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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3 19:51
천년도 더 뒤에도 3년상 치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일국의 왕이 초상나는 사례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3년상 두번 치르는건 정말 목숨건 도박이었죠.
20/08/23 19:52
실제 조조의 성격은 여러가지 면모들이 골고루 섞여있는 상당히 복잡한 성격이고.
이런게 연의, 정사 모두에서 드러나 그게 진짜 조조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드라마틱한 역전승들도 많고, 재미있는 일화들도 많구요. 근데 90년대~00년대 일본매체들이 막 유입되면서, 지나치게 오다 노부나가화 되어 우리나라도 이런 영향을 받아 좀 아쉽네요. 그나저나 매체들의 묘사와는 달리 실제로는 조조가 금수저 덕을 톡톡히보고, 원소가 자수성가형이라는 점이 신기하네요. 원소같이 특정한 무언가에 큰 콤플렉스가 있고, 이를 자수성가하면서 극복한 사람이라면 철인 통치형이 안될 수가 없죠.
20/08/23 20:05
확실히 조조는 기록이 비교적 자세하고 다면적인 평가가 가능하죠.
원소가 처음 관직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집안 덕분이겠습니다만, 6년상 이후 청류와 어울리면서 내놓은 자식이 되어버렸죠. 친족기반이 약하다보니 원소의 정치는 늘 숙청의 정치입니다. 조선 숙종의 환국이 느낌이 비슷하려나요. 조조가 협천자를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배경엔 자신만을 보위하는 친족기반이 단단했기 때문이겠죠. 내조 권력을 내주더라도 조씨-하후씨 집단이 외조 권력을 쥐고 있으면 정권을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실행됐죠.
20/08/23 19:58
원소는 3년상을 연달아 두번을 하면서 효의 아이콘이 되었는데, 십상시 쳐잡아서 밥상 올린 거를 동탁이 홀라당 다 먹어버리니까 가문의 어른들이 죄다 낙양에 있는데 반동탁 연합을 모아버리죠. 실제로 원외를 비롯한 명문 원씨 가문은 그 길로 목이 줄줄이 잘리며 멸족당합니다. 삼국지 파면 팔수록 정말 냉철하고 무서운 군웅이 원소라고 생각합니다. (반동탁 연합의 일화만을 근거로 하는 거는 당연히 아니고, 그걸로 따지면 원술도 마찬가지...) 관도대전에서 말아먹고서도 원소가 여전히 조조를 압도하는 상황이었지요.
그냥 조조가 원소를 이긴 이유는 원소보다 건강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라는 게 저의 최종결론입니다. 반대로 사마의가 삼국지의 최종승자 소리를 듣는 것도 겁나 오래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거구요.
20/08/23 20:09
6년상이라는 목숨을 건 고행이 후한 말 가장 강력한 군웅이라는 입지를 만들어냈지만, 반대급부로 그의 수명을 줄여버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조조가 이래저래 고생했다해도 6년상같이 몸 축낼 일이 없었던 그런거 생각하면 역시 수저가 짱짱맨 아닌가......
20/08/24 02:16
잘몰라서 그런데 3년상이 몸 버릴 만한 행위인가요? 그냥 의식 매일 조금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세부적인 것도 하인이 해줄것 같은데
20/08/24 09:20
고기 반찬을 못 먹는게 크죠 크크. 태종도 세종이 고기 좋아하니 3년상 치룰때도 고기 먹게해라 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니..
태종님 배려 아니었으면 세종대왕도 단명했을지도
20/08/24 11:28
실제로 공자의 제자 중 질문이 많았던 재아가
3년상이 너무 긴 것 아니냐고 묻고 그에 대해 공자가 대답하는 부분이 논어에 있습니다. 대화가 너무 웃긴데 공자가 "그럼, 넌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1년 만에 고기 먹고 그러면 맘이 편하겠냐?" 하자 재아가 "네. 넘 편한뎁쇼?" 공자 "그.. 그래? 그럼 넌 그리해라..." 덧붙여 "사람은 태어나 못해도 3년은 부모의 보호를 받는데.. 재아 저놈은 仁이 없는 새키.." 덕분에 재아는 이미지가 나락으로..
