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 조지아와 펜실베니아를 바이든이 역전한 현재 상태로 확정된다고 가정했을때의 미 대선 결과. 실제 결과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개표가 지나치게 길어지고 있긴 하지만 대충 윤곽이 나오고 있는것 같습니다.
미 대선을 지켜보면서 느낀 이모저모 생각을 한번 정리해봅니다. 미국 정치지형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선거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1.
착각하기 쉽지만 개표과정에서의 드라마는 사실 분석적/해석적 가치가 없는 우연에 의한 엔터테인먼트 쇼에 불과합니다. 개표결과는 독립적인 개인의 투표결과의 총합일 뿐이며, 만약 전자투표를 한다면 투표 종료와 동시에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결국 의미있는것은 총 득표수와 후보간 표 차이밖에 없으며, 과정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즉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재미있는 개표결과도, 개표 순서를 다르게 하면 어느 한쪽이 원사이드하게 이기는 재미없는 개표결과로 만들수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말해 [트럼프가 초반에 선전했으나 막판에 바이든이 뒷심을 발휘해 힘겹게 역전에 성공했다] 같은 문장은 그냥 이번에 방송된 개표 쇼의 시놉시스일뿐, 아무런 정치적 의미가 없는 얘기라는 겁니다. 개표 과정을 근거로 바이든이 '힘들게 이겼다'고 보는 분석이 인터넷에 꽤 많은데, 그냥 [바이든은 트럼프를 약 400만표+라는 적지않은 차이로 눌렀고] (참고로 힐러리는 결과적으로 패배했지만 실제 투표에서는 역시 트럼프를 약 300만 표 차이로 이겼습니다) 지금 상황대로라면 선거인단 수에서는 약 70표 차이로 여유있게 이길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총선에서도 여러 군데에서 일어났는데, 이는 보통 투표 성향이 지역 내에서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같은 지역구라는 작은 단위 내에서도 시가지쪽 투표소는 A당이 앞서고, 시골쪽으로 갈수록 B당이 우세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A당 후보가 이기고 있다가 막판에 도시쪽(혹은 시골쪽) 개표소가 열리면서 새벽 늦게 역전이 일어나는 경우가 꽤 있었죠.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미국은 그러한 도농격차가 한국보다 훨씬 심한 나라이고요.

2.
아무튼 이번 미국선거에서는 도농격차에 의한 드라마뿐만 아니라, 바이든 지지표가 우편투표를 많이 하고 트럼프 지지표가 현장투표를 많이 하는 점까지 겹쳐지면서 트럼프가 초반개표에서 앞서나가는 현상을 보였는데, 한국시간 기준 당일 오후12시 정도까지만 해도 (그때는 개표 진행이 얼마 되지 않아서 분석이 불가능한 시점이었으므로) 이거 트럼프가 되는거 아니냐는 얘기가 팽배했었던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후 3-4시정도부터 이제 [카운티별 개표 상황을 봤을때 도시표가 많이 남았고, 우편투표가 상당히 많이 남았으므로 사실은 바이든이 이길것 같다]라는 분석이 피지알 불판에서 슬슬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게 피쟐뽕을 좀 맞을만한 일인게, 그때 거의 모든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트찍탈 크크크' 하고 있었고, 심지어 불판 댓글에도 '왜 피지알만 바이든뽕 맞고있냐' 식의 댓글이 우르르 달릴 정도였거든요. 저도 월급루팡하고있던 터라 자세히 분석은 못하고 있었는데, 피지알 불판에 있던 몇몇 현자님들 덕에 주변에 미리 선지자 행세를 좀 할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크크

3.
사실 PGR 불판이 나름 대단했다고 볼 수 있는건, 그때 시간에는 미국 대형 도박사이트에서도 트럼프가 정배였다는 점입니다. 도박사이트에서 바이든 정배로 전환된것은 무려 피지알 불판 여론보다 4~5시간이나 늦은 저녁시간때 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도박사이트에 대한 신화도 좀 깨진것 같습니다. 원래 어떤 사건에 대한 도박사이트 배당률이 가지는 신뢰도는, ['자본이 가장 솔직하다' 라는 명제 하에 이념에 편향되지 않고 실제 사실에 대한 냉철한 예측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었는데, 사실 그게 분석의 정합성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는거겠죠. (분석이 그렇게 어려운 상황도 아니었는데...)

사실 지상파 방송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분석의 수준이 굉장히 실망스러운 수준이었습니다. 그냥 아 이 주는 트럼프가 이기고있으니 바이든이 힘들겠네요... 수준의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패널도 꽤 있더라고요. 사실 지난 우리 총선때도 많이들 느낀 지점일텐데, 특정 유튜브 라이브에서는 격전지 개표소랑 캠프에 전화 돌려서 '아 여기는 지금 A당이 이기고 있는걸로 나오지만 앞으로 B당에 유리한 투표소 물량이 많아서 거의 B당 승리로 보면 됩니다' 하고 이미 게임 끝났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지상파에서는 '아 A당이 이길것 같은데요' 이러고 앉아있었던 케이스가 엄청 많았죠. 특성상 그런 기민함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아무튼 전반적으로 지상파 개표방송은 좀 분석이 '게으른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SBS에 나왔던 죄송하지만 이름을 잘 모르겠는 여성 패널분은 그나마 상식적으로 분석을 잘 해주셨던것 같았습니다)

4.
개표 하다가 퇴근하는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것 같은데,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와중에 개표가 멈춰지는걸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개해서 미국 아니냐는 농담이 팽배한 가운데 유일하게 선진국스러운 느낌을 발산한 순간이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