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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7/30 01:50:51
Name 마스터충달
Subject [일반] (스포) <어느 가족>을 바라보는 6가지 시선 (수정됨)
※ 이 글에는 영화 <어느 가족>,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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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쥬리와 린 누가 더 행복할까?

  결말에서 난간 밖을 바라보는 소녀의 눈동자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많은 관객은 쥬리를 걱정했을 겁니다. 아이를 구타하기 위해 옷 사러 가자고 말하는 생모의 눈빛은 악마 그 자체였습니다. 과연 쥬리로서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게 정답이었을까요?

  그렇다면 린으로서 좀도둑 가족과 생활하는 것은 정답일까요? 그 밑에서 도둑질을 배우며, 학교도 가지 못하고, 예정된 낙오자로 자라는 것이 과연 괜찮은 일일까요? 물론 정식 부모 아래서 학대당하는 것보다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이 과연 미래의 가능성과 교환할 만큼 가치 있는 걸까요? 강제로 사회의 경계 밖으로 내몰린 아이는 과연 행복한 걸까요?

  무엇보다 소녀가 쥬리와 린 중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론이 무엇으로 정해지든, 소녀의 삶은 강제될 수밖에 없죠.

  쥬리와 린. 과연 무엇이 소녀를 위해 바람직한 삶일까요? 이것은 정답이 없는 딜레마입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이것을 날카롭게 포착해냈고, 관객의 뇌리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숙제를 남겼죠.





  2. 엄마란 무엇인가?

  영화 <아저씨>에 이런 대사가 나오죠.
  "싸지르기만 하면 애미 애비인가? 애를 돌봐야 할 거 아냐."

  <어느 가족>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옵니다.
  "낳으면 다 엄마인가요?"

  하지만 이번에는 이런 대답이 나오죠.
  "낳지 않으면 엄마가 될 수 없죠."

  아빠와 자식의 관계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물론 유전자 감식이라는 과학적 감별법이 있긴 하지만 그것도 100%가 나오는 경우는 없죠. (그렇다고 99%가 나왔으니 1%의 확률로 자식이 아니라고 우기면 안 됩니다;;) <어느 가족>에는 이를 상기시키듯 영화 초반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애비가 누구인지도 모를걸?"

  그러나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확실합니다. 낳았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니까요. 그게 어머니라는 존재가 갖는 특별한 유대감의 근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낳았다고 엄마가 되는 걸까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전작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통해 낳은 정과 기른 정 중에서 기른 정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를 엄마의 영역까지 확장합니다. 배 아파 낳았다고 과연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는 거야."
  린을 꼭 부둥켜안고 속삭이는 엄마의 대사를 통해 감독은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엄마도 되는 게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라고. <어느 가족>을 엄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렇게 부제를 붙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머니가 된다>





  3.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느 가족>의 구성원은 누구도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할머니와 엄마 아빠는 남남이고, 손녀는 배다른 자손이며, 쇼타와 린은 주운 아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함께 지냈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이미 가족이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행복한 가족이었죠.

  부부를 제외하면 가족은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수많은 비극을 낳았고, 그것을 써 내려간 걸작이 수두룩 합니다. 그런데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어쩌면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영화는 <어느 가족> 또한 자유로운 선택이 아님을 지적합니다. 그들을 규합하는 가장 큰 목적은 바로 '돈'이었죠. 문득 그런 생각이 듭니다. '돈'이라는 강제 수단이 없었다면 이들이 가족으로 뭉칠 수 있었을까요?

  구성원의 혈연관계만 본다면 가족이라는 개념에 혁명을 불러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맥락을 살펴보면 가족이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맺어진 운명 공동체. 그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생각하는 가족이 아닐까요?





  4. 아이들은 무엇으로 자라는가?

  '아이들은 결국 자란다.'
  감독의 전작 <아무도 모른다>를 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그리고 이번 <어느 가족>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쇼타가 아버지에게 배운 것은 도둑질이었죠. 그러나 소년은 성장하며 도둑질이 나쁘다는 걸 깨닫습니다. 계기는 여동생의 등장. 자기가 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여동생까지 도둑질하는 상황은 견딜 수 없었죠.

