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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4/05 23:10:17
Name Farce
Subject [일반] [7] 아우슈비츠와 주토피아 (수정됨)
이 글은 영화 주토피아에 대한 내용누설을 포함합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께는 양해를 구합니다.

아우슈비츠와 주토피아,
또는 개인적으로 이해한 ‘현대’의 역사.

1.아우슈비츠

유럽인들은 산업혁명이 끝난 자신들의 유럽을 돌아보면서, 스스로 정말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인류가 그려볼 수 있는 지도에 빈 공간이 사라졌으며, 신문은 뛰어난 과학자들의 두뇌를 통해 새롭게 하늘과 바다,
현미경 속 보이지 않는 세계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 인간의 언어로 바뀌어 기록되는 모습을 생생히 전달하였다.
성서의 복음보다도 생동감 있고 나에게 떡을 주는 과학의 복음이 펼쳐지는 시대, 항생제, 냉동고기, 기성복, 커피,
형광등, 종이책이라는 단어 앞에 ‘싸구려’라는 단어가 붙을 수 있는 세상, 태양을 거부하고 저녁에 일할 수 있는 세상,
결코 이전 시대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괴이한 일이 가득한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행복할 일 밖에 남지 않았다고 유럽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어떻게 세상이 이보다 좋을 수 있다는 말인가?

백인 아버지들은 딸기잼과 치즈, 그리고 빵이 올려져있는 하얀 식탁보의 식탁머리에서 웃으면서 아들을 가르쳤다.
“토마스 칼라일은 ‘프랑스 혁명사’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하기를,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귀족들의 실패는 빈곤을 낳았고
민중은 빈곤에 대해서 분노했으며, 분노는 그 어떤 철학보다도 단호하게 귀족들을 부수고 세상을 회복시켰다고 했지.
하지만 철학이 없는 프랑스의 혁명은 빈곤했으며, 지나치게 피가 흘렀고, 역사를 이해하고 지배하는 우리들은 온건히
세상을 고쳐 유토피아에 도달하였단다. 내일 또한 또 다른 선택받은 백인의 자손이 만세의 권리를 이어받을 것이야.“

영원한 세상의 권리를 얻은 백인들은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기계를 계량했다. 왜냐하면,
굳이 멈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계는 더 나아졌고, 인간은 더 멀리까지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었다.
가질 수 있는 것의 목록이 늘어나니 더 강렬하게 무언가를 원하고 서로의 욕망의 크기를 비교했다. 어느 순간부터
기계뿐만 아니라 인간이 계량되고 사회가 계량되었다. 따라서 쥐새끼들이 항상 굶주리는 것처럼 인간의 무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싶어졌다. 마치 그렇게 맹렬히 갈구하면 언젠가는 공허함이 멈추기라도 할 것처럼 착각하며.

산 사람을 대하는 것치고는 무심한 월급쟁이들의 무심한 관료제, 식민지의 유사인간을 갈아 피 맛이 나는 빵을 만드는
착취 기구, 무언가를 죽이는 것에 확실한 맹독의 살충제가 아름다운 중산층의 차고 창고 한 구석에 쌓이고 있었지만,
아무도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광기 넘치는 핏줄 말고 아무것도 없었던 봉건 시대보다는 태평성대가 아닌가.

하지만 세상은 아름다운데 나는 힘드니까 누군가의 잘못이 필요했다. 열심히 일할수록, 사람들은 전통사회를 잃었고,
같은 일을 하면서 같은 꿈을 꾸며 쓰러져 자는 평온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사람들은 항상
신체의 경계를 풀 수 없는 이방인에 불과하며, 미치광이 살인범의 소식이 대중매체를 통해 편집증을 팔아 돈을 벌었다.
한편 돈에 있어서는, 사고 싶은 물건의 가격은 내가 열심히 야근해서 타낸 월급과 같은 속도로 나로부터 멀어져갔다.

어쩌면 세상에 사람이 너무나도 많은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 사람도 있었다.
아니면 잘못된 사람이 너무 많이 내 것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는 아닐까.

