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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0/14 21:28:06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라그나로크 - (3) 악몽


"무슨 일이예요, 발두르? 왜 그래요?"

난나가 발두르를 흔들어 깨웠다. 그의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계속 신음을 내고 있었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는 공포가 감돌았다. 겨우 눈을 뜬 발두르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 하고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악몽을 꿨어."

그가 진정한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나는... 죽을 거야."
"네?"

"누군가가 나를 죽이고... 내 시체는 아스가르드 밖으로 보내질 거야. 그리고 신들도 다 죽을 거야! 언제일지 몰라도 내가 죽은 후야! 불길... 모든 세계가 불 타는 거야!"

횡설수설하는 발두르를 난나가 안았다. 발두르는 계속 꿈에서 본 걸 얘기하면서 떨고 있었다. 가장 완벽한 신, 발두르는 아내의 품에서 오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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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회의가 열렸다. 하임달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 참석했고, 분위기는 어두웠다. 발두르는 평정심을 되찾고 담담하게 꿈 얘기를 했지만, 그 내용 하나하나는 다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신들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냥 개꿈일 뿐이라는 말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그 꿈을 꾼 건 발두르였다. 가장 최우선 과제는 그에 대한 위협을 없애는 것, 신들은 무기를 깊숙히 숨겼다. 토르는 아스가르드를 절대 떠나지 않았고, 하임달은 경계를 배로 늘렸다. 소문은 금새 퍼졌다. 신들과 친했던 거인들은 물론 적이었던 우트가르드 로키도 발두르의 안부를 물어 왔다. 더러운 꿈이었을 뿐 그를 위협할 것은 없어 보였다.

문제는 오딘의 침묵이었다. 열띤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오딘은 손을 턱에 괴고는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신들은 불만을 품으면서도 자기 말에 집중했다. 이런 저런 말들이 나왔지만 오딘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 회의는 끝났고, 오딘은 가장 먼저 일어나서 자신의 왕좌로 향했다.

결국 나선 것은 그의 아내 프리크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개입하지 않았던 그녀는 세상의 여왕으로 처음으로 남편을 설득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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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두르의 궁전 브레이다블릭에는 많은 신들이 방문했다. 토르, 티르 등의 주신부터 그들의 아들들, 오지 못한 신은 하인이라도 보내 안부를 물었고 방문이 허락되지 않은 거인들도 이런 저런 방법으로 그의 안부를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의 아들, 법률의 신 포르세티는 그런 아버지의 곁을 지켰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간 하루와 계속되는 방문객에 발두르는 지치면서도 안도감을 찾아갔다. 난나는 그를 걱정하며 더 이상 방문을 받지 않기로 했고, 마지막으로 온 신을 막으려 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발두르가 그것을 막았다.

"호드?"

그는 난나를 막으며 직접 그를 맞았다. 지팡이를 쥔 채 서 있는 신, 그의 동생 호드였다. 그의 두 눈은 감겨 있었다. 발두르는 그의 손을 직접 잡고 홀로 이끌었다.

"와 줬구나, 고맙다."
"형 일인데 당연히 와야지. 괜찮아?"

그러면서 호드는 발두르의 어깨부터 이목구비를 손으로 살폈다. 약간의 시간 후, 그는 웃음을 지었다. 아스가르드의 구석에서 조용히 은둔해 있기만 하던 그였다. 찾아가는 신은 발두르 정도였고, 그가 직접 어디로 가는 일도 없었다. 그런 그가 발두르의 궁전에 찾아 온 것이다.

형제는 간만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발두르가 얘기해 주는 식이었다. 호드는 바깥 일은 물론 아스가르드의 일도 알지 못 했다. 오딘과 프리크도 발두르와 다른 자식들에게는 애정을 주었지만 호드는 관심 밖이었다. 앞을 보지 못 하는 그에게 발두르는 세상의 일을 전해 줄 유일한 창구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괜찮아 보여 다행이네."

호드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섰다. 발두르는 그에게 자고 가기를 권 했지만, 호드는 웃으며 거절했다. 그 역시 신, 자기 저택으로 돌아갈 정도의 능력은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그가 급히 나가야 할 일이 생겼다. 난나가 급히 발두르에게 알렸다.

"프리크님게서 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호드. 마침 잘 됐다. 같이..."

하지만 호드는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웃음을 건넨 호드는 뒷문으로 발길을 옮겼다. 포르세티가 그런 호드를 도와주었다. 이상하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늘 마음에 걸렸지만 발두르가 해 줄 것은 조금 더 찾아가 주고 더 많은 얘기를 해 주는 것 뿐이었다.

---------------------------------------

프리크의 말은 뜻밖이었다. 발두르는 당연히 거부했지만 그녀 역시 생각을 고치지 않았다.

"내일 날이 밝으면 떠날 것이다. 가기 전에 얼굴이나 보려고 온 거야. 더 이상의 말은 말거라."
"하지만 어머니..."

