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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1/05 07:53:43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민족사관과 실증사관. 어느 것이 중요할까?
실증사관 : 과거의 객관적이고 분명한 사실만을 역사로 인식하는 사관
민족사관 : 식민사학에 대항하여 자민족의 우수성과 주체적 발전을 강조하는 사관

위키백과에 있는 두 가지 사관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럼... 잘 알려진 두 명의 사학자와 비교해 보죠.

-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이런 그의 주장에 예시가 될 만한 것이 있습니다. 거북선이 철갑선이란 것에 대한 부정이죠. 대략 간추려 보겠습니다.

- 영국 해군의 보고서에 "세계 최초의 철갑선은 거북선"이라고 한 것이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그걸 그대로 인용했고 일본인들은 그걸 부정했다. 이건 양국의 논쟁 거리가 되었다. 일본인들 주장이야 반박할 가치도 없지만, 이충무공전서에서 철판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것을 보면 최초의 장갑선이라 할 순 있어도 최초의 철갑선이라 할 순 없다.

-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 하는 것이 더 명예롭긴 하지만, 만들지 않은 것을 만들었다고 할 수 없다.

당위가 아닌 사실, 더 좋으니까, 더 우리 맘에 드니까 그러는 게 아닌 실제를 중시하는 태도. 이 정도면 실증 사관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를 주장한 사학자의 이름은...

















민족사학의 시초라 불리는 신채호입니다.

두 번째 사학자입니다.


아마 지금도일 것 같은데, 교과서에서는 동이족의 범위를 이렇게 잡고 있습니다. 이른바 산동 동이인데, 이는 현재는 부정되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의 기준에 산동은 포함돼 있지 않았고, 이 지역을 그냥 동이라 불렀다는 것이죠. 이후 진-한이 되면서 이 지역이 중화에 속하고, 동이는 더 동쪽으로 밀려납니다. 고구려가 신라를 동이라 하고, 조선이 일본을 동이라 하는 상황에서 동이가 하나의 민족을 뜻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이건 한 사학자의 주장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이런 민족주의적인 입장을 계속 했죠. 위만을 조선인으로 여긴 것도 그였습니다. 위만이 연나라 사람이라면 위만조선은 중국의 식민지나 다름 없으니까요. 이런 당위에 의한 주장, 한국사에서 중국의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는 입장, 민족사관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이 지도에서 동이의 영역은 과장되지 않은, 실제 환단고기에서 고구려의 영역과 같습니다. 사실상 이 사학자의 주장에서 환빠들의 주장이 시작된 겁니다. 뭐 교과서에도 남아 있으니 학계라고 뭐라 할 순 없겠군요. 아무튼, 이 주장을 한 사학자는...



뭐 -_-; 예전에도 몇 번 얘기했으니 바로 얘기하죠.


한국 실증사학의 시초, 이병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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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지식인에서 신채호 관련 글에서 본 댓글이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실증사관 말고 민족사관 하면 안 되요?" 였던 것 같은데요. 현 대한민국에서 이 둘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실증사관은 민족 그따위 거 없이 그냥 객관 객관 객관적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한 한국의 사학자들 중에 "민족"이라는 말을 뺀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 정말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간 전에 "민족"이라는 말을 빼고 한국 얘기를 논할 수 있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나마 최근에 요동사 얘기 같은 게 좀 탈민족주의로 갈 뿐이죠.

실증사관을 시작했다는, 근데 그 실증사관을 일본 학자로부터 이었기에 식민사학자 소리 듣는 이병도부터, 그 제자 이기백부터 모든 학자들은 언제나 "민족"을 말 했습니다. 이유야 간단합니다.

민족사관은 그 시작부터 대 식민사학 척결용 결전병기였거든요. 신채호, 정인보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민족사관"의 목적은 언제나 "식민사관 척결"이었습니다. 헌데... 실증사관 계열이라 불리는 이들도 최우선 목표는 이거였거든요.

때문에 초기의 민족사관은 식민사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 했습니다. 그저 부정만 할 뿐이죠. 그리고, 오히려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어받기도 했죠. 민족사관에서도 참 달콤한 얘기였거든요. "만선사관"이죠.

정체성론. 한국 역사는 발전하지 못 하고 쭉 정체되기만 했다. 이거야 뭐 여러 가지로 반박 가능합니다. 애초에 이게 오리엔탈리즘에서 주어만 바꾼 것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타율성론.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에서 영향을 받아야 겨우 뭘 할 수 있었다죠. 헌데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만선사관, 한반도와 만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다만 한반도는 만주에 의해 진보할 수 있었고, 발해 이후 한국이 만주를 잃은 이상 정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나온 것이 계속된 만주 타령이죠. 신라는 사대주의였다, 고려는 사대주의였다, 조선은 사대주의였다, 이래서 한국은 안 됐다. 고조선의 웅대한 기상, 고구려의 위대함, 발해는 우리 역사... 그냥 뒤집은 것일 뿐입니다. 한반도의 국가에 대해서는 타율성과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대신 만주에 있던 국가들의 위대함만 강조했을 뿐입니다.

당파성론. 한국의 역사는 서로 편을 나눠 싸우는 역사였을 뿐이었다. 내분은 이래서 안 됐다. 이건 오히려 민족주의자들에게도 좋게 쓰입니다. 한국은 뭉쳐야 된다. 이래서 우리가 일본에 먹힌 거다. 덕분에 이런 민족주의는 해방 후에 아주 요긴하게 쓰입니다. 독재자들에게요. 프린스 리의 말대로 뭉쳐야 사니까요. 다른 주장이 있다는 건 곧 당파가 되는 거니까요. 조국을 위해, 민족을 위해, 독재자에게 충성해야 되는 것이었죠.

