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주에 병원을 가자 담당 선생님은 우리 원자의 성별을 '여아'라고 말씀해주셨다. 내심 딸을 바라던 우리 부부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내가 딸을 원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우리 집이 아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들의 무익함과 해로움을 잘 알고 있었다. 둘째로, 우리가 이제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남아의 활동량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아들이면 아내가 하나를 더 낳겠다고 할 것 같아서였다. 자식 낳기가 뽑기는 아닐 테지만 유독 사행성 행위에 친밀감을 보이는 그녀는 그러고도 남았다.
"자기야, 이번에는 확실히 딸이야. 확실해. 내가 느낌이 와. 가즈아~~~까르르~~~"
이럴게 뻔했다.
만약에 우리가 또 아이를 가지려고 한다면 아내는 임신에 전념하고 나는 육아와 가사와 직장 일을 도맡아 하는 '워킹대디'가 될 것은 당연했다. 이걸 알고 있던 아내는 육아의 부담(?)이 별로 없어서였는지 성별 검사를 하러 가기 며칠 전부터 혹시 아들이면 하나 더 낳자는 밑밥을 계속 깔았었다.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감히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나는 한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었다. 다행히 하늘이 나를 버리지 않고 딸을 주셔서 그런 독박 육아 같은 참사를 피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아내가 딸을 원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드라마를 딸과 함께 침대에 누워서 보고 싶어서였다.
아내는 결혼 전에 나름의 큰 그림을 구상했다고 했다.
일 단계, 말 잘 들을 거 같은 무지렁이 육지 남자를 구슬려 제주로 데려온다.
이 단계, 그 남자를 어르던 협박하던 해서 공부를 시켜 취직을 시킨다.
삼 단계, 그 남자를 또 재촉하여 딸을 만든다.
이거였다. 모두가 불가능한 확률이라 하며 비웃었다고 했는데 몇 년 새 그 꿈이 다 이루어져 버렸다. 그분의 빅 픽처는 어디까지 인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는 아내에게 다음 단계는 뭐냐고 계속 물어봤다. 그렇지만 나 같은 미물은 감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아셔서 였을까. 아내는 아직 그런 건 없다고 즉답을 피했다. 그러나 내 보기엔 분명히 있는 것 같았다. 아무튼 이제부턴 아내를 화백이라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이 생기자 모두가 기뻐했다. 사랑이 늘 고팠지만 아들들에게 외면만 당했던 우리 엄마도 드디어 자기에게 관심 가져줄 손녀가 생겨서 좋아했다. 다만 나의 장모님(아내의 친어머니)은 약간 섭섭하신 모양이었다. 아내가 딸이라고 친정 단독방에 올리자 처형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축하해줬지만 장모님은 말이 없으셨다. 원래 쿨한 모녀 사이라 아내는 신경 안 쓰는 눈치였다. 하지만 내가 신경이 쓰여서 전화 좀 한번 드리라고 아내를 채근했다.
"엄마, 좀 섭섭해?" 아내가 전화해서 어머님께 물었다.
"쪼끔." 어머님이 대답하셨다.
"아하하하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마구 웃었다.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딸이면 혹시 나중에 고생할까 봐 걱정돼서 그런다고 하셨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모녀가 통화했던 시점은 내가 집에 달려와서 저녁을 차려 먹고 그릇을 닦으며 '이제 설거지를 다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오면 쉴 수 있겠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아내에게서 어머님이 그리 말씀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씁쓸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자 아내의 상태도 점점 나아졌다. 숟가락 한 번 들게 하려면 온갖 재롱을 부려야 했던 나도 마음이 편해졌다. 40kg 대까지 빠졌던 몸무게도 점점 늘어났다. 감정 상태도 훨씬 좋아진 것 같았다. 입덧이 심할 때는 감정 기복도 생겨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아내는 올레 tv에서 해주는 영화 요약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날 소개되었던 영화는 '빌리 엘리엇'였다. '정부의 부당한 조치에 투쟁하던 아버지는 아들인 빌리가 계속 발레를 하고 싶어 했기에, 돈을 벌기 위하여 광산에 나가야 했고 동료들에게서는 배신자란 소리를 들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이 설명을 듣던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빌리와 그 아버지가 불쌍하다며 엉엉 울었다. 그 시간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집안일을 하던 나는 개드립의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휴일에도 못 쉬고 걸레질을 하고 있는 남편이 더 불쌍하지 않냐. 나를 보고는 눈물이 나지 않느냐"라고 하다가 조금 혼났다.
아내는 임신한 여성을 위한 모성보호시간이라는 제도를 이용해서 하루에 2시간씩 단축근무도 했다. 세보면 주당 30시간의 근무였다. 나는 노르웨이 뺨치는 근무 환경이라며 개드립을 또 쳤다가 이번에는 조금 더 혼났다. 빈정이 상해 있던 나에게 오가는 직원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선생님은 좋은 아내 만나서 장가 잘 갔다는 생각을 해야 돼요. 집에 가서 잘 좀 해주세요. 옥 선생님이 너무 고생하셔서 얼굴에 살이 너무 빠졌어."
