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03/17 23:35:35
Name 츄츄호랑이
Subject [일반]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난다.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나. 오늘 시험도 창가에 앉았는데 재채기 때문에 일 분은 손해 봤을 거야.
시험 시간은 충분했다며?
라고 승이가 말했다.
바보야, 공부할 시간이 줄어들잖아, 다음 시험 준비해야지.
노는 시간이겠지. 하며 승이가 내 머리를 뒤로 잡아당겼다.
아파!
재채기 안 하네?
정말로 재채기는 나오지 않았다.

도서관에선 시간이 천천히 간다. 다음날 보는 시험이 마지막 시험이라면 더욱 그렇다. 저녁을 혼자서 사먹고 도서관에서 언덕을 내려와 혼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흐린 날씨가 좋아. 시험이 끝난 뒤면 더더욱.
왜 재채기 때문에? 라고 승이가 물었다. 응.
단순하네.
단순해서 좋은 거야.
사람들은 왜 재채기를 하냐고 나는 물었다.
아마도 꺼내야 하는 게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어떤 거?
이를테면. 하고 가방에서 승이가 상자가 들어있는 쇼핑백 하나를 꺼냈다.
이런 거.
......이게 뭐야?
구두야.
구두야?
구두. 하고 되뇌다가 깜짝 놀랐다.
나 주는 거야?
응, 지난 번에 생일 선물 못 줬으니까.
나는 구두 안 신는데...... 우리 학교 언덕이잖아.
승이는, 너는 무슨 여자애가 구두를 안 신냐, 애처럼 하고 다니까 그런 별명이 생기는 거야, 하고 말했다.
고마워.

사이즈! 아빠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생각났다. 살짝 박스를 꺼내 열어봤다. 240. 정확한 내 신발 사이즈.

시험이 끝난 그 주엔 아무도 찾지 않았다. 나는 혼자 침대에서 난생 처음으로 빨간 구두를 발에 맞춰봤다.

얼마 후 커피숍에서 만난 승이에게 내 발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냐고 물었다.
저번에 술 마실 때 알려줬잖아.
나는 그런 기억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내가 기억하고 있으면 됐지.
그게 뭐가 되냐?
내가 너 대신 기억하고 있잖아.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건 좋은 거야.
좋은 거야?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으면 절대 없어지지 않지.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면 사라져도 남아있는 거야.
그럼 내 신발 사이즈도?
응, 이를테면 불멸(不滅)이지.
불멸...... 그 단어가 마음에 퍽 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해 나는 유난히 재채기를 많이 했고, 그 후에도 구두는 침대 위에서만 신곤 했지만, 난생 두 번째 남자친구가 생겼다.

아직, 빨간 구두는 신발장에서 떠나 보내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난다.


