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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3/08 00:35:29
Name ohfree
Subject [일반] 신림동 고시촌으로 가주십시오.
회사 근처에서 기분 좋게 한잔 하고 집에 들어가는 택시를 탔다.

'신림동 고시촌으로 가주십시오'
'예'

라고 시원스럽게 대답해 주시는 기사 아저씨. 잠시 후에

'복개천 쪽으로 가면 되지요?'
'복개천이 어디 있는지 제가 잘 몰라서요. 그냥 기사님이 잘 아시는 길로 가주시면 됩니다.'


기사 아저씨가 빽미러로 내 얼굴을 힐끔 한번 본다.

'공부 하시나 봐요.'
'예' (응? 왜 예라고 그랬지.)

'공부 무지하게 열심히 하시나 봐요. 동네에 있는 복개천도 모르시고'
'에이. 공부 열심히 했으면 제가 고시촌에 있겠어요? 서울지부 검찰청에 있겠죠. 공부 열심히 안해요.'

이번엔 내가 백미러를 통해 기사 아저씨의 얼굴을 훔쳐 본다.
웃는듯, 마는듯 엷은 미소를 띄우고 있다.

'공부 하신지 오래 되셨어요?'
'학교 졸업하기 전부터 했으니까 쫌 된거 같네요.' (왜 이렇게 거짓말이 술술 나오지.)
'나이가 어떻게 돼요?'
'서른 조금 넘었습니다.'
'힘들어도...그래도 힘내요. 고시 공부 하시는 분이니까 다들 똑똑 할거에요. 나야 멍청해서 공부 하나도 안했지만서도...
늦더라도 좋은 결과 있을테니까 열심히 하시고 나중에 나같은 사람들에게 힘이 돼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네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리고 거짓말 한거 죄송합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살도록 할게요.)


택시는 내가 매일 보았지만 이름을 몰랐던 복개천을 지나 고시촌 앞에 도착했다.
6120원이 찍힌것을 보고 만원을 드리니 기사님이 4000원을 거슬러 주셨다.


좋은 사람들과 술도 먹고 기사님께 좋은 말도 듣고 택시비 120원도 깎아줘서 철권도 한판 더 할 수 있고...

집에 들어갈때 왠지 '설렁탕이라도 한 그릇 사들고 가야할거 같은' 늦겨울의 어느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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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03/08 00:40
수정 아이콘
곧 봄이 옵니다
세미소사
12/03/08 00:47
수정 아이콘
지방에 살아 태어나서 딱 한번 신림동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2년전이었나 3년전이었나 친구만나러 간건데 택시기사에게 바가지 당했습니다.

똑같은 곳에서 갈 때 돈이 올 때의 두배더군요. 딱봐도 제가 서울지리 모르게(촌스럽게?) 생겼나봅니다. 흑흑..

택시 창 멀리 밤늦게 강가에서(맞나?) 농구하던 젊은이들이 기억에 남아있군요.

좋은분 만나서 기분 좋으시겠네요.
밥잘먹는남자
12/03/08 00:48
수정 아이콘
회사원...이신거죠??
12/03/08 01:07
수정 아이콘
'복개천 쪽으로 가면 되지요?'
'복개천이 어디 있는지 제가 잘 몰라서요. 그냥 기사님이 잘 아시는 길로 가주시면 됩니다.'

솔직히 위의 부분까지 읽었을 때...
지리를 잘 모르는 점을 이용해서 빙 둘러 가는 바가지 택시 기사 경험담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
저는 그런 적이 워낙 많아서요 ㅠㅜ
DivineStarlight
12/03/08 01:13
수정 아이콘
신림동 고시촌 오락실 철권 6 BR이 200원이니까 글쓴이님은 100원짜리인 철권 태그를 한다는 사실이 유추되는군요? (어?)
꺄르르뭥미
12/03/08 01:20
수정 아이콘
복개천은 개천의 이름이 아니고 도로등으로 개천을 덮어둔 상태를 의미합니다. 도림천의 신림역~대림역 구간이 복개되어 도로 밑에는 사실 하천이 흐른다고 하네요 ^^
12/03/08 08:29
수정 아이콘
신림동 주민은 아니지만, 그곳에 많은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재밌게 읽었네요. 녹두의 여름밤이 무척 그립군요.
12/03/08 10:03
수정 아이콘
지리를 잘 모르는 점을 이용해서 빙 둘러 가는 바가지 택시 기사 경험담이 나올 줄 알았습니다.(2)

그나저나 신림역 근처로 이사온지 3달정도 되어가는데 고시촌이 어디인지는 전혀 모르겠네요 한번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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