하루에 한 대여섯 번씩 이런 말을 듣자 나는 격분해서 외쳤다.
"아니 걔가 시집을 잘 갔을 거라는 생각은 왜 못해요?"
딸의 이름도 지었다. 처음에는 아들이면 재하, 딸이면 서하로 지을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다가 아들이든 딸이든 재하가 낫겠다며 그걸로 짓기로 했다. 아내도 좋다고 하다가 어느 날에는 서하도 예쁘다고 하는 것이었다. 혹시 그 이름도 써보고 싶어서 하나를 더 낳겠다고 할까 봐 겁이 났다. 재빠르게 '한국인의 이름 통계'라는 사이트를 찾았다.
"이거 봐봐. 서하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78번째로 많이 쓰였고, 특히 2018년에는 1,148명의 여자아기가 이 이름을 써서 23위나 된단 말이지. 우리 딸한테는 좀 유니크한 이름을 지어줘야지."
내 논리정연함에 스스로 감탄했다.
"이에 반해서 재하는 그 10년 동안 1,291번째로 쓰였다잖아. 이걸로 하자."
그래서 딸의 이름은 '재하'로 짓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한자는 자기가 짓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며칠 고민하던 아내는 맑을 재(渽)에 클 하(嘏)를 쓰겠다고 했다. 나는 한자를 쓰지 않을 세대에 그렇게 어려운 글자를 써도 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아내는 자기 이름 아니라고 쿨하게 돌아섰다. 당장에 주민센터에 출생신고하러 가 딸 이름도 못 써서 무식이 들통나고 싶지 않았던 나는 연습장에 깜지까지 쓰며 두 글자를 연습했다.
아내는 드디어 아이 가진 엄마의 로망이라는 태교도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태교'라고 쓰여있는 책들을 싹쓸이해 온 아내는 배를 당당히 내민 채 나에게 읽어보라고 했다. 나는 딸이 듣고 있다는 생각에 또박또박 읽으며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책의 내용들은 다 엉망이었다. 온갖 잡범들이 나와서 뻥을 치는 동화에다가 동물도 주인한테 사기를 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곧 사람도 죽어나갈 판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 동화 편' 인 것 같아서 아내에게 물어봤다.
"옥아- 이거 혹시 내용 안 보고 제목만 보고 빌려온 거야? 차라리 '고대 그리스의 영광과 몰락' 같은 책이나 보는 게 낫겠다."
아내가 주먹질을 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웬일로 내 말이 맞다며 빌려온 책은 다시 가져다주고 그 역사 책이나 가져와 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잘 읽고 있냐고 카톡을 보냈는데 몇 시간 동안 답이 없었다. 아내는 4월부터 휴직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 터였다. 아무튼 나중에야 답이 왔는데 알고 보니 한두 줄 읽고 잠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어거지로 책 읽는 것보다 꿀잠 자는 게 재하한테 더 좋은 일 일수 있다고 하다가 집에 삼보일배를 하며 들어가야 했다.
그러던 중 엊그제는 아내가 좋은 생각이 났다고 했다. 내가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있을 때였다.
"난 이제 남편이 책 읽는 걸 보는 걸로 태교를 할 거야."
"그래. 같이 읽으면 좋지 뭐."
"아니. 그게 아니고 나 대신 남편이 읽으라고.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한 명만 보면 될 것 같아."
아내는 이제 독서 태교를 책을 보는 남편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하겠다는 거였다. 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태교의 외주화? 용역 태교? 계약서라도 써야 하나? 「을은 갑의 태교를 대신한다」 뭐 이런 거. 아니면 철학적으로 시뮬라시옹 태교라 해야 하나. 완전 보드리야르가 울고 갈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때는 오래간만에 교양인인 척해보려고 큰 마음먹고 장식용으로 책장에 꽂아 두었던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펼쳤던 때였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하나도 안되어서 속으로 '이게 뭔 개소리야' 하고 있었다. 던져버리고 LG 야구나 보려고 할 때였는데 아내가 너무 흐뭇하게 나를 보고 있어서 차마 책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정신병자가 독백하는 구절을 수 십 페이지나 더 읽어야 했다. 나중에는 내가 정신병자인지 정신병자가 나인지 혼미해졌다.
그래도 이제는 재하가 태동을 시작했다. 가만히 배를 만져보고 있으면 아이가 올록볼록하며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불행하게도 재하는 엄마를 닮아 많이 움직이고 특히 밤에 더 뛴다. 우리 엄마가 말하기를 나는 하루에 한 번도 태동을 안 할 때도 있었다는데 재하는 아닌가 보다. 부디 야행성인 것만 엄마 따라가지 말고 생긴 것도 엄마 닮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그리고 다음 주에는 부디 손으로 가리지 말고 얼굴도 좀 보여줬으면 좋겠다.
p.s : 예전에 "정자검사 하는날"(
https://pgr21.net/pb/pb.php?id=freedom&no=77745&page=120)이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셔서 이제 예비 아빠가 되었어요. 다행히 자연임신되었습니다. 가정에 대한 글쓰기 이벤트도 있고, 혹 정자검사의 후기를 궁금해하실 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 올려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