20/08/23 20:40
외모 빼고 말이죠. 세간의 평가로 조조의 외모는 볼품 없었다고 하죠, 조조는 항상 최염의 수염을 몹시 부러워 했다고도 하구요... 앗, 조조가 관우를 그렇게 사랑했던 이유 중 하나를 알겠네요
20/08/23 20:00
일본애들은 조조=오다 노부나가로 많이 겹쳐서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더라고요.
실제 조조는 능력 있는 네로에 더 가까웠다고 봅니다. 예술적인 면에서나 군주로서나...
20/08/23 20:02
서주대학살에 대해선 계속 얘기가 나오는데 전략적으로야 이득이 충분했죠. 연의에서나 도겸이 힘없고 맘씨 좋은 할아버지지 실제로는 서주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공손찬과 손을 잡고 조조와 계속 전쟁을 벌이던 군웅이었으니까요. 그랬던 게 서주대학살 한방으로 서주의 경제력은 완전히 내려앉았고, 이후 유비와 여포와 다시 유비(....)가 계속해서 서주에 기반을 두지만 더 이상 서주가 조조를 유의미하게 위협했던 적은 없었죠. 도겸이 조조와 정면대결을 벌였던 데 비해 이를 이어받은 유비는 조조가 황급히 철군하고 그 이후 연주전역에서 여포에게 완전히 밀릴 때에도 조조의 뒤통수조차도 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서주의 타격이 컸던거죠.
20/08/23 20:16
조조의 목적이 중원 정벌, 즉 천하에 있다면 약탈은 몰라도 학살은 전략적으로 이득이 없는 행위입니다. 실제로도 서주 지역은 조위 정권 내내 골칫거리였구요.
만약 조조가 유목민족 세력이었다면 학살에 근거가 있습니다. 그 땅에 정착할 생각이 없다면 몽땅 학살해도 상관없습니다. 실제로 유목민족이 농경정주민족을 침략할 때 이러한 학살이 자주 일어납니다. 그런데 서주대학살은 유목세력의 침략이 아닌 같은 농경정주 문화권 내에서 벌인 민간인 제노사이드인데, 그 어떤 이득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원수만 늘리면 늘렸죠. 가혹하지만 전략적인 판단을 했다면 싹다 약탈하고 여자들은 장병들 짝지어주고, 장정들은 노예화 시켰을겁니다.
20/08/23 20:30
연주조차 완전히 평정하지 못했던 그 당시 조조의 상황에서 조위 정권이니 천하니 하는 건 너무 멀었으니까요.
차라리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승리한 다음에 서주대학살을 벌였으면 그건 정말 아무 의미없는 행위였을겁니다. 근데 서주 때는 달라요. 사방에 군웅들이 할거하는 상황이었고 그 상황에서 호전적인 적의 경제력을 깎아내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약탈도 그닥 쉬운 게 아닙니다. 뭐 로마처럼 한번에 일괄적으로 노예 사 줄만한 주변국가가 있거나 데려와서 안정적으로 사회에 흡수할 수 있어야 노예화하는거지 조조 같은 상황에서 노예 몇만명씩 데리고 있으면 식량 손실만 어마어마하죠.
20/08/23 20:44
농경정주민족에게 있어서 전쟁의 제1순위 목표는 영토 확장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농토(및 생산력)의 확보에 있습니다.
도겸이 겨우 버티긴 했지만 조조세력은 놀라운 전공으로 승리를 일궜고, 과실을 얻어야 합니다. 정상적이라면 밀어부친 지역까지 점유를 하고, 자기세력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서주를 미는 과정에서 대학살 덕분에 토착세력과 협력하여 영토를 점유하는게 불가능해졌습니다. 연주에서 난이 일어났을 때 조조가 핀치에 몰리는 상황이 돼버렸죠. 내전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어떤 면으로 봐도 영토 점유에 비해서 전략적으로 도움이 되는 면이 없습니다.
20/08/24 10:11
말씀처럼 영토 점유가 목적이라면 학살은 아무 의미없는 행위입니다. 하지만 상대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라면 학살은 의미가 있죠.