여기서 다른 인간을 뭉뚱그려 사람이라고는 부르지만, 이제 우리는 타인을 상상하는 귀찮은 창의력을 필요로 했다.
농노일 때는 아는 것이 뻔 한 옆집 농노가 어떤 사람일지 내 입장에서 상상해보는 귀찮은 일 따위는 하지도 않았는데,
내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추악한 괴물, 정신병자, 상종하기 싫은 괴짜들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돈으로 대화를 대신하다보니 나에게 시금치를 판 농부 제임스 노인이 존경받는 집안의 어르신인지
신문 속 연쇄살인법인지, 손녀를 강간하는 몹쓸 소문 속의 그 사람인지 내가 자세히 알 방법도 없었다. 알기도 귀찮다.
반면 의견이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일은 재미있고 반박이 거세된 대중매체만 알고 싶은 나에게는 불쾌한 일이 됐다.

미치광이 세계에 처음 떨어진 백인들은 역사적인 그 순간에 자신들이 왜 힘든 지를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사람이 아닌 것에 사용되던 살충제와 절멸 시스템, 부서 별로 공문서로 내려오는 학살의 할당량에 매달린 공무원들,
여태까지 효율적으로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장애인과, 말라리아모기를 처리하던 과학적인 접근법,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백인인지 합의가 덜 되었던 유대인에게 사무적으로 독가스를 끼얹어보고 자신들의 고통이 가시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끝내 유대인은 백인이었고 유럽문명은 자신들이 도대체 왜 힘든 것인지 끝내 알 수 없다는 위기에 도달하고 말았다.

우리가 행복하자고 만든 것이 지옥은 아니었을까?
행복이 근대의 산물인 것처럼, 자살이 근대의 산물이라는 것은 왜 우리가 몰랐을까?

“행동주의에 따르자면 정상적인 가정에서 미치광이는 생길 수 없다.” 미국의 정신학자 존 왓슨이 선언했었다.
왓슨의 말이 살아있던 시절에는 인간에게 정해진 답이 있었다. 비도덕적인 가문이 무한히 실수를 반복하거나,
매우 작은 확률로 선천적인 미치광이가 탄생하는 사소한 비극이 일어날 지어도, 인간 사회 전체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왓슨이 그렇게도 인생을 바쳐서 반박하고자 했던 오스트리아인 변태 학자 프로이트가 떠들은 것처럼
인간은 결국 성적인 꿈을 꾸며 부모를 질투하고, 본능적 욕구의 유혹에 노출되어있는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정신병에 걸리기도 하는 잠재적인 미치광이인 것이 증명되었다.

‘삶에 정답은 없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뒤늦게 생각했다. ‘우리는 잘못 살았던 것이구나.’

죽는 것보다 많은 새끼를 치는 것이 목표인 짐승을 초월한 전능하신 인간이 지은 최고의 세계,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최대한 효율적으로 세상을 갉아먹는 굶주린 쥐새끼가 가득한 세계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것도 마지막에는 쥐들끼리 뜯어먹는 아주 매우 배가 고픈 쥐새끼들이 가득한 아귀계.

개인의 삶에서도, 민족국가의 우월감에서도, 공산당의 생산지령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마리화나도 하나 꺼내서 피어보고, 로큰롤도 들으면서 잠시 쉬기로 하였다.

너무나도 약을 많이 한 탓일까.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인척, 유럽인척 하려고하는 배운 깜둥이들과 노랭이들이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튀어나왔는지
여간 신기한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식민지 시절에도 보이지 않았던 아랍인들은 도대체 왜 이리 많이 몰려들고 있담?

2. 주토피아

한편 동물세계에서는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을 아우르는 유토피아가 건국되었다. 이름은 짓기 쉽게 주토피아가 어떨까?
주토피아는 하나의 거대한 도시, 문명의 최고봉에 해당한다. 무엇이든지 될 수 있고, 원하는 것은 뭐든 구할 수 있다.

그러나 도시는 야생의 본능이 단체 거세당한 정신병적 장소이다. 동물들은 지하철에서 신문을 펴야만 했고,
지금은 이어폰과 스마트폰이 있어야만 한다. 모르는 사냥꾼과 사냥감 사이에서 졸지도 않고 훑어보지도 않고
예의를 지키며 있는 것은 맨 정신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십년 넘는 복종의 결과물이다.
오늘은 내가 기분이 안 좋으니 내 앞에서 꺼져달라고 소리를 치는 것도, 궁금해서 남의 주머니의 반짝이는 물건에
손을 대는 것도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다. 본능을 반납하기로 합의한 동물들은 최대한 많은 정신병자들을
찾아 가두고 평안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첼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서
도시가 ‘복종하는 신체’를 찾아나섰다고 꼬집었다. 짐승들은 서로를 감시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의 가짓수를 늘렸다.

