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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03/10 13:03:26
Name Quantum
Subject [일반] 바둑이라는 게임의 깊이, 그리고 인공지능.
이세돌 vs 알파고 덕분에 며칠째 계속 흥분된 상태로 있고,  일이 손에 안잡혀서 글하나 남깁니다.
80-90년대에 인공지능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좀 공부해본 적이 있었고,
지금도 전적으로 머리쓰는 일에 종사하고 있어서 그런지 이 대결에 특히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제 이전에는  5:0혹은 혹시 이세돌이  실수할 지도 모르니  4:1 정도로 배팅했었다가,
솔직히 어제 대국을 보고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몇가지 떠오르는 바를 적어볼까 합니다.

사실 이번 대국의 가장 큰 의의는 이미 어제의 시합으로 드러났습니다.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왔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갈수있는가를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는것이죠.
이 첫번째 의의에서 봤을때는  이번 5번기에서 누가 최종승자이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세돌선수가 4:1로 이길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바둑이 최정상급프로기사와 견줄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보여준 셈이죠.
이것만으로도 정말 큰 사건입니다.


두번째는 바둑이라는 게임의 규칙이 가지는  "깊이" 라는 측면입니다.
저는 게임을 완전히 끊은지 10년이 넘어갑니다만, 과거에는 다양하게 게임에 몰두했었고, 스타도 한동안 열심히였기에 pgr에 오게된것일테지요.^^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은 어렴풋이 느끼겠지만, 게임에는 깊이라고 말할만한 개념이 존재합니다.
어느정도 파면 끝이 보이는 게임이 있고, 파도파도 끝없이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는 게임이 있죠.

다분히 모호하기는 합니다만, 제가 가진 "게임의 깊이"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이것은 계산능력을 증가시키는것으로 실력을 증가시킬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하게 하려면 논문을 써야할 형편이고 읽기는 관련분야가 아니라면 더 어려워질테니
일상언어로 어떤 의미인지 대충 스케치해보겠습니다.  


예를들어보죠.

만약 암산대회를 한다고  해보겠습니다.  철저하게 cpu 파워 메모리용량에만의존하는 게임이 될것입니다.
행렬의 역함수를 구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동일한 방법을 썼을때 결국 계산능력의 승부로 판가름 나지만
한쪽은 지수시간이 쓰는 여인자전재(cofactor expansion)으로 역함수를 구하고, 한쪽은 다항시간이 걸리는 가우스 소거법을 쓴다면
여인자전개를 쓰는쪽에 제아무리 컴퓨팅 파워를 가져다 쓴다한들 가우스소거법을 쓰는쪽을 절대로 이기지 못합니다.

다시말해  게임의 승부란 결국 방법x계산능력 으로 나게 되는데,
어느 시점이 되면 계산능력으로는 실력을 증가시킬수 없는 게임들도 있습니다.

예를들어 안면인식을 하는 확률로 게임을 한다고 했을때
처음에는 신경망의 사이즈, 레이어의 층수 등등 컴퓨팅 파워에 의존하는 수많은 단계가 있기에
좋은 컴퓨터를 쓰면 쓸수록 승률이 급격하게 증가할겁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컴퓨팅 파워를 아무리 증가시킨다고 해도 승률의 증가가 형편없어지고
결국 거의 반반이고, 운에 따르게 되는 순간이 올겁니다.
안면인식한다 라는 게임의 깊이가 바닥을 드러낸것이고,
이 게임은 아무리 계산능력을 증가시킨들 인간과 컴퓨터의 승률이 큰 차이가 나기 힘들겁니다.

저는 이 순간을 한계해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 순간의 정의는  승률은 계산능력의 투입에 대한 함수로 주어질때를 의미합니다.

만약 한계해법에 도달했을때,  
그것이 더하기 게임처럼, 계산능력에 대한 선형일수도 있고,
아니면 안면인식게임처럼 계산능력의 증가와 무관해질수도 있습니다.


체스는 수읽기가 절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임이고
결국은 수읽기가 완벽해지도록 컴퓨팅파워를 증가시키는 쪽이 이기는 게임이기에
컴퓨터 성능이 늘어나면서 금방 인간최고수를 초월해버렸죠.
체스의 한계해법에 도달한것인지는 모르지만 알수있는 사실은
어쨌든 한계해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계산능력이 결정적이고
인간이 가진 계산용량으로는 한계해법에 도달할수 없는 게임이라는게 결론인 셈이죠.


