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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9/04 22:55:57
Name 깃털달린뱀
Subject [일반] 무엇을 위해 살아있는지 모르겠다. (수정됨)
[그런데 음식을 분변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몇 가지 부산물들이 발생합니다. 사실 꽤 많은 부산물들이지요. 미학, 나, 이득, 구분, 호기심, 친구 찾기, 존엄성, 소득재분배, 너, 우리, 윤리, 단추 꿰는 법, 평등, 질투, 투쟁, 미래예측, 범주화, 농담, 금기, 동정심, 사랑. 음. 이거 밤새겠군요. 어쨌든 저는 제 육체를 음식과 분변 사이에 위치시키는 노동을 통해 상당한 가외소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영의 음식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 피를 마시는 새, 이영도 -


내가 살아 있는 이유는 부모님이 나를 만드셨고 그 후 여태까지 음식을 소화해왔기 때문이다.

짧은 생이지만 평생을 생존의 위기를 느끼며 살아왔다. 집안은 넉넉치 못했고 항상 돈에 쪼들렸다. 굶을 정도로 여유가 없지 않았으나 항상 그 위험을 경고받았다. 생존을 위해 공부를 했고 모든 것은 취직을 위한 살기 위한 행위였다.

취직을 했다. 월급을 받는다. 생존에 대한 금전적 제약이 사라졌다. 그럼 난 이제 더이상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하는가?


목표를 잃은 부평초처럼 떠다니고 있다.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다. 꿈이 있었다. 타고난 능력의 부재로 처참히 실패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그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으되 살아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항우울제는 나를 한없는 나락에서 건져주었으되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고차원적인 꿈이 아니라 1차원적인 욕구를 따라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3대 욕구는 식욕, 배설욕, 수면욕이라고 한다.

배설욕, 성욕은 항우울제와 함께 사라졌다. 이성의 알몸을 봐도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다. 식욕은 위고비를 맞고 사라졌다. 수면욕? 오래 자고 일어난 주말에 느끼는 감정은 충족감이 아니라 공허감일 뿐이다.

무엇을 해도 지겹고 재미가 없다. 욕구가 없으니 충족도 없다. 1차원적인 욕구도, 고차원적인 욕구도 그 무엇도 없다.

불가에서는 욕망에서 벗어난 상태를 해탈이라 하고 지향점으로 보나 내가 느끼기엔 그저 한없는 공허일 뿐이다. 지겹고 지겹다. 그 자체로 고통일 뿐이다.

점점 흥미있는 무언가가 사라져간다. 모든 것이 지겹기 그지없다. 새로운 것은 고통스럽다. 고통과 권태 사이의 양자택일? 난죽택.

그 공허가 두려워 술을 마셨다. 혼란한 정신은 시간 죽이기에 특효약인듯하다. 그러나 남은 이성이 경고한다. 건강을 잃을 것이라고. 다른 측면이 또 냉소한다. 이런 삶을 더 오래 이어봐야 뭐 더 좋은 게 있다고.

자아를 잃고 무로 돌아가는 것은 두렵다. 그렇지만 이대로 의미없이 사는 것 또한 매우 고통스럽다. 삶은 곧 고통이라. 해탈하고싶다. 생존본능과 이성이 충돌하는데 어느쪽도 고르고싶지 않다.

모르겠다. 나는 내일도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주도, 그 다음 달도, 내년도, 죽기 전까지.

