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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8/17 16:56:18
Name aurel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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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단상] 드골, 프랑스의 국민영웅에 대한 생각 (수정됨)


드골은 프랑스의 국민영웅입니다. 오늘날 드골의 이름을 딴 수많은 기념물들이 있고 건축물들이 있지요. 당장 파리의 관문 국제공항의 이름도 샤를드골국제공항이고, 파리의 중심부 개선문광장의 명칭도 샤를드골-에뚜알입니다. 제2차세계대전 발발 당시만해도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군인이 어떻게 프랑스의 국민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것인가. 정말 대단한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프링스의 제3공화국이 나치독일에 패배하자, 드골은 곧바로 영국 런던에 망명하고 그곳에서 결사항전을 외치면서 지지자를 규합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었죠. 그의 휘하에는 자금도, 군인도, 무기도 없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결사항전을 하겠다는 것인지? 실제로 당시 영국정부는 드골을 Nobody 취급했지만, 그래도 영국도 된장이냐 똥이냐 가릴 처지가 아니어서  드골이 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것을 묵인했습니다. 어쨌든 프랑스 저항세력이 존재한다는 프로파간다를 활용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죠. 허지만 동시에 영국정부는 페탱이 이끄는 비시정부와 따로 협상하거나 또는 “실제적인 무력”을 보유한 다른 프랑스 장군들을 개별 접촉했습니다.

드골은 이러한 상황을 모르지 않았고, 영국의 개별적인 노력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고, 오직 자신만이 진짜 프랑스를 대표하고 또 자신만이 프랑스 저항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을 어필했습니다. 그리고 영국 수상 처칠은 드골의 개인적 카리스마에 깊은 인상을 받아 내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드골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처칠이 없었다면 드골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드골이 BBC를 통해 정치선전을 하고, 프랑스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시찰하고, 레지스탕스에 필요한 자금이나 기술적 지원, 연락책 유지 등을 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처칠의 개인적 의지와 그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영국 내각이 드골을 버리는 카드로 인식할 때마다 처칠이 거들어서 드골의 명예와 지위를 지켜주었습니다.

하지만 드골은 처칠에 의존하는 꼭두각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필요할 때마다 처칠을 면박주기도 했고, 또 처칠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면서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에 영국은 드골을 대체할만한 후보를 모색했고 비시 정부 내부의 인사들을 포섭하거나 회유하는 방식으로 대안세력을 육성하고자 했습니다.

드골의 진정한 천재성은 사실 군사분야가 아니라 “정치”였습니다. 그는 쉬지 않고 시리아-레반트, 아프리카 등지를 돌면서 자신의 지지세력을 규합했고, 영국이 제휴하려고 했던 대안후보들의 “정치적 위상”을 격하시키고 또 프랑스 국내 레지스탕스(그들은 공산주의자이건 아니건...)와 제휴하면서 영국이 생각했던 대안세력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 지위를 구축했습니다.

한편 미국의 루즈벨트는 드골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전쟁에서 어이 없게 패배한 프랑스라는 국가 자체를 “경멸”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드골이 무슨 권한으로 프랑스를 대표한다고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고, 그는 드골이 이끄는 세력을 결코 프랑스의 대표권위로 인정하지 말라는 훈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루즈벨트는 드골을 프랑스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단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는 루즈벨트의 전후질서 구상에는 “프랑스”가 아예 빠져있었습니다. 루즈벨트가 구상한 전후질서는 미국, 소련, 영국, 그리고 중국의 4두 정치였고 여기에 프랑스가 낄 자리는 없었습니다.

드골 또한 루즈벨트의 전후구상을 모르지 않았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처칠과 루즈벨트의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훼방놓기도 했습니다. 루즈벨트 상대로 때로는 배째라식 벼랑끝전술을 구사했고 그 때문에 루즈벨트가 집무실에서 노발대발했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드골과 루즈벨트가 싸울 때마다 처칠은 드골이 또 사고 쳤다면서 격분했다고 하는데, 처칠의 한 수행원은 이를 두고 “루즈벨트, 처칠, 드골은 사춘기 소녀들마냥 서로 싸우고 소리지르고 하기를 매번 반복한다”면서 혀를 찼습니다.

드골은 정교한 정치적 술수로 프랑스에서 점점 인기있는 “상징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는 라디오방송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였고, 공산주의자 레지스탕스와 우파 레지스탕스가 서로 개별적 활동을 벌이더라도 드골의 이름으로 행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드골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이제 전설적인 아우라를 발산했습니다.  이에 드골을 극혐하던 루즈벨트도 그를 완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한편 드골은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는데, 아이젠하워는 루즈벨트와 달리 드골에 대해 어떤 큰 반감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젠하워는 드골 세력이 연합군보다 먼저 파리해방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묵인하였는데, 이는 드골에게 아주 큰 선물이었습니다. 파리시민들은 드골을 보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이는 영상과 사진으로 촬영되어 부정할 수 없는 권위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이제 파리해방의 주인공이 된 드골은 비로소 전프랑스의 지도자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고 미국이나 영국도 이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파리해방으로 프랑스의 지도자 지위를 획득한 드골에게는 이제 또 다른 과제가 생겼습니다. 전쟁이 끝나면 프랑스는 어떻게 될 것인가? 프랑스는 승전국 대열이 낄 수 있을 것인가? 프랑스는 이류국가로 전락할 것인가?

