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04/01 20:19:26
Name 눈시BB
File #1 4월_5월.JPG (27.4 KB), Download : 69
Subject [일반] 임진왜란 - 4. 충장은 탄금대의 불꽃으로 화하여...


다시 지도 등장했습니다. 저번에 비해서 확실히 이번엔 익숙한 지명들이 많죠?

저번 편 중간에서 시작하겠습니다.

1592년 4월 12일. 이순신은 거북선을 진수하고 바다에 띄웁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완성이었습니다. 임란이 벌어지는 시점이라면 판옥선을 더 만든다면 몰라도 새로운 시도는 못 해 봤을 테니까요.

4월 13일. 절영도에 사냥을 나간 부산진첨사 정발은 대규모의 선단을 목격합니다. 7년간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

1. D-DAY
정발에 대한 서술은 둘로 나뉩니다. 첫째는 적선을 세견선이 아닌가 하면서 상황 파악을 못 했다는 거죠. 그런데 저번 편에 썼듯 불과 몇 달 전 최후통첩을 받은 게 정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상황 파악을 못 했다는 건 그의 무능설로도 이어집니다. 실제 실록 당시 기사를 보면 "정발은 성으로 도망가다가 결국 왜군에게 패해 죽었다"는 식의 말이 보입니다. 뭐 다르게 보면 정발은 침착하게 휘하 전선을 가라앉히고 농성했다고 하죠. 뒤쪽이 맞겠죠?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1군은 하룻밤을 지낸 후 부산진성을 공격합니다. 이 날 부산진, 서생포, 다대포 등 부산의 각 해안 요새들이 무너지죠. 경상좌수영의 규모가 전라좌수영보다 약간 큰 정도라서 바다에서의 요격은 힘들었을 것이고, 이전 글에서 적었듯 그 때문에 경상좌수영은 거의 육군화 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경상좌수영 박홍은 그 때 동래성에 집결했거든요.
동래산성에는 울진, 양산 병력과 함께 경상좌병사 이각, 경상좌수사 박홍이 집결하지만... 밖에서 호응하겠다느니 하는 핑계를 대면서 도망쳐 버립니다. 그 다음날인 4월 15일, 동래산성은 함락됩니다. " 죽기는 쉬워도 길을 열기는 어렵다 "는 동래부사 송상현의 결의와 일본군이 고이 장례를 치러주었다는 후일담과 함께요.

이 때 100척이라는 대함대를 거느린 경상우수사 원균은 병력을 집결, 부산 앞바다로 향합니다. 하지만 적의 대함대를 보고 후퇴해 버리죠. 다른 기록으로는 어선을 보고 적으로 오인해서 후퇴했다고 하는군요. 뭐가 진실일까요? 이 때 이순신도 박홍과 원균의 말을 듣고 적이 쳐들어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4월 17일. 조선 조정에 적이 쳐들어왔다는 게 알려집니다. 조선은 급히 이일을 순변사로 상주로 보내고 조방장 변기에게 조령을, 좌방어사 성응길에게 죽령을, 우방어사 조경에게 추풍령을 막게 합니다. 첫번째 지도를 봐 주시고 이일을 제외한 세 명의 장수들을 잘 봅시다.

여담이지만 경상도와 충청도의 경계는 정확하게 소백산맥이네요. 전라도와의 경계도 마찬가지고...

2. 3군의 진격
간략하게 4월 동안의 일본 1, 2, 3군의 진로를 보겠습니다.

1군 : 4월 13일 상륙 -> 14일 부산진, 서생포, 다대포 함락 -> 15일 동래성 함락 -> 18일 밀양 진입 조선군 격파 (VS 박진?) -> 19일 밀양성 진입 -> 23~4일 인동, 선산 진입 -> 25일 상주에서 이일 조선군 격파 -> 26일 문경함락 -> 27일 조령 통과 -> 28일 충주 탄금대
2군 : 4월 18일 상륙 -> 19일 언양성 함락 -> 21일 영천성 함락 -> 22일 경주성 무혈입성 -> 27일 조령 통과 -> 29일 1군과 합류
3군 : 4월 19일 김해 상륙 -> 20일 김해성 함락 -> 21일 창원성 진입 -> 27일 성주성 함락

참 급박하게 돌아가죠? 길을 보시면 1군은 밀양과 울산 함락 후 중로로 북진, 대구 -> 선산, 인동 -> 상주로 바로 올라갔습니다. 반면 2군은 동로로 영천, 경주성을 친 후 1군을 따라갔고, 3군은 1, 2군과 달리 김해에 상륙, 서쪽으로 거창, 성주 쪽으로 경상우도를 쓸어버리면서 진격했습니다. -_-; 다만 이 쪽은 별동대라고 하고 본대는 합천, 김천 방향으로 진격했죠.