192년부터 193년에 이르기까지 조조는 원소와 함께 공손찬-도겸-유비-전해로 이어지는 동맹과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도겸이 연주까지 진출하기도 했죠. 이런 구도에서 적의 동맹이 온전히 남아있는데 일순간의 우위를 바탕으로 적의 영토를 병합하는 건 무리입니다. 물론 조조와 도겸의 대결이 1:1 구도였고 여기서 이기는 쪽이 방해없이 상대의 영토를 점령할 수 있다면 학살보다는 영토 점유를 꾀하는 게 맞지만, 실제 당시의 상황은 조조가 도겸을 상대로 우위에 섰지만 전해가 구원군을 파병해서 물러나는 등 동맹간의 구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죠. 이런 상황에선 학살로 상대의 세력을 깎아내는 게 큰 의미를 갖죠. 실제로 서주대학살로 인해 강대했던 서주가 무력화되면서 여포가 연주를 빼앗는 급변상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황은 원소 조조에게 기울게 됩니다.
20/08/24 10:31
서주 일부를 점유했었다면 상황은 실제 역사보다 쉽게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원소는 놀라운 야전 능력을 발휘해 압도적 열세를 극복하고 공손찬군을 연파했습니다. 또한 특유의 정치력을 발휘, 하북의 민심을 얻었죠. 공손찬-원술-유표-도겸 라인의 약화를 위해서도 점유는 필요합니다. 농경군대에 있어 힘의 바탕은 차지한 농토와 생산력에서 나옵니다. 서주대학살 이전까지 조조는 나름대로 은인자중 했지만 대군을 일으켜 전쟁을 시작한 이상 전리품을 얻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눈치가 보이기 때문에 점유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저에겐 이상하게 들립니다. 오히려 서주를 먹을 수 없었기에, 연주가 날아갔을 때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연주를 다시 되찾은 건, 지휘관으로서 조조의 능력도 크지만 결국 하북의 주도권을 가진 원소의 지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조조가 스스로 자립해 군벌로 자리잡고자 했다면(이미 연주를 차지한 것을 본다면) 전략적으로 옳은 판단은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 영토 확장입니다.
20/08/25 09:26
상대 영토를 가져온다는 건 단순히 국경선을 긋는다는 게 아닙니다. 백성을 안돈시키고 지방호족과 연계해야 하며 반대파를 다독여야죠.
게임에서 땅따먹기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전역에서 승리했다는 것만으로 점유가 되지는 않아요. 하물며 농경사회에서 약탈이 아닌 점유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해야합니다. 그러려면 일정 시점 이상에서 점령지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주력 외에 점령지를 관리하는 군대까지 별도로 둬야합니다. 계속 전쟁상황이 이어지는 중에 하물며 적의 구원군까지 내려오는 상태에서 그런 건 불가능합니다. 사람은 NPC가 아닙니다. 전쟁 중에 잠깐 성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그럼 오늘부터 우리는 오늘부터 고스란히 조조 편하는 건 게임에서나 있는 일입니다.
20/08/25 10:08
말씀하신대로 영토에 대한 자기세력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무차별 학살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겁니다.
공손찬-원술-유표-도겸 라인 중 핵심은 하북을 반으로 갈라먹던 공손찬입니다. 이는 원소가 맡았죠. 유표는 움직이지 않고, 원술은 사실상 조조에게 밀려났습니다.(게다가 이둘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대죠) 도겸과는 국지전으로 그전부터 신경전을 벌이다 대규모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게임처럼 내 땅 하고 깃발 꽂을 수가 없으니, 학살 이후 병력을 쪼개 점령지 관리 할 각이 안나오는 겁니다. 무조건 들고일어날 테니까요. 원소처럼 점령지의 민심을 수습하고 여론전을 펼쳤으면 됩니다. 충만큼 강력한 효라는 명분을 쥐고 있으니까요. 호족들은 어차피 강하고 콩고물 주는 놈에게 붙습니다. 이후 대군벌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걸 잘했던게 조조이기도 하죠. 서주대학살이 없었다고 해도 서주를 수월히 점령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거지만, 학살은 옵션하나를 삭제시킨 겁니다.