이 주토피아에서 구성 동물들은 본능을 뛰어넘은 지능의 쾌거에 대해서 크게 만족하였다. 과거는 극복되었고,
생물학적인 근거는 단지 한 때는 우리 선조 중에서 짐승도 있었다는 박물관의 화석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었다.
기술의 진보는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하나씩 극복해서 행복 그 자체인 이상향으로 동물들을 이끌 것이었다.
기술의 결과물들은 충분히 많은 문명의 이기를 제공해주었다. 거대한 쇼핑몰, 복잡한 스마트폰 부품 등이다.
누군가는 이것들을 ‘풍요’라고 이름 붙이겠지만, 정말로 풍요라는 단어에 걸맞은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발전과 경쟁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에서 모든 것이 진부해지고 도태되고 따라서 궁극적으로 다시금 불행해진다면,
그런 상태를 풍요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동물들은 본능이라는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몰랐고,
어느 순간 자신들이 이런 손해를 감수하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일어나고야만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유럽인의 경우에도 같은 원리로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꼈고 자신이 가장 모르는 타자들을 죽이면서
답을 찾아보려고 헤매어보았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졌다. 이유는 뻔했다,
워낙 많이 타자를 죽이고 싶어서 남자들은 모두 전장에 끌고 간 상태였고, 여자들은 집에 아이를 보는 것도 좋지만
탄약을 만들어주면 더욱더 좋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국가는 매우 중요한 정의를 위해서라면 가정의 평화보다도
우리 국가와 우리 민족, 그리고 우리 이념의 평화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선전하였고, 기계는 사실 산업혁명 때부터
그래왔듯이 여성의 손가락에서 많고 저렴한 생산량을 보장해주었다. 발달한 국가의 기계일수록 성별을 따지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무기고가 파시스트들을 지옥으로 보내버리자, 여성에게 집에 들어가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미 서로 좋은 것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 흑인들에게조차도 내키지 않지만 양보를 해야 하는 시기가
와버렸다. 냉전 시대와 냉전 종식 직후에는 민주주의의 황금빛 미래에 대해서 아무도 큰 소리로 딴죽을 걸 수 없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쌍두마차가 21세기 들어 비틀거리기 시작하자 유럽과 주토피아의 거세된 육식동물들은
자신들이 단지 비유적으로만 거세된 것인지 스스로 회의감을 느끼게 되었다. 육식 남성들에게 위기가 온 것이었다.
고도화된 기술은 생물로서의 인간을 죽여 버렸다. 이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자신 스스로가 택한 길이었다.
남성들은 인간이 전능해지길 바라였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과일을 구하며, 바다를 가리지 않고 물고기를 구하고,
땅을 가리지 않고 석유를 원하였으며, 지구 반대편에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원하였다. 모든 것에는 값이
따르는 법, 기계와 제도는 복잡해졌고, 그 복잡함 가운데 근육이 낄 자리는 별로 없었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인 세계는 바라던 대로, 물리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극복 당하였다.
정답이 사라진 파편화의 시대에서 성별은 더 이상 사람에게 삶의 의미를 주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어떤 무신론자에게
사람에게 종교가 가지는 의미를 물어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자신과 경험, 재산, 가치, 취미, 정치성향, 성적취향이 같은
타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리멸렬하게 인터넷에서 얄팍하게 한 가지 분야에만 동의를 구하는 삶이
마찰 없고, 내가 재확인하면서 안심할 주제로만 간편하게 말할 수 있게 해주었다. SNS는 넓은 세계의 다양할 수 있던
사람들을 가장 작고 편한 골방에 분할해서 담아 주었다.