왠지 후삼국시대에 심심하면 말했던 선산(일리천) 합천(대야성) 상주, 조령, 죽령 등이 보이네요. 소백산맥의 세 관문 조령은 1군이, 왠지 경주 쪽으로 가서 죽령으로 갈 것 같던 2군은 1군 따라 조령으로, 3군은 따로 추풍령으로 진격했습니다.

여기서 이전 편에서 제법 옹호했던 제승방략의 최대 약점이 드러나 버립니다. 보시다시피 일본군이 경상도를 휩쓴 것은 개전 10일만이었습니다. 이전에 전방에서 시간 끄는 동안 후방에서 병력 집결하는 게 경상도에서는 아예 불가능했던 거죠. 특히 중앙에서 장수가 내려오는 걸 기다려야 되는 상황은 최악의 결과를 내버렸습니다. 다만 반대로 변명을 할 수 있는 게, 그 당시 상황에서 누가 10일만에 저기까지 올 줄 알았겠어요. -_-; 나름 대비 다 하고 각 성마다 방어병력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이 때 경상도 방어군은 거의 괴멸되었고, 밀양을 지키던 박진은 경주 쪽으로, 경상우감사 김수는 밀양, 진주를 거쳐 거창 쪽으로 후퇴합니다. 최소한 이들은 크게 욕할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계속 경상도에 진주하면서 싸우려고 했으니까요. 한편 김성일은 자기가 반대했던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 때문에 잡혀갔다가 죄를 공으로 씻으라고 영남초유사에 임명되어서 진주로 가서 싸우면서 일본군의 진격을 어느 정도 저지합니다. 뭐 진주가 주 진격로에서 떨어지긴 했지만, 이후 경상도에서 그가 보여 준 활약은 죄를 다 씻지는 못 해도 어느 정도 인정해 줄 만 합니다.
한편, 22일에는 진주 북쪽 의령에서 최초로 곽재우 의병군이 거병합니다.

3. 이일
"신립이 조령을 버렸다"는 욕을 많이 듣는데, 수정실록을 보시면 이일을 보낼 때 조령, 죽령, 추풍령에 각기 장수를 파견해서 각 길목을 지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는 게 신립이 잘 했는가 못 했는가를 알 수 있겠죠.

조정의 대처는 그렇게 세 장수로 길목을 막고, 신립은 충주에 가서 기를 모으면서 적을 격멸할 준비를 하고, 이일은 상주로 가서 적을 격퇴하는 것이었죠. 사실상 반격의 선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모인 병력이 모두 도주해 버립니다. 일단 4만명이라는 건 제가 확인하지 못 했습니다만... 이 때 김수, 이전에 도망갔던 이각, 박홍 등은 여기에 모이지 않았을까 싶은데 김수는 왠지 거창에 있고 이각, 박홍은 그 전후의 전투에서 아예 이름이 보이지 않고, 상주목사 김해는 산에 숨어 버렸죠.
이일이 서울에서 출발할 때 병력이 "모이는 사람이 없어 80명"이라고 하는데(300명이라고도 합니다) 이걸 강조하는 건 이전에 말씀드렸듯 초반에 조선에 준비를 못 해서 병력이 부족했다... 이걸 강조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제승방략의 체계와 신립이 경군 8000을 끌고 간 것, 한강, 임진강 방어선에서 만 단위의 병력이 있던 거 생각하면 이일이 이끌 병력은 서울에서 끌고 내려가는 게 아닌 그 때 모인 조선군 병력이겠죠. 아무튼 이일이 내려가는 도중 도망쳐서 남은 병력은 60명이었다고 합니다. 이건 병력이라기보다는 군관 등 하급지휘관과 이일 직할 병력이 아닐까 싶네요.
이일이 상주에 도착한 건 23일. 위에서 봤듯 그 때 이미 1군은 상주 코 앞까지 들이닥쳐 있었습니다.

이일이 곡식을 풀어서 모은 게 수백여(800명이라는 말이 있더군요)명. 근데 대오를 편성하니 병력이 6000여 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 운동장에 몇 백 명 겨우 모아 놨는데 줄 세우고 뒤로 번호! 하니까 열 배 넘게 뻥튀기 됐다는 거죠. 뭘까요 이거.

아무래도 장수들이 도망간 상태에서 병사들도 흩어졌다가 이일이 오니까 어느 정도는 다시 모인 듯 합니다. 거기다 결코 적은 병력이 아닌 게, 아래에서 언급할 신립의 충청도 병력이 8000이라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상주 남부가 거의 먹힌 걸 생각하면 그리 적지 않습니다. 을묘왜변 때 왜구가 7000여명, 오히려 메뉴얼대로 모인 게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이 갈 정도죠.
물론 훈련도는 열악하고 적이 상상 이상으로 많았다는 건 안 자랑...