이게 진정 식민사관을 이겨낸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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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옳은 길이었든 아니든, 일단 식민사관을 부정하고 본다는 점에서 민족사학자든 실증사학자든 같은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따져 봅시다. 민족주의는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집중하는 사관입니다. 그런데 신채호부터 시작된 민족사관은 일단 신라를 까고 보고, 고려를 까고 보고, 조선을 까고 봅니다. 정말 이 정의대로라면, 이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고구려 같은 만주의 국가들은 위대했고, 신라, 고려, 조선도 훌륭한 문화를 꽃 피웠다. 그들이 만주의 영토를 되찾지 못한 것이 한계라 하더라도 그 위대함을 부정할 수 없다."

과연,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 하나요? 물론 이순신이나 한글 같은 한반도 역사의 독창적이거나 위대한 모습에 대해서는 찬양합니다. 하지만, 꼭 이게 붙죠.

"한글은 사대부들이 천시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말고는 다 바보였다."

일본이 아주 잘 퍼뜨린, "조선에 잘난 놈은 있는데 조선인들은 그걸 몰랐다." -> "인재를 몰라보는 조선은 망해야 싸다" 이걸 그대로 이은 것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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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물어봐야 될 것은, 이 "민족주의"라는 것이 무조건 옳은 진리이냐는 것입니다. 네. 그래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해방 후의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가 된 민족주의자와는 확실한 차별성을 두어야 했습니다. 헌데... 그 속 내용은 아예 다를 게 없었죠.

최남선, 이광수 등은 변절했지만, 스스로를 여전히 민족주의자로 칭했습니다. 해방 후에는 더더욱 민족주의를 내세웠죠. 백두산이 하나의 고대 문명이라는 불함문화론, 이순신을 비롯한 영웅주의, 후대의 민족주의자들은 이걸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식민사관을 거꾸로 썼을 뿐인 민족주의 역시 마찬가지였죠.

민족주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저 외국의 요소를 철저히 없애면 될 뿐이예요. 박정희는 이런 걸 아주 잘 이용했습니다. 그는 반만년 역사에 내세울 수 있는 건 "이순신"과 "한글" 뿐이라 했고, 단군 이후 한국의 역사는 모두 가난하고 당하기만 하는 역사라고 했죠. 한 번도 남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의 민족? 광개토대왕은 우리 민족 아닐까요? 이 역시 "한국 역사는 당하기만 한 역사다"는 것을 좋게 좋게 바꾼 것일 뿐입니다.

헌데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이들 역시 이것과 생각이 그리 다르지 않았죠. 때문에 그들은 왜곡을 시도합니다. 꽤나 성공했죠.

"일제는 단군을 부정했다. 고조선을 부정했다. 친일파도 따라서 부정했다."

이 절묘한 한 수로 "친일파"라는 딱지가 붙은 이들은 모두 단군 부정, 고조선 부정, 식민사관 계승이라는 코드로 엮입니다. 실제 그들의 주장이 서로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은 뭐, 사람들이 도서관에서 그걸 찾아 보겠어요? 거기다 친일파예요. 거기다 기득권이예요. 이게 너무 쉽게 통해 버렸죠.

민족주의는 착한 사람들이, 진정 민족을 위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예요. 독재자도, 친일파도 빨갱이도 자기 이득을 위해 너무나도 쉽게 이용해 먹을 수 있는 것일 뿐이죠.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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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뭔가 감정에 북받쳐서인지 잔뜩 주저리주저리 했는데, 너무 나간 거 같네요. 어쨌든 볼만한 얘기이니 아래쪽에 놔두겠습니다. -_-; 본론으로 돌아가죠.

식민사관을 깨뜨리기 위한 민족사관. 그런데 이 민족을 위한다는 것은 진정 무엇일까요? 애인으로 비유하면 좀 그러니 가족으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자기 자식에 대해 무조건 좋다 잘 한다 하면서 챙겨주는 것, 자기 자식을 호되게 야단치고 때리면서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방법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 속내를 사람 마음 속까지 파고들어 알 수 있지 않은 이상, 어찌됐든 방법은 사랑이예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가 아내를 "오라질 년"이라고 한다고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민족주의로 옮기면 끝이 없습니다. 신라를 사대주의로 격하하는 것에서 아예 우리 역사로 인정하지 않는 것, 대신 고구려 등 만주의 역사만 우리 역사로 인정하는 것, 그들이 외치는 것 역시 "우리 민족의 우수성"입니다. 중국과 일본은 우리 역사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 했다, 이렇게 말 하는 것도 역시 내세우는 건 민족주의입니다. 하다못해 현 서강대 이종욱 교수가 중심이 된 신라 계승론이 민족주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요?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는 우리 역사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 했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원류인 신라에 더 집중해야 된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역사고 우리 민족의 시작이다."

맞든 아니든 내세우는 건 민족입니다.

식민사관을 깨뜨려야 되는 과제를 안고 시작한 이상, 그리고 모두가 "민족의 역사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라는 걸 내세우는 이상, 현 사학계에 민족사관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리고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그 누가 발해가 우리 역사가 아니다는 것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학계 내에서야 가능해도 바깥으로 나오면? 불가능하죠. 그나마 최근에는 이게 가능해지고 있구요. 하지만, 그걸 내세우는 명분 중에서도 "진정한 우리 민족의 역사"가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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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해서 다시 위에 신채호의 말을 봅시다. 신채호의 주장들은 현재 학계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역시 사료의 오독, 사료의 부족 (당장 신채호는 돈이 없어서 사료들을 제대로 보지 못 했습니다. 조선상고사 등의 책에도 늘상 나오는 말이 "저자를 잊었다" "연도를 잊었다" "출처를 잊었다"죠. 그만큼 어려운 사정 속에서 역사를 판 것입니다만), 지나친 민족주의 의식 등이죠. 그럼에도 그가 내세운 건 "객관"이었습니다. "당위"가 아닌 "사실"을 중시하는 역사였죠.