20/08/23 20:30
서주대학살이라는 판단 때문에 장막-진궁이 돌아서면서 본거지인 연주가 날아갈 뻔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때 조조는 서주에 집착하다가 정말 모든 걸 다 잃어버릴 뻔 했습니다. 물론 전략적으로 이득을 취했다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전략적으로 매우 좋지 않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8/23 20:37
그런 주장이 있는 건 알지만 저로선 그런 주장은 그냥 끼워맞추기인 거 같더라고요.
조조가 서주에 집착하다 뒷치기 당한 건 맞는데, 그게 서주를 침공해서인지, 대학살을 벌여서인지를 알 수가 없거든요. 물론 후자라 여포가 아무리 꼬셔도 장막이 움직이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전자였다면 조조는 정말 망했을겁니다. 그게 누구든 연주로 돌아오는 조조의 뒤를 놔둘리가 없으니까요. 확실한 건, 조조에 대한 서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을 상황에서 유비가 미친듯이 복귀해서 여포와 대치하는 조조를 치지 않은 이유는 하나밖에 없죠. 서주대학살로 인해 병력을 동원하고 말고 할 여력이 바닥난겁니다.
20/08/24 03:36
저는 잘 모르지만 예전에 유게에서 댓글로 논쟁이 일어난게 있어서 링크 드립니다.
https://pgr21.net/humor/387594
20/08/23 20:09
조조는 말씀하신대로 감정에 솔직하고 그걸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던거 같습니다.
마음대로 하고 다른이들의 평가에도 크게 신경 안쓴거 같고, 아마 서주대학살 가지고 후세사람들이 비난해도 '어쩌라고?' 하고 개의치 않을것 같습니다. 그렇게 뻔뻔하니 남의 마누라를 그리... 그런데 그런 인간이라고 보는데 찬탈은 왜 안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권력을 다 잡고 아들에게 그 체제도 다 물려줄 정도인데..왜?
20/08/23 20:20
행보를 살펴보면 중원을 완전히 통일한 후 헌제로부터 선양받으려 했던게 아닌가 추정합니다.
유종-채씨로부터 북형주를 공짜로 넘겨받았을 때, 사실상 천통이 목전에 있었거든요. 조조가 강동 정벌을 선언했을 때, 손오 정권 온건파들은 대부분 조조에게 귀부하자고 주장했습니다. 아마도 적벽대전이 승리로 끝났다면 기세를 몰아 천명을 받았다고 주장했을 것 같습니다.
20/08/23 20:14
삼국지 군주들 성격이 재밌는게
젊었을때는 소심하다싶을만큼 냉정한 판단을 내리던 유비는 늙은 다음엔 과격하고 거친 모습을 보여준 반면 서주대학살 등 각종 사건을 저지를만큼 냉혹하고 거칠던 조조는 늙고 나서는 한중, 형주에서 소심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여줬죠. 뭐 손권처럼 젊었을때 혈기넘치고 거칠다가 늙어서는 더더욱 거칠어져서 다 죽여버린 사람도 있습니다만
20/08/24 04:25
유비는 일화들을 보면 원래 한성질 하는건데 참다가 큰소리칠 만한 기반이 마련되자 본성이 나온거고 ..당장 칭제 할 때 보면 그런 느낌이 집약되어 있죠.
조조는 원래 젊었을 때부터 의외로 감성적인 부분이 있어서 늙었을때 감상에 빠질 면모가 많아보이죠..
20/08/23 20:23
원소가 참 독하다고 봅니다.. 능력도 되고 독기도 있는데 문제는 주위에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게.. 서자 출신이니 집안에서 의지할 사람이 있을리는 없을테고 원술은 애초에 배다른 형제에다가 도움이 안되고.. 그런 와중에도 홀로 독하게 성공을 한건 좋은건데 유비처럼 의형제가 있는것도 아니고 조조처럼 하후씨 일족이 있는게 아니고 손권처럼 주유같은 인재가 있는것도 아니었고..