"너의 목숨의 의미를 모르겠느냐? 너는 신들의 미래야. 네가 죽으면 신들도, 아스가르드도 모두 끝나는 게야. 그리고..."

프리크의 말은 단호했다. 발두르가 막을 방법은 없었다. 이어 프리크가 보여 준 모습은 그럴 여지를 모두 날려버렸다.

"이 어미의 걱정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냐..."

프리크는 고개를 숙였다. 발두르는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그의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 직접 움직일 수는 없었다.  

"아무 걱정 말거라. 발두르. 내가 다 해결할 테니..."

프리크는 도도히 밖으로 향했다. 먼 여정이 준비돼 있었다.

"호드가 왔다 갔습니다."

멈춘 프리크 뒤로 발두르가 말을 이었다.

"가시기 전에 호드도 한 번 만나고 가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머니."
"지금 중요한 건 너다. 발두르."

프리크는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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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cka rides a chariot in this illustration by Arthur Rackham to Richard Wagner's Der Ring des Nibelungen.

그녀가 아스가르드를 나서 본 것이 얼마만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쩌면 처음이었을지도. 그녀의 발은 물렀고, 인간의 땅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걷고 또 걸었다. 미드가르드만이 아니었다. 거인들의 땅 요툰하임과 서리 거인들의 땅 니블하임에도 그녀의 발길이 닿았다. 그녀를 따르는 시종들은 쉬기를 계속 권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걷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 하나하나, 동물 하나하나, 언제 자기에게 칼을 휘두를지 모를 거인들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부탁했다. 거기에는 돌과 나무, 금속 같은 움직이지 못 하는 존재도 포함돼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단 한가지였다. 발두르를 해치지 말라는 것, 그 하나를 위해 그녀는 걷고 또 걸었고, 수없이 허리를 숙였다. 그들 역시 프리크의 말을 들어주었다. 신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당연했고, 적대하는 이들이라도 오딘의 아내가 직접 온 상황에서 거부할 수 없었다. 거기다 그녀가 직접 눈물을 보이며 애원했고, 적이라 해도 발두르에 대한 사랑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그녀는 전 세계 모든 존재들에게 발두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아내었다. 아름다운 얼굴은 초췌해졌고, 옷은 낡아 너덜거렸다. 신발은 이미 자기 역할을 하지 못 했고, 발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그래도 그녀는 웃을 수 있었다. 시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그녀는 아스가르드로 다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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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괜찮으실까?"

프리크의 공백은 컸다. 크게 목소리를 낸 적은 없지만 그녀는 아스가르드의 여주인이었고, 별다른 호위 없이 내려간 상황에서 신들은 그저 기다릴 뿐이었다. 그게 그녀의 의지였으니까.

프리크가 내려가게 된 당사자인 발두르의 걱정은 더 컸다. 그렇지 않아도 언제나 부모를 정성껏 모시던 그였다. 다른 일도 아닌 자신의 일 때문에 어머니는 고생을 하고 자기는 편히 앉아 있는 걸 받아들이긴 힘들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 분의 의지를 우리가 막을 순 없지. 그게 뭐든..."

시위를 벗어난 화살이 어김 없이 과녁에 꽂혔다. 보통 신이었더라도 박수가 나올 만한 광경이었는데, 그는 앞을 보지 못 했다. 하지만 오랜 수련을 통해 방향만 지정해 준다면 그 어떤 목표도 벗어나지 않을 힘과 정확성을 가지게 되었다.

"미안하다. 호드."

내가 사랑을 독차지해서... 라는 말까지는 할 수 없었다. 오딘에게는 많은 아들이 있었다. 토르는 오딘 수준으로 성장해서 그의 오른팔이었고, 다른 자식들도 성장하면서 나름대로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발두르에 대한 사랑이 유독 크긴 했지만 다른 이들이 소외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호드는 거기서 벗어나 있었다.

그 누구도 찾지 않는 아스가르드의 구석, 거기엔 호드의 저택과 수련장이 있었다. 그를 찾는 건 형 발두르 뿐, 혼자 있는 시간 동안 그는 무예에 열중했다. 두 눈이 멀쩡한 자라도 쉽게 그의 허점을 잡을 수 없었고, 멀리 있는 적도 위치를 알기만 하면 상대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다.

"형 잘못이 아니야."

그는 능숙한 솜씨로 다시 살을 매겼다. 과녁에는 여러 개의 화살들이 오밀조밀하게 꽂혀 있었다.

"형은 아버지의 정식 후계자고, 아스가르드의 운명이자 미래야. 형은 곧 우리 모두의 운명이야.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가."

감긴 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음에 들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호드는 물론 발두르도 몇 번이고 그걸 고민했다. 납득 가능한 답은 없었다. 아니 너무 간단해서 누구도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나는 나대로 인정 받을 거야."

그는 창을 꺼내들었다. 감은 눈으로 목표를 가늠했고, 어김 없이 맞았다.