  "여동생에게는 도둑질시키지마."
  이 말을 들은 소년은 두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여동생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점. 그리고 사랑한다면 도둑질을 시키면 안 된다는 점. 그 마음이 결국 가족의 해체를 불러왔지만, 아마 소년은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소년은 성장하죠.

  어른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고민합니다. 자기가 도와줘야 아이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결국 자랍니다. 때로는 어른들이 따라잡지도 못할 정도로 빠르게 말이죠.

  그리고 그 계기는 언제나 그렇듯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며 아이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쇼타는 그렇게 '조금' 어른이 되었습니다.





  5. 일본의 윤리

  <어느 가족>에는 일본의 여러 가지 치부가 담겨 있습니다. 형식적인 노인 복지, 빈약한 노동 환경, 일자리 부족, 성 상품화, 가정 폭력... 어느 국가라도 자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데 달가워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발전할 수 있죠. 근대 중국인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담았던 <아Q정전>은 중국 교과서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산업화의 이면을 들춰낸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교육 과정에서 다루고 있죠.

  하지만 일본 정부는 <어느 가족>을 부정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에도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일본 여당에서는 '일본에는 그런 가족은 없다'라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일본의 정치와 여론이 유독 폐쇄적이라고는 하나, 이쯤 되면 어딘가에서 들었던 한 마디가 떠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의 윤리는 들키지 않으면 괜찮다고 여긴다."





  6. 안도 사쿠라

  <어느 가족>에는 주인공이 없습니다. 주인공을 꼽자면 가족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와 분량 모두 공평하게 분배되어 있는 데다, 어느 배우 하나 빠짐없이 훌륭한 연기를 보여줍니다. 심지어 아역의 연기도 좋죠. 배우의 연기력도 중요하지만, 그걸 끌어낼 줄 아는 감독의 역량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한 배우에게 마음이 쏠리고 맙니다. 엄마 역할을 맡았던 안도 사쿠라입니다.

  "당신을 뭐라고 불렀나요? 엄마라고 불렀나요?"
  "모르겠어요."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담담한 척 닦아내는 장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성의 정수였습니다. 비극적 감정을 폭발시키지 않고 정답이 없는 딜레마 속에 응축시키죠. 그렇게 안도 사쿠라는 묵직한 눈물을 흘렸습니다.

  <백엔의 사랑>을 봤을 때부터 안도 사쿠라의 매력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가족>을 통해 거장을 만나 잠재력을 폭발시켰습니다. 안도 사쿠라의 연기는 아마도 오랜 시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치며...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모노노케 히메>가 있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는 <어느 가족>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작가가 집요하게 물어온 '가족'에 관한 사상을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더군요.

  하지만 꼭 철학적이고 묵직한 물음 때문에 이 작품을 좋아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질문 이전에 가족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먼저 다가옵니다. 심지어 <어느 가족>에서는 섹스도 가족답습니다.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닌데? 글을 쓰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영화 장면이 떠오르며 포근한 느낌이 온몸을 감싸 안습니다.

  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Written by 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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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suweet
18/07/30 07:27
수정 아이콘
(수정됨) 가족이란 무엇인가, 왜 가족이 되는가에 대한 고민이 깊게 배어있는 영화였습니다.

혈연관계는 아니지만 손녀의 기분을 그 누구보다도 잘 캐치하는 할머니, 팔 한쪽의 상처를 보고 함께 마음아파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단편적으로나마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들을 주었다는 생각도 들구요.

안도 사쿠라의 마지막 심문씬은 대본 없이 진행되었다고 하더라구요. 감독이 그때그때 화이트보드에 질문을 써서 수사관 역할을 맡은 배우에게 대사를 전달하고, 어머니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는 그에 맞게 그때그때 대답하는 방식으로요. 이 장면에서 안도 사쿠라가 했던 대답들이 이 영화의 핵심을 짚어낸다고 생각합니다. 감독 또한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아직 답을 냈다기보단 글쎄요, 가족은 무엇일까요 하는 고민을 관객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앞서 말한 장면부터, 너무나도 자연스런 섹스신, 한치의 고민없이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를 선택하는 부모의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한 안도 사쿠라라는 명배우를 발굴한 좋은 영화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충달님과 다른 해석을 하게 되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쥬리의 엄마가 옷을 사러가자고 하는 행위는 엄마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부채의식의 표현이지, 폭력을 위한 수단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영화 전체에서 그 누구도 절대 악이지도, 절대 선이지도 않다는 메시지를 보낸듯 해서요.

