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8/25 17:18:03
Name 리니시아
Subject [일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낙동강 하구둑 - 아라 서해갑문)

1.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여름방학 숙제를 내준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끼리 여행을 다녀오고 그에 대한 감상문을 제출하는 숙제였죠.
마침 마음맞는 친구 몇명이 있었고 자전거 여행을 가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가스버너, 냄비, 쌀, 라면, 참치, 건빵, 성경책' 등등 잔뜩 들고 속초로 여행을 떠납니다.

아침에는 설익은 밥에 고추장, 참치, 김을 비벼먹으며 패달을 밟았고, 점심에는 건빵으로 끼니를 떼웁니다.
휴게소에서 간식을 대충 사먹고 저녁은 라면과 밥을 대충 말아먹으며 즐겁게 다녔습니다.
그렇게 4일 동안 패달을 밟았고 미시령 고개를 넘어 속초에 도착. 바닷가에서 왕창 놀았습니다.
그 후 자전거로 부산을 가겠다는 다짐을 하였고 10년이 넘어서야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2.
서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고 5일간의 휴가를 받습니다.
마땅히 할 것도 없던터라 어렸을적 꿈이었던 국토종주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 K-water 에서 '청춘 강 달리다' 라는 국토종주 프로그램을 알게되고 신청하게 됩니다.
처음 발표된 당첨자 명단에선 탈락했지만, 결국 당첨이 되었고,
지난 8월 13일부터 21일 까지 8박 9일간 국토종주 여정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3.
40명의 라이더 들이 참여하였고, 한 조에 약 8명씩 5개의 조가 움직였습니다.
단체 라이딩은 처음이었지만, 혼자선 느낄 수 없는 여러가지 재미들이 있었습니다.
체력이 떨어지는 조원을 케어하면서 밀어주거나, 다른 조 들을 추월해서 가는 재미.
좋은 풍경이 나오면 냅다 자전거 제쳐두고 단체로 달려가서 사진을 찍고, 업힐에서 팀원을 독려하며 팀워크를 맞춰가는 건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8명이나 되는 사람들과 한 조를 이루어 9일 내내 자전거 타는 느낌은..
다신 느껴보기 힘든 감정이었고, 여러가지를 배우며 깨닫는 라이딩 이었습니다.




4.저희가 라이딩 하였던 9일동안 펀딩이 진행되었고, SOS 어린이마을에 직접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행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행사 내내 라이더들의 SNS 를 통해서 기금을 모집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프로그램을 참여 하면서도 라이딩을 통해 어떻게 기부를 홍보 할 수 있을까 의아했습니다.
제가 페달을 밟고 국토종주를 하는 모습을 올리고 기부를 해달라고 SNS에 올리는 것.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과연 기부를 하고 싶어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즐겁게 놀고 있으면서 기부를 해달라는건 모순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기부 라이딩' 은 굉장히 생소한 개념이었습니다.
저에게 이번 국토종주는 어렷을 적 소망을 이루기 위함 이었는데,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커더란 문을 마주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행사 7일차에 어느정도 고민이 해소가 되었습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01474
위 링크기사에 나오신 양유진씨가 라이더로 참여하게 되었고 함께 라이딩을 하게 되었습니다.
라이딩, 마라톤, 등반을 통한 기부를 '업' 으로 삼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직업을 택한 것은 본인의 꿈을 향한 길이라는 이야기에 저는 굉장히 놀라며 뭔가 도전이 되었습니다.