이일은 여기서 큰 실수를 하나 저지릅니다. 적이 바로 가까이 왔다고 알린 백성을 헛소문 퍼뜨린다고 죽여 버린 거죠. 거기다 척후도 보내지 않습니다. 신립과 1위를 다투는 명장이라던 이일이 이 정도였으니, 당시 조선 장수들의 인식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봐도 "이렇게 빨랐냐?" 하는 생각이 들 정돈데 그 때는 어땠겠어요. 하지만 이건 치명적이었습니다.

25일. 이일은 공격을 받고 패합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때 습진(習陣) 중이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진법을 연습 중이었다는 거죠. 이일의 처참한 상황도 짐작은 갑니다. 모아 두라는 병력은 다 흩어졌고 직접 병력을 다시 모으고, 처음부터 훈련을 시켜야 했습니다. 그에게 일주일 정도의 시간만 더 있었다면 나름 전투를 해 보지 않았을까 합니다만... 적은 이미 코 앞에 닥쳐 있었죠.
거기다 훈련을 하면서 척후도 제대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정찰병을 발견한 병사들이 있었지만, 죽은 사람이 생각나서 함부로 보고를 못 했습니다. 권위가 저지른 대표적인 실패 사례일까요... 결국 남쪽에서 연기가 치솟아 오르고, 이일은 군관 하나를 보내지만 이 역시 적의 저격병에 죽고, 이일은 적이 눈 앞에 닥칠 때까지 상황을 모릅니다.

이일은 정말 자기에게 시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4. 신립
류성룡은 신립이 잔인하고 포악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4월 1일에 둘이 했다는 대화에서 신립은 그 유명한 "조총이 어디 쏘는데로 맞습니까"라는 발언을 했죠. 충주로 내려갈 때 선조와의 대화에서 "적들은 군사를 쓸 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조는 변협과 비교하며 그가 살아 있었으면 걱정 없을 거라느니 하면서 은근슬쩍 신립과 비교하죠. 변협은 을묘왜변 때부터 공을 세운 명장으로 신립과는 달리 남쪽에서 활약했습니다. 안타깝게도 90년에 죽죠.

북방에서 신립이 세운 기록은 상당하긴 합니다. 니탕개가 1만을 이끌고 쳐들어 왔을 때 단 500의 기병으로 무찌르기도 했죠. 선조의 4남 이우의 장인이기도 해서 선조가 신립에게 건 기대는 컸을 겁니다. 이런 측면에서 탄금대를 봐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정실록에는 류성룡이 장사 8000명을 같이 보냈다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게 징비록 등으로 가면 자세하게 나오는데 신립이 병력을 모으려 하니 응하는 사람이 없었고 -_-; 그 때문에 열받아 있으니까 류성룡이 지가 모아서 보내겠다는 식으로 말하죠. 재조번방지 등 다른 기록도 여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더군요. 이 병력에는 경京군, 즉 한양의 무사부터 활 잘 쏘는 한량들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말 한 필씩을 동원해서 딸려주었다고 하죠. 단순히 어중이 떠중이를 모은 것일 수도 있지만 수도를 지키는 무사까지 딸려보냈다는 건 그렇게 오합지졸만을 모은 건 아니라는 걸 말 해 줍니다. 거기다 기병의 비율도 높았죠. 한마디로 당시 여유가 남은 병력을 모두 보내줬다는 것입니다. 정만록에는 이들 경군을 만여명이라고 서술하면서 충청도 지방군과 따로 떼어 놓는데, 이 점을 보면 팔천은 최소 병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충청도 병력은 팔천, 생각보다 신립군은 많았다는 거죠.

5. 탄금대?
유극량, 변기, 조경. 이제 이 세 인물들에 대해 좀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유극량은 안동 북쪽 죽령 (견훤의 한이 쌓인 ㅠㅠ) 을 맡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패했고, 임진강에서 다시 투입되었다가 전사합니다.
조경은 추풍령을 맡았고, 역시 전투에서 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후에 금산에서 적을 격퇴하기도 하고 후에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에서 싸웁니다.
그리고 조령을 맡은 변기... 이름답게 인터넷 검색으로는 참 힘들군요. -_-; 이일은 패전 후 변기에게 갔고 거기서 패배했다는 장계를 올립니다. 그리고 26일 충주에 도착한 신립은 이일과 변기를 소환합니다.
조령을 비운 거죠.