자.. 바둑이라는 게임을 생각해보죠.

한계해법에 도달했을때,
계산용량의 증가로 실력을 증가시킬수 있는 게임인가의 문제가 첫번째일겁니다.
그리고 그 한계해법에 인간이 근접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두번째입니다.


한계해법에 도달했다면, 그리고
바둑이라는 게임의 해법이 종국에가서는 계산능력의 투입으로 승률을 올릴수 있는 게임이었다면
그 이후에는 바둑이라는 게임이 인류사에 지니는 가치는 줄어들고 레포츠의 영역으로 남을겁니다.

반대로, 만약, 한계해법이 없다면
아니면 한계해법에 도달했어도 계산능력의 양적인 투입으로 승률을 마냥 높일수 없는 게임이라면
바둑이라는 게임의 깊이가 굉장하다는 뜻이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든지 안하든지간에  충분히 연구될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볼수있을겁니다.

바둑에서의 승리가 계산능력의 단순 증가로는 해결할수 없는 상황이기에,
인간을 넘어서느냐 마느냐를 떠나서
메모리늘리고 시피유늘리고 그런식으로는 실력을 더이상 늘릴수 없으니
바둑이라는 게임규칙은 앞으로도 충분히 연구할 가치가 있는겁니다.
인공지능끼리의 대결만으로도 충분히 도전적인 과제가 될테니까요.


이건 바둑이라는 게임규칙이 얼마나 깊이있는 원리를 품고있느냐의 문제이니
인간과의 승부와는 관계없는내용일겁니다.

한가지 흥미로는 포인트는
만약 한계해법에서의 상황이  계산능력의 향상으로 실력을 늘릴수 없는 종류의 게임이라면,
인간의 두뇌가 가진 계산용량으로 도달할수 있는가?
여부일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남은 4국의 승패에서 조금 엿볼수 있을겁니다.

만약 이세돌이 5:0 혹은 4:1로 진다면
두가지 입니다.  인류는  아직 바둑의 한계해법에 도달하지 못했었고
어쩌면 인간의 두뇌가  가진 수읽기 능력으로는 한계해법에 도달하는것이 불가능한것을
강력하게 시사하는것입니다.
아직 인간의 반도체 제조기술은 발전될 여지가 꽤 남아있는걸로 보이고
곧 알파고보다 훨씬더 많은 컴퓨팅파워를 동원할수 있게될겁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바둑의 연구는  인공지능에게 바톤을 넘겨야될것입니다.


만약에 남은 대국에서 팽팽하게 진행되거나 이세돌선수가 이긴다면,

희망적으로는  바둑이라는 게임자체가 한계해법에 가까이갈수록
계산용량의 투입으로 승률을 올릴수 없는 게임이라는 뜻일수도 있을겁니다.
어쩌면 인류는 이미 한계해법에 도달했고
이미 계산승력으로 실력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일런지도 모르죠
아니면 아직 한계해법까지는 한참 남아있는데 알파고의 계산능력이 거기에 한참 못미치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앞으로,
알파고의 후속으로 더 나은 바둑인공지능이 속속 등장할텐데,

과연
인간vs인공지능으로 귀결될까요?
아니면 인공지능vs인공지능으로 귀결될까요?

어느쪽이나 바둑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탐구한다는 입장에서는 인류의 도전임에 분명합니다.
한계해법이 가시화될때까지는 끊임없이 계속될 이 도전,
개인적으로 바둑이라는 게임이, 한계해법에 도달했을때  계산능력으로 어쩌지 못하는 게임이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바둑이 먼 미래에도 훨씬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뜻이니까요.