6.
8박 9일동안 633km 종주길은 한 명의 낙오도 없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저도 무사히 도착했구요.
원래의 생활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한동안은 멍~ 한 상태일 것 같습니다.
분명 패달을 밟던 9일간은 아무 생각없이 즐겁고 행복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국토종주는 제 나름의 로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토종주를 밥먹듯이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뭔가 맥이 빠지더군요. 종주를 해냈지만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저는 하고 싶었던 꿈을 뒤로하고 현실과 타협하여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반대로 자신의 꿈을 향해 돈도 안되는 일을 하며 도전을 하는 사람을 보고 있노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마냥 즐거울줄 알았는데, 현실로 돌아오니 여러 생각이 드는군요.
일단 제주도 + 동해 까지 그랜드 슬램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잡아야 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6/08/25 17:36
수정 아이콘
우와 이 날씨에... 정말 대단하십니다. 로망을 굳이 남과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흐흐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일정 동안 필요한 물자들은 각자 직접 운반하게 되나요?
리니시아
16/08/25 18:25
수정 아이콘
K-water 측에서 진행하는 행사라 숙박 + 식사 는 일단 주최측에서 해결하였습니다.
그외에 물이나 화장품(썬크림, 로션, 세정제 등은 더 페이스샵에서 후원을..), 자전거 정비는 자이언트 쪽에서 후원을 해 주었습니다.
개인 짐의 경우에는 짐차를 따로 마련하여서 그쪽에 보관하고 맨몸으로 자전거 라이딩을 즐겼다고 보시면 될것 같습니다.
16/08/25 17:40
수정 아이콘
오오.. 수고 많이하셨네요 흐흐
저도 대학교 군대 가기전에 고생한번 하자 하는 마음으로
한달여간 자전거 전국일주를 해 본 적이 있는데,
장마전선이랑 같이 달리느라 진 빼고,
내몸도 무거운데, 옛날 텐트 무거운거 달고 다니느라 고생하고,
참치, 김, 김치, 밥에 물려서 배고프고
자전거도 중간에 잃어버리고(-_-;) (멤버들끼리 십시일반 각출하야 최신형 아스라다를 구입해서 다시달린..;)
한계령 5시간 올라가서 30분만에 내려와보기도 하고,
추억돋네요 헤헤

덕분에 어딜가나 군대얘기하듯이 삼천리 자전거로 오천리는 탔을꺼라며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 후에 오토바이나 스쿠터로 좀 편하게 전국일주해보자는 새로운 로망은 남았지만 아직도 계획만 있네요
리니시아
16/08/25 18:27
수정 아이콘
캬 제대로 여행하셨네요.
안그래도 이번 종주 끝나고나니 잔뜩 짐싸들고 자전거를 타볼까 생각되기도하는데..
Hazle 님처럼 고생하고나면 정말 안주거리가 가득하더라구요 허허허
안스브저그
16/08/25 17:44
수정 아이콘
자전거 종주는 이상합니다. 분명 하는 중에는 힘들고 결국 페달링에 불과한 고행을 왜할까?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풀냄새와 물냄새 바람가르는 소리에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어느순간 또 집에 가고 싶고.
그러다가 목적지에 도달하면 얼라? 벌써 끝인가? 왜 길이 여기서 끝인거지? 더 달릴곳은 없나? 아직 힘이 남앗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튼 이상합니다.

어쩌다보니 국토종주(인천->부산)를 2번 하게됬는데 그냥 페달질에 몰두하는 기분이 좋앗다말고는 뭐가 좋은지 설명하기 참 어렵더라고요.