김여물은 조령을 막고 험지에서 싸울 것을 주장합니다. 이일은 너무 쉽게 패한 후유증에 시달리는 건지 적을 정면에서 맞서 싸우면 승산이 없으니 한양으로 물러나자고 하죠. 그 말 때문에 죽을 뻔 하지만... 하지만 신립은 이에 반대하면서 아군이 기병이니 유리한 평지에서 싸우자고 합니다.

이에 대한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일단 세 요충지에 모두 장수가 주둔한 상태였습니다. 추풍령과 죽령이 뚫린 게 언제였는지 몰라도 그 방향에 대해 적의 공격이 오는 건 확실했고, 조선군은 소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립이 조령에만 집중하면 다른 곳은 뚫려 버립니다. 그럼 뒷통수를 조심해야죠. 만약 세 곳을 다 방어하려고 한다면 기껏 모아 놓은 병력을 또 쪼개야 됩니다. 한편 신립이 갔을 때 이미 다른 두 곳도 뚫린 상태라면 더 위험하죠. 최대한 빨리 조령 방면의 적을 격퇴하고 다른 곳으로 가야 됩니다. 애초에 그의 역할은 방어가 아니라 격퇴. 거기에 신립은 소수의 기병으로 다수의 기병을 무찌른 바 있고 일본군을 가벼이 보고 있었습니다. 왜구 때의 기억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일본군은 정규군이었구요.

거기다 산지에 병력을 배치하면 안 그래도 훈련도 떨어지고 사기 떨어진 조선군이 도망가서 숨기 쉽습니다. 나름 대군인만큼 그걸 막는 건 더 힘들죠. 아마 이런 점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결정적으로 신립의 병력은 합쳐서 만육천 정도(경군 8000 충청군 8000)로 볼 수 있고, 보기에 따라 그 이상도 가능합니다. 반면 고니시 유키나가의 1군은 저번 글에 적었듯 16700. 2군이 뒤따르고 있다고 하지만 탄금대 전투에 개입하지 않았고 29일에야 합류하는 걸 보면 하루 거리 정도 뒤쳐져서 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각 다이묘들의 병력들이 따로 모인만큼 합동공격은 쉽게 찾기 힘들고, 고니시와 가토는 한양을 향한 경쟁 중이었고 사이도 많이 나빴습니다. 어쩌면 가토는 1군이 신립에 의해 패하길 바랬을지도 모르겠네요. 거기다 1군은 강행군으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만육천 vs 만육천칠백. 신립이 적의 병력을 정확히 알았을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해 볼 싸움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6. 결전
하지만 탄금대는 기병에게 그리 맞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논이 많아서 돌격이 힘들고 마침 비도 온 상황이었죠. 여기에 하나가 더 끼어들죠. 배수진. 사기가 낮고 훈련도가 부족한 병력이 모인 이상 신립이 목숨 걸 것은 정예 기병대일 뿐이었을 것이고, 나머지는 도망가지 못 하고 죽어라 싸우게 하기 위해서였겠죠.
http://historyu.egloos.com/1728929
이 글을 참고해주세요. 아마 제 글 전체적으로 이 글을 베꼈다는 느낌을 많이 받으실 겁니다. -_-; 에 참고한 거예요;;;

일본측 기록에는 이 때 신립의 병력이 과장돼서 나타납니다. 팔만 수준으로요. 전형적인 전과 과장이지만... 그 때 고니시를 따라 종군했던 신부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도 적이 상당한 대군이었고 아군은 지쳐 있었으며 기병 돌격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이 때 신립은 여러 차례 돌격을 시도하는데 기록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세 차례로 압축되는 듯 하네요. 어느 정도 과장이 있더라도 일본군이 여기 충격을 받은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신립이 용감히 싸웠다는 것도 사실인 것 같구요.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조선군의 하급자 중에는 약간 비겁한 자들이 눈에 띄었지만 상급자들은 매우 용감무쌍하였다고 한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뭔가 낯선 느낌이 나네요.

조선측 기록에는 신립이 돌격하는 동안 좌우에서 다른 적들이 협공했다고 합니다. 당시 1군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7000과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의 5000을 주력으로 하는 병력이었는데 아마 중군이 고니시 유키나가, 좌군이 소 요시토시, 우군이 이외의 병력일 듯 하네요. 위에 링크한 글에서는 전형적인 "망치와 모루"라고 평가하더군요. 고니시군이 최대한 버티는 동안 (탱커 -_-;) 소 요시토시군이 내려치는 거죠 (딜러). 서정일기에서도 이 두 군이 공격했다고 돼 있다는군요.
이로 인해 신립군은 포위되었고, 신립은 최대한 길을 뚫어보려 했으나 포위망은 좁혀지고... 결국 신립군은 전멸하고 신립과 김여물은 활로 적 수십 명을 쏘아 죽인 후 강에 뛰어 듭니다. 이 때 둘의 대화가 “그대는 살고 싶소”하니 김여물이 빙긋이 웃으며 “어찌 내가 죽음을 아낄 것이라 하시오” 였죠. 신립의 말에 대한 해석이 좀 여러 가지 있는 듯 싶지만...

