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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6/20 15:11:39
Name 루꾸
Subject [일반] 교환학생 2학기에 느꼈던 감정에 대해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해 보겠습니다.
+수정했습니다. 10 : 57 pm

  지난주 목요일에 마지막 시험을 마치고 미국에서 온 친구와 부산 관광을 하고 뜅굴거리다가 이제서야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이번에는 미국에서 보낸 2학기, 그러니까 fall semester동안 겪었던 저의 우울감과 무력감들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의식의 흐름 진행에 주제도 별로 밝지 않으니 글을 읽으시는 모든 피쟐러분들의 양해를 부탁드리며 기분이 꿀꿀하다 하시면 그냥 여기까지 읽고 다른 글을 읽으러 가셔도 됩니다. 크크크.

  미국 대학교는 quarter(편의상 q라 하겠습니다.)를 사용하는 곳이 많습니다만 제가 간 곳은 운이 좋게도 semester(s라 하겠습니다.)를 사용하는 곳이었습니다. 교환학교로 선정될 때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q제라면 성적을 처리하기도 불편했을 테니까요. s의 좋은 점은 중간에 있는 여름 방학이 무지하게 길다는 것입니다. 한국과 같은 s라고 해도 다른 점이 있었는데 한국의 대학교들은 3월에 봄학기, 6월 중~말에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9월에 가을 학기가 시작되어 12월 중~말이면 겨울방학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학교는 1월부터 5월 초까지 봄학기이고 5월 초부터 8월 말까지 여름방학, 8월 말부터 12월 중순까지가 가을 학기였습니다. 여름 방학은 3달이 넘는데 겨울 방학은 2주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죠.(미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과거 농사를 도와야 했기에 여름방학이 길었던 것이 계속되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아무튼 그런 시스템 때문에 한국에서 기말고사를 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미국에서 다시 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1학기는 적응하기 바삐 지내다가 여름방학이 되어 3달 반 내내 여행을 다니고 가을 학기를 다니게 됩니다. 보통은 교환학생 초반에 향수병이 온다던데 저는 2학기 때 왔습니다. 그것도 잠시 지나간 게 아니라 거의 2학기 내내 우울함을 겪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1학기 때 소심하게 introduction 과목들만 들었는데 성적이 잘 나왔더군요. 그래서 2학기 때에는 멋도 모르고 4학년 졸업반 학생들이 듣는 수업을 덜컥 신청합니다....... 제 학교생활을 통틀어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수업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지난 글에서 썼던 소설 10 챕터씩 읽어가는 수업이 바로 이 수업입니다. 단편 소설 정도는 한 수업에 다 해버리고 장편 소설을 한 수업에 100장 넘게 읽어가야 하는 수업이었습니다.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었네요. 소설 줄거리 자체도 제가 좋아하는 내용이 아니었고 다른 학생들에게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주중에는 거의 소설만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뭐, 성적은 그럭저럭 받았으니 다행이지만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스스로 읽고 싶어서 소설을 읽는다고 해도 그때처럼 엄청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방학 동안의 생활과는 정반대의 생활이라는 것도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여행을 할 때 한 곳에서 오래 있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3달이 넘는 기간 동안 서부 LA, San Francisco, Portland, Seattle, 이 네 도시밖에 다니지 않았고요.(한 도시당 적어도 2주일은 머물렀었고 포틀랜드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네요.) 한 도시당 여행 기간이 길다 보니 계획도 짜지 않고 내키는 대로 여유롭게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작은 마을로 돌아오니 괴리감이 엄청나더군요. 노는 것이라 하면 걸어 다니고 카페 가는 것이 전부였던 저에게 도시 여행은 천국이었고 차 없으면 돌아다닐 수 없는 작은 마을은 지옥은 아니지만, 뭐랄까 마을 크기의 상자 같다고나 할까요.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가 해소되지 않으니 스트레스는 쌓여만 갔고 그 위에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쌓인 셈이죠. 미국에서 찐 살은 이 시기에 찐 것이 아닐까 합니다. 카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보니 학교 편의점 같은 곳에서 통으로 된 아이스크림들을 주구장창 사 먹었거든요.

  하고 싶은 것도 못 하는데 내가 이곳으로 왜 왔는지, 교환학생을 온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살이 쪄서 몸은 무겁고 이빨도 말썽인데다가 음식은 질이 너무 나쁘고 가족이랑 친구들도 보고 싶고, 아무튼 일상의 많은 부분이 우울로 점칠 돼 있었습니다. 1학기 때에는 새로움에 적응한다고 이런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그때 못 느낀 만큼 2학기 때에 크게 오더군요. 내가 오고 싶다고 해서 온 건데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걱정을 할 가족들에게는 도저히 말을 못하겠고, 지난 학기에 친해져서 2학기에 한국으로 돌아간 언니에게 자주 전화를 한 기억이 납니다. 전화해서 우울함을 다 이야기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해서 한 번은 3시간이 넘도록 통화를 한 적도 있네요. 그때마다 언니는 귀찮은 내색 한 번 없이 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해 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고 싶네요.

