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6/10 01:08:20
Name 아름답고큽니다
Subject [일반] 잠 못 이루는 밤
저는 언제부터인가, 수면이 인생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떠올랐습니다. 전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시작된 이 불면증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불면증은 저녁과 새벽 사이, 수면이 가장 이상적인 시간대에 절대로 잠이 들지 않는 증상입니다.

수면시간 자체는 남부럽지 않게 하루 8시간 씩은 꼬박꼬박 잤지요. 하지만 그 시간대가 문제였습니다.

작년 이맘 때쯤 시작된 이 증상은 처음에는 새벽 4~5시까지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현상으로 시작했습니다. 항상 제 시간에 잘 자고 일어나던 저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는 병이었죠.

거기에 한 번 잠이 들면 알람 시계를 듣지 못하는 깊은 잠을 자는 편이라, 아침이 다되가는 시간에 수면을 취한다는 것은 곧 아침 수업을 가지 않는 다는 것과 일맥상통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수업을 다녀와서 잠을 청하니, 너무나도 당연히 오후 수업을 출석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강구한 방법은 몸을 아예 강제로 피곤하게 만들어서, 일찍 자도록 만들자는 대책이었는데, 대뇌는 너무나 야속하게도 친구들과 축구에 동아리 공연 연습 강행군을 마치고 걸쭉하게 찌든 상태에서도 각성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이 각성 상태라는 것이, 몸은 너무 피곤하고 더이상 어떤 동작도 취하고 싶지 않은데 이상하게 누워있으면 잠이 오지 않는 괴이한 상태라, 공부를 할 수도, 게임을 할 수도 없는 완벽하게 무의미한 시간을 매일 밤마다 보내게 만드는 것입니다.

육체의 피곤함이 수면과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한 저는 두 번째 도전을 도전했습니다. 아예 완벽하게 밤을 새고 새 삶을 찾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히 전 날 아침 7시에 잠을 청하고 12시 정오에 일어나 오후 수업만 다녀온 저는, 그 뒤부터 절대로 침대에 눕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하루를 보내고, 지루하고 긴긴 새벽을 보내고, 아침을 보내고, 아침과 오후 수업을 모두 다녀오고, 6시가 넘었지만 완벽한 황금 시간대-10시와 새벽 1시 사이-에 자리라 다짐하고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상황에서도 조별과제와 친구들과의 치맥파티까지 참석하고 11시가 다 되어서야 집에 왔습니다.

사실 제대로 걷고 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피곤한 상태라 당연히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꼬라지를 하고도 한 시간이 넘게 깨어있었습니다. 제가 보통 이부자리에 누워서 30~40분에 한 번씩 시간을 확인하는 데 두 번 확인하고 잠이 들었으니 조금 더 흘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그날은 적정 시간 대에 수면에 빠져들었고, 다음날 아침 7시에 상쾌하게 일어난 저는 그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올 때 잠이 들었습니다.

이 마저도 실패했구나, 싶어 다음에는 아예 취침 가능한 시간대인 이른 저녁, 즉 저녁 6~8시에 잠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그 때 잠을 자서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영위하는 패턴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럭저럭 성공적이라 작년 하반기는 별 무리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으니, 이런저런 이유로 조금씩 취침 시간이 늦어지다가 시간이 10시를 넘어가게 되는 순간 다시 원래의 불면증이 도져버린 겁니다.



카페인이 문제인가 싶어 콜라마저 끊었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수면 시간이 문제인가 싶어 하루 8시간에서 하루 4시간으로 줄였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운동이 문제인가 싶어 밤에 홀로 등산도 다녀와봤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통받던 나흘 전, 마침내 수면유도제를 사왔습니다.

첫 날은 수면유도제를 먹고, 밤 12시에 잠에 빠져들어 다음 날 오후 5시까지 침대를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머리가 깨질 것 같더군요.

둘째 날은 수면유도제 반 알을 먹고, 밤 10시에 이부자리에 누워 다음날 정오까지 비척댔습니다.

셋째 날은 수면유도제 삼분지 일 알을 먹고, 새벽 1시에 이부자리에 누워 12시 정오에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완벽한 수면유도제 분량은 1/4알, 쿼터알이었던 것입니다!