신립이 천, 이천, 이천씩 추행진 형식으로 순차적으로 돌격했다는 말들이 있는데 출처를 모르겠네요. 그냥 사료들을 분석한 건지... 일본측 기록에는 반달형인 언월진이었다고 한다던데요.

7. 본 게임 시작
나름 결론을 내려 보겠습니다.
신립이 굳이 조령에 있는 병력까지 불러들인 것은 확실한 결전을 위해서였고, 다른 두 관문이 뚫릴 위기인 이상 조령만을 지키는 것은 옳은 선택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방어가 아닌 격퇴를 위해 파견되었고, 일본군을 무시하고 있었으며, 이미 소수의 기병 돌격으로 다수의 적을 격퇴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병력도 결코 꿀리지 않았죠.
하지만 기병 돌격과 배수진을 위해 선택한 탄금대는 그리 좋은 전장은 아니었습니다. 시간도 부족했죠. 26일에 신립이 충주에 도착했는데 탄금대 전투는 28일이었습니다. 그나마 강행군한 일본군에 비해 진형을 미리 갖추고 싸울 수 있었겠지만 확실히 좋은 지역을 선택하기는 힘든 시간이었죠. 이일 때와 마찬가지로 북방에만 있어서 현지 지형을 잘 모르는 것도 크다고 봅니다.

그의 기병 돌격은 일본군에도 제법 큰 충격을 준 듯 하며 일본군은 이에 대해 포위 전술로 대항했습니다. 이게 절묘하게 먹히면서 신립군은 그 이상의 전과를 내지 못 하고 전멸합니다.

글쎄요.. 어떻게 평가를 내릴까요. 일단 원균과는 달리 나름 용장이었다고 평가하고는 싶습니다만... 일본군의 포위 전술을 보면 마찬가지로 신립이 너무 못 했다기보다는 일본군이 역시 너무 잘 싸웠다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역시 그에 대한 건 보는 분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역시 기존의 평가 ( 병력이 적었어, 조령을 막았어야지 ) 는 부정하지만 더 나쁜 평가가 나오겠네요. 병력도 만만했지, 근데 왜 졌어 이런 거 -_-; 왠지 임진왜란 전체적으로 " 우리 애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 이런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준비를 안 해서 당했을 뿐이라는 거죠. 하지만 확실히 실력대결로 진 부분이 너무 눈에 띄네요.

다만 이일 등이 도망친 걸 볼 때 완벽하게 포위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립과 김여물은 패배의 책임을 지고 부끄러움에 자결했다고 봐야겠죠. 그리고 그런 면에서 충청도 군사들 역시 도망치지 않고 싸운, 임진왜란 전 기간을 걸쳐 야전에서 도망치지 않고 싸운 병력은 충청도군 뿐이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 반면 경상도군은 게릴라전을 잘 했고, 전라도군은 농성전을 잘 했다는 평가를 하더군요)

실록에는 신립만을 믿고 충청도 관민들이 도망치지 않았는데 신립이 패하면서 몰살당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전투는 실질적인 조선의 주력이 전멸하면서 조정에서 파천 논의가 나오는 등, 전쟁의 위험을 확실히 느낀 전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그냥 경상, 전라도에서의 변방 얘기일 뿐이었으니까요. 이후 고니시군이 평양까지 진격하는 것을 보면 1군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비슷한 피해라도 줬으면 큰 타격이 됐을 텐데요... 이후 불과 몇 일 후인 5월 3일 한양이 점령당합니다. 일본군의 전투력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났으며 이후 평지에서 맞붙는 회전은 거의 없습니다.

이제부터 임진왜란은 단지 경상도에서의 먼 일이 아닌 국가의 존망을 (발음 주의하세요) 걱정하는 것으로 발전됩니다.

================================================

겨우 한 달 나갔네요. -_-; 탄금대 전투를 좀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왠지 계속 하나 빼 놓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조선의 기병은 어디까지나 궁기병 위주였습니다. 신립도 창기병 돌격이 아닌 궁기병 돌격을 뜻하는 치사馳射 말을 했구요. 궁기병이 어울리는 건 이동이 쉬운 평야죠. 흐음... 그런 면에서 탄금대를 선택한 게 왠지 시간 없어서 대충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배수진이라고 하기에는 이일을 비롯 탈출한 사람이 보이거든요.

