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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9/21 21:4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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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berserk19.jpg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피렌체의 연대기 작가 마테오 빌라니는 1359년, 프랑스 남서부에서 약탈 활동을 벌이던 '바늘(aguglia)의 존'이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바늘의 존은 무공을 세우는 데에 열정이 넘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인물이 한 때 재단사로서 바늘을 쥐고 있던 존 호크우드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바늘(aguglia)이 아니라 독수리(aquila)의 변형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문장학적으로 독수리와 매(Hawk)는 별반 차이가 없기에, 어쩌면 이 인물은 매의 존, 즉 존 호크라 불렸을지도 모릅니다. 존 호크우드는 평생 를 자신의 개인 인장으로 사용했고, 군기에도 매가 그려져 있었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Gustave_Doré_-_Apparition_of_Saint_George_on_the_Mount_of_Olives.jpg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Map-_France_at_the_Treaty_of_Bretigny.jpg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1360년, 프랑스와 영국은 브레티니 조약을 체결하며 일시 휴전을 맺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 전역에 남아있던 영국인과 가스코뉴인들,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은 그들 스스로 자유롭게 용병단(free companies)을 형성했습니다. 이 당시 가장 강력하고 거대한 용병단은 동프랑스 지역의 대용병단(Magna Societas)이었는데 존 호크우드도 이 때 '모험가들의 왕'을 자칭했던 세갱 바드폴, 가스코뉴의 베르나르 드 라 살, 독일인 알브레히트 슈테르츠 등과 함께 합류했습니다. 

 동시대 연대기 작가에 따르면 그들은 "벨리알의 아들들이자 불의한 사람들, 아무 권리 없이 타인을 약탈하는 이민족 전사들"이었으며, 동시에 "전리품으로 살아가는 경험많고 활기찬 역전의 용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상파뉴, 부르고뉴를 약탈하고 론 계곡을 따라 내려와 아비뇽의 교황령을 공격했습니다. 이들은 아비뇽에서 불과 40km 떨어진 곳에 진을 치고, 인근에서 온갖 잔학행위와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Avignon_palais.jpg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교황은 이들을 파문하고 십자군을 선포했으나, 교황의 '십자군'들 또한 애초에 상당수가 용병 출신이었기에 출진한 뒤에 용병단으로 합류해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교황과 용병단 사이의 화친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의 징벌인 흑사병의 창궐로 인해 이뤄졌습니다. 교황은 용병단의 일자리를 직접 알선해 피레네 산맥 너머 스페인이나 알프스 산맥 너머 이탈리아 등지로 떠밀었습니다. 

 존 호크우드는 이 때 이탈리아로 간 이들과 함께했습니다. 그곳에는 북부 이탈리아 전역에 세를 떨치던 교황의 오랜 숙적, 밀라노의 군주 베르나보 비스콘티가 웅거하고 있었습니다. 호크우드가 속한 용병단은 교황의 동맹이었던 몬페라토 후작을 위해서 일하도록 주선되었는데, 동로마 황제의 손자였던 팔레올로고스 가문의 몬페라토 후작 조반니 2세는 호크우드와 동년배의 '잘생기고 용맹하며 현명한' 풍채의 인물이었습니다. 조반니 2세는 직접 용병단을 맞이하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이탈리아까지로의 행군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용병단의 일부가 계속해서 대열에서 이탈해 독자적으로 약탈을 떠나는 바람에,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오랫동안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머물러야만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두번째 행군에서도 얼마간 질서정연하게 가나 싶더니만, 마르세유의 현지인들이 식량 판매를 거부하자 곧장 그곳을 약탈해버리는 불상사가 벌어졌습니다.

 용병단이 이탈리아로 건너온 지 7개월이 지난 시점의 계약서가 여전히 토리노 국립문서보관소에 현존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서 존 호크우드는 하급 지휘관들의 이름을 기록한 명단에, '요한네스 데 하케우데(Iohannes de Hakeude)'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용병단의 공식 명칭은 '영국인과 독일인의 대용병단'으로, 본질적으로 프랑스를 약탈하던 시절의 이름과 거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름에는 독일인도 포함되어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용병단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영국인이었을 것이며, 동시대의 현지 문서들 또한 이 용병단을 간략하게 '영국인들의 용병단'으로 기술하곤 했습니다. 이 용병단은 대략 이삼천명의 기병을 포함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berserk209.jpg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이 당시의 이탈리아는 기근과 역병 그리고 만연한 폭력 등으로 인해 극도로 혼란스러워, 당대의 표현을 인용하자면, "세상은 거대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전쟁 상태는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였고, 지리적 경계를 따라 반도를 누더기 조각으로 찢어놓는 수없이 많은 정치체들이 난립하며 상쟁하고 있었습니다. 피에몬테 지방에서는 몬페라토 후작과 사보이 백작이, 롬바르디아에서는 교황과 비스콘티 가문이, 그리고 수없이 많은 자치적인 도시들이 각자의 이권을 놓고 다퉜습니다. 