물론 지구 밖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쫓겨나고도 나를 포함하여 아직 교회를 가는 사람들이 있듯이,
자신의 성염색체에서 세상의 ‘잘못된 죄악’을 찾고, 삶의 올바른 가치와 자신의 안정감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힘든 어떤 남성들은 외쳐보았다. “어쩌면 우리는 남자니까 공통점이 많을지도 몰라, 동무!”
인터넷에서 이런 집단들이 쉽게 만들어진다는 것은 거꾸로 얼마나 빈약한 상호이해로 유지되는 집단인지를 증명한다.
과거의 호걸이라면 같이 벌꿀주를 나누어 마시지도 않은 사내들과 글자로 연합한다는 사고에 경악을 금치 못했으리.
세상은 묻고 있었다. 너의 성은 어떤 가치를 가지며, 이 혼돈의 세계에서 어떤 생을 택할 것이냐고. 그러나 그들은
침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말았다. 아니, 나의 반대된 성기를 가진 너희들이 악마라고, 유대 공산주의자라고.
그들이 간단하게 만들어내는 혐오발언에 필요한 것은 막연한 타자에 불과하다. 타자를 그어놓고,
경우에 따라서 맘에 안 드는 존재를 하나씩 넣어보면 된다. 그러면 타자의 규모는 갈수록 커지고
논리는 무한하며 그들은 영원히 행복해 질수 있다. 아무렴, 남자의 삶이 고달프다면 논리적으로 그 모든 어려움은
여성이 꾸민 일이 맞지 않겠는가? 요즘에는 도대체 어떠한 이유로 여자들이 많이 돌아다닌단 말인가?
여성은 남성의 자리를 위협하고 우리 상상속의 남성성을 뺏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자가 없으면 사회는 회복된다.
과거로 돌아간다는 말은 아니다. 빈약한 SNS는 나에게 전능함을 주며, 코카콜라는 달콤하며, 베트남의 커피 농부의
혐오스러운 삶은 내가 밤새서 인터넷에 글을 올릴 수 있게 해준다. 그 사람들은 이런 것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영원히 상상속의 황금기로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오늘 혐오할 적은 있으니까.

애석하게도 이런 빈약한 논리는 오히려 서로 간에 부딪히면서 더 단단해진다. 주토피아의 음모꾼은 초식동물들이다.
그들은 기억하고 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여성의 역사 안에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이 어떤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는지, 지금도 얼마나 이등국민 취급을 당하는지 기억하고 있다. 이들에게 개인적인 사건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남성은 여성이 지배적인 세상에 살아본 직접경험도 간접경험도 없다. 오직 머리 속 개인적인 상상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어떤 남성의 개인적인 경험은 개인적인 경험에 머물고 만다. 백인이 아무리 공감해도 그의 현실은 흑인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여성에게 남성지배사회는 상상과 공감의 영역이 아니라 현실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곧 역사적 맥락과 만난다.
마치 인간에게 비유나 상상으로만 보이는 페로몬이, 개미라는 다른 존재에게 구체적인 ‘눈앞의’ 현실인 것과 같다.

서로 보는 현실이 다를 때, 배타성을 가지기는 쉬워지고, 대화보다는 박멸과 배제의 논리가 매력적이 된다.
영화 속의 갈등이 만연한 주토피아에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동물은 초식동물 중 가장 육식동물을 혐오한 자였다.
그에게 있어 주토피아의 이상은 육신으로부터의 완벽한 해방, 그에게 있어서 의미를 잃은 육식동물들의 해체였다.
자신이 죽기를 바라였던 육식들에게 생물학적 흔적이 많이 남은 맹수가 사회에서 배제되어야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의를 원했던 토끼 경관은 초식동물 세계의 영도자에게 말했다. “이것은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야.”
호혜자일 수도 있는 토끼였지만, 그녀가 경찰이 된 개인적인 이유에는 바로 이 아름다운 도시에
‘질서’뿐만 아니라 ‘화평’을 주기 위한 것이 포함되어있었기에, 그녀의 상관의 망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었다.

여기서 주토피아의 두 주인공인 토끼와 여우가, 모두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사건의 피해자들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어디서 어설프게 선전 문구를 읽어 와서 ‘내가 다 용서하노라’ 같은 뜬구름 잡는 얄팍한 동물상이 결코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직접적인 상처가 있었고, 온전히 극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며, 영원히 고통 받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인 원한을 어떻게 용서를 할 수 있을까? 개인에게 다수가 와서 원한을 잊으라고 하는 것은 다수의 폭력이다.