왠지 신립이 아내에게 편지 쓸 시간이 있었으면 이렇게 했을 것 같네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당신이 어떤 소식을 듣던 간에, 이것만은 알아야 하오. 김여물은 영웅답게 죽은 것이 아니오. 내가 죽였소... 나의 자만심이 그를 죽인것이오... 그리고 지금 또 자만심이 나를 삼켰소."
... 너무 철 지난 패러디인가요? 참고로 이 글 제목은 충무공전 2 미션 제목입니다.

다음 편은 진짜 "나라가 망한다"입니다.

여담이 계속 길어지는데... 물에 빠진 걸 어떻게 건졌는지 몰라도 겨우 시신을 수습해서 관에 넣고 들고 가는데 가면서 "장군"이라고 불러봤댑니다. 그러자 "옹야"라고 했다네요. 좀 더 가다가 부르니까 "에헴"이라고 기침소리가 낫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부르자 아무 말이 없었다는군요. 그래서 기침한 고개를 기치미 고개라고 부른답니다.
... 무서워요. 살아 있었던 건가.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나이트해머
11/04/01 21:04
수정 아이콘
http://lyuen.egloos.com/4952497

'궁기병' 이라는 조선 기병의 특성을 생각하면 탄금대는 좀 안좋은 지형이 아니라 최악 수준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궁기병에게 적합한 지형은 넓게 트인 곳이지 배수진이 아니죠. 뭐, 배수진이라 해도 완벽한 수준이 아니라 구멍이 꽤 많은 편으로 보입니다만.(실제로 조정이 신립 패전 소식을 들었을때 이미 도주해온 병사들로 인해 도성 내는 패닉에 빠졌죠.)

덤으로 번동아제님의 분석은 초승달 모양으로 포진해 일본군을 감싸는 형태로 최대 세차레의 돌격을 감행했지만 실패, 이 과정에서 좌우익이 큰 타격을 입고 진형이 무너지면서 군 전체가 붕괴, 패배라고 하시네요.
Siriuslee
11/04/01 21:25
수정 아이콘
원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전 시작후 1달까지는 정말 '호구왔는가' 수준으로 탈탈 털리지요.

개전초기에 탈탈털린 이유는
당시 병사들이 급하게 징집된 병력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한것 같습니다.
군대라는게 그냥 사람만 세워놓는다고 싸울수 있는게 아니라서..
전쟁준비를 마치고 침략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일본 침략군에 비해서,
농사짖다 긴급히 징집되어 싸우던 당시 조선 군대는..
아무리 뛰어난 장수가 지휘하더라도, 금세 모랄빵(...) 터지면서 전열이 무너질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군 선봉부대의 진격 속도를 보면,
무사 출신이 아니고 상인출신이라는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도 말빨로만 선봉에 선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도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만 말이죠.
(세키가하라때 서군에 섰다가 쫄딱 망하죠. 거기에 크리스찬이라서 잡혔을때 할복도 거절해 참수를 당해서 더욱 평가가 안좋지요.)
무리수마자용
11/04/01 21:28
수정 아이콘
이번글은 글의 재미와 더불어 깨알같은 폭소가 드문드문 기관총처럼 터집니다 ^^ 잘읽었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 고니시가 탱커맡는동안 포위해서 공격했다고 하셨는데요. 조선군은 기병위주였고 일본군은 보병위주였을것같은데 포위하는게 가능했을까요?
틀림과 다름
11/04/01 21:50
수정 아이콘
속업된 벌쳐라도 (다수의 )3방업된 SCV라면 (한정된 공간에서) 가둘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국강철대오
11/04/01 22:11
수정 아이콘
본문에 나온 유극량은 원래 전라좌수사(네... 거기입니다.)로 추천이 되었다가 천민 출신인 관계로(주인이 면천시켜주었지요) 능력에 비해 출세를 못했던 경우입니다. 개인으로서는 불행이지만 그 후임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나름 아이러니지요.