실증사관의 시작은 역시 랑케겠죠. 하지만 이 실증사관은 후에 무수한 도전을 받습니다. 하지만 이건 실증사관 본연의 "객관성"에 대한 도전이 아닙니다. 당장 이러지 않나요?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민족은 킹왕짱이라능"



이병도가 이어 받은 일제의 실증사관, 하지만 그 내면을 보면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예, 완벽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죠. 랑케가 객관성에 대해 아무리 찬양하든, 역사 연구에는 무언가 목적이 들어갑니다. 설령 본인들이 그걸 자각하지 않아도, 그 안에는 무언가의 편견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 반대하는 것들 역시 마찬가집니다. 아니, 애초에 이 "실증사관"을 공격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객관적으로 그게 틀렸다"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사실"을 중시하지 않은 사관은 사관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물질에 의해 역사가 돌아가는 것이 "객관적으로 사실"이기에 유물사관이 만들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역사가 반복되는 규칙이 있기에 순환론적인 사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어떤 필연이 아니라 우연에 의해 역사가 진행된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나왔기에 우연사관이 나올 수 있었죠. 어쨌든 왕, 영웅이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아예 역사의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에 영웅사관이 나왔고, 영웅보다는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 생활의 변화, 민중의 의식 등에 집중해야 되는 것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기에 민중사관이 나왔습니다. 모두 "실증사관"의 객관성 자체보다는 실증사관을 내세우며 나타나는 왜곡에 대해 들고 일어난 겁니다.

민족사관, 유물사관, 심지어 식민사관까지 그 근본에 두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니 애초에 이 "사실"이라는 것을 무시한 상황에서 역사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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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학계의 공식 명칭은 "실증사학"이 아니라 "문헌고증사학"입니다. "실증"은 하나의 사관이 아니라, 근대 역사학에서 가장 기본으로 둬야 할 것이죠. 지금 상황에서 "사실"을 무시하는 사관은 "사관"이 아닙니다. 그걸 얘기하는 건 "역사"가 아니죠.

애초에 한 나라의 역사를 얘기함에 있어 이런 "문헌고증"에만, 객관에만 집중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외국의 얘기를 할 때에야 어느 정도 가능하죠. 자국의 역사를 얘기할 때는 "민족"이든 "국가"든 외칠 수밖에 없고, "당위"로 연결되니까요. 이래서 강대국들에게 실증사관이 많이 퍼졌죠. 하지만 그것도 오리엔탈리즘, 식민지 지배를 위한 정당화에 연결됩니다. 결국 이 "실증", "문헌고증"은 역사를 얘기하는 데 있어 전체가 아니라, 하나의 방법론일 뿐입니다. "사실"에 가장 접근하지만, 이를 밖으로 얘기할 때는 정말 미친 듯이 "이게 사실이다"고 얘기하지 않는 이상 무언가의 목적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당장 제가 했던 많은 얘기들, "이게 사실이다"고 하는 얘기들에는 "이게 우리의 역사이다" "이게 식민사관과 과장된 민족사관을 깨뜨리는 무언가"이다라고 했죠. 저 역시 글을 쓰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교훈이 없는 역사는 그냥 재미거리일 뿐입니다. 아무리 제가 재미만 추구한다 해도 다른 목적을 아예 빼뜨릴 수 없어요. 저를 민족주의자라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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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관과 실증사관, 이건 공통 분모 없이 대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둘 모두 방법론일 뿐이고, 아예 겹칠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려 해 봤자 다른 어떤 사관과 겹치게 되겠죠. 그리고, 이 모든 것에는 "사실을 중시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역사가 아니니까요. 또한, 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외치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정의가 필요하죠. 여기서 문헌고증이라는 방법론이 크게 들어가는 거구요. 하지만 그에 대해서 무언가의 결론을 내리는 이상 어떤 목적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

고고학의 주요 이슈 중 하나입니다.

"동아시아에는 주먹도끼가 없다."

사실입니다.

"동아시아는 서양에 비해 구석기 발달이 늦었다."

여기까진 사실이라 치죠.

"동아시아는 서양보다 후진적이다."

~( '-')~ 자. 이제 여기서 이어지는 걸 얘기해 보죠.

"전곡리에서 주먹 도끼가 발견됐다."

사실입니다.

"기존 서양 학작들의 주장은 틀렸다."

사실이죠.

"동아시아는 서양과 비교해도 딱히 늦지 않았다."

가치가 들어가죠.

"이런 주먹 도끼는 동아시아에서 전곡리에만 발견됐다."

뭐 여기까지 사실이죠.

"한국은 중일에 비해 진보했다."

민족주의가 들어갑니다. 이에 대한 반감으로 일본에서는 어이 없는 사건이 벌어지죠. 구석기 유물을 묻어뒀다가 자기가 발견한 것처럼, 일본의 구석기시대 연기를 끌어올리는 사건이요.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어떤 결론을 내리기 위해선, 혹은 기존의 결론을 고치기 위해선 목적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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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신이 민족주의자라 해야 할 지는 모르겠습니다. 역사학에 있어 민족주의는 이렇게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것에 필요한 가치 판단이거든요.

신라를 무시하고, 고구려만 킹왕짱이다고 하는 쪽에서는 저는 식민사관 매국노일 겁니다. 민족주의와는 상관 없겠죠. 하지만 아예 스케일을 키워서 "한중일 이런 문제를 떠나서 동아시아 자체의 역사를 보자"고 하는 쪽에서는 저는 우리 역사만 강조하는 민족주의로 보일 겁니다. 당장 제 글 중에 한국사 말고 다른 얘기가 있었나요?