그러나 용기 있게 초식동물 토끼와 육식동물 여우는 서로의 상처를 털어놓으며 세상을 용서하기로 결심했다.
주토피아가 유토피아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믿음, 우리는 계속해서 올바른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 다는 것,
나의 개인적인 불쾌한 경험이 아니라, 세상 모두의 문제, 내가 용서할 문제가 아니라 세상이 다 같이 용서할 문제,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서 같이 바뀌어야할 모두의 문제로 끌어 올릴 내면의 고귀한 용기가 있었던 것.
내가 어떤 무지한 사람에게 칼로 찔렸어요, 처녀를 잃었어요, 아닌. 나는 집단에게, 나라에게, 시대에게 후벼 파였어요.

누군가는 이런 거대한 인류애에 비웃음을 보낼지도 모른다.
도시의 인간관계만큼 얄팍한 것이 없다고 여태까지 말하지 않았냐고.
그러나 진정한 이해를 담은 수많은 다양한 사람을 품고 사는 도시인의 말은 세상을 울릴 것이다.
도시의 전능함은 무한히 악의와 혐오를 증폭시킬 수 있으니, 무한히 선의와 배려도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항상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름조차 보이지 않던 투명한 유령들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다. 그것은 잘못된 현상이 아니다.
당신들이 자신을 위한 풍요를 만들 때, 그들은 이름 없던 자였고,
당신들이 폭력으로 삶의 의미를 찾을 때, 그들 또한 그들의 의미를 찾았으며,
당신들이 정답을 찾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들이 정답이 될 권리를 구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것에 있어서 알리스 셰르키가 지은 프란츠 파농의 전기가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정확히 아는 것 또한 한국인에게 중요하지만, 다른 나라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것은,
마치 한국이 누릴 수 있었던 자유만이 인간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좁은 소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

폭력으로 얼룩진 알제리 독립전쟁에서 확고한 사상을 가지고 항상 현장에서 행동했던 프란츠 파농의 명복을 빌며,
그가 프랑스 의사들이 진단한 “북아프리카 증후군”을 거부하고 알제리 인들을 유럽인들이 보는 정신병자에서
알제리의 평범한 사람들로 회복시킨 일을 나도 앞으로 조금이나마 따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식민지배의 폭력은 확산되고 재분배되었으며, 식민지에서 본토의 대도시로 옮겨왔다.
이 폭력은 대도시 변두리의 빈민지역에서 파농이 확인한 메커니즘을 똑같이 재생하고 있다.
이제는 식민지에서가 아니라 우리 가까이에서 단절된 두 세계가 나타나고 공권력이 유일한 중개자 노릇을 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폭력을 규탄하고 단죄한다. 다른 곳에서야 사람들이 야만적이라서 폭력이 일어난다지만,
평화로운 우리 사회의 한복판에서, 우리 법치국가에서 폭력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개탄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폭력에 대해 성찰하기를 거부했다. 개인적인 죽음이든 집단적인 죽음이든 그것에 대한 거부로 폭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 자기 삶의 주제로 나서는 것을 방해하는 환경에 대한 거부, 어떤 변화에 대한 호소로 폭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프란츠 파농", 알리스 셰르키 지음, 이세욱 옮김, 실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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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05 23:35
수정 아이콘
긴 글인데 술술 읽히네요. 글 도중에 주제가 막 바뀌는 느낌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8/04/05 23:38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사실 고민하고 고민한 부제 중에서 자주 등장했다 사라진 녀석은 '의식의 흐름으로 쓴 현대의 역사'였답니다. 크크크크.... 주제가 좀 부드럽게 바뀌지 못한다는 점은 저의 글쓰기에 있어서 참 고민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악군
18/04/05 23:44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18/04/06 00:55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애패는 엄마
18/04/06 00:03
수정 아이콘
정말 잘봤습니다
18/04/06 00:55
수정 아이콘
밑도 끝도 없는 글에 이런 답글이 달리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8/04/06 00:20
수정 아이콘
어떤 변태같았던 진화의 압력에 의해 뇌용적만 미친듯이 늘리는 쪽으로 진화하던 호모 사피엔스라는 영장류는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분기해 나와 말을 쓰고, 불을 쓰고, 사물을 구분해 보기 시작하면서 끝간데 없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광선내의 탁월한 색채 구분과 입체시로 수천만가지의 위협적이고, 유용하고, 혐오스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이름 붙혀가며 분별하는 과정에서 편견과 차별에 사로잡혔고,
제 1의 불로 어둠과 숲을 사르며 지구 모든 곳에 다다르고 제 2의 불로 도시에서 밤을 살해하고 잠을 죽여가며 노동하게 되었고 제 3의 불로 전쟁을 끝내고 자기 자신을 끝내려 하고 있습니다.
갓 터득한 언어로 없는 말을 만들어내며 경쟁자를 등 뒤에서 음해하고 되바라진 젊은 것들을 무리에서 몰아내거나 매머드떼에 달려들어 영웅적인 사냥꾼이 되라 선동했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어떤 존재가 그들의 죽은 후를 돌봐준다면서요.
그렇게 아드레날린이 폭주하는 젊은 수컷들이 창 한 자루 들고 날뛰다 상아에 꿰뚫리고 밟혀죽어가며 얻어낸 단백질을 '계약'이라는 언령으로 소환한 '권력'이란 괴물을 부려 전부 자신에게 -선심쓰듯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도- 분배하는 일들을, 올두바이 협곡에서 파타고니아까지 연속해 온 것이
우리, 인간이란 족속입니다.
제 나름의 결론이라면 구별하고, 불을 쓰고, 말하는 인간이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진화해 분기해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유전자의 기백만년에 걸친 변형보다 감마선이 인류 대부분의 유전자 자체를 핵물리적으로 분해해 버릴 확률이 더 높다고 봅니다.
18/04/06 00:37
수정 아이콘
흐흐흐... 제가 어릴 적부터 막연하게 생각했던 대역사와 비슷한 대역사를 생각하고 계셨군요. 저는 사실 군대에서 '호모 데우스'를 읽고, 야 이게 무슨 망상이 아니라 하나의 분석가능한 사회과학이구나! 라면서 놀라서 계속해서 이쪽 방향을 파보고 있습니다. 인문학이 위기라고요? 그런 당신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500RPM 근대성 담론! 뭐 이걸로 먹고 살지는 결코 못할 것 같지만요.