최근엔 우울한 소식 뿐이네요. 글은 잘 못쓰지만,
그렇지만, 그래도, 글을 쓸때면 조금이나마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1/03/17 23:44
수정 아이콘
오랜만이에요.
엄청 좋다!
많이 위로받고 가요.
아리아
11/03/17 23:44
수정 아이콘
해보면 재채기가 나오나요?? 전 잘 모르겠던데 재채기를 좀 하는편이어도
늘푸른솔솔
11/03/18 00:22
수정 아이콘
광반사 재채기라는게...흔한 현상인가요?30년 넘게살면서 한번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어서요... 사실이라면 참 신기한 일이군요... 빛에의한 알러지반응 같은걸까요? [m]
11/03/18 00:51
수정 아이콘
엥?? 원래 해보면 재채기 나는거 아닌가요? [m]
11/03/18 00:52
수정 아이콘
어릴땐 할랑말랑 재채기때 해를 보는 방법을 곧잘 써먹었는데, 커서는 해본적이 없는거 같아요.
생각하다보니 슬슬 옛 기억들이 떠오르네요.
늘푸른솔솔
11/03/18 01:23
수정 아이콘
내일출근하면 보는사람마다 물어봐야겠네요... 그런사람이많다면 정말충격인데요... 대체 무슨메카니즘일까요... [m]
샤르미에티미
11/03/18 01:23
수정 아이콘
해보면 아우 눈부셔 이런 생각 외에는 따로 반응이 일어나거나 하는 건 없는데 저도 처음에 듣고 신기했습니다.
언뜻 유재석
11/03/18 02:16
수정 아이콘
뭔가 말랑 말랑한 글이네요.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치여사느라 몰랐는데 사랑을 해야하는 계절이군요!!ㅠㅠ
오동도
11/03/18 08:05
수정 아이콘
저도 제 주위에서는 저 빼고는 본 적이 없네요..
아마 스스로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해를 보면 한방에 재채기가 나오는건 아니고
눈이 부셔서 그걸 손으로 살짝 가리고 계속 바라봐야 재채기가 나오거든요.
띠꺼비
11/03/18 08:16
수정 아이콘
헉!!! 해 보면 재채기가 나오는게... 모든 사람이 그런게 아니었단 말인가요 +_+
난 당연히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11/03/18 09:34
수정 아이콘
저도 해 살짝 살짝 보면 목 반쯤 걸렸던 재채기가 나오는데...
다 그런게 아니였나요???
Jamiroquai
11/03/18 11:22
수정 아이콘
저의 친한 여자친구도 별명이 호랭이라서
더욱 정감가게 읽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m]
11/03/18 12:51
수정 아이콘
글 너무 좋네요..
처음엔 '승이'가 여자분인줄 알았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울컥하네요. [m]
CAMEL.filters
11/03/18 16:17
수정 아이콘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나는 현상은 유전성이고 약 10%정도가 강하거나 약하게 이와 같은 증상이 있다고 합니다.
유전성이기 때문에 해를 보았을 때 재채기가 나는 사람은 주위 가족중 다수가 동일한 증상이 있어서,
자연스레 모든 사람이 해를 보았을 때 재채기가 난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그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1/03/18 17:07
수정 아이콘
야한생각하면 재채기 나시는 분은 없으신가요?
나만 그런가;;;
11/03/18 17:37
수정 아이콘
...
별마을사람들
11/03/18 20:01
수정 아이콘
헉, 해를 보면 모두들 재채기를 한다고 여태껏 생각해 왔습니다.
새로운 발견이군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7855 [일반] [야구] 올시즌 SK 전력이 그렇게 까지 떨어졌을까? [26] 옹겜엠겜5140 11/03/18 5140 0
27854 [일반] 이제 몇시간후면 시작합니다 [134] cs11277 11/03/18 11277 0
27853 [일반] 조재진선수 은퇴 [7] 삭제됨7087 11/03/18 7087 0
27852 [일반] [기사] 자살을 종용받았던 미네르바, 박대성씨 [107] 블레이드10833 11/03/18 10833 0
27851 [일반] 뇌가 짐승인 아이들 [36] 국제공무원9111 11/03/18 9111 0
27850 [일반] 가슴 설레이는 어린시절 추억 Best 50 [41] 김치찌개7659 11/03/18 7659 0
27849 [일반] [AFC챔스] 조별리그 2라운드 K리그팀 스윕 - 동영상 재중. [8] LowTemplar3747 11/03/18 3747 1
27848 [일반]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팀들의 우승 배당률!! [13] 신밧드5222 11/03/18 5222 0
27847 [일반] 제 2의 카를로스가 아닌, 제1의 마르셀로 [11] 라울리스타5637 11/03/18 5637 0
27846 [일반] [Fm] 개초보의 FM이야기 - 12부 리그 [24] 잠잘까10689 11/03/18 10689 1
27844 [일반] 해를 보면 재채기가 난다. [23] 츄츄호랑이6897 11/03/17 6897 1
27843 [일반] [역사]고고학이 죽었습니다. [40] 나이트해머6887 11/03/17 6887 1
27842 [일반] 걸그룹 걸스데이의 신곡 '반짝반짝'의 뮤직비디오가 나왔네요^^ [8] 세뚜아4216 11/03/17 4216 1
27839 [일반] [야구] 올 시즌 프로야구 순위 간단 예상 [95] 독수리의습격7566 11/03/17 7566 0
27838 [일반] 후삼국 이야기 - 완. 놈놈놈, 열정의 시대 [20] 눈시BB7807 11/03/17 7807 4
27837 [일반] 도대체 어디를 위한 정부인가요? [41] 아우구스투스6568 11/03/17 6568 0
27836 [일반] [호들갑] 인천공항 방사선 검출 [48] kurt7820 11/03/17 7820 0
27835 [일반] [음악계층]Justice의 신보 Civilization. [7] Observer_3816 11/03/17 3816 0
27834 [일반] 30cm 그녀 [22] wizard7627 11/03/17 7627 0
27833 [일반] 피말리는 일주일입니다. [43] Romance...8739 11/03/17 8739 0
27832 [일반] [쓴소리] 게임을 짐승같이 여기니 짐승으로 보이는 겁니다. [36] The xian6887 11/03/17 6887 2
27831 [일반] 짝패 中... [4] WhoIaM4980 11/03/17 4980 0
27829 [일반] 현지 주민 입장에서 본 이번 쓰나미 상황 영상.. [13] AhnGoon7902 11/03/17 790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