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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0/06 06:57:26
Name 식별
Subject [일반] 용병대장이 일국의 영주가 되다

존 호크우드의 일대기: 이탈리아의 가장 성공한 영국인 용병대장


 잠깐의 영주 생활

 존 호크우드는 이맘때부터 용병대장(capitanus)가 아닌 기사(milex)로 자처하기 시작했습니다. 로마냐는 오랜 방랑 생활을 끝내고 정착하기에 이상적인 곳이었습니다. 당대의 작가들은 그 곳을 바다, 산, 평원, 강, 깨끗한 샘물, 그리고 언덕과 숲, 상쾌한 공기와 포도주가 흐르는 공간, 즉 말 그대로 지상낙원으로 묘사했습니다. 


Romagna_olim_Flaminia.jpg 용병대장이 일국의 영주가 되다

 그러나 자연환경이 이렇게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로마냐의 정치 지형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으며, 그 땅을 통치하고 있던 '로마냐의 지배자'들은 곧 폭군의 동의어로 불렸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용병대장이 이 악마들이 지배하는 유토피아에 이끌린 것도 어쩌면 그런 맥락 하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겁니다.

 존 호크우드는 이 영지에서 나오는 소출을 고국인 잉글랜드에 재투자하는 등, 어엿한 농경귀족으로 발돋움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로마냐 생활은 점차 힘들어졌습니다. 이웃한 만토바 지역 곤차가 가문과 사이가 점점 틀어졌고, 무엇보다 용병단장이자 파엔차의 영주인 아스토레 만프레디와의 뿌리깊은 불화로 인해 영지 경영은 여러모로 삐걱거렸습니다. 용병단장으로서의 존 호크우드는 그 누구의 보복도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남들을 약탈할 수 있었지만, 로마냐의 영주로서는 외국 군대의 복수와 끊임없는 전쟁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결국 1381년, 존 호크우드는 로마냐 영지를 매각하고 피렌체와 새로운 용병 계약을 맺게 됩니다. 당대 연대기 작가들이 썼듯이, 존 호크우드가 '자신만의 독특한 천재성'을 발휘하는 그 영역으로 다시 돌아간 것입니다. 

 피렌체의 용병단장으로서 나폴리 원정을 이끈 존 호크우드는, 이 전역에서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기근과 역병, 그리고 급여 체납은 용병단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자 자유의 대가였던 겁니다. 그러나 이 때에 이미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된 존 호크우드는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을 롬바르디아와 로마냐 일대에서 토스카나나 움브리아 지역 일대의 이탈리아 남부 쪽으로 서서히 옮겨놓아 재정적인 안정을 이룬지 오래였습니다. 

 또한 아내 돈니나 비스콘티가 후계자를 낳았고, 존 호크우드는 고국인 영국의 외교관으로도 두드러지게 활약했으며, 무엇보다 역전의 용사로서도 명성을 떨쳤습니다. 육십이 넘는 나이까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드문 일이었고, 그 나이때까지 현역으로 전장에 나가 있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존 호크우드는 이제 10년 넘게 유의미한 전투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전역에서 주로 방어적인 임무를 맡았습니다. 말하자면, 한 물 간 것처럼 보였습니다. 1385년,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문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잔 갈레아초 비스콘티가 그의 숙부인 베르나보 비스콘티를 실각시킨 뒤 감옥에 가둬버리는 일대 격변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때, 장인 어른의 비명횡사에도 불구하고, 존 호크우드는 재빠르게 잔 갈레아초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새로운 악마의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는 이 계약을 통해 어마어마한 세습영지와 막대한 계약금을 지불받을 수 있었습니다. 


 카스타냐로 전투

 존 호크우드가 저택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즐기는 와중에도,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음모와 전쟁이 횡행했고, 마침내 그를 다시금 전장으로 끌어들일 연쇄반응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베로나와 파도바는 오랫동안 복합적인 원인들에 의해 서로간의 증오심을 세대를 거듭하여 켜켜이 쌓아가고 있었고, 거기에 더해 베네치아인들의 약간의 사주와 음모, 그리고 영주들간의 개인적인 감정 몇 숟갈이 추가되자 바야흐로 전쟁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전쟁 직전, 베로나의 영주 안토니오 델라 스칼라는 파도바의 영주 프란체스코 일 베키오 카라라에게 일대일 결투를 신청했고, 노쇠한 프란체스코 카라라 대신 그의 아들이 대신 결투에 나서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파도바의 영주는 아들의 객기를 말렸습니다. "아들아, 고귀한 혼인을 통해 태어난 네가 천한 빵굽는 여자 뱃속에서 태어난 사생아 따위와 싸우는 것은 전혀 명예롭지 않은 일이다."

 존 호크우드는 파도바인들의 부름을 받고 계약에 응했습니다. 영주는 그들을 맞아 직접 연회를 주선했고, 존 호크우드가 파도바 진영에 도착하자 이탈리아 각지에서 이름 드높은 위대한 용병단장들은 하나같이 허리를 굽혀 그를 맞이했습니다. 사실상의 전군 지휘관이었던 우발디니는 공격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다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를 멈추고는 존 호크우드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대장님, 왜 말씀을 멈추십니까?"

"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비록 제가 여기서 전군의 지휘봉을 쥐고 있지만, 제 명예를 걸고 감히 존 호크우드 경께서 먼저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는 지휘봉을 거부하고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부디 군을 이끌어주십시오."