돌고래와 박쥐의 초음파, 개미의 페로몬, 벌의 자외선 시야가 현실인 것처럼, 인간의 언어와 상상 역시 현실일 것이고, 우리는 어딘가로 떠나겠죠. 다만 저는 특이점을 매우 싫어합니다. 본문에서도 "죽는 것보다 많은 새끼를 치는 것이 목표인 짐승을 초월한 전능하신 인간이 지은 최고의 세계, 그것이 무엇이었을까? / 최대한 효율적으로 세상을 갉아먹는 굶주린 쥐새끼가 가득한 세계에 불과했던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표현했듯이, 더 많은 열량의 사용을 통한 전능한 사물의 변형이 인간의 최종 목표라고 하면 그건 정말로 메트릭스를 운영하면서 인간 배터리 농장을 경영하는 기계나 할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인류가 곧 인간을 대체할 기계를 만들고 세대교체를 하고 싶어한다는 생각이 요즘엔 좀 진지하게 들기는 하지만요.

저는 인간이 온갖 사소한 물질적인 걱정에서 끝내 은퇴해서 자신의 의식과 두뇌를 무한으로 확장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인류가 추구해야하는 이상향이라고 생각해요. 고대 그리스인... 정확히는 그 중에서 철학자들이 망상했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를요. 그러고보니 시드 마이어의 알파 센타우리에서 이미 제시한 미래상인데 저도 상상력이 부족하군요!
18/04/0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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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에 발목 담궜다가 위대한 물리학의 아버지 아이작 '템즈 리버' 뉴튼처럼 똥망한 똥멍청이인 제가 예견하는 미래는 대충
레디 플레이어 원의 오아시스같은 가상현실에서 지지고보꼬 내키는대로 광란의 꼐임세계 대탐험하다가 출근하게 되면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에 올라타 필름 끊긴 상태로 로동 비스무리한거 깨작거리다가 다시 Oasis Theft Auto를 즐기러 가는, 현실과 가상이 기묘하게 뒤틀린 미래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18/04/0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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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이런 글은 때때로 저를 참 쓸쓸하게 만듭니다.

