지막으로 순 임금의 아들 상균과 그 가족을 구정에 삶는 의식을 치르며 하夏를 개창하지. 그렇게 해서 무시무시한 형벌이자 주술의 수단인 구정은 중화中華 주권의 상징이 되네. 생각해보게, 주권이 뭔가. 바로 권력 아닌가? 지금도 형벌은 권력 그 자체야. 주술은 지금이야 미신이지만, 그 시절엔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모두를 지배하는 더 무서운 권력이었겠지. 구정보다 더 주권의 상징으로 어울리는 게 있을리가.
구정에 봉인된 구주의 법술과 원혼들을 부리는 비법은 연산 - 바로 하를 상징하는 경전이 되네.

세월이 천몇백년 흘러 구정은 상을 거쳐 주로 넘어갔고, 연산도 귀장을 거쳐 주역으로 되었네. 제사장은 권력과 무관한 일관日官으로 되면서, 구정은 그냥 주권을 상징하는 커다란 제기로만 인식되지. 하의 제의祭儀나 구정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주역은 도대체 뜻을 알 수 없는 글에 불과했던 것처럼.

그러나 잊혀진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공자였네. 기杞에 가서 하례夏禮를 연구하다가 이걸 찾아냈지. 하지만 그는 사람을 삶아 원귀들을 부리고, 그 원귀들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는 구정의 진실을 말하지 않았어. 아직도 성을 쌓으며 사람을 바치던 시대, 더구나 부와 권력을 위해 죽고 죽이는 난세 - 이게 알려지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솥에 들어가며 그 피가 솥의 명문에 발릴지, 그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어떤 인간들이 정권을 잡아 뭔 짓을 할지 뻔했거든. 해서, 공자는 그 쪽은 아예 입도 뻥긋하지 않았네.

ㅡ 그럼 공자가 괴력난신을 논하지 않았던 까닭이 이겁니까?

ㅡ 그렇겠지. 말이 나오면 가르치게 되고, 가르치다 보면 그게 안 나올 수 있었겠나.

예에 밝았던 그는 하의 제의祭儀도 어느 정도 짐작했고, 나머지를 밝혀낼 열쇠도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잊혀진 사악한 비법을 되살려 낼 생각은 아예 없었네.
천하를 뒤덮을 힘의 비밀을 가슴에 묻은 채, 공자는 자신의 뜻을 이뤄줄 힘을 찾아 평생을 떠돌았지. 오랜 방랑과 실의에 마음이 흔들려 반란 세력에도 기웃거려봤지만, 그때도 사람의 피로 더 큰 피를 부르는 저주만은 돌아보지 않았어.

결국 헛되이 늙어버린 채 고향에 돌아와야 했던 공자 - 원양 같은 별볼일 없는 친구가 자신을 무시하자, 폭발해서 욕하며 지팡이를 휘둘렀다지? 평소라면 상상도 못했을 모습이네. 내가 자신있으면 무시를 받아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내가 보잘 것 없으면 작은 무시에도 폭발하기 마련. 그 때 공자는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게야. 그럴만도 해.
평생 떠돌며 실패를 거듭하다 마누라는 도망갔지, 외아들 백어는 앞세웠지, 내 모든 걸 이어받아 날 넘어설 줄 알았던 안회는 죽었지, 모두에게 버림받아 홀로 바다로 떠나게 되어도 날 따르리라 믿었던 자로마저 젓갈이 되어버렸지...
인간 중니는 여기서 끝내 무너지고 마네. 결국 금단의 술법이 숨겨진 주역에 손을 뻗게 되지.

ㅡ 그럼 위편삼절이?

ㅡ 그래. 그렇게 미친듯이 주역을 파고 그 안에 숨겨진 연산을 되살렸지만, 죽음이 다가온 것을 깨닫네. 이제 다 살았는데 권력을 잡은들, 뭘 이룰 수 있겠나? 공자에게 권력은 제세안민의 수단일 뿐, 그걸로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은 없었네. 평생 실패만을 거듭하다 한 순간 잘못된 길을 갔지만, 공자는 바른 사람이었거든.
허탈했겠지. 자괴감에 빠졌을테고. 그 상황에서 연산을 세상에 남길 리가. 결국 십익만 내놓고 간 거지.