 이에 더해 외세도 주기적으로 개입했습니다. 헝가리의 앙주 가문은 북동쪽에서 베네치아를 압박했고, 아라곤은 남쪽 시칠리아에서 반프랑스의 기치를 올렸으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또한 세금을 거두기 위해 주기적으로 북쪽에서 내려오곤 했습니다. 이런 모든 개입은 각각 폭력을 수반했습니다. 그토록 부유한 동시에 이토록 혼란스러운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이, 세계각국의 용병을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Gustave_dore_crusades_richard_and_saladin_at_the_battle_of_arsuf.jpg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용병단의 일견 '민주적'으로 보이는 의사결정구조나 돈에 따라 움직이는 상업적 의존성으로 인해 일부 역사학자들은 용병을 봉건기사들의 대척점에 놓았습니다. 고귀한 혈통을 지닌 기사들이 자신에게 봉토를 수여한 주군을 위해 명예롭게 싸운다면, 하층민 출신의 용병들은 오로지 고용인의 돈만 보고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14세기에 용병단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현상을 기사도 및 봉건체제의 쇠퇴와 직접적으로 연관짓는 학자마저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용병은 인류 역사상 어느 곳에나 있었습니다. 잉글랜드를 정복한 윌리엄의 군대에도 용병이 있었고, 실제로 중세 전장에서 한쪽에 용병이 포함되지 않은 사례가 더 드물 지경이었습니다. 전장에서 용병과 기사를 구별하는 것도 사실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기사도 잔혹한 약탈을 일상적으로 했습니다. 

 기사들의 명예란 같은 귀족 신분의 인간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지, 하층의 농민들은 그들에게 있어 같은 인간종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사도와 상충되는 것이 전혀 아니었는데, 당대의 교양서에는 농민 여성을 다루는 적절한 사랑의 방식에 대한 지침이 쓰여있기도 하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여기에 적을 수 없습니다. 유쾌한 어투로 쓰여있지만, 암시하는 내용은 아주 끔찍하고 폭력적입니다.) 

The_Black_Prince_at_Crécy.jpg 중세 최악의 용병단을 알아보자

 실제로 한 때 존 호크우드가 복무하기도 했던 흑태자의 군대는 프랑스에서 악명높은 슈보시(Chevauchée 약탈행진)를 벌였는데, 그를 용병과 착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용병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출신이 천하다 해도, 그가 전장에서 성공하는 것이 곧 그의 고귀함을 증명해주는 일이었으며, 용병들은 전장에서 사로잡은 귀족은 대체로 (경우에 따라 끔찍한 고문이나 협박을 수반할 수는 있었어도) 몸값을 받고 풀어주었습니다.

 많은 용병단은 또한 그들 스스로의 '기사됨'을 강조했으며, 또한 많은 기사들이 용병단의 일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용병들이 무훈을 세워 기사가 되는 일도 드물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람을 가장 잘 죽일 수 있도록 어린 시절부터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이들은 귀족 출신이거나, 귀족에 의해 거둬져서 어린 시절부터 훈련받은 농노나 노예 출신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어떤 이들이건, 전장에서 적을 훌륭히 잘 죽일 수 있는 자들은 용병단에서 고귀한 신분으로 대접받았고, 많은 용병단이 기사단과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기사도를 흉내내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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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21 22:28
수정 아이콘
중세 기사도에서 명예는 하층민을 상대로도 지켜지는 게 원칙적으론 맞구요. 단지 20세기와 현대에도 끊임없이 벌어진 민간인 살상과 마찬가지로 우회하고 변명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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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도 정신 내의 긴장과 모순은 비전투원(inermis)의 처우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교회의 엄격한 규율의 영향 아래, 비전투원은 전쟁으로부터 면제되어야 했으며, 어느 정도는 기사 계급의 구성원들도 이 이상을 진심으로 지지했다.

그러나 중세 전쟁은 적의 전쟁 수행을 위한 경제적 기반을 파괴하고, 자신의 신민을 보호하지 못함을 보여줌으로써 그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적의 소도시, 마을, 농작물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포함했다. 신민을 보호하는 것은 중세 통치자의 주된(어쩌면 가장 중요한) 의무였다.

그 격언은 백년 전쟁에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이러한 비전투원에 대한 의도적인 공격은, 정당화가 필요하다면, [그들이 적대 군주의 신민으로서 조세와 같은 기여를 통해 그의 전쟁 수행을 돕고 있다]는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주로 성직자 작가들 사이에서(비록 그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전술을 개탄하며 잃어버린 기사도의 황금기를 회상하는 오랜 흐름이 있었다. '요즘 모든 전쟁은 가난한 노동자들과 그들의 재산을 향하고 있다… 그러한 전쟁 방식은 가치 있는 기사도의 규율이나 정의, 과부, 고아, 그리고 가난한 자를 옹호했던 고귀한 전사들의 고대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기사도 역사의 거두인 프루아사르조차 1370년 흑태자에 의한 리모주 약탈을 개탄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영국인들이 어째서 반역을 저지를 만큼 중요하지도 않았던 가난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Anne Curry ed., The Hundred Years War Revisited
25/09/21 22:35
수정 아이콘
이것에 대해 따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25/09/21 22:53
수정 아이콘
보통 우리가 역사책이나 역사 이야기를 찾고 듣는 이유는, '영웅'이나 '대왕'을 위해서인데, 저번 글에 이어서 호크우드의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미디어에서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용병단', 마치 '프리랜서'를 의미 그대로 현대적으로 해석한 듯한 모습들은, 확실히 양산형 판타지물의 '모험가 길드'가 그렇듯이, 실제로 전근대의 역사에 흥미를 가지고 알아보는 사람이 아는 용병단의 현실과 거의 공통점이 없다는건 참 흥미로운 지점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회사 운영을 위해서 옆집 사람이 빵을 팔지 않으면, '제가 칼을 들었는데 그리 말씀하시는게 옳으실까요?'라고 말할 일이 없는 현대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처절한 노력이겠지요. 말씀주신 내용을 보니, 20세기에도 분쟁지역에서는 흔한 일이었으며, 지금도 아직 곳곳에 남아있는 군벌들이 생각납니다. 알고 있던 것을 다시 진정 아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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