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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1/05 02:55:14
Name epic
Subject [일반] [스포없음]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가벼운 사명감으로 이 글을 씁니다. 누군가는 나중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못한걸 안타까워할 것 같아서요.

저는 3d 영화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초창기에, 장면장면 안경쓰거나 벗으라고 몇 초 전에 신호를 보내는 영화부터 해서 아바타까지
여러 편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이, '이건 나랑 안 맞는다.'였죠. 마치 예전에 유행했던, 펼치면 튀어나오는 입체 카드의 케익 위에 달린 양초들
같다고나 할까요. 얇은 단면의 종이 촛불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앞 뒤로 늘어서 있는. 신기하면서 가끔은 생생한 현실감에
놀라지만 지속적인 위화감이 거슬리면서 눈도 아프고- 매번 중반 이후로 '이거 그냥 2d로 봤다면 훨씬 나았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그래서 이제는 3d 붙은 상영관, 시간표는 피하고 영화를 고르게 됐습니다. 그러다 최근 ''호빗'은 기존의 3d에 비해 훨씬 위화감이 적다.'는 평을
보고는 오랜만에 3d 상영관을 찾았는데 결국 새로이 다짐을 하게 만들더군요. '이게 최신 기술로 만든 최선이라고? 이제 3d는 절대 안 본다!'
그래서 '라이프 오브 파이'도 그냥 2d 상영관에서 보고선 생각이 조금 바뀌더라구요. 이 영화의 영상들만은 3d로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2d가 아쉬워서가 아니라 3d로도 보고싶다는 느낌입니다.
(딱 한 번만 본다면 2d '아이맥스'로, 되도록 중간 조금 앞쪽에서 보는게 최고 아닐까 싶습니다.)

종종 pgr로 치면 유게란에,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구상에서 가장 신비한-'으로 시작하는 게시글에 나오는 여러 사진들에서 봄직한
비현실적인 절경들이 거대한 스크린에서 펼쳐지는걸 보는 것만으로 이 영화는 가치가 있습니다. 거기에 cg의 힘을 빌린 환상들이 덧붙여져서
황홀감을 더합니다.
이 영화를 나중에 (극장 스크린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은 화면으로, 그리고 떨어지는 화질로 보는건 다른 영화들에 비해 커다란 손실 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심지어 (물론 실제로 있다는게 아니라 예를 들어) cd 1장 분량의 캠코더판으로 보더라도 충분히 전율할만 합니다. 스토리의
탄탄함과 명료한 주제 또한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이 영화의 위압적인 영상들은 주제에 맞물려 있기에 더욱 강한 인상을 줍니다.  '어떻게든 이쯤에서 굉장한걸 끼워넣어서 돈 좀 벌어보자'는
티가 너무나는 영화들이 있는데 반해 스토리상으로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반드시 필요한 영화 였습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추천하기는 좀 애매하긴 합니다.
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인 '동물과의 교감'과 '표류기 - 극지에서 살아남기'는 보편적인, 메이저급의 소재들이고 대부분
재미있게 볼만 합니다. 그런데 '파이'가 표류하기 전까지의 일대기를 그린 부분은 지루하다는 평이 많더군요. 하지만 결말까지 보고나면
왜 앞에 그런 장황한 '설명'들이 필요했는지 알게 됩니다. 또한 '일대기' 부분이 없었다면 그 표류기가 얼마나 비현실적으로 보였을지도
돌이켜보게 되구요.
'가볍게' 보기에는 다소 무거운 주제 또한 걸립니다. 이 영화는 닫힌 결말이지만 열린 결말처럼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냉소적인
영화이면서 따뜻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어느 쪽이건 오래도록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 입니다.

그렇다고 딱히 무시무시한 예술영화도 철학영화도 아닙니다. 단순히 한 소년의 극적인 표류기로 보더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이고-
다시 말하지만 그 영상만으로도 후회 안들만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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