 파도바군의 지휘부는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신속하게 각지를 불태우고, 약탈하며 베로나로 진군했습니다. 베로나에로의 진군은 상당한 고충을 동반했습니다. 병사들의 빵이 다 떨어져 초근목피로 연명해야했고, 식수마저 독에 오염돼 탈수증이 유행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존 호크우드는 오염된 우물에 자신의 반지를 넣거나 유니콘의 뿔을 가루내어 넣어서 정화시켰다는 기적을 행했다고 하는데, 그 정도로 힘든 여정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굶주린 병사들이 탈영하기 시작하는 와중에, 파도바군은 자신들보다 수적으로 우세인 베로나 군대를 카스타냐로에서 맞닥뜨렸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명한 용병대장들이 이끄는 베로나군은 마치 신기전과 비슷한 세 개의 큰 수레로 된 이상한 로켓 발사 화약 신무기를 동원했습니다. 각 수레에는 12x12 즉, 144개의 총이 장착돼있었고, 각 총은 계란만한 크기의 탄환을 발사할 수 있었습니다. 

 1387년 5월 11일, 양 군은 전투를 위해 길게 배치되어 서로를 마주보았고, 파도바군 사령부에서는 최종회의가 시작됐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전투를 개시하되, 명목상 총사령관이자 일대일 결투에 아버지 대신 출전하고자 했던 용맹한 프란체스코 노벨로는 뒤로 피신해있는 게 좋다고 제안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운이 좋지 못하게도 패하게 된다면, 그리고 저하께서 포로로 잡히게 되신다면, 저하의 나라는 국난에 접어들 것입니다."

우발디니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만일 저하께서 없으신 와중에 전투에서 패한다면, 그 다음에도 수천 가지의 해결책이 있습니다."

당연하게도, 용감한 프란체스코 노벨로는 도망가길 거부했습니다.

"저는 악당이 아닙니다. 전장에 나설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오백 명의 무장병과 오백 명의 장궁병을 이끌고 대열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 뒤를 일천 기의 기병을 지닌 우발디니가 이끌었고, 다시 그 뒤에는 일천 사백 기의 기병을 지닌 프란체스코 노벨로가 따랐습니다. 현지에서 징병된 보병과 석궁병으로 구성된 예비대는 강 근처의 둑 위 부분에 배치되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만일 필요가 있을 경우 강을 건널 통로를 만들기 위해, 미리 봐둔 지형의 평탄화 작업을 지시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테살리아산(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애마 부케팔로스가 테살리아산으로 유명합니다) 군마를 타고 전장을 호령했고, 우발디니는 진주 모자를 썼으며, 프란체스코 노벨로는 갑주 위에 카라라 가문의 상징인 붉은 수레가 그려진 백색의 벨벳 외투를 입었습니다. 전투에 앞서 여러 병사들에 대한 엄숙한 기사 서임식이 진행됐습니다. 

 전투는 해지기 약 한 시간 전, "태양이 이미 습지를 향해 빠른 여정을 마친" 시점에 비 오듯이 쏟아지는 잉글랜드 장궁병들의 화살 세례로 시작되었습니다. 베로나인들은 화살을 맞아가면서도 묵묵히 진격해왔고, 양측은 말에서 내려 도보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격렬한 전투 속에 많은 귀족들이 부상을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부하에게 일선 군대의 지휘를 맡기고 전장에서 빠져나와 상황을 관망하였습니다. 적의 좌익이 약화된 것을 보고 존 호크우드는 이전에 자신이 평탄화 작업을 해놓았던 바로 그 지점을 건너 약화된 부분을 집중 공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돌격 명령을 내리기 직전, 그는 먼저 노벨로에게 다가가 다시금 피신할 것을 권했습니다. 

"후퇴하느니 차라리 죽겠소."

 그러자 존 호크우드는 지휘봉을 적들이 있는 방향으로 힘껏 던지고 검을 뽑아들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깃덩이! 적들을 육편으로 만들어버려라!" 

 고기(카르네)와 카라라 가문의 상징인 수레(카로)의 발음이 유사한데서 온 말장난이었습니다. 병사들이 돌격하는 함성, 트럼펫 소리,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한 데 어우러져 온 천하가 사람들의 소리로 뒤덮였습니다.

 존 호크우드의 전략은 효과적이었습니다. 베로나 군대는 우왕좌왕하다가 혼란에 빠졌고, 적 사령부는 붕괴했습니다. 베로나군은 수천이 포로로 잡혔고, 천오백명이 죽거나 부상당했습니다. 이 전투는 푸아티에 전투와의 전술적 유사점 등으로 인해 후대 전술사가들의 주목을 받았으며, '스포르차 전술'과 '브라초 전술'이 모두 활용된 중세 이탈리아 콘도티에리의 이상적인 전투로서 칭송받았습니다. 무엇보다 한바탕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군의 일부를 빼돌려 자연적 장애물, 즉 강을 건너 (푸아티에에서는 숲을 지나) 번개처럼 적을 기습하게 하는 전술은 정말로 푸아티에 전투를 빼다박은 것처럼 보입니다. 

 프란체스코 일 베키오 카라라의 궁정에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좋은 소식은 전투에서 대승을 하고 그의 아들도 살아남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쁜 소식은 그 못난 자식이 너무 흥분해서 용병단에게 두 배의 급여를 주겠다고 호언한 것이었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고용주와 용병단 사이에서는 다시금 고질적인 재정문제가 벌어져 곧 연봉협상이 결렬되고야 맙니다. 

 결국, 존 호크우드는 가장 부유하고 꾸준히 급여를 지불할 수 있는 상대, 피렌체로 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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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아재
25/10/06 09:01
수정 아이콘
크킹!크킹을 켜야겠습니다. 오늘은 롬바르디아 비영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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