상호간에 있을 이해의 범주를 끝모르게 확장해서 세계시민에 걸어버린다면, 결국 우리는 당장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또한 이해받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차라리 제겐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들려요. 제 모든 옷을 풍선에 매달아 저 높은 하늘로 날려버리는 느낌이 드네요. 날려버린 제 옷이요? 언젠가 찾을 수 있겠죠. 어어어언젠가는. 그렇게 비척거리며 우악스런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느니 그보다는 태양이 눈부신 사람을 찾아 그가 날 쏠 수 있게 기다리는 편이 더 나을 거 같아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모형은 결국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을지니, 결국 저는 단자로서의 저만을 체감하는 도리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퍼뜩 듭니다.
18/04/06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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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상당히 거시적으로 쓴 글 맞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씁쓸하고 고집스러운 논리가 담겨있는 글도 맞고요. 정확히 보셨네요.

요즘 어떤 친구를 보는 맛에 저는 살고 있습니다. 생각이 안나면 가볍게 뜀박질을 하면서 산책을 하고, 일터에 출퇴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며, 야구장에서 열정적인 응원과 고함을 보여주고, 어떤 야구경기에 대해서 저에게 말할 기회가 오면 신이 나서 온갖 생생한 표현으로 저를 기쁘게 해주는 친구요. 그 친구에게 세상은 밝고 짜릿하고 새로우며, 자신의 머리 바깥에 있습니다. 저는 그 친구 옆에서 어떤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 중국어 방처럼(Chinese Room) 적절한 대답을 조합해내려고 매번 고심합니다. 이 곳에 있는 것도 비슷한 훈련이고요. 처음에는 매우 부적절한 반응만 보였지만 저는 기계학습(?) 끝에 그래도 나쁘지 않은 친구가 되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성공적인 접근법 중에는 많이 들어주는 것도 있습니다. 물론 그 친구에게 저는 가장 친하거나 가장 잘 통하는 친구는 아닐 것이에요.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죠. 저는 그 친구 옆에서 가끔씩 제 최선과 성의를 다해서 저의 세상을 전달합니다. 제 머리 속에 있고, 어떤 법칙에 의해서 만들어진 물결들이 서사에 따라서 물결치는 추상적이고 색이 없는 세상입니다. 서로 자신의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서 눈이 멀 것 같은 분야는 다른 사람에게 악몽같은 뒤틀린 세계이니 꺼내지도 않습니다. 어차피 그런 부분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 친구가 안되더라도 기회는 따로 있을테니까요.

한 때 저는 절망을 했었습니다. 아사하라 쇼코처럼요. 그 사람은 정말 선을 넘은 천재였지요. 어차피 세상에 어떤 즐거움도 얻지 못할 것, 철저히 창작된 머리 속의 망상을 통해 행복을 찾는 것으로 인류 전체를 구원한다는 참 대단한 사고를 했으니까요. 사이비 종교는 철저히 현대에서 답을 모르겠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기존 종교교단과 다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결국 세상을 품으려고 했던 일개 인간은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미치광이가 되었고. 그의 추종자들이 벌인 테러사건에 대한 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에서 까발려진 그들의 민낯은 결국 머리 속에 세상을 담으려는 시도는 세상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몰이해로 절망 속에서 끝나는 것이더라고요. 이 글은 제 머리 속의 세계가 끄트머리 문턱에 앉아서 머리 바깥의 세계를 어루만지면서 어쩌면 이해할지도 몰라...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지도 몰라...라고 읖조리고있는 처량한 글이 맞습니다.

다만 어떤 사람에게는 작년의 최저시급이 어제의 문제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형평사 운동이 오늘의 문제인 것 처럼. 결국 안경렌즈는 시력에 맞춰서 끼는 것이니까요. 초점이 좀 다를 수는 있다고 봅니다. 저에게 이 글은 세상에서 멀어지려고 쓴 글이 아니라, 무언가 느끼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글이었어요.
18/04/06 10:56
수정 아이콘
중국어 방.. 생각도 않은 이야기가 튀어나와서 놀랐어요. 하긴 서로 불가해의 영역에 있다면 실질적 문맹을 들먹이며 타인을 깔아보는 지적 자위보다 이 쪽이 더 적확한 이야기겠지요..