  기숙사 방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지난 학기에는 방이 기숙사 방 중에서 가장 큰 방 중 하나였고 불도 형광등인데다가 창이 넓어 해가 떠 있는 시간 동안 불을 켜지 않아도 될 정도로 밝았습니다. 그런데 가을 학기의 방에는 창문을 열 수 없는 구조였는데 양쪽 건물에 가려 햇빛도 들어오지 않고 무엇보다 노란 불이라 아주 싫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싫어해서 해가 지기 전까지는 불도 켜지 않고 어두컴컴하게 지내서 잠시 놀러 온 언니가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스스로가 이렇게 햇빛에 예민하고 민감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미국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부산 집은 남향이라 늘 밝아서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밥 먹을 때랑 화장실 갈 때 빼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다른 언니들이 어딘가 갈 때에도 가지 않고 매트리스와 이불 사이에 들어가 꾸물거리고 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화력이 약해짐에도 폭식을 하는 타입인 저는 그나마 살을 덜 찌우겠다고 오전에 폭식하고는 그 뒤로 아무것도 안 먹는 등 몸에 아주 좋지 않은 식습관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시리얼을 먹고, 쿠키들을 먹고, 통 아이스크림들도 먹고, 샐러드도 먹고, 체하지 않은 게 신기할 만큼 많이 먹었네요.

  여름방학 때 까지는 교환학생으로 지내는 장점들을 알았다면 2학기 때에는 단점들을 배운 거라 생각합니다. 부산과 가족, 친구들에 대한 향수병과 저에게는 너무 어렵게 느껴졌던 수업, 그리고 이동이 제한되는 데에서 나오는 우울감을 그때에 처음 느꼈으니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이 시기를 겪으면서 교환학생을 가려는 주위 사람들이 있으면 어느 나라를 갈지 보다 그 대학교가 위치한 마을이나 도시가 어디인지를 더 따져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쓰이는 영어를 배운다면 미국이 좋을지도 모르지만, 지원할 때의 제가 스스로를 더 잘 알았더라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라도 도시(예를 들자면 싱가포르 같은)에 있는 대학교에 지원했을 겁니다.

  한국에서 지내는 지금에야 그 때를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나에겐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댓글에 적었듯이 그런 우울감을 그 곳이 아니면 겪지 못했을 거고 그 곳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았으니까요. 2학기가 1학기 같은 생활만 이어졌다면 지금의 저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일부터 장마라길래 어떻게든 밖에 나가보겠다는 일념으로 노트북을 챙겨서 카페에 왔는데 까먹고 충전기를 안 들고 왔습니다. 이럴 때에는 스스로가 참 멍청하게 느껴지네요. 노트북이 잠시 기절할 것 같아 우선은 이 상태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오타 수정 및 내용 정리는 집에 가서 충전을 하며 하도록 하겠습니다.

  2학기 때 느꼈던 감정들을 언젠가는 한 번 적어봐야 할 것 같았는데, 장마가 온다는 소식에 더 우울해지기 전에 글을 써야 할 것 같아 오늘 부랴부랴 글을 썼습니다. 앞으로 약 한 달간 오는 장마 잘 버티시기 바랍니다. 월요병도 잘 이겨내시면 좋겠네요. 저는 대학생이라 방학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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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20 15:48
수정 아이콘
지난 글도 봤었는데, 글을 읽다 보니 같은 작성자인지 알겠더라구요..^^

저 또한 미국 남부(Alabama 주)의 시골에 교환학생을 다녀왔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긍정적인 기억이 훨씬 많았던 것 같은데, 확실히 미국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남성적인 문화가 훨씬 강한 곳 같아요. 저는 그런 문화가 개인적으로 잘 맞아서 매일 야외에 놀러다니며 프리스비 하고, 주말마다 캠퍼스 내 대학교 야구팀, 농구팀 경기를 보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대중교통이 없다시피 해서 승용차의 유무가 아주 영향이 큰데 저는 중고 승용차를 소유해서 운신의 제한 없이 정말 그야말로 잘 즐기고 왔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주말에 몇차례 미국 현지인 친구 집에 초대받아 하룻밤 자고 오곤 했는데, 그 환상적인 전원의 삶이 너무나도 값진 경험이었고 그립습니다. 미국을 다녀와서 그런 전원의 삶이 제 인생 목표가 되었는데 지금은 조그만 책상에 갖혀서 창 밖 미세먼지만 바라보고 있네요 ㅜㅜ