20/08/23 21:27
그렇게 감정표현을 한 덕분에 조조가 오래 살았고, 그렇게 감정마저도 이용하려고 했기에 원소가 오래 못 살았을 것 같아요.
그리고 원소는 냉혈한의 면모도 있지만 자기가 죽을 거에 대한 대비는 전혀 하지 않은 것 같고, 그게 원씨가 망한 주 원인인 것 같습니다.
20/08/23 22:05
원소의 선택은 계산적인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독이 된 게 많습니다. 십상시 견제한답시고 동탁을 불러 중앙정부를 무력화시키고..제후들을 모아 반동탁연합군을 결성해서 한나라 국가체계를 박살내고..원씨일족들 죽게 만들어서 자기 기반 약화시키고..헌제를 모시고 오지 않아서 조조에게 정통성을 뺏기고..관도전투에서는 조조 본진 군량창고 양쪽에 괜히 병력 나눠보내서 지고.. 삼년상 두번 치르느라 건강 해쳐서 일찍 죽고..사견이지만 전 이사람이 뭘 잘한건지 모르겠습니다. 잠깐씩 반짝 빛나지만 팀에는 해가 되는 플레이메이커 느낌? 자기는 위험 감수하지 않고 타인을 조종해서 뭘 하려는 섬뜩함은 있는데 비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걸 한 결과가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열어젖힌 거죠.
20/08/23 22:37
원소도 광무제같은 먼치킨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도 많습니다. 다만 어느정도 참작의 여지는 있습니다.
원소는 6년상 이후 중원의 슈퍼루키로 떠오르고 청류의 아이돌이 됩니다. 내조에서 관직 생활을 다시 시작했지만, 상사였던 원술때문에 외조로 자리를 옮겼죠. 이때부터 하진의 러닝메이트가 되는데 십상시의 하진 암살은 원소가 생각한 변수가 아니었을 겁니다. 실제로 동탁이 수도로 데려온 병력은 3천 남짓이었으며 집금오 정원도 또이또이 일겁니다. 사예의 군권을 틀어쥔 대장군부가 충분히 제어가능한 병력입니다. 동탁의 집권은 하진 사후 능력있는 하씨가 없어 수도의 병력을 동탁이 꿀꺽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원소가 협천자를 못한 것은 그가 반동탁 연합의 영수였던 정치적 포지션에 기인합니다. 원소는 한실의 충의지사로서 명성을 얻었고, 하북을 차지한 명분 역시 동탁이 세운 헌제에 대한 부정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원소는 조조나 원술같이 친족보위집단이 없었기 때문에, 협천자를 했을 시 명분과 지지기반이 사라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조조는 막부를 꾸리면서 철저히 외조의 권력은 친족들이 틀어쥐었습니다. 영천계 순욱이 내조의 권력을 바탕으로 반기를 들어도 간단히 날릴 수 있을 정도로요. 원소는 자신이 푸쉬하던 유우가 공손찬에 의해 날아갔을 때, 헌제를 다시 지지하기가 힘들었을 겁니다. 평생을 유가적으로 살아온 군주가 말바꾸기를 해야하니까요. 위진남북조의 혼란은 그 책임의 80-90은 사마씨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원소가 하북에 집권한 시기랑 너무 멀기도 하고, 공손찬-원소-조조-조비까진 나름대로 잘 제어했었구요.
20/08/23 22:55
모든 것이 상황때문이라면 그 개인의 덕목은 가치가 떨어지죠..원소가 시저같은 천재였다면 협천자같은 것도 정치적 명분을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아니 자기 원하는 대로만 판짜놓고 재지만 말고 좀 더 과감했어도 나았을텐데..조조가 원소와 같이 반동탁연합군 제후였고 원소의 위임세력쯤이었는데도 그렇게 해낸 걸 보면요.
20/08/23 23:07
말씀하신 점이 조조와 원소의 차이죠. 원소는 굉장히 정치적인 인물이기에 상황을 완벽하게 컨트롤 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여론전의 달인이었구요.
