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낮은 쇳소리가 계속해서 K의 귀에 들린다. 뭔가가 파열하는 음 같기도 하고, 쇠 철판을 고양이가 긁어대는 소리 같기도 하다. 듣기 싫은 기괴한 속삭임이었다가도 우레와 같은 고함이기도 하다. 인간의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드는 소리다. K에게만 들리는 이 소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K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을 마주칠 때만 들린다는 점이다. 만나면 반갑고 좋은데, 그런 기분을 느낄 때마다 뇌에서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때로는 이 소리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여서 불쾌감이 표정으로 드러나곤 하는데, 그럴 때면 K의 지인들은 K의 눈치를 보며 왜 그러냐고 묻는 것이다. K는 최근 들어 급작스러운 두통이 오곤 한다고 둘러댄다. 그러나 지인이 보기에 K의 표정에는 분명한 혐오의 빛이 떠올라 있기에, K의 의중을 의심하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쾌감이 전염되고 만다. 그리하여 둘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장면이 많이 있다.
증세는 갈수록 심해져서, K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점점 더 꺼리게 된다. 지독하게 외로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데도 그렇다. 그는 이제 일부러 자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별다른 인간적인 관계가 없는 대상을 찾아다닌다. K는 오직 그들 앞에서는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표정을 지을 수가 있다. 귓가에서 지독하게 괴로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연기가 가능한 것이다. 일회성에 불가한 모임을 만들거나, 즐거워 보이는 척 하면서 의미심장하게 비꼬는 말들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혹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잡스러운 대화로 하룻밤을 보내는 날들이 계속된다.
K가 좋아하던, 그리고 K를 좋아하던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사람들은 K가 갑자기 이상해졌다고 말하고, 그가 왜 그렇게 됐는지에 대한 추리가 술자리에 오른다. 그의 증세는 갈수록 심해져서,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다. K는 힘들게 번 돈을 자신의 병의 원인을 밝히는데 쏟아 붓고 있다. 모든 원인미상의 현대질환들이 그렇듯 그 어떤 의사도 K의 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들은 여러 가지 알약을 K에게 권하고, K의 서랍 안은 알록달록한 약들이 담긴 흰 봉투가 겹겹이 쌓인다. K는 좌절하지만, 아주 크게 좌절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그 병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생각하거나 하는 등의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에게는 혼자서 조용히 우는 날이 많이 있다. 가족을 보면서도 웃지 못하고, 친한 친구와 술 한 잔 하지도 못하고, 격렬한 사랑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있는, 드물게 호감이 가는 이성을 만나도 결코 잘 될 수 없다. 자연스럽게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K는, 다양한 취미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K는 자기 머릿속에서 울리는 끔찍하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그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다행히 현대에는 수많은 인공적인 소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장비와 소프트웨어들이 존재했고, K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개의 음악을 제작하여 인터넷에 업로드하기에 이른다. 그를 괴롭혔던 소리들은 이제 <악마의 지저귐> 이라는 앨범제목 아래 하나로 묶이게 되었다. 정말 놀라운 일은, K의 귀에서는 끔찍할 뿐이었던 그것들이 세상에 나오자 특별하고 중독성 강한 음악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악마의 지저귐>을 들었고, 이 세상에 처음 나온, 둘도 없는 그 음악에 매료되었다. 음악은 입소문을 타고 점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사로잡게 되었다.
K는 이제 고독하지 않다. K의 음악을 들은 수많은 얼굴 모를 사람들이, <악마의 지저귐>을 듣고 난 후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K와 같은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들이 각자 혼자 자신의 방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K가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듯이, 그들은 악마의 음악을 만든 K를 저주하는 것에만 차이가 있다. 수많은 연인들이 헤어지게 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소중한 인연들이 서로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귀에서 들리는 소리에 저항하고자 했으나 헛수고였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소음에, 그들 모두는 얼굴을 찌푸리며 거대한 고독이 도사리고 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