인간은 해방되었으나,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유인이 되는 대신 예속됨을 자처하더라는 프롬의 일갈은 거창한 이야기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으레 찾아볼 수 있는 일들의 원인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믿게 해서 믿는 건지, 믿고 싶어서 믿는 건지 그것을 세밀하게 떼어내긴 어렵겠습니다마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돌아보는 자라면 누구든 나와 세계를 바라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연결어를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디에 두냐에 따라 그것은 무저갱으로 침잠하는 절망을 드러낼 수도, 절망에서 비로소 나타나는 백마탄 초인의 의지를 드러낼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Farce님이나 저나 항상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덧. 항상 기저에 쌓아두고 있던 생각이 이 글로써 떠오른거지, Farce님이 나한테 극단적인 회의론을 주입한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니 혹여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TheLasid
18/04/06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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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봤습니다 :)
18/04/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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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게 아마도 저의 최소한의 현실인식의 뼈대라고 봐도 될 것 같네요.
18/04/0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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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리가 잘 되는 기분입니다.
18/04/06 17:56
수정 아이콘
도움이 될 수 있었다니 기쁩니다.
metaljet
18/04/06 11:18
수정 아이콘
신선한 통찰이네요.
인구압을 완화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자기들끼리 죽여보고 그 다음에는 저멀리 있는 타자들을 죽여보고..
그 다음에는 자기들 중에 조금이라도 타자적 요소가 있는 사람들을 죽여보고...
이제 더이상은 안되겠다 모두 애를 안 낳아서 천천히 자살하는 선택..
결국 문명의 역사는 무한증식의 본능을 억제하기 위한 싸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04/06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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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압'이라는 표현에는 신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단지 늘어나고 줄어들 뿐인 동물을 초월한지는 인간의 시간으로는 꽤나 긴 수천년이 지났으니까요. 다만 의식과 지능을 통해 무한한 욕망을 다 현실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죠. 물론 인류의 문제라는 것은 인구의 증가, 재화의 낭비, 개개인의 파편화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만 이것을 단순히 '인구압'이라고 표현한다면 정말로 개미굴, 벌통, 돌고래나 사자 무리와 구분이 갈 수 없어진다고 생각해요. 의식이 없는 좀비 무리가 굶주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머리 속에 생각을 하나씩 달고 있는 사람이 직접 선택한 문제들이니까요.

결국 이것 역시 인간의 존엄성은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진화의 생물학이 이끈 길이 아니냐, 결국 생물체가 더 먹으려고 달려드는 것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지않냐라고 볼 수도 있긴 합니다. 제가 읽어본 소설 중에서는 "학살기관"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골적으로 그런 주제를 가진 책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는 언제나 선택권이 있어요. 진화된 본능의 맹수 또는 간사한 악의의 머리털난 짐승만 인간이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라, 절제하고 본능을 다스리는 인간, 악의를 인식하며 선의를 지어내는 사회가 존재합니다. 역사적인 흐름을 읽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인류가 무슨 황금기에서 굴러 떨어진게 현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밑바닥에서 진짜 사람인가 짐승인가 싶다가 열심히 치열하게 올라온게 여기라도 되는 거죠. 이 쪽에 대해서는 다른 글로도 앞으로 많이 찾아뵐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인간의 수명은 무한해지고, 후손의 숫자는 0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 각 개인들의 자아와 영혼은 진정한 무한한 경지에 이를 수 있게 될 것이에요. 저는 그걸 특이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러기 위해서는 물질계에 사는 우리가 무한한 물질을 얻는 법을 먼저 찾아야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건 저에게 있어서 의식으로 동물을 초월한 인류를 가장 발달한 동물로 다시 환원시키는 일입니다. 미래의 주류 담론이 어느 것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저도 아직 특이점 이전의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요. 아마 전근대와 근대 사람이 생물적인 종만 같고 사고 방식이 전혀다르듯이, 저도 아주 틀리고 이해되지 못할 말을 미래로 보내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무튼간에요 metaljet님. 제가 인식한 역사 속에서 인간은 '증식'따위를 하지 않습니다. 다만 '증식'하듯이 무한한 탐욕의 대가를 치르고 있지요. 그래도 결국 언젠가는 답을 찾아나서고 말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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