조조는 내키면 지르고 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큰 손해를 본 적도 큰 이득을 본 적도 있죠. 전자가 서주대학살이나 서량연합군의 관중점령이라면 후자가 협천자겠죠. 당대 천하 정세에 있어선 대국적인 판단을 잘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만 망조가 들었던 후한의 시스템을 고치지 않고 왕조 교체에만 그친게 아쉽습니다.
20/08/23 23:38
제가 협천자 if에 관해 유게에 올렸을 때 다들 원소가 내건 명분이 있으니 협천자하기 힘들었고, 영향 별로 없었을 거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조조가 협천자를 함으로써 컸다는 관점에서는 원소의 실수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20/08/23 22:41
원담이 고분고분 했거나, 마등이 원상의 뒤통수를 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겁니다.
원상은 실제로 원소 사후 조조와 원담의 공격을 역으로 제압하고, 낙양-장안-허도 진공작전을 실행해 실제로 관서를 손에 쥐기까지 했으니까요.
20/08/23 22:44
원상이 초반에 이겨먹은건 알았는데 그정도까지 해먹었을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소시오패스라도 자기자식한테만큼은 어쩔 수가 없나봐요 이방원처럼 아들내미를 아주그냥 실각시켜야 했을텐데..
20/08/23 22:56
친족지지기반이 없어 대안이 없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각 지방을 전부 혈족들에게 맡긴 걸 보면요.
원소 사후 버려진 인물들과 호족들이 원담과 조조에 붙은 걸 보면 역시 가혹한 군주는 인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통일의 대업을 이루려면 역시 왕건형(?) 군주가 짱인듯 하네요.
20/08/24 08:31
연의랑 코에이 삼국지 게임때문에 원소하면 가문만 좋은 유우부단한 쩌리 이미지였는데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인것 같긴 하더라고요. 얼자에서 하북의 지배자까지 올라간거보면; 예전에 조조가 가지고 있는 완벽한 냉혈한 이미지에 야전사령관 이미지를 빼면 원소가 된다고 보면 될려나요?
20/08/24 10:06
야전사령관 이미지는 그대로 더하셔도 됩니다. 원소는 관도대전 이전까지 압도적 열세인 상황에서 회전 한방으로 극복하는 타입이었습니다.
기록상 조조가 큰 그림을 그리는 전략안이 뛰어난 지휘관이었다면, 원소는 전술안이 뛰어난 쪽에 가깝습니다.
20/08/24 10:19
아 그렇군요; 관도대전때문에 전략전술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는데
원소가 전술이 뛰어나다고 보면 되겠군요; 하긴 뛰어나지 못하면 공손찬을 회전에서 잡는게 말이 안되긴 할듯 합니다.
20/08/24 14:07
관도대전은 여러가지로 신기하긴합니다. 연의의 이미지로 순우경이 놀고먹고 술에취해서 오소급습당하고 불타서 게임이 끝난걸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허유가 위치를 불어버린게 결정적이긴 하지만 순우경은 열심히 싸웠고 원소는 조조 본진을 쳤는데 보급을 박살내도 본진날라가면 끝인 상황에서 순우경은 뚫리고 조홍은 지킨... 전력상으로 보면 원소가 이겼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조조가 이긴게 신기합니다. 원소가 패배한 틈을 타 하북에서 반 원소세력들이 들고 일어났는데 어쨌든 다 정리하고 죽은것만봐도 원소가 대단하긴합니다. 역사보면 결국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이 승자가 되는 경우가 제법 많더라구요. 삼국지의 판도를 가른 조조 vs 원소는 보면 볼수록 흥미롭습니다
20/08/24 10:37
개인적으론 다 맘에들진않지만, 네이버웹툰연재하는 삼국지톡의 캐릭터해석이 꽤나 맘에들더라구요. 정사 연의 적당히 섞고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여서 그럴듯한경우가 많아요. 여기서 말하는 원소-조조가 특히 그런듯
20/08/24 17:54
제가 생각하는 원소는 의뭉스러운 실리충 김대중 조조는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수밖에 없는 김영삼
실제 성장 배경도 김대중은 서자에 눈칫밥 먹으며 자랐고 조조는 부잣집 아들로 스케일 크게 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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