제가 계속 사실을 강조하는 것, 그건 너무도 당연한 거기도 하겠지만 이런 "가치"에 대해서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가치가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며, 그럼에도 "사실"이라는 객관성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됩니다.

현재 임나일본부설, 이른바 남선경영설은 공식적으로 폐기됐습니다. 그 일본에서요. 이게 "민족주의적" 성과일까요? 당장 "발해 우리 역사 아니다" 혹은 "요서 경략설 부정" 이걸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일본에 있어 남선경영설 폐기가 이보다 충격이 덜 했을까요? 하지만 한국의 역사학계에선 성공했습니다. 그 정도로 남선경영설은 "객관적으로" 아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건 민족주의였죠. 북한에서 내세운 "분국설" 이건 남선경영을 내세우던 일본 학계에 크나큰 충격을 줬거든요.

이런 점에서 다른 문제도 같이 봐야 된다고 봐요. "객관성"을 내세우면서 "이상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들, 여기서 중요한 건 "객관성"이 아니라 "이상한 주장"에 초점을 맞춰야 되요. 맘에 들든 들지 않든, 그 주장을 깨뜨릴 수 있는 건 그 주장의 "객관성"을 깨뜨리는 것일 뿐이죠. 발해에 대해 중국에 아주 유리하거나 한국사로 절대 볼 수 없는 근거가 나온다고 봅시다. 상대는 그걸 "객관적"으로 주장하겠죠. 그걸 깨뜨리는 건 "객관적"으로 그걸 부정하는 것 뿐입니다. 그럴 수 없다면? 민족주의고 뭐고 포기해야죠. 객관성이 있어야 민족주의도 성립합니다. 양 쪽 다 객관적으로 압도적일 수 없다면? 그 때는 두 개의 주장이 양립하는 것일 뿐이죠. 어차피 이렇게 되면 누가 우세한가는 그 학자의 인지도, 그 집단의 힘, 그 나라의 힘에 좌우될 뿐입니다.

제가 발해를 우리 역사로 생각하는 것도 민족주의가 들어 있겠지만, 아래 글처럼 객관적으로 우리 역사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깨뜨리려면 역시 제가 주장한 객관적인 사료들에 대한 반론을 해야겠죠. 결론을 내리는 가치가 객관성을 잡아먹을 정도라면, 굳이 자신이 가진 가치가 아닌 자기가 가진 객관성으로 얼마든지 반론할 수 있습니다. 남선경영설을 폐기시킨 것처럼요. 필요한 반론은 "사실이 아니다"이며, 그 근거는 객관적이어야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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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실증" "객관" "사실" 과 "민족" "당위" 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간단히 -_-; 줄여보죠.

역사 연구에 있어 완벽한 객관은 불가능합니다. 할 수 있는 건 남은 사료들 뿐이고, 부족한 부분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자신의 믿음에 따라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컵에 물이 반밖에 없다, 반이나 남았다에도 이미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가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왜곡하는 것으로 흐르면 안 됩니다. 사실을 왜곡하는 "가치"는 역사가 아니라 정치이며, 사실이 왜곡된 주장은 그 왜곡된 사실을 밝힘으로써 깨뜨릴 수 있습니다. 왜곡에서 중요한 건 "객관성을 얘기하면서" 부분이 아니라, "객관적인 척 하면서 목적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는" 부분이구요.

이런 점에서 민족사관 등 여러 가치가 담긴 사관은 연구를 시작하고 해석하는 방법론이고, 실증은 연구를 하는 데 있어 (정말 재미로 연구하지 않는 이상) 필요한 방법론인 겁니다.

뭐 이외에...... 정말 많은 얘기들이 있겠지만 이걸로 줄이겠습니다. 역시 어렵네요. 다만, 예전부터 써 왔던 사실, 객관에 대한 제 입장은 어느 정도 정해진 것 같습니다. 사실과 목적은 절대 대립할 수 없는 거라는 걸로요.

아무래도 현 사학계든 일반적으로든 분류하는 민족사학자 / 실증사학자의 계보는 어디까지나 -_-; 편의상 분류한 것 같아요. 해방 후 학계의 가장 큰 과제가 "식민사관 척결"인 이상 실증이고 뭐고 민족사관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거든요. 뭐 이 쪽이 보기는 편하죠.

아래는 쓰다가 안 어울린다 싶어서 버린 부분입니다. 다만 학계에서 식민사관을 넘어서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특히 이기백 교수가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에 대해서 짧게나마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이런 흐름을 깨뜨린 것이 이기백입니다. "한국사 신론"은 정말 지금 봐도 대단한 내용이죠. 대륙으로의 진출에만 집착하면 한반도의 국가들이 이룩한 눈부신 문화를 무시하게 된다. 한반도와 만주로 나눠 정체성론을 퍼뜨린 식민사관 자체를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에 갇혔다"고 하는, 지리적 결정론을 넘어서야 한다.

"한반도와 만주는 뗄레야 뗄 수 없다. 만주를 잃은 한민족은 정체됐다."

이게 식민사관입니다.

"한반도의 국가들은 다 사대주의에 젖어 정체됐다. 하지만 만주의 국가들은 위대했다.

이것과

"한반도니 만주니 하는 지리적 결정론을 넘어야 한다. 모두 우리 민족의 역사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이것.

어느 쪽이 식민사관을 뛰어넘은 것일까요?

다른 것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한사군은 한반도가 중국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는 증거이다."