아, 이제 이세돌vs알파고 제2국을 경청할 시간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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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푼 카스텔
16/03/10 13:18
수정 아이콘
관련 글들을 읽을때마다 지금이 좁게는 바둑역사와 인공지능역사에 한획이 되는 장면이라는게 실감이나네요
세츠나
16/03/10 13:20
수정 아이콘
임해봉 9단이 '바둑의 신과 3점 접으면 해볼만하고 목숨이 걸렸다면 4점 접겠다'고 했고 서봉수 9단은 '2점이면 충분'이라고 했다는데 저는 이 판단을 존중합니다. 아마 알파고의 실력이 최정점에 이르면 인간 최고수 상대로 3~4점 접을 수 있는 정도까지 실력이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알파고는 바둑의 신과 동급이 되는거죠. 고스트 바둑왕에 나온 '신의 한 수'도 이 정도 수준일거에요. 만약 5점 이상 접어야할 정도로 실력이 늘어난다면, 인간이 상상한 바둑의 신조차 초월하는 겁니다만...알파고의 한 수가 곧 진정한 신의 한 수가 되겠죠.
16/03/10 13:40
수정 아이콘
그렇죠. 바둑이라는 게임의 깊이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저는 한계해법에서 계산능력이 곧 바둑이라는 게임의 본질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물음이 '맞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일단 컴퓨터도 어쩌지 못하는 무한대에 가까운 경우의 수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경우의 수를 대폭 가지치기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의 기보를 가지고 학습하면서 컴퓨터도 경우의 수를 줄여나간 것이겠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인간에게 컴퓨터 수준의 연산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바둑을 제일 잘 둘 것 같기는 합니다. 일종의 사이보그; 라고 해야하나. 그런데 어느 정도 이상의 연산 능력을 가진 사이보그 둘이 대국하게 만들면 계산 능력 하나로 승패가 갈릴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왠지 드네요.
16/03/10 14:13
수정 아이콘
알파고는 인간이 둔 기보를 학습해서 현재에 온 것이고 그 사고체계는 결국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것들의 집합체라고 생각을 해보면,
알파고가 아무리 잘 해도 결국 인간 최고수의 그것과 동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인공지능 기계가 가장 무서운 점은 항상 최선의 수를 둘 수 있다는 점, 즉 실수가 없다는 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신이라는건 전지전능의 문제가 아니라, 실수없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과 같은 알파고의 학습 방식이라면, 체스건 바둑이건 최고수의 인간이 기계를 못이기는 건 어쩌면 방심과 실수의 영역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차피 제 의견이 별 의미도 없지만, 알파고가 빅데이터의 학습을 통해 창조적인 수를 낼 수 있을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조적인지를 인간이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요..)
Singularity는 누적된 데이터의 학습과 같은 다운-탑과 같은 방식에서 오는게 아니라, 바둑의 근본 원리 체득과 같은 탑-다운 방식으로 이뤄질거 같습니다.
인간이 과연 그 둘을 구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누적된 데이터의 학습을 통한 인공지능이라면, 결국 이창호나 이영호 같은 인간계 괴물에 의해서 또 뒤집어질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6/03/10 14:22
수정 아이콘
저도 여기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알파고들 끼리 대국시켜서 생산된 기보를 가지고 더 깊이 게임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학습물의 생산을 인간에 의존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 되는거라.
암흑마검
16/03/10 14:23
수정 아이콘
뒤엣말은 제가 능력이 안 되어 이해가 잘 안 되지만 "신이라는 건 실수 없는 모습 그 자체"라는 말에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얼마나 무서운지도 느낌이 오는 것 같고 말입니다. 이래저래 알파고 이세돌 바둑 대전은 참 많은 흔적을 제 맘에 남기고 갈 것 같습니다. 제가 바알못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16/03/10 14:34
수정 아이콘
체스의 경우는 방심과 실수의 영역이라기 보다는
컴퓨터가 가지는 인간에 비해 압도적인 수 읽기 능력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진 계산용량으로는 실수와 방심이 제로라도 컴퓨터를 이기지 못합니다.

바둑의 미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지점은,
과연 바둑이 체스와 같은 상황이냐이겠죠.
계상용량의 증대가 실력의 증대로 이어질것이냐..

남은 대국이 흥미로운 것은 그걸 엿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16/03/10 17:51
수정 아이콘
와... 정말 알파고는 제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네요.

승패자체보다도 승부의 내용이 충격적입니다.
인간의 두뇌가 가진 계산용량으로는 바둑의 한계해법에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걸 느꼈네요.

이세돌 9단도 그렇지만, 다른 프로기사들이 받을 충격도 만만치 않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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