그런데 제자들은 달랐어. 공자가 말은 안했지만 뭘 하는 지 모를 리 없었거든. 공자를 모시고 고생한 것도 충분한데 공자처럼 죽을 생각은 없었던 그들 - 공자의 죽음 뒤 3년상을 핑계로 떠나지 않고 필사적으로 연산을 찾았네.
특히 자공은 6년이나 매달렸지. 재산이 많아 그럴 여유가 있었거니와, 세력도 있어서 연산만 얻으면 혼일사해가 헛된 꿈은 아니었으니까. 자공의 뜻은 그 손자 단목숙이 이어받고, 그러다가 전 재산을 탕진하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이 뭘 하는지 말할 수 없었던 단목숙은, 그저 집안 말아먹은 양반 취급받게 되었지.
단목숙은 마지막에서야 백어와 안회의 무덤을 뒤졌어야 했다는 걸 깨닫고 글을 남겼네. 그들은 공자보다 먼저 죽었기에 아무도 그 곳을 뒤지지 않았거든. 아닐 가능성이 더 큰데, 함께 했던 이들의 무덤까지 파헤치기는 쉽지 않았겠지.
그러나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지도 못한데다가 어미까지 잃은 아들,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 피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곽槨도 못 쓰게 막았던 수제자에게, 공자는 어떤 감정을 가졌겠나. 그런 공자가 이들에게 뭐라도 주고 싶었다면, 뭘 줄 수 있었겠나? 당연히 거길 파봤어야 했는데, 어차피 사마외도邪魔外道를 따르기로 한 자들이 괜한 양심때문에 일을 그르친 거지.
아무튼 단목숙의 죽간은 정신나간 늙은이의 난명亂命으로 무시당하고, 단목숙과 함께 묻혔지. 그게 어쩌다 도굴되어 우리 손에 들어온 거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휴머니어
23/02/25 09:42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3편도 기대됩니다. :)
23/02/25 10:22
수정 아이콘
고맙습니다.

초식 이름 좀 지어주세요...-_-;;
휴머니어
23/02/26 20:10
수정 아이콘
ㅠㅠ 넘나 어려운 것을 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8022 [일반] 영화 <서치2> 후기 및 추천 [37] 블레싱9042 23/02/27 9042 8
98021 [정치] 국민의힘 장예찬 청년최고위원 후보 과거 저작물 사건 [186] 눕이애오23517 23/02/27 23517 0
98020 [일반] 인간사 [2] 방구차야6407 23/02/27 6407 5
98019 [일반] 기록 2. [2] TheWeeknd7531 23/02/26 7531 3
98017 [일반] 인플레이션은 결국 화폐적 현상 : 그동안 도대체 돈을 얼마나 풀었길래? [37] 된장까스16013 23/02/26 16013 11
98016 [일반] 수영을 다시 시작하고, 55일간의 후기 [44] v.Serum13036 23/02/26 13036 10
98014 [일반] 요즘 본 영화 감상(스포) [1] 그때가언제라도6738 23/02/26 6738 0
98013 [일반] (스포)블루 피리어드 이거 수작이네요. [10] 그때가언제라도10296 23/02/26 10296 1
98012 [정치] 정순신 "수사 최종 목표는 유죄판결" 대통령실 관계자 "과거 정부는 민간인 사찰 수준의 정보 수집" [114] 동훈16349 23/02/26 16349 0
98011 [일반] 법으로 피해자 두 번 죽이는 가해자 부모들 [43] 흰긴수염돌고래12491 23/02/26 12491 44
98009 [일반] 겨울 바람에 용과 같이 선인장에서 꽃이 피었군 [5] 라쇼10238 23/02/26 10238 6
98008 [일반] [팝송] 샘 스미스 새 앨범 "Gloria" [13] 김치찌개7853 23/02/26 7853 3
98007 [일반] 13년만에 친구랑 축구장 간 이야기 [3] 及時雨8217 23/02/25 8217 9
98006 [일반] 풋볼 1도 모르는 문외한의 풋볼 영화 4편 감상기 [28] 인민 프로듀서8191 23/02/25 8191 1
98005 [일반] 옛날 일본노래 이방인의 커버곡 영상들 [11] 라쇼10085 23/02/25 10085 5
98004 [정치] 모든 것은 신뢰의 문제? [28] 딸기거품14704 23/02/25 14704 0
98003 [일반] <스즈메의 문단속> - '다녀올게'라는 약속(최대한 노스포) [18] aDayInTheLife7735 23/02/25 7735 2
98002 [일반] 지상 최악의 교도소에 가다 : 사이프러스 교도소 / 인간의 교화는 가능한가? [18] 토루14054 23/02/25 14054 25
98001 [정치] 검찰 xxx부친 집도 대장동 범죄수익으로 동결 [105] 환경미화17326 23/02/25 17326 0
97998 [일반] 스테이블 디퓨전으로 노는 요즘(2) [3] 닉언급금지6967 23/02/25 6967 1
97997 [일반] 심심해서 쓰는 무협 뻘글 2 [3] 具臣6456 23/02/25 6456 2
97996 [일반] 마법소녀의 33년 이야기 (2) : 70년대의 등장 1부, 토에이 대 전성시대 [8] 카드캡터체리20643 23/02/25 20643 13
97995 [정치] 정순신 국수본부장, '학폭 가해 아들' 전학 취소 소송에 가처분까지 [387] Odin30298 23/02/25 3029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