이것이 식민사관입니다.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사료는 모두 짱깨의 왜곡이고 고고학적 증거는 다 조작이다."

이것과

"한사군의 문화는 우리 것이 아니다. 역사 역시 우리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한사군에 맞서 싸우고 몰아낸 것은 우리 역사이다."

이것 중 어느 것이 식민사관을 이겨낸 것일까요?

"단군신화는 일본에서 비롯됐다. 만선+일본의 역사는 하나다."

이것이 식민사관입니다.

"식민사관은 단군과 고조선의 존재를 부정했다. 지금의 주류, 강단 사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감히 위대한 단군 신화를 무시하는가? 바로 밑에 이기백 말 봐라. 단군신화 무시하잖아."

이것과

"단군신화는 신화다. 신화가 아닌 고조선의 역사를 연구해야 된다."

이것. 어느 쪽이 이겨낸 걸까요?

+) 참고로 전 고조선이 제정일치사회라는 거랑 단군은 후에 당골네 등과도 이어지는 말일 것이다는 것에 대해 "단군을 겨우 무당으로 비하했다"는 주장을 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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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방법론에 있어 "민족사학자"들은 현재의 "실증 강단사학자"들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이병도에게 이어진 실증사관의 계보니까요. 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부정이죠.

http://www.coo2.net/bbs/zboard.php?id=qna&no=9981

현재도 이덕일, 이희진 등 "학계는 식민사관을 잇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말 합니다. 그럴 거면 지들이 직접 찾아서 밝혀 보든가요. 위에서부터 다룬 거 다마찬가지예요. 그들이 하는 건 어디까지나 딴지일 뿐입니다. 대륙에 대해서 말 하면서 고고학적 발굴을 무시하는 건 둘째 치고, 그런 자료들을 통해 새로운 이론을 취합하지 못 합니다.

정작 저기서 욕 한 국사 교과서에서 삼국시대 초기 왕들이 나오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는 "재위 기간"을 삭제한 것일 뿐이죠. 정작 일제 사학자들이 규정한 것에 비해 100년 넘게 건국 연대가 끌어올려졌구요.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건국 연대와 재위기간에 대해 확실한 답을 구한 걸까요? 그냥 욕 할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강단이든 재야든, 민족주의든 실증주의든 식민사관을 깨뜨린다는 점에 있어 걸은 길은 꽤나 비슷합니다. 특히 초대 이병도에서는 그냥 똑같구요. -_-; 뭐 이병도가 실증사관을 기본으로 삼은 연구 성과는 더 있습니다만... 이런 복잡한 얘기까지는 넘기구요.

이렇기에 일본과 친일파를 내세우고, 그들의 주장과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민족주의와 실증주의를 옳다 그르다로 분류해 버리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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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ohny=Kuma
12/01/05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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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봤을 때는 당연히 실증사관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밸런스를 추구하며 협력관계가 되는 것이 맞겠네요. 사학계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사학자 각자의 의식 안에서도 그렇고... [m]
12/01/05 08:25
수정 아이콘
눈시BB님 글 볼때마다 역사라는걸 아는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다른사람들에게 이해할수있게 글로 쓰시는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역사에 관심이 많고 하지만 다른사람들한테 말하거나 글로 쓸때 제대로 안되는때가 많아서...
이기백씨 관련 부분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많네요
제가 역사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것도 한사군의 위치가 실제로 우리가 국사책에서 배운 것과 달리 대륙에 있었다 라는 것을
박영규씨가 쓴 고구려본기였던가요.. 그책에서 보면서 였거든요
일단 역사가 완전한 사실을 말하는 것은 타임머신이 있지 않는한 불가능한 것이겠죠
하지만 학자의 사관때문에 명백한 사료로 입증된 사실을 왜곡하는 건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한때 재야사학자들의 새로운 의견들이 아무래도 충격적이고 흥미롭다보니 관심을 많이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러한 것들 중에 확실한 근거가 있지도 않은데 주장하는 걸 보면서 과연 왜 그러는걸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요
언제나 이렇게 양질의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역사에 대한 관심때문에 교양강의로 역사강의를 자주 듣게 되는데 왜이리 학점은 안나올까요...
눈시BBver.2
12/01/05 09:01
수정 아이콘
ㅠ_ㅠ);; 쓰고서도 어떻게 해야 되나 머리 아플 떄가 많은데요 뭐. 그래도 이해가 되신다니 정말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뭐 아무래도 역사에 흥미를 가지는 시작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점에서도 민족주의를 아예 무시할 순 없죠.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왜곡은 역사가 아니죠. 어려운 문제긴 합니다만, 재야사학자 분들께서 명백히 잘못된 사례를 만들어 주니 그래도 편하죠.
뭐 저도 학점은 ( ..);;; 선발로 뛸 수 있을 정도입니다.
루크레티아
12/01/05 08:42
수정 아이콘
민족사관이 엄밀하게 말하자면 구시대의 유물임에는 맞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민족혼을 불태울 시기는 아닙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역사는 식민지배와 친일파, 그에 이어지는 기득권이 얽히면서 더 이상 실증을 쫓기 힘들어졌습니다. 식민시대에 전체적 인구와 생산량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거기다 대고 '식민지 시절은 우리민족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라고 말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습니다.

일방적이고 국수적인 민족사관은 더 이상 필요치도 않고, 지양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실증의 탈을 쓰고 선빵을 날린 쪽이 있어서 환빠들 같은 정신나간 작자들까지 나온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만약 우리가 식민시대를 겪지 않았거나,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국가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다른 양상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눈시BBver.2
12/01/05 09:03
수정 아이콘
문제는 "실증의 탈을 쓴" "역사 왜곡"이지 그렇다고 실증을 무시할 거리는 못 되죠. 아니, 그렇기에 더욱 실증으로 가야 되구요.