이 황금비율의 발견에 저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고, 오늘 1/4알을 곱게 잘라 삼킨 후 10시에 누웠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1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남은 3/4알을 마저 먹은 뒤 누웠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수면을 취할 때 이외엔-적어도 수면을 시도할 때 이외엔-침대에 눕지 않고, 침대에선 그 어떤 행위-핸드폰, 독서 등-도 하지 않으며, 낮잠도 절대 자지 않고 커피나 핫식스를 음용하지 않으며 잠이 들기 직전엔 게임도 운동도 그 무엇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롤챔스-진에어도 봤지만 저는 밤과 이른 새벽 사이에 잠이 들어 아침에 깔끔하게 일어나는 진정한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그저 부족한 수면을 이끌고 아침에 강제로 일어나 학교를 가서 하루 종일 피곤에 찌들어 만사에 짜증을 내고 공부도 게임도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은 겉멋-아침형 인간이 되었을 뿐이지요.



지금 시각은 새벽 1시.

여전히 잠은 오지 않습니다.

다시 누우러 가보겠습니다.

한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ZolaChobo
16/06/10 01:26
수정 아이콘
저도 군대에서부터 불면증에 고생중입니다. 유도제가 아닌 진짜 수면제를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너무 두려워 마시구요. 술과 함께하지만 않는다면 좋은 약이에요.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0:29
수정 아이콘
유도제만 먹어도 상태가 멍한지라 ㅠㅠ
ZolaChobo
16/06/10 12:14
수정 아이콘
유도제를 먹으면 멍해집니다. 적당량의 수면제를 먹으면 안 그래요.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7:39
수정 아이콘
아 제가 아는 것과 반대였네요...
라울리스타
16/06/10 01:30
수정 아이콘
저도 학생때는 다음 날 1교시가 있어도 항상 2~4시 사이에 잠들었습니다. 멍한 상태로 회사 인적성, 면접 보러 간적도 많고...그러다 망치면 내 자신이 한탄스럽고...

그렇게 저는 제 스스로가 불면증이 있는 사람인줄 알았건만.....