또 가족이 돈이라는 수단때문에 가족이 뭉쳤다고 영화 초기에 전제하지만, 사실 영화 내내 이들이 실은 돈 때문에 뭉친게 아니라는 표현들을 내보이죠. 아키의 부모님에게 받은 돈은 고스란히 모여져있었고, 다코야키정도는 돈 주고 사먹을 정도로 최소한의 여유는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감독 또한 이들이 행하는 도둑질이 생존을 위한 것이기보다 하나의 취미 내지 습관처럼 보이기를 바랐다고하더군요.

영화를 보는 내내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했는데, 영화는 답을 주기보다는 같이 고민했던거 같아요. 질문은 던지는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하니, 제게도 이 영화는 좋은 영화였습니다.
마스터충달
18/07/30 09:08
수정 아이콘
그 영화에서 옷 살 때 "때릴 거야?"라고 묻는 거 보고 '옷 살때 마다 혹은 옷사러 가자고 하면서 때리는 구나'하고 생각했어요. 애가 다시 돌아왔는데 또 때릴 생각하는 걸 보고 정말 섬뜩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킹이바
18/07/30 10:39
수정 아이콘
저도 그 부분은 충달님의 의견이랑 비슷하네요. 새옷 사자는 노부요의 말에 안 산다며 "안 때릴거야?" 물어보는 린의 대사, 다시 쥬리가 집으로 돌아간 뒤에 엄마가 쥬리에게 옷 사러 가자는 얘기를 하는 건, 쥬리가 "죄송합니다"를 하지 않았을 때니까요. 두 상황을 유추하면 옷 사러 가자며 꼬드겨서 폭력을 행한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또 한가지. 고레에다가 등장 인물들 모두 선악의 양면성을 그려낸 건 맞습니다만 쥬리의 엄마 아빠에 대해선 그러한 묘사를 던지지 않았죠.
순해져라순두유
18/08/03 21:29
수정 아이콘
옷 사러가자는건 맞을래?랑 같은 의미인 거라고 이미 쥬리가 이야기 했죠
그부분은 조심스럽지만 이견이 나올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 되요

심문씬이 애드립이였다는건 놀랍습니다
안도 사쿠라라는 배우에게 세번 놀라네요 오늘
Semifreddo
18/07/30 08:02
수정 아이콘
많은 고민 끝에 만들어진 듯한 영화였고 보고 나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였습니다. 보면서 [플로리다 프로젝트] 생각도 났었네요
Multivitamin
18/07/30 11:21
수정 아이콘
저도 플로리다 프로젝트 생각났었는데요. 둘다 주제도 비슷하고 정말 좋은 영화였네요.
99유리
18/07/30 09:16
수정 아이콘
임신한 누나와 함께 대학로로 아무도 모른다를 보러 갔던게 생각나네요.
다 보고 오는 지하철에서 누나가 영화때문에 계속 울어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이상하게 쳐다봐서 난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누나 뱃속에 있던 조카놈이 벌써 중학생이 되었으니 시간이 꽤 지난 일이네요.

어느 가족도 봐야겠습니다.
유지애
18/07/30 10:32
수정 아이콘
오늘 12시 40분에 상영인데 이 글 보고 바로 보러 달려갑니다
마스터충달
18/07/30 12:19
수정 아이콘
고고고~
양현종
18/07/30 10:49
수정 아이콘
노부요랑 할머니는 어떤 관계인가요?
마스터충달
18/07/30 12:03
수정 아이콘
생판 남이죠.
신중맨
18/07/30 23:03
수정 아이콘
저도 플로리다 프로젝트 생각 많이나더군요
동서양의 가족관 차이랄까.. 그런 생각도 많이나고
라이브톡으로 봤는데 이동진 평론가님이 질문할때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감독이 당황하던 모습은 참 귀여우시더군요
서지훈'카리스
18/08/01 02:24
수정 아이콘
저도 안도사쿠라가 눈물을 거칠게 닦던씬
계속 기억에 남네요
오마이걸효정
18/08/03 07:46
수정 아이콘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들, 인상깊은 장면들, 배우들의 연기까지
히로카즈 감독님이 만들어 오던 가족(?)영화를 집대성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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