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두자면, 1. 저는 픽사에 굉장히 호의적인 사람입니다. 2. 저는 이 영화를 디즈니 플러스로 봤고, 기차 안에서 봤기에, 기억에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픽사의 신작, <메이의 새빨간 비밀>이 공개되었습니다. <소울>, <루카>와는 달리 디즈니 플러스로만 공개되었고 극장 개봉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보고 나서의 느낌은 확실히 최근작 중 최고였던 <소울>이나 제가 좋아하던 <인사이드 아웃>, <코코> 등 보다는 부족하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여전히, 픽사는 픽사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기본 뼈대와 줄거리는 동양적 배경과 보편적 스토리로 구성되었습니다. 최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드는 느낌은 '악역 없는 이야기'를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과 대립하는 캐릭터는 있을지 몰라도, 그 캐릭터들을 '악'으로 규정하기는 애매한 구조를 사용하는 영화들이 많다고 느껴져요. 개인적으로 이는 장단점이 공존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분명 스트레스 없는 스토리는 강점이고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있지만, 반대로 이야기의 밀도와 강도라는 측면에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소울>을 참 좋아합니다. 스트레스 없이 밀도와 강도를 높게 유지했다는 점에서요,:))
이번 영화의 반동인물은 어머니입니다. '동양인 스테레오타입'이라는 학구열이 높은 과보호 부모라는 측면이 조금 애매하게 묘사된 느낌이 걸리긴 합니다. 여전히 악역 인물이라고 하기엔 좀 아쉽기도 하구요. 개인적으로 조금은 '뻔한' 구조를 가진게 있는 것 같아요. 학구열 높고, 기대가 높구요. 본인과 딸의 관계와 할머니와 본인의 관계가 유사성을 띄기도 하구요. 이러한 부분이 언급되고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애매합니다. 그러니까 주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이야기지만 이 부분이 강렬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비슷하게 가족과 부자관계를 (그리고 엔딩에서 부녀관계로 매끄럽게 전환하던!) 다룬 <코코>보다 아쉬운 측면이 듭니다.
이런 갈등이 조금은 부족하게 다뤄졌다는 아쉬움을 걷어내고 영화를 봐도 여전히 귀엽고 깜찍한 이야기입니다. 13살의 소녀와 그 소녀의 사춘기와 성장을 다룬 이 영화는 어찌보면 <인사이드 아웃>의 주인공이 조금 더 큰, 반대로 목표로 삼은 대상은 조금 더 어린 이야기 같아요. 어떤 점에서는 거대한 빨간 랫서 팬더로 변하는 부분이 단순히 이야기의 부속품으로만 기능한다는 생각이 없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따뜻한 픽사만의 시각이 남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때문에 디즈니 플러스를 가입해야한다, 라고 말하기에는 솔직히 픽사의 평작에 가까운 느낌이 듭니다. 무난하구요, 따뜻하구요, 스트레스는 적습니다. 하지만 그만큼의 깊이가 있냐, 라는 질문에는 그렇진 않다.라고 대답하게 되는 영화라고 생각이 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픽사 빠니까, 그리고 그 픽사가 선사하는 따뜻한 시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습니다.
p.s. 제가 유일하게 타의로 놓친 픽사 영화가 (카 3은 기대를 안해서 패스...) 인크레더블 2인데,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봐야하나 생각이 드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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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시간이 지난 뒤이지만,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다소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더라구요. 기껏해야 영화 공개 전, 누군가 트레일러를 캡쳐한 짤을 왜곡해서 PC+페미영화라고 선동하는 글을 봤었는데 막상 공개 후에는 그런 방향으로 욕하는 글도 없고요. 내용을 보면 애초에 10대 여자아이에 대한 내용이라 젠더 갈등을 유발할 만한 요소가 없는데, 오히려 그래서 혐오로 먹고사는 커뮤니티에서 무관심하게 된 것인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