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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12/03 18:28:42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2945009040
Subject [일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것.(스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이미 있을 겁니다.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새로운 이야기를 할만한 능력은 없을 거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이야기는 조금 더 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덧붙여보는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안보신 분이 있다면 스포가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장 부호 없는 글, 그리고 그에 비슷하게 사운드트랙이랄게 없는 건조한 화면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작가 코맥 맥카시는 이미 다양한 글에서 이러한 스타일을 드러낸 바 있죠. <더 로드>, <크로싱> 등등...

영화나 소설 상에서 묘사되는 시기는 70년대 혹은 80년대 (*나무위키 상으로는 1980년이군요) 정도로 보이는데, 일종의 혼란기로 묘사가 됩니다. 알 수 없는 연쇄 살인마와 범죄의 시대로 그 시기를 그리고 있는 셈이죠.


결국 이 영화의 모든 이야기는 보안관 '벨'의 이야기로 굴절된다고 봐야할 겁니다. 자신만의 룰에 충실한 '안톤 쉬거'도, 불가해한 재난에 저항하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르웰린 모스'의 이야기도, 혹은 결국 당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묻는 '칼라 진 모스'의 이야기까지도. 결국 불가해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사건들에 대해 보안관이 느끼는 무기력감이 이 영화에 짙게 배어 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안톤 쉬거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화는 역시 주유소 주인과의 대화일 테고, 개인적으로 삭제되어서 아쉬운 부분은 갱단 보스와 나누는 대화(라기 보단 일장 연설)입니다. 동전 던지기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다크 나이트>의 '투페이스'와 닮아있는 듯 다릅니다. 철저하게 목적 지향적 이야기를 던지는(그 것 때문에 결혼했군.) 독특한 대화 방식은 확률과 운에 기대는 투페이스의 방식과는 다르게, 철저하게 일종의 무기와 도구로서 본인을 바라보는 자세가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결정된 운명에 따라 재난을 공평하게 내리는 방식이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점에서 갱단 보스에게 내가 왜 벅샷을 쐈는지 아냐는 이야기가 삭제된 건 아쉽습니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방식이겠죠. 그 안톤 쉬거도 이해할 수 없는,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교통 사고를 겪고 '협상'을 통해서 살아남으려 합니다. 불가해한 모든 순간에 대해 안톤 쉬거도 일종의 불가해한 재난처럼 보이지만 그 또한 한낱의 인간일 뿐이겠지요.


저는 코엔 형제의 영화를 일종의 '헛소동'으로 표현했던 어떤 평론가의 평가가 떠오릅니다. 이야기는 커지고, 실체는 어느 순간에 사라져버립니다. 그렇기에 코엔 형제의 영화들은 블랙 코미디가 되거나, 이 영화처럼 씁쓸하고 허무한 하드보일드한 작품이 되어버리곤 하는 셈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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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드
22/12/03 18:49
수정 아이콘
죽어가던 사람이 자꾸 눈에 아른거려 물 주러 갔다가 이 모든 일이......개인적으로는 모스의 아내가 한 말이 자꾸 머리속에 남더라구요.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요" 라는 대사였습니다. 모든 주인공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난 하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aDayInTheLife
22/12/03 19:14
수정 아이콘
결국 이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안톤 쉬거가 ‘다들 이 순간에 그렇게 말하더라, 이럴 필요가 있냐고’ 라고 말했던 거로 기억하는데(방금 보고 까먹..) 그 조차도 안톤 쉬거에겐 결정론적 세계에 쓸모없는 말이라고 느껴지더라구요.
22/12/03 18:5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인상적이게 본 장면은 타미 리 존슨이 용의자가 모텔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방문합니다.
방문해서 아주 천천히 긴장하면서 객실문을 여는데, 이미 용의자는 달아나고 아무도 없는 텅빈 상태입니다.