8박9일이지만 이 더운 날씨에 정말 힘드셨겠네요. 원래 부산->인천구간이 경사가 길어서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낙동강 창녕-달성의 악명높은 4고개와 상주구간의 이름모를 언덕들, 그리고 이화령 소조령에 마지막 아라뱃길의 역풍까지 유독 더운 여름이라 더 힘드셧을것 같습니다.
리니시아
16/08/25 18:28
수정 아이콘
저도 딱 그런기분이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더니 '어라 왜 벌써 끝이나지?' 뭔가 더 밟아야 할것 같은 느낌..
국토종주 두번이나 하셨다니, 길은 아주 빠삭하게 아시겠군요 크크크
안그래도 제 몸에 검은 피부와 흰 피부가 공존하고있습니다.. 하하
곰리마
16/08/25 18:22
수정 아이콘
이거다!
아재요
16/08/25 18:50
수정 아이콘
국토종주에 빠진 여러분, 국토종주가 모자르다 느끼신 분들을 위해 브레베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www.korea-randonneurs.org
저는 허약해서 못 합니다만...
네파리안
16/08/25 20:03
수정 아이콘
저도 2년전에 친구와 둘이서 국토종주 갔었는데 그립네요 흐흐 저는 인천부터 출발해서 부산으로 갔는데 남한강부턴 계속 같은 분들하고 도장찍는곳에서
만나서 서로 친해지기도 하고 라이벌 의식도 생기고 우연히 만나서 같은숙소에서 자면서 친해저서 일행도 늘고 했었는데 사진에 나온 이화령은 진짜 올라가다 죽을뻔 했습니다.
저도 그랜드 슬램 욕심에 작년에 금강-오천 종주 해보니 1박2일 이면 되더군요. 섬진강-영산강도 연결해서 1박2일로 타시는 분들 많아서 연결해서 타시면
주말에도 완주가능하니 가끔 생각나실때 가셔도 될듯 합니다.
도들도들
16/08/25 20:42
수정 아이콘
4박 5일 제주도 한바퀴만 돌아도 힘들던데 대단하십니다.
라이딩에 이유가 있나요. 가슴이 시키는 거지요. ^^;
16/08/25 23:13
수정 아이콘
좋네요. 저는 주위에 자전거 타는사람이 없어서 혼자 인천-부산 다녀왔었거든요. 경기도 여주 이남부터는 마주치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매우 심심했었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7237 [일반] 그 친구에게는 내 오지랖이 그렇게 불편했을까? [114] KOZE12007 16/08/26 12007 0
67236 [일반] 전 세계에서 테러에 의한 사망자가 가장 많은 국가 Top10 [2] 김치찌개4149 16/08/26 4149 1
67234 [일반] 군인의 눈물 [11] lenakim4413 16/08/26 4413 1
67233 [일반] [해외 축구] 16-17 UEFA 챔피언스 리그 32강 조편성 [24] SKY925009 16/08/26 5009 0
67232 [일반] [프로듀스101] 주요 탈락자 근황 정리 [19] pioren6410 16/08/26 6410 5
67231 [일반] 튤립버블 [14] 토다에5583 16/08/26 5583 6
67230 [일반] [EPL 또는 프로스포츠 전반] 어떤 팀을 응원하시나요? [80] 아세춘3974 16/08/26 3974 0
67229 [일반] [8월] 란닝구 [11] 제랄드4940 16/08/26 4940 9
67228 [일반] 필름 영화 vs 디지털 영화 [25] 삭제됨6590 16/08/26 6590 6
67227 [일반] 심장 멎은 택시기사..두고 떠난 승객... [123] 어리버리14391 16/08/25 14391 1
67226 [일반] 유엔, 시리아 정부군·IS '화학무기 사용' 공식 확인 [2] 군디츠마라3594 16/08/25 3594 0
67225 [일반] 외국인 가사도우미와 가사 공간 내부의 협상 [2] 호라타래5348 16/08/25 5348 3
67224 [일반] 딴지가 운영하는 벙커1에서 벌어진 노동 문제 [72] 로빈14456 16/08/25 14456 7
67223 [일반] 여자화장실 탈출기 [26] aura9838 16/08/25 9838 19
67222 [일반] [해축] 300골 이상을 기록한 현역 10인 [30] swear5089 16/08/25 5089 1
67221 [일반] 인디음악 소개 [18] *alchemist*3927 16/08/25 3927 3
67220 [일반] 오마이걸 '진이'양이 활동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70] 유나11639 16/08/25 11639 3
67219 [일반] 자전거 국토종주 후기 (낙동강 하구둑 - 아라 서해갑문) [11] 리니시아5089 16/08/25 5089 9
67218 [일반] [야구] 한화 권혁 검진결과 팔꿈치염증 [34] 이홍기8123 16/08/25 8123 0
67217 [일반] 8월 전기요금이 나왔습니다. [81] 13051 16/08/25 13051 0
67216 [일반] 주로 보는 음악예능 TV캐스트 조회수 순위 [13] wlsak7111 16/08/25 7111 0
67215 [일반] 우리 시야에 아른거리는 벌레 같은 놈들의 정체는?... [61] Neanderthal12733 16/08/25 12733 21
66520 [일반]  [임시 공지] 관련글 댓글화 공지입니다. (클로저스 티나 성우 사건 관련) [29] Camomile10439 16/07/22 10439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