"형을 죽이려는 자가 있다고 했지? 내가 그 자를 죽인다면 예언이고 꿈이고 모두 없어지는 거잖아. 내가 막겠어. 내가 형을 지키고 이 아스가르드를 구하겠어. 그러면 아버지도 나를 인정해 주시겠지."

무기가 떨어진 것을 확인한 호드는 과녁으로 가서 화살과 창을 주었다. 발두르가 도와주려 했지만 호드는 익숙한 동작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나라는 존재도 분명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말이야."

오히려 발두르의 악몽이 그에게는 힘이 된 듯 했다. 질투가 날 수밖에 없었지만 그를 이해해 주는 유일한 존재였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형이었다. 발두르도 웃었다. 악몽을 꾼 이후 처음으로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고맙다, 호드."

화살 정리가 다 됐을 무렵, 뿔피리 소리가 들려 왔다. 프리크의 귀환이었다.

----------------------------------



"다 왔구나."

아즈라이 보이던 비프로스트가 눈 앞으로 다가오자 프리크는 휘청거렸다. 그 동안의 피로가 한번에 몰려오는 것 같았다. 아스가르드에서 그녀를 데려갈 마차와 하인들이 뛰어 오고 있었다.

힘이 다 빠진 몸과는 별개로 그녀의 마음은 평온했다.

"이제 발두르는 안전해..."

감기는 눈을 억지로 버티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었다. 힘든 일을 해냈다는 성취감과 발두르의 안전을 다짐 받았다는 기쁨이 그녀의 힘이 되어 주었다. 발두르의 얼굴이 벌써 보이는 것 같았다.

"어맛."

그녀를 모시던 시녀가 작은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치마자락이 살짝 찢어져 있었다. 바닥에 누워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나무가 찌른 것이었다. 프리크는 순간 그 나무에게서 서약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했지만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너무도 작고 가냘픈 겨우살이 나무, 치마를 찢을 정도는 되겠지만 발두르에게 해를 입히지는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피곤했고, 다른 시종들은 그녀의 몸을 걱정해 신경 쓰지 못 하고 있었다.



그녀의 귀환으로 발할라는 다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모두들 기뻐하며 그녀를 찬양했다. 발두르는 이것으로 안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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퀄리티가 떨어져 가네요 ㅠ
1편에 나온 오딘과 앙그르보다의 만남은 보통 이 때쯤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딘은 프리크가 뭘 하든 신경 안 쓰고 있었죠.

호드는 이 때도 안 나타나다가 다음 편(-_-)의 시점에서 갑툭튀합니다. 가끔은 발두르의 꿈 직후에 호드가 등장하기도 하지만요. 거 참 -_-;

북유럽 신화 전반에 비해 발두르의 존재는 참 이질적입니다. 가장 대표적이고 결정적인 에피소드지만, 그는 아무것도 못 하고 발할라에 있고, 주변 신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죠. 엄마가 자식의 안전을 위해 돌아다니는데 자식은 가만히 떨고 있습니다. -_-a 바꿔 생각한다면, 발두르가 의미하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미래, 언제나 옳은 존재, 어른들의 보호 속에서 자라야 하는 아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뭐 그런 면에서 프리크의 모습은... 네, 있을 때 잘 할게요 ㅠㅠ 근데 중간에 넣은 그림에는 안 걸어가고 마차 타고 가네요 ( ..)

문제는 이런 사랑이 같은 자식인 호드에게는 없었다는 거죠. -_-a 나름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그냥 둘 중 하나로 밀 걸 그랬나 봐요. 호드의 철자는 hodr. 영어 표기로 hod인 모양인데 한국에서는 호드, 호드르, 회드르, (저 o가 독일식으로 회 쪽으로 불린다는군요) 회트 등으로 불립니다.

뭐 여기까지 썼으면 제가 누구 빠일지는 짐작하셨으리라 믿습니다 (...) 중간 부분은 다~~~~~ 거짓말 아니 지어낸 거죠.

그럼...
종말이 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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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땀
11/10/14 22:1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잘보고 있습니다.
빨리 다음내용 올려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진리탐구자
11/10/14 22:33
수정 아이콘
구 에다에서의 발두르는 신이라기보다는 그냥 반인반신의 전사에 가깝게 나오지요. 마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헤라클레스나 아킬레스처럼. 삭소의 저술에서는 아예 난나를 두고 용사 호드와 전쟁 벌인 것으로 나오기도 하고...(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 류의..)

발두르의 모습이 이질적인 건 아마 기독교의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메시야 상이 발두르에게 투영된...그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로키가 악마의 대타 역할을 하게 되었고..

현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스톤콜드 발두르가 선역을 맡으니까 더 로키가 이에 대응되는 악역을 맡은 격이랄까..-_-;
방과후티타임
11/10/14 22:48
수정 아이콘
저도 어디선가 hodr의 이름을 회두르 라고 봐서 '이름 되게 이상하네' 라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슬슬 흥미로운 부분으로 들어가네요.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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