여기서 타미할배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다행스럽다고 생각을 하고 곧바로 생각에 잠기는데
이게 안도의 한숨이 아니라, 아쉬움의 탄식을 해야되는데.. 이미 경찰일을 하기에는 너무 늙어버린 거죠.
주유소 장면과 더불어 가장 씁쓸한 장면이었습니다.
aDayInTheLife
22/12/03 19:15
수정 아이콘
무력하고 정의롭지만 이젠 지쳐버린 수호자죠. 영화의 템포를 한 없이 끌어내리면서도 그 템포 자체가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기도 하구요.
삼화야젠지야
22/12/03 19:16
수정 아이콘
소설로 볼 때는 그냥 그랬는데....불가해의 상징으로 놓인 안톤 쉬거가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판사에 비해 존재감이 옅어서 그런지 주제도 아리송했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좋더라구요. 이야기 뿐 아니라 영화 자체가 좋았습니다. 특히 배우의 연기력과 연출이 묵직하더라구요.
매카시가 쓰는 긴 호흡의 문장 탓인지 아리송하던 메시지들을 잘 뽑아내서 영상으로 벼려낸 느낌이더라구요.
aDayInTheLife
22/12/03 19:18
수정 아이콘
매카시는 조금 읽다보면 답-답하죠. 크크 그걸 의도하는 작가긴 하지만요.
조쉬 브롤린은 몇 년 후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하게 되는데 크크크 배우 개그가 묘하게 떠올랐습니다.
시작버튼
22/12/03 19:27
수정 아이콘
안톤쉬거의 분위기와 연기가 엄청나게 인상적이긴 했습니다만...
과연 영화적으로 그 주제의식이 명확히 드러났느냐하면 의문인 영화더라구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볼때 그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느냐? 거의 불가능이라고 보구요.
모든 평론을 다 접하고 봐도 그게 효과적으로 드러났느냐? 글쎄요였습니다.
aDayInTheLife
22/12/03 20:45
수정 아이콘
안톤 쉬거가 굉장히 의뭉스러운 캐릭터라 그렇게 받아들이실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흐흐
그걸 떼 놓고 봐도 인상적인 스릴러였다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이건 개인 의견이니 뭐 크크
무한도전의삶
22/12/03 20:18
수정 아이콘
저도 윗분에 동의하는 게 연기 좋고 분위기 죽이지만 하비에르의 설정, 배경음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힘을 지나치게 주느라 주제를 가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파고는 볼 때마다 감탄하는데 ㅠ
aDayInTheLife
22/12/03 20:46
수정 아이콘
파고도 참 좋죠. 개인적으로 이거 정도 빼면 코엔 형제의 블랙 코미디를 더 선호하는 편이긴 합니다 크크
22/12/03 23:58
수정 아이콘
정말 긴장하면서 봤던 영화네요.
재밌어서 2번째 볼 때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aDayInTheLife
22/12/04 02:00
수정 아이콘
쉬운 영화는 아니지만 그만한 몰입도도 보증하는 영화 같아요.
22/12/04 09:23
수정 아이콘
원작자가 감놔라 배놔라 하지 않았다는군요.

그냥 맘대로 만들라고 했는데, 영화적인 완성도가 높아진 이유라 봅니다.
aDayInTheLife
22/12/04 09:38
수정 아이콘
뭐 코엔 형제 정도 되니까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런거야 케바케 아니겠습니까 흐흐
상록일기
22/12/04 11:00
수정 아이콘
중학생 땐가 고등학생 때 처음 봤는데 사실 그 땐 재미없고 지루한 영화였습니다. 좀 더 나이 들어서 다시보니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더라구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aDayInTheLife
22/12/04 11:3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흐흐 근데 18세 관람가 영화 아닌.. 아 책은 뭐.. 흐흐
상록일기
22/12/04 11:47
수정 아이콘
흠흠. 그 땐 그랬습니다. 크크
마갈량
22/12/04 11:36
수정 아이콘
이해할수없는 기묘한두려움 그자체를 안톤쉬거로 대단하게 표현해냈죠. oldman이 설자리를 지워버리는 침식을 조용한영화로 이끌어내어 참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aDayInTheLife
22/12/04 11:39
수정 아이콘
그러면서도 한낱 인간일 뿐인 엔딩까지 저에게도 여운이 깊게 남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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