이것 저것 할 이야기가 많지만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개개인마다 느끼는 점은 다를것입니다. 하지만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먼 이국땅에서 먹고 자고 정규교육기관에서 수학한 경험은 그 결과를 떠나서 충분히 일생에서 값어치있고 보통 사람들은 겪기 힘든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 당시 웃고 울었던 기억이 결국은 자신을 보다 단단히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16/06/20 22:38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서류 준비 말고 그 나라의 그 마을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간게 잘못인것 같습니다. 작은 마을이라고 해도 한국처럼 있을건 다 있겠지... 라고 생각한게 잘못됬었네요. 1년 동안 지내면서 한국에서 있었다면 절대로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했습니다. 공부도 그렇고 그냥 사는 것도요. 언젠가는 도움이 되겠죠?
아리아
16/06/20 15:49
수정 아이콘
제가 그래서 미국에서 독일로 나라를 바꿨습니다
이유는 독일이 유럽여행하기 좋은 위치였다는 것 하나였습니다 크크
16/06/20 22:39
수정 아이콘
독일!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도 독일 교환학생이 있었지만 공대에다가 공인성적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좌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크크크
확실히 유럽에 가면 여행하기에는 최고일것 같습니다.
치맛살
16/06/20 15:57
수정 아이콘
귀국하고선 우울감 같은거는 싹 좋아지셨나요?
16/06/20 22:40
수정 아이콘
귀국 후에는 싹 좋아졌습니다! 가족들이랑 친구들도 볼 수 있고 한국 음식을 먹으니 자연스레 1년동안 찐 살이 빠지더군요.
사실은 4학년이 된 터라 우울할 시간이 거의 없기도 했습니다!
16/06/20 17:51
수정 아이콘
대학생 여자분도 피지알을 하네요. 신기...
어린 나이에 새로운 경험들을 하고, 고독과 우울을 겪고...
그런것들이 너무나 큰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자양분을 가지신것 같아서 부럽습니다.
그리고 문맥마다 칸을 좀 띄어쓰셔야 읽은분들이 좀 편합니다.
저도 글보자마자 뒤로 가기 했다 제목이 좀 관심이가서 다시 읽었습니다.
16/06/20 22:42
수정 아이콘
피지알도 2학기 때 우울우울하게 있다가 우연히 알게 된 사이트에요!
당시에는 정말 힘들어서 울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우울감도 한국에 있으면 겪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좋게 봐지더라구요.
팁 감사합니다! 얼른 글을 수정해야 겠습니다.
16/06/20 18:52
수정 아이콘
교환학생이 아닌 일반 유학생이였던 경험아닌 경험에선 그 트라우마같던 기억들이 사라지고 나면 다시 나가고 싶어지실지도 몰라요.. 외국에 오래있음 있을수록 한국에서 복작복작 즐거웠던게 떠오르지만 막상 한국에 일상에 지치는 순간 어느샌가 나갈 준비를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죠
16/06/20 22:43
수정 아이콘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나갈 계획을....!!
당장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나가려고 꾸준히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외국 한 번 나갔다 오니 다시 안 나갈 수가 없네요. 크크크
다혜헤헿
16/06/20 20:16
수정 아이콘
좋은 인생경험하셨네요.
포틀랜드... 참 그리운 이름이네요. 두어달 지냈을 뿐인데 주도라고 하기엔 생각보다 아담한 사이즈에 "소비세"없음이 기억이나네요.
거기서 지냈던 호스트 분들이 너무 좋은 분들이었는데 이제는 연락하기에 너무 오랜시간이 흘러버렸습니다
장점, 단점, 사람... 외국 경험은 정말 누구라도 한 번은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16/06/20 22:44
수정 아이콘
포틀랜드가 여행자에게 좋은 도시인게 소비세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호스트 언니가 소비세가 없기 때문에 다른 세금이 비싸서 사는 사람들에겐 별 차이가 없다고 하던데 저는 여행자라서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포틀랜드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하네요.
프로듀사
16/06/20 22:24
수정 아이콘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좀 더 시골을 즐기도록 해 보세요~
도시에서만 살던 분들은 시골 가면 싫어하더라고요.
그래도 좀 더 오래 있으면 적응하는 사람이 많고요.
16/06/20 22:46
수정 아이콘
다음에는 더 알아보고 가서 즐기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차도 사고요.
부산토박이로 지내다가 갑자기 작은 마을로 바뀌니 적응하기 힘들더라고요.
그곳에 더 오래 있을 예정이었더라면 차도 샀겠지만 1년 밖에 안 지내는데 차를 사기에는 저의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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