왜곡이라 하면서 "실증"으로 그게 왜곡인 걸 밝혀내지 못 한다면 그건 역사 왜곡이 아니라, 감정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는 진실이 될 뿐이죠. 식민지 문제 역시 마찬가지구요. 사실로 반박 못 하면 그냥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곡을 이긴다고 왜곡하면 같은 놈이 될 뿐이고, 사실로 이기지 못 하니까 안 되겠다 하면 포기하면 편해가 될 뿐입니다. 어느 쪽이든 이렇게 되면, 그게 "왜곡"이 아닌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라는 점에서 똑같구요.

애초에 그런 식의 식민지 수혜론은 공업화 등에서는 사실을 가져올 지 몰라도 "우리 민족"이라는 점에서는 제대로 된 사실 검증 없이 그냥 뭉뜽그리고 있거든요.

어쩄든, 이 글의 결론은 민족사관과 실증사관이 아예 별개의 게 아니라는 겁니다. 민족사관도 검증에 있어 실증을 중시해야 되고, 아무런 목적 없는 (재미로 하는 것도 결국 목적이죠. 재미사관?) 실증 사관은 없다는 거죠.
마바라
12/01/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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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거북선이 철갑선이 아니었어요? 충격과 공포인데요..
jjohny=Kuma
12/01/0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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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든 생각인데, 실증주의보다 민족주의를 중시하는 게 정당하다고 주장하려면 결국 일본의 다케시마론이라든지 중국의 동북공정론도 그 정당성을 인정해줘야겠죠. 그렇게 되면 혼돈의 카오스가 될 것 같습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ㅠㅠ
김연아이유리
12/01/05 09:58
수정 아이콘
언제나 좋은글 감사합니다.

개인이 가지는 여러가지 인식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자존감"인데 그것은 민족이나 국가의 범위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사관은 그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존재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여러가지 실증사료를 통해 입증되는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하는것은 당연히 기본으로 가져야할 소양입니다만
민족주의적인 태도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먼 미래가 되어 인종이 섞이고 국가의 존재가 희미해지면 민족주의적 태도도 필요없어지겠지만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사실 역사에서는 사료를 통해 분명하게 입증되는 팩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인정된 사료를 바탕으로 합리적 추론을 해나가는 경로 또한 여러 갈래이며 이중에 어떤것을 택해야 할까의 문제에는
가치관과 당위의 문제가 개입될수밖에 없습니다.

잠시 묵상하면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실증적 합리성을 추구해야하지만, 그것의 무수히 많은 여백들에는 여러가지 가치관이 적용될 여지가 많다.
실증적인 사료와 객관적인 시야를 중시하는 태도는 당연한 기본으로 하되,
민족의 자존감을 높여야한다는 당위에 전도되어 "무늬만 합리적인 추론"을 하는것만 경계한다면
역사을 대할때 민족주의적 태도를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은것 같다.
영원한초보
12/01/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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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소한 뚜껑에 철갑은 두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군요.
일단 철갑을 두를 필요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일단 오바네요.
그런데 이렇게 된 이유가 우리의 과장보다 오히려 일본의 과장인게 아이러니하네요.
현재 국사 교과서에는 어떻게 나와있는지 궁금합니다.
12/01/05 10:51
수정 아이콘
무슨사관이든간에 실증주의 위에서 존재하는 것이죠. 바꿔말하면 실증주의를 토대로 한 범위 내에서는 어떤 사관이든 받아들여야한다고 볼 수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사관은 최대한 거리를 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민족사관은 실증주의를 흔들 수 있거든요.

역사란 것은 확실한 것은 있을 수 없죠. 당장 1~20년 전의 '역사'도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과 여러 야사들이 존재합니다. 예를들면, 위키리크스. 보다 더 과거의 일에 대해선 말 할 것도 없겠죠.

결국 실증이라는 것은 사실을 알아낸다기보다, 가장 사실일 것 같은 것을 추론하는 과정인데요.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료입니다.
사료의 많은 양, 사료의 좋은 신뢰성이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납득시키게 합니다.

하지만 민족사관의 경우 그 가능성을 떨어뜨립니다.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차는 발생하게 되고, 그러한 개인차를 고려해 가장 다수가 납득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어야하지만,
민족사관은 사료의 부족이나 사료가 의심되는 상황이 되더라도 다수로 하여금 그것을 선택하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결국 좀 더 많은 사료, 좀 더 신뢰성 높은 사료가 중요하다기 보다 국가간의 관계와 정치역학이 역사해석에 작용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민족사관은 실증주의에 가장 반하는 사관이라 생각됩니다.
방향성면에서 다른 것 같아요.
율리우스 카이사르
12/01/05 11:00
수정 아이콘
눈시BB님 꼭 이런 글들 잘 정리해서.. 출판 해주세요!.. 저 미리 한권 예약합니다! 이덕일이 너무 싫어요.. 집에 이덕일 책만 5권인가 있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장삿속이 비치는지.. 쩝. (아부지가 팬이라서 만날 사모으시네요..)
카서스
12/01/05 11:30
수정 아이콘
랑케의 실증주의는 일반적인 개설서나 교과서에서는 전후맥락이 짤린 상태에서 소개되어 이해하기 힘듭니다. 랑케만한 천재가 객관적으로 글을 쓰는게 가능할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이양반 20대에 베를린 대학 교수해먹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저서를 보면 그 역시 당시의 지식인들과 다름없이 신의 섭리, 운명 등을 믿고 있었습니다. 의외지요? 실증주의가 신의 섭리 등등을 운운한다... 물론 당시의 '근대성'에 비추어 보면 크게 이상한것은 아니지만 객관적인 사실이 아닌 '신'이라는 존재가 근거에 포함된 것 자체가 실증과는 거리가 멀죠.
다만 그가 객관성을 강조한것은,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사료고증도 제대로 안된것을 기초로, 심지어 위작까지 해가면서 역사를 서술하는 행태를 비판하고 실증주의를 내세운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랑케 역시 객관성보다 주관성에 치우친 사람으로 분류됩니다. 물론 이사람에게서 부터 오늘날 말하는 문헌고증이 시작되었고, 근대적 의미의 역사가 시작된것은 맞습니다만.