드골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루즈벨트 구상에 프랑스의 자리가 없다는 것을 파악한 그는 1944년 12월 소련의 스탈린을 만나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소련과 단독으로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하였는데 이는 19세기 프랑스-러시아 동맹을 연상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스탈린은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를 경멸하였고, 결국 드골을 얄타회담에 초대하지도 않았지만, 드골 입장에서는 소련과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을 선전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정한 성과였습니다 (물론 추후 냉전이 격화되면서 프랑스-소련 원조조약은 1955년 파기되었습니다)

한편 드골은 거의 와해된 프랑스군을 재집결시켰고 아주 빈약한 상황에서도 어쨌든 전쟁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트라스부르를 자력으로 해방시켰으며 또 독일의 스튀가르트를 점령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한편 독일이 아르덴느 대공세를 펼치면서 연합군 사령부가 스트라스부르를 포기하고 후퇴해야 한다고 지시했을 때 드골은 이를 거부하고 스트라스부르를 프랑스의 스탈린그라드로 만들지언정 결코 후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덧붙여 그는 전략적 후퇴가 군사적으로 합리적일지 모르나 군대의 사기 측면과 정치적 프로파간다 측면에서는 재앙적일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이젠하워는 이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드골이 옳았습니다.

1945년 5월 독일은 항복했고, 결국 프랑스는 우여곡절 끝에 승전국의 지위를 획득하고 독일의 일부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골에게 독일에 대한 적개심은 부차적이었습니다. 물론 드골도 사람인지라 처음에는 독일을 1871년 이전처럼 완전히 찢어버려야 한다고 말하였지만, 종전 이후 세상이 미소양국으로 완전히 재편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크게 걱정했습니다.

드골은 세계정세를 항상 역사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었고, 그는 미국과 러시아(소련)이 양분하는 세계에서 프랑스가 자주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독일과의 협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종전 직후 라인간 동쪽으로 건너간 그는 주민들에게 독일인과 프랑스인의 협력이 중요성을 역설했고(드골의 독일어 실력은 유창했다고 합니다), 또 4등분된 독일의 프랑스 점령구역 군정책임자에게는 “유럽의 미래는 독일과 프랑스에 달려있다는 점을 유념하라”고 말했습니다.

드골의 이러한 구상은 1963년 결실을 맺었습니다. 드골은 서독의 아데나우어와 “엘리제 조약”을 체결하여 프랑스-독일 양국간의 항구적인 평화와 영원한 협력”을 약조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아주 깊은 소통이 있었습니다. 드골은 아데나우어를 자신의 개인별장에 초대하여 같이 식사했습니다. 드골 아내가 직접 요리한 저녁만찬으로 소박하지만 가족같은 분위기에서 양국의 정상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 드골이 서독을 방문했을 때 본 정부는 아주 성대한 환영행사를 열었고 드골은 독일어로 독일국민들에게 “그대들은 아주 위대한 민족이다”고 말했는데 이러한 낯간지러운 표현은 히틀러 시대 이후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아데나우어가 마찬가지로 프랑스에 국빈자격으로 방문했을 때 프랑스는 아주 성대한 행사를 치렀고 아데나우어를 환대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독일 양국이 공유하는 과거인 카롤링거 왕조의 왕들이 묻혀있는 랭스 대성당에서 양국 지도자들이 함께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제궁에서 비로소 “프랑스-독일 우호조약”이 체결되었지요.

양국의 지도자들은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또 “강력한 유럽”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다른 한편 드골은 인상적인 예측을 여럿 한 바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프랑스가 패배했을 당시 드골은 미국과 소련이 있기 때문에 결국 독일은 패배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주장하고 결사항전을 촉구했던 것(당시 소련은 독일과 불가침조약 맺고 있었음)

-소련이라는 잉크는 결국 러시아라는 스펀지가 다 흡수할 것이다(공산주의 따위와 같은 이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러시아의 지정학적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

-아시아의 공산주의는 각 국가마다 양상이 다르고, 각자만의 운명이 따로 있다

-배트남이 공산화되도 그건 결국 민족운동이며 어제에는 프랑스, 오늘날엔 미국과 적대하듯 미래에는 중국과 적대할 것

-미국은 결국 베트남전쟁을 이길 수 없을 것

-미국 국무장관이 소련과 중국을 한묶음으로 이야기하자 드골은 결국 소련과 중국은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반박


드골은 패배한 프랑스를 가까스로 승전국의 지위로 재등극시켰고, 미국과 소련과 영국 사이에서 트롤링(?) 짓하면서 프랑스의 몸값을 높이고 또 독자적인 핵무장으로 프랑스의 발언권을 높였으며 독일과의 전격적인 화해로 유럽통합의 엔진을 가동시켰습니다.

드골이라는 개인은 아주 독선적이고, 완고한 사람이었고, 민주주의를 경멸하고 루이14세와 나폴레옹을 존경했다고 하지만 그는 동시에 원칙주의자이면서 실용주의자여서 “민주주의”와 “공화국”의 대원칙을 부수지 않고 존중했다고 합니다.

드골이 한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은 “나는 프랑스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다”(I have a certain idea of France)입니다.

프랑스에 대한 어떤 생각이란 곧 프랑스의 영광, 위엄, 자존심, 권능, 독립 등을 의미하는데 프랑스어로는 딱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Grandeur]. 결과적으로 드골은 이를 효과적으로 지켰고 그렇기 때문에 현대 프랑스의 국부로 인정받는 것이겠죠.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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