신기하게도 직장 생활을 시작하니 자리잡고 눕기만 하면 기절하는 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0:29
수정 아이콘
정말 다행이네요.
연필깎이
16/06/10 01:37
수정 아이콘
워... 말만 들어도 고통스럽네요...
푹, 잘 잔다는게 얼마나 축복인 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메피스토
16/06/10 01:44
수정 아이콘
리듬이 무너지면 그렇게 되더군요.. 저도 불면증 엄청 심했는데..
잠 안오면 아주 잠 안자고 밤 새서 커피를 먹건 뭘 하건 하루 버티고 밤 아니면 안자고 해서 억지로 시계돌리는걸 이 삼주 해서야 자연스럽게 딥슬립이 되더라고요. 주말 껴서 하루 주무시지 마시고 다음날은 밤 10시에 쓰러져 자보세요. 그럼 어찌어찌 돌아가더라고요.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0:29
수정 아이콘
아 그걸 몇번을 반복해야 하는군요...
행운유수
16/06/10 05:52
수정 아이콘
저 지금 잠 못자고 댓글달아요..
한 시간 있다가 일어나야 되는데..ㅠ
16/06/10 09:25
수정 아이콘
병원은 가보셨나요? 불면증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걸려있고 다른 정신질환으로 악화 될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록 쾌차하시길 빕니다.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0:30
수정 아이콘
병원 가볼 생각은 안했는데, 한번 가보겠습니다.
무무반자르반
16/06/10 09:32
수정 아이콘
저녁늦게 2시간 정도 걷기 하시면 매우 효과 좋습니다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0:30
수정 아이콘
강도가 높은 운동이 아니라 그냥 걷는 거죠? 한번 해보겠습니다.
무무반자르반
16/06/10 11:27
수정 아이콘
네 그냥 왕복 8km짜리 코스잡고 걸으심 됩니다
검정치마
16/06/10 11:27
수정 아이콘
저도 대학교다닐때 혼자살고 하니까 생활패턴이 새벽 4~5시에는 자고 오후에 일어나서 아침 수업 못가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잠은 안오고 게임좋아하니까 게임하는거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또 늦게자고 늦게 일어나는 반복이었습니다.
정상적인 패턴을 만들고자 안자고 생활하다가 밤 11시에 누어서 새벽 1시쯤 잠에 들고, 졸렸지만 오전 8시에 강제 기상했습니다. 한 5일 지나더니 결국 이전과 같아졌어요.
저도 약 먹기도 하고 별의별 쌩쇼 다했는데 직장생기고 자리잡으니 늦게 잘레야 잘수가 없더라고요. 11시쯤 되면 진짜 피곤해져서..
성의없는 말 처럼 들리겠지만 진짜 직장잡고 사회생활하면 고쳐지더군요.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7:39
수정 아이콘
그래도 언젠간 나아진다니 다행이네요...
16/06/10 12:38
수정 아이콘
햇빛 많이 쬐시는 것도 한번 ... 전 이게 효과가 있더라구오
지직지직
16/06/10 12:50
수정 아이콘
저도 걸어다녀서 나어졌어요. 호르몬 문제라고 생각해서 일어나자 마자 햇빛쬐면서 30분에상 걸었고 밤 10시쯤 나가서 노곤노곤 할때까지 가로등도 없는곳에서 2시간씩 걸어다녔습니다.
16/06/10 13:36
수정 아이콘
자기전에 스마트폰 보지마세요. 저도 불면증있다가 자기전에 폰 떼어두고자니까 나아졌어요
아름답고큽니다
16/06/10 17:39
수정 아이콘
스마트폰은 무조건 발밑에 두고 안켭니다 ㅠㅠ
AspenShaker
16/06/10 14:09
수정 아이콘
번뇌는 무겁지만 글을 참 재밌게 쓰시네요
쿼터알먹고 잠은오지않았 이부분에서 터졌습니다
저는 무조건 자야할 순간이 오면 롤챔스 틀어놓거든요
굳이 진에어 안틀어도 좋아하는팀 누워서 보다보면 정신을 잃던데.. 진에어경기를 보면서도 그러신다니 굉장히 무겁게 다가옵니다 꼭 좋은 방법을 찾으시길
카미너스
16/06/10 17:39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데 참 살기 힘드네요.. 신기한건 밤에는 죽어도 잠이 안 오는데 낮에 자려고 하면 3분만에 잠이 듭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5685 [일반] 지엠2 향후 예상 겸 뻘글 [8] 사상의 지평선3499 16/06/10 3499 0
65682 [일반] 다윗의 막장 신곡 '박사를 꿈꿔도 되나요'가 공개되었습니다. [27] jjohny=쿠마7181 16/06/10 7181 16
65681 [일반] [야구] 김성근과 한국인의 냄비근성. [114] 서현11500 16/06/10 11500 1
65679 [일반] 쓰레기 유전자 (Noncoding DNA) 와 유전자 감식 [19] 모모스20139467 16/06/10 9467 11
65678 [일반] 회한 [5] 글자밥청춘3399 16/06/10 3399 12
65677 [일반] 사돈의 팔촌(2015) _ 묘하게 야하더라니까? [20] 리니시아11494 16/06/10 11494 2
65676 [일반] [KBL] 김태술 삼성行 외 기타 리그 소식 [18] ll Apink ll4092 16/06/10 4092 0
65675 [일반] 고음병? 고음혐오, 저음평론가. [47] 성동구9705 16/06/10 9705 9
65674 [일반] 배달 식당 자영업자분들이 전화폭탄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29] 어리버리12317 16/06/10 12317 0
65673 [일반] [I.O.I] 유닛 멤버가 공개되었습니다. [84] Leeka8860 16/06/10 8860 0
65672 [일반] 기생충에 대한 또다른 인간의 방어법 IgE [16] 모모스201311104 16/06/10 11104 6
65669 [일반] 와.. 참신하게 한방 먹었습니다(아오 이놈의 activex) [21] Tiny6859 16/06/10 6859 0
65668 [일반] X염색체 - 인간의 기본형은 여성? [40] 모모스201311361 16/06/10 11361 3
65667 [일반] [프로듀스101] 주요 탈락자 근황 정리 + 근황 기사 추가 [40] pioren11131 16/06/10 11131 1
65666 [일반] 잠 못 이루는 밤 [23] 아름답고큽니다4037 16/06/10 4037 3
65665 [일반] VR 단편애니 <PEARL> [4] 인간흑인대머리남캐5031 16/06/10 5031 0
65664 [일반] [야구] 인간계 1위는 과연 신계를 추월할까요? [52] 흐흐흐흐흐흐10710 16/06/09 10710 0
65663 [일반] TV조선 강적들 그리고 네이트 판 [17] 장난꾸러기8449 16/06/09 8449 1
65662 [일반] CJ E&M, 지상파 광고매출 처음으로 추월 [39] Leeka8450 16/06/09 8450 0
65660 [일반] 다시 태어남 (라식 후기) [45] 이혜리15164 16/06/09 15164 5
65659 [일반] 아가씨 보고 왔습니다~ (스포?) [10] 빙봉4216 16/06/09 4216 2
65658 [일반] 데킬라, 숙취의 추억. [16] 헥스밤5500 16/06/09 5500 13
65657 [일반] [EXO] 신규 엘범 이야기 [28] Leeka4927 16/06/09 4927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