즐거운 일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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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4 23:0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글이 잘 읽히네요.
고민시
25/09/04 23:24
수정 아이콘
저도 딱히 사는 재미가없네요 그냥 lck하면 lck 보고 해축 하면 해축 보고 귀칼 나오면 귀칼 극장판 보고 흘러가는데로 살긴하는데 살지않아도 좋을거같은? 엄마보단 늦게 가야지 하는 생각때문에 갈수도없지만 딱히 생에 크게 의미도 없는거같고
태엽감는새
25/09/04 23:26
수정 아이콘
안아프니까 가능한 사유겠죠
다크드래곤
25/09/05 03:42
수정 아이콘
다른 사람의 철학적 사유에 대한 참 예의없는 태도라 생각합니다
안군시대
25/09/04 23:48
수정 아이콘
저도 한동안 항우울제를 복용한 적이 있는데, 뭐랄까.. 도파민에 대한 저항성이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괴로운 일에 대해 아프지 않은 건 좋긴 한데, 좋은 일에도 무덤덤해지더군요. 마음의 진통제라는 말처럼, 자극이 더이상 자극이 아니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저를 담당하셨던 선생님도 말씀하시기를, 일단은 이 약을 먹으면서 마음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서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막아보면서, 차차 외부의 자극에 대해서 스스로 저항하는 힘을 길러보자 하시더라고요. 그게 효과가 있어서 지금은 약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얻은 게 있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거였죠. 우리가 책이나 영상 등을 통해서 접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굉장히 다이나믹하고 자극적이지만, 사실 우리 같은 일반적인 사람들 입장에선 하루 하루 지나가는 동안 겪게 되는 일들이 사실 세상을 흔들만한 큰 일이 아닌게 대부분이고, 그냥 세상이라는 큰 바다 위에 떠 있는 나무 한 조각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릴때야 제가 무슨 슈퍼맨이라도 돼서 세상을 뒤흔들 태풍이라도 될 것 같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가는 과정을 겪고 나니, 왜 사는지에 대해서도 그렇게 고민하지 않게 된 듯도 합니다.
라라 안티포바
25/09/05 00:39
수정 아이콘
전 오히려 하고싶은일이 너무너무많은데, 돈이라던지 여러여건이 안되서 안타까울따름입니다...ㅜ
앙금빵
25/09/05 01:24
수정 아이콘
개인적 고통을 제가 온전히 이해하긴 어렵겠습니다만,
결혼 확장팩과 육아 DLC를 추천드립니다. 
This-Plus
25/09/05 01:28
수정 아이콘
몇 년 안에 소소한 파이어를 목표로 열심히 사는 중입니다.
아무무
25/09/05 02:52
수정 아이콘
무언가를 좋아할 수 있는 것도 능력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선천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편이어서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고 쉽게 재미를 느끼는 편인데, 주변에 저와 온전히 반대인 친구를 보면 그 어떠한 것에도 흥미를 잘 못느끼더라고요.

또 한편으로는 행동이 감정을 이끄는 측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한 것에 관심이 없더라도 막상 몸으로 해보면 (그것이 보거나 듣는 행위이던, 읽는 것이던, 실제 몸을 움직이는 활동이던) 내가 했다는 행위 자체부터 관심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 어떠한 것이던지 한 번 해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αυρα
25/09/05 04:15
수정 아이콘
글쓴 님이 댓글 님 이야기처럼 이었다가 중간에 바뀌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도 호기심이 아주 많은 사람이고, 많은 걸 못했었고, 이후에 열심히 벌어서 적당히 많은 경험을 해 보았고, 지금은 글쓴님과 비슷합니다. (여전히 가능하다면 더 하고 싶습니다)

저도 꽤나 T입니다만 제가 느끼기에는, 글쓴님에게 T보다는 다른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αυρα
25/09/05 04:31
수정 아이콘
(위랑 연결로)저도 그냥 말씀대로 음식을 집어넣고 소화하며 살고 있습니다. 술한잔 같이 필요하시면(술드시고 힘이 세지는 건 아니라는 전제하에 : ) 편하게 연락주셔도 됩니다.
그리고 우울증이라고 생각이 조금이라도 드시면(왜그래? 의 답이, 압도적 1번이 모호하면) 병원 추천드립니다(사회복지사 친구가 미치도록 추천하던데, 저는 명확한 1 이유가 있어서 참 고맙기도 한데 답답도 했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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