민족주의와 실증주의. 애매합니다. 왜냐하면 본문에 나왔듯이 사람은 자신의 환경에 영향을 강하게 받습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가더라도 '자기편'의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죠. 그리고 사료 역시 아무리 잘 기록해봐야 한계가 있구요. 그렇다고 민족주의사학자들이 민족의 이익을 위한 서술을 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민족주의는 실증주의자들 사이에서 등장한 사람들이지 그 역이 아니니까요. 그들의 서술 방식 역시 실증주의에 기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티읃' 를 봤을때 알파벳 혹은 한글로 보는 사람이 있는것과 같다고 할까요?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근대 역사학의 틀에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민중사학이 등장하였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겠죠.

그나저나, 복수전공을 하셨다고 알고있는데 정말 학부생 싸다구-_-를 날릴 정도로 지식도 풍부하시고 글도 잘쓰시는군요; 요즘은 눈시비비님 글을 읽으면서 반성하고 있습니다 (....)
루스터스
12/01/05 12:17
수정 아이콘
눈시BB님 글에 댓글 달기 너무 힘드네요. 제 댓글중에 틀린 내용 있으면 지적해주세요.

실증사관도 어차피 "반대"의견으로 튀어나온것뿐이지요.

사관은 보는것이라 어떤 사람의 철학과 관련이 있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인문학의 기초가 철학인것도 그래서라고 생각합니다.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대로 랑케의 사관도 정반합의 사관의 역사로도 보여집니다.
랑케는 당시의 민중 주권에 대해 군주제를 옹호했으며, 그의 실증주의는 당시 독일 사학의 화려함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의 실증만을 볼려고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유물을 가지고는 어차피 "해석"을 할 수 밖에 없고, 사료는 쓰는 사람의 주관이 들어갈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사기적인 책이 당시부터의 전세계적 흐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랑케가 실증주의 애기는 꺼내지도 않았을겁니다.

인문학은 자기의 발밑, 주변상황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사람이 사람에 대한 학문이고, 사람은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다시 실증사학이 강조된다면 민족주의 사학으로 식민주의 사관이 극복이 되었고, 신민족주의 사학이 대세가 된 그 반동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문학이 현실과 떨어진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 현실에서 사용되는 기술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관이 무엇이 올바르냐 보다는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측면의 고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역사관이 더 적절한 역사관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합니다.
단순히 사실로서의 역사는 문자의 나열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미짱
12/01/05 12:57
수정 아이콘
실증, 객관성이란 것에 대한 작성자님의 의견을 듣고 싶네요.
예를 들어 저자가 명확하고 당대사료임이 확인된다면 그것은 객관적인 자료이고 실증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혹은 랑케 식으로 공적문서들이 사적문서들에 비해 더 신뢰할 수 있는 사료이고, 이런 사료를 더 기반으로 하는 것이 실증적인 사고인가요?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듣고 싶네요.
민족주의는 다른 여타의 이데올로기와 결합해야만 작동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에 가장 극단적인 주의이죠.
(극단적인 파시즘에서 피지배민족해방운동에 이르기까지)
지금 현재 극단적으로 남한땅에는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합한 민족주의가 있고, 통일을 중시하는 민족주의가 있습니다.
(보통 전자가 기득권의 논리이고, 후자가 피지배계급세력의 논리이기 때문에, 전자는 보수계층과 결합하고 후자가 진보세력과 결합하죠.)
그렇게 분류할 수 있을 때, 작성자님께선 전자, 혹은 후자 중 어느 쪽이 옳은지, 혹은 둘다 맞는지, 둘다 그른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글이 약간 단상식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정리가 안되는데,
글쓴님께서는 역사(실증적인 면에 기초)와 정치(목적이 수단을 잠식한)가 구분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그게 진정 가능하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르게 돌려말하면 완전히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역사연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어 글쓴 님께서 어느 논문을 발표하실때, 정말 무비판적으로 모든 사료를 객관적으로 인용하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모든 사료를 살펴볼 수 있는 물리적 한계는 제외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역사학에서 객관적인 역사탐구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막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글쓴님이 쓰신 글에 대한 반감때문이 아니라, 저역시도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고,
무언가 글이 발산만 되어 있어서 제가 정리가 안되서 궁금해서 묻는 것입니다.
나중에 더 깊이 이야기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Mithinza
12/01/05 14:56
수정 아이콘
어디까지를 넘어야 하지 말아야 할 선인가... 라고 한다면, 그 해석이 사실관계를 왜곡하게 되는 그 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 테면... 아니 뭐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그런 사례야 많으니 넘어가겠습니다. 또한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실관계에 대한 스스로의 해석이어야 할진대, 어떤 목적을 위해 실증을 취사선택하게 될 수도 있으니 스스로 주의할 일이지요. 그런데 오히려 최대한 겸손하게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그저 그런 대접을 받고, 신나게 자기 주장을 피력하는 이들이 인기가 많아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환빠도 그런 부류 중 하나겠고... 암튼, 그 수준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여러가지 해석의 틀로 내버려두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양한 생태계가 공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거든요. 물론 과잉된 민족주의다, 대륙에 집착하지 마라, 친일적 사관이다... 등등의 충돌이 있기야 하겠습니다만... 다만, 교과서 등을 편집할 때는 모두의 합의 하에 공통된 의견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최근 뉴라이트의 입김이 강해진 몇몇 교과서 개정은 그런 과정을 배제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리 탐탁치가 않습니다.