고니시는 정말 역사적 평가에 비해서 임란때 활약이 대단했습니다. 초창기 전투를 주도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 이여송이 이끄는 명군과 직접 혈전을 벌인 인물이기도 하지요. 비록 외교적으로 장난질 치다가 샌드위치 신세가 되었었지만 사실 왜군의 전공은 이사람이 최고였지 않나 생각합니다.
성야무인Ver 0.00
11/04/01 23:15
수정 아이콘
아마 다음회엔 조선의 바보장수와 일본의 바보장수에 대해서 나오겠군요. 조선의 바보장수야 말안해도 다 알듯 원균이었고, 일본군의 바보장수는 이시다 미츠나리입니다. 의외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시다 미츠나라의 경우 장수라기 보다는 행정가의 가까웠고 행주산성에서 벌인 무한삽질이야 뭐... 더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에 벌인 삽질 행진곡은 정말 감탄이 나올정도입니다.
11/04/01 23:19
수정 아이콘
역사 관련 글들 매번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임진왜란 3대 대첩 이야기 참 기대됩니다.
키스도사
11/04/01 23:48
수정 아이콘
지난번에 왜 안올라 왔나 했더니 올리셧는데 제가 보질 못한거군요 하하 ^^;;;
앞으로가 더 기대됩니다.

사실 임진왜란 초기에 보면 너무 시원하게 밀려서 어처구니가 없어보이긴 합니다.
부산, 동래성에서 수도인 한양까지 거의 무방비하게 뚫리고 용인 전투에서는 이광이 희대의 뻘짓을 선보이며 5만여명의 병사들이 1,600여명의 일본군에게 겁을 먹고 도망가버리고 ;; 정말 개전초기만 보면 조선이란 나라가 당장 망해도 안이상한데 말이죠 ^^;;
체러티
11/04/02 00:02
수정 아이콘
역시재밌습니다. 흐흐
카서스
11/04/02 00:12
수정 아이콘
근데 웃긴게 원균옹호론이 국편위 한국사에도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 적선 25척인가를 격침하고 7명의 수급을 베었다 였나? 어쨋든 이게 쇄미록에 나온 자료를 근거로 한 모양인데... 막상 쇄미록을 보면 언제 섬멸했는지, 혼자 섬멸했는지 나오지도 않는데 이를 보고 개전초에 원균이 섬멸하였다 (....) 라고 서술해 놓았더군요. 에휴.

그리고 신립이 탄금대에 진을 친 이유는 아무래도 위 내용과 더불어 이일과 비슷한 이유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훈련도 확보를 위해 어느정도 훈련을 함과 동시에 길목을 막고 평야에서 전투를 벌이겠다...

그런데 일본군이 너무 빨리 북상했으며, 탄금대는 지형이 시망 (...)
구국강철대오
11/04/02 00:23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 님// 한산대첩에 동원된 안택선이 36척입니다. 일반적인 전국시대였다면 다이묘들의 기함으로 쓰였을법한 당대의 배틀쉽이고 실재로 판옥선보다도 약간 더 큰 대형함정입니다. - 물론 현실은 큰 덩치덕에 포격 연습용 타겟이 되었지만;;; - 와카자키가 아니라 대장급 다이묘들도 운용할 수 없는 대규모 함대지요. 이건 비겁하게(!) 남해안의 수군을 기습하며 보급선을 아작내고 있는 충무공을 때려잡기 위해 당시 가용한 최정예를 모은 결점함대라 할 만 합니다. 물론 제 생각이지만 실재로 한산대첩은 트라발가와 같이 당시 남해안의 재해권을 결정하기 위해 양 국의 주력함대가 격돌한 결전이었고(조선군도 3도 연합군이었지요) 여기서 이긴 전투입니다. 당시 최고 지휘관이 와쓰자카였을뿐 당시 일본 수군의 대부분의 전투력이 동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트라발가 이후 대륙봉쇄령을 내린 것 처럼 히데요시도 전투금지령을 내리게 되지요. 애초에 전투결정이 히데요시급에서 나왔지 않나 생각됩니다. 전략적 중요도로 보면 명량해전보다 더 중요한 전투였고 그래서 3대 대첩에 들어가는 것이겠지요.
카서스
11/04/02 00:45
수정 아이콘
정말궁금합니다.................. 뭐냐 넌... 왜? 어떻게?
나이트해머
11/04/02 00:47
수정 아이콘
그리고 1군의 피해... 라고 해 봐야 뭐. 전근대시기 전쟁에서 진형을 유지시키기만 하면 사실 피해는 별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화포와 총기류가 등장하기 전에는 말이죠. 이점을 생각하면 결국 일본군의 진형을 깨뜨리는데 실패하고 역으로 조선군 진형이 붕괴된 이상 일본군 1군의 피해가 적은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을것 같습니다.
Je ne sais quoi
11/04/02 01:02
수정 아이콘
배수진인 거야 워낙 유명하니 알고 있었지만 그 기병이 궁기병인줄은 몰랐네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런 상황에서 배수진을 치고 정보도 얻지 않고 싸울 생각을 했을지 의문입니다. 훈련 상황이야 조선이 워낙 엉망이었고 급히 와서 그렇다고 쳐도, 전략 전술의 지읒도 모르는 저라도 정보를 얻고, 지리를 따지는 것이 기본이라는 건 알고 있는데 아무 것도 없이 저렇게 싸우다니 참 이해가 더 안 가는 사람이군요. 그런데 북방에선 500기병으로 1만을 무찔렀다구요 -_-? 당시의 전쟁 능력이 정말 일본 >>>>>...>>>>>>> 조선 >>>>...>>>> 북방 여진등 인 건가요? 그런데 그렇게 보기엔 어쨌건 최종적인 승리는 조선이 했고... 그럼 신립의 능력이 그냥 그랬을 뿐인 걸까요?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요 -_-;
벤카슬러
11/04/02 01:51
수정 아이콘
마지막에는 브루드워 엔딩 패러디인가요?
생각해보니 듀갈 장군하고 신립 장군하고 겹치는 부분이 있네요.
계속 승승장구하다가 마지막 전투 한방에 다 말아먹고 자살하는... -_-;;;