가장 훌륭한 방식은, 모든 입장을 한번에 소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해석이 일정 범위내에서 가능하다면, 그 모든 해석에 대해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균형을 맞춘답시고 스스로 한쪽으로 편향된 주장을 하는 것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입장을 가장 싫어하는 편입니다(스켑티컬레프트 주인장이 그런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많이 실망했었죠). 결국 그럴 거면 세상엔 제대로 된 주장이 하나도 없겠죠. 모든 위치에서 스스로 가장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가장 엄밀한 학자의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자신만의 주장을 하고 싶은 자의식이야 있겠습니다만, 그 자의식의 수준과 사실관계의 사이에서 적당한 균형잡기를 할 수도 있어야겠죠.





... 라고 역사 내공같은 건 땅바닥에 붙은 껌 같은 어떤 인간이 이야기하고 지나갑니다...
구밀복검
12/01/05 16:25
수정 아이콘
에릭 홉스봄은, <<역사론>>에서 지금까지 역사학을 발전시켜온 건 당파성이라고 까지 했지요. 역사학이 발전한 건 전적으로 좌파와 우파가 치고 박고 싸웠기 때문이라고.... 저도 이에 동의합니다. 여러 입장들을 포괄적으로 아울러야 한다-는 건 위 아 더 월드 식의 소박한 생각이고, 단일한 객관성이란 없고, 객관이란 이전투구 속에서 도출되는 거라고 봅니다. 결국 자기 당파성에 충실할수록, 역사학엔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있겠죠.
Mithinza
12/01/05 16:35
수정 아이콘
말씀대로 토론의 상황에서는 서로의 입장차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엄밀한 검증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겠습니다마는, 그러나 이를 공공에 발표하거나 드러낼 때에는 보다 겸손하고 신중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닐지요? 물론 어디까지가 토론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결론의 영역인지 구별하기에는 애매합니다만...
12/01/05 19:50
수정 아이콘
확실히 과거의 역사가들이나 전통적 저널리스트들은 미세한 사실의 끝없는 축적을 통해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으나 1960년대 들어서 그 믿음은 깨졌죠. 외부의 객관적 사실은 서술되는 순간 서술자의 선입견에 의해 변형, 가공되며 필연적으로 특정 부분은 부각되고, 특정 부분은 은폐되기 마련입니다.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들이 "더이상 문학과 역사서의 구획화는 무의미하다. 다만 담화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 것이나 문학적 저널리스트들이 "사실만을 알고자 하는 독자가 가장 필요없는 독자다"라고 한 것도 다 비슷한 이야기겠고요. 더미짱님의 '역사에는 하나의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도 분명 일리있는 말입니다.

다만,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대로 문학과 비문학(역사, 기사 등등)의 결정적인 차이는 허구성이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의도적으로 독자를 속이려 드는가 아닌가, 독자와의 규칙에 충실한가 아닌가에 있다고 봅니다. 서술된 역사가 객관적 역사 그 자체는 아닐 지언정, 독자들은 거기에 소설과 같은 허구나 왜곡이 없기를 기대하고, 서술자는 그 기대에 부합해야 한다는 거죠.
아무리 근거를 서술자의 주관에 의해 선별할 수 있다고 해도, 그 근거는 민족사관이든 ,식민사관이든, 함석헌식 종교사관이든 촘촘한 그물망을 이루어서 누가봐도 추론까지 이어지는 개연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하구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의 주장처럼 역사와 소설의 구획화가 무의미해서, 역사서에도 둘이 마구 혼용되어 쓰인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 될 것입니다. 독자들은 분명히 두 장르를 구분해서 읽고 있고, 두 장르를 읽을 때 상이한 기대와 기준을 적용하니까요. (소설은 허구일 것이다. 역사서는 좀 더 객관적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라든지..)

따라서 현대의 기사나 역사서는 단순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하되, 공정하고 개방적인 마음으로 사실과 재현 사이의 괴리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 진리의 일부를 밝히는데 주력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민족사관이든, 식민사관이든, 종교사관이든 실증주의와 밸런스를 이뤄야겠고. 그 사관을 받아들이느냐 마냐는 독자의 문제로 남겨두어야 하겠죠. 독자도 잘 구분해서 읽어야겠고요.

길게 쓰긴 했는데 -_-; 결론은 객관적 사실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목격자에게 있어 객관은 없다. 다만 그 점은 인정하되, 역사가들은 공정하고 개방적인 마음으로 진리에 가장 가까운 답을 추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문학과 역사의 경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명확하게 구획화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역사가는 자신의 사관 때문에 소설가들처럼 실증을 뛰어넘는 허구를 가미해서는 안된다.

쓰고 보니 눈시bb님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네요.
차사마
12/01/05 19:53
수정 아이콘
민족사관은 국민들을 통합하고, 그 통합된 국민들 위에 국가나 민족이 권위를 가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분명치 않은 것이나,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주입시키죠.
결국 비논리적인 세뇌된 상태의 국민들을 양산하는 겁니다.
따라서 민족사관은 통치자 입장에서는 학문적 영역이라기 보단 정치적 영역이죠.
그리고 국민들에게 민족사관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종교의 영역에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학문적으로 이롭게 배운다는 것은 실증사관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아야여오요우유으
12/01/06 05:27
수정 아이콘
역시 좋은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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