그리고, 예전에 happyend님께서 쓰신 글이 생각나더군요. '북방의 두 사람'
https://pgr21.net/zboard4/zboard.php?id=freedom&page=1&sn1=&divpage=2&sn=on&ss=on&sc=on&keyword=happyend&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508
옛 생각이 나서 링크를 걸어 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정치] [공지] 정치카테고리 운영 규칙을 변경합니다. [허들 적용 완료] [126] 오호 20/12/30 276180 0
공지 [일반] 자유게시판 글 작성시의 표현 사용에 대해 다시 공지드립니다. [16] empty 19/02/25 341881 10
공지 [일반] [필독] 성인 정보를 포함하는 글에 대한 공지입니다 [51] OrBef 16/05/03 463799 29
공지 [일반] 통합 규정(2019.11.8. 개정) [2] jjohny=쿠마 19/11/08 338249 3
102761 [일반] 아베의 세 번째 화살, 일본의 기업 거버넌스 개혁 [1] 깃털달린뱀154 24/11/27 154 0
102760 [정치] "김건희특검 여당 집단기권? 의원 입틀어막기" [15] youcu717 24/11/27 717 0
102759 [일반] 12월 8일, 연세대 수시 자연계열 논술전형 추가 시험 시행됩니다. [5] 매번같은915 24/11/27 915 0
102758 [정치] “트럼프팀, 北김정은과 직접 대화 검토” 로이터 [59] 물러나라Y1008 24/11/27 1008 0
102756 [일반] 네이버 멤버십에 넷플릭스가 추가되었습니다 [40] 설탕가루인형형4823 24/11/27 4823 1
102755 [정치] Kbs는 어디까지 추락할것인가 [43] 어강됴리7750 24/11/27 7750 0
102754 [일반] 페이커 외교부 기조연설 전문 [24] 설탕물6157 24/11/26 6157 33
102752 [정치] 법적대응이 시작된 동덕여대 사태 [201] 아서스16025 24/11/26 16025 0
102751 [정치] 윤 대통령,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의요구권 행사-특검법 3차 거부 [48] 물러나라Y6759 24/11/26 6759 0
102750 [일반] 우리가 실험실의 뇌가 아닌 것을 알 방법이 있을까? [54] a-ha5638 24/11/26 5638 0
102749 [일반] 기독교 작가 GOAT의 귀환. G. K. 체스터턴 탄생 150주년 기념판 [90] Taima3985 24/11/26 3985 3
102748 [일반] 지금까지 이용했던 항공사 소감-1 [57] 성야무인4585 24/11/26 4585 4
102747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53. 골 곡(谷)에서 파생된 한자들 [6] 계층방정1188 24/11/26 1188 1
102746 [일반] 울트라에서 프로맥스로..아이폰 10달 사용기 [13] Lord Be Goja3349 24/11/26 3349 14
102745 [일반] SNS, 메신저는 아무리 엄청나게 성공해도 오래 못 가는 듯 합니다. [53] 뭉땡쓰7359 24/11/26 7359 4
102744 [정치] 오세훈 시장 측, 명태균에게 21년 보궐선거 당시 3,300만 여론조사비 대납 의혹 [31] 린버크5648 24/11/25 5648 0
102743 [정치] '오세훈 스폰서' 강혜경에게 "명태균에 20억 주고 사건 덮자" [32] 물러나라Y5573 24/11/25 5573 0
102742 [일반] <위키드> - '대형' '뮤지컬' 영화가 할 수 있는 것.(약스포?) [19] aDayInTheLife1873 24/11/25 1873 1
102741 [정치] [속보] 이재명 위증교사 1심 무죄 [254] 물러나라Y18978 24/11/25 18978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