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빵은 비쌉니다. 우리가 주관적으로 비싸다고 느끼는 수준을 넘어 아시아에서 가장 비쌉니다. [1] 글로벌 생활비 통계 사이트 ‘눔베오’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한국의 식빵(500g) 평균 가격은 2.98달러(약 4150원)로 조사 대상 124개국 가운데 11위를 차지했으며, 싱가포르가 21위(2.42달러), 홍콩 28위(2.26달러), 중국 43위(1.66달러) 순으로 조사됐고 일본은 1.51달러(약 2100원)로 54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1. 비싼 빵값은 원재료비가 비싸기 때문일까요?
음식 값이 다른 나라보다 비싸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우유를 비롯한 유제품 가격도 비싼 편이라고 들었던 것 같고, 밀가루나 설탕도 수입에 의존하니 저렴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이 요즘에는 빵 레시피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네이버 쇼핑에서 업소용 원료도 구매할 수 있으니 대략적인 가격을 계산하는게 어렵지 않습니다. 한번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구글에서 한국어로 소금빵 레시피를 검색하면 만개의 레시피가 가장 위에 뜨고, 그 아래로 블로그 링크가 뜹니다. 좀 더 공신력 있는 레시피를 찾아보고자 일본어로 검색하니 일본 제빵재료 전문점에서 공개한 소금빵 레시피[2]가 나옵니다. 여기에 네이버 쇼핑에서 구매가능한 업소용 빵 원료 가격을 적용해서 계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금빵 6개 기준입니다.
개당 248원이 나옵니다. 그런데 반죽이 그릇에 눌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을테고, 가끔 제대로 발효가 안되거나 오븐에서 제대로 구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원료 손실을 5% 정도로 추정하면 개당 261원으로 다소 가격이 올라갑니다.
파리바게트에서는 소금빵을 2,7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정말 소금빵 원료가 248원에서 261원 사이라면 원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상식과 좀 다른 결과라 지금 계산한 건 그냥 이론적인 가격이고, 제빵업계에선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어서 저것보다 원료비가 더 드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검증을 위해 '소금빵 원재료가'로 구글링을 한번 더 해봤습니다. 요즘 소금빵 이야기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만발하다 보니 현업 제빵사들이 올린 글이 다수 검색됩니다. '소금빵 원가계산(현직입니다' 라는 글이 있어 클릭해보니 [3] 유기농 밀가루와 고급 고메 버터를 사용할 경우 개당 620원 정도 원재료비가 든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건 고급 원료를 쓴 거라 일반적인 경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행이 해당 게시물에 리플로 '대부분 빵집은 강력분 20kg 2만원, 중력분 20kg 1만8천원, 버터 450g 6천원 짜리 사용하며 이 경우 250원/개 정도 나온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위의 계산과 거의 일치합니다.
원재료비가 원인이 아니라면 다음으로 떠오르는 건 인건비입니다. 그런데 1인당 GDP를 고려하면 프랑스, 일본, 미국의 인건비가 우리보다 저렴하지는 않으니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이들 국가보다 비싸다는 것도 갸우뚱 합니다. 게다가 다른 외식 메뉴들 보다도 빵의 가격이 유독 튀다보니 임대료가 주 원인이라고 보기에도 미심쩍습니다. 건물주들이 담합해서 빵가게에만 특별히 임대료를 높게 책정할 리는 없으니까요.
유독 높은 빵 가격에는 원가, 인건비, 임대료 등의 요인 외에 무언가가 더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 빵의 특성에 대해서 공부해봤습니다.
2. 빵은 다른 음식과 어떻게 다를까요
밀가루 속의 전분은 빵을 구울 때 물과 열을 흡수하여 부드러워지고, 반대로 식으면 물을 배출하면서 딱딱해지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갓 지은 밥은 부드럽지만, 수분을 잃은 밥알이 플라스틱 처럼 딱딱해지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빵은 굽고 나서 하루만 지나도 단단하고 질겨져서 먹기 곤란해지기 때문에, 그날 구운 빵은 그날 판매하라는 것이 베이커리의 철칙입니다.
여기까지 내용을 정리한 뒤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바게트 같은 빵들은 구입한 다음날 먹기 힘들 정도로 질겨지고 그 다음날엔 돌처럼 딱딱해지지만, 소금빵이나 크로아상 같은 빵들은 괜찮던데요? 궁금한 내용을 우선 언어 인공지능에게 물어본 뒤, 답변 내용의 사실 검증을 위해 추가로 구글링을 해봤습니다.
바게뜨가 딱딱해지는 이유는 수분을 밀어내고 빵 전분끼리 엉겨붙기 때문인데 버터 등의 유지가 들어가 있으면 수분을 배출하고 빵 전분끼리 달라붙는 것을 억제해서 부드러운 식감이 지속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버터를 넣은 빵은 부드러우니까 며칠 쌓아두고 팔아도 되지 않나? 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한번 더 궁금증을 해결해 봤습니다.
버터든 식용유든 돼지 비계든 식용 지방은 오래 놔두면 먹으면 안될 것 같은 냄새가 나고 이걸 산패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오래된 참기름에서 나는 살짝 맛이간 냄새가 대표적인 산패취랍니다. 빵을 만들 때 버터가 200℃ 가까운 온도로 뜨겁게 달궈진 뒤 공기에 노출하는 상황이다보니 더욱 빠르게 산패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게다가 버터가 들어간 빵은 갓 구웠을 때 표면 수분이 15%, 내부 수분이 40~45% 정도를 유지하며 겉바속촉인 상태가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빵 내부의 수분이 껍질로 이동하기 때문에 껍질부위 수분 함량을 높여 바삭거리는 식감은 사라지고 질긴 식감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즉, 버터를 바른 빵도 바게뜨 마냥 다음날 파는 게 아니라고 하네요.
우리가 외식으로 사먹는 음식들은 대부분 주문 즉시 조리가 들어가지만 빵은 반대로 미리 만들어놓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렸다 파는 음식입니다. 유통기한 하루짜리 음식이 몇 명이나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미리 잔뜩 만들어두면 매장 문 닫을 때 버려야 하지 않나? 말이 되나? 싶었는데 검색해보니 보통 매장 문닫기 한두시간 전부터 할인을 하고 그래도 안팔리면 버린다고 합니다. 프랑스 같은 데서는 매일 만드는 빵의 15%를 버린다고[4]하네요. 그리고 불가피하게 이 폐기하는 빵 가격은 다음 날 파는 빵에 전가가 됩니다.
오! 그렇다면 폐기손이 다음날 전가되기 때문에 빵값이 비싼건가? 라는 발상이 떠올랐는데, 전세계 모든 빵을 먹는 나라에서는 빵이 폐기됩니다. 우리만 유독 비싼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그냥 빵에 대해 공부한걸로 만족하고 다른 이유를 더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3. 일본은 왜 빵이 싼가
일본은 세계에서 우리와 가장 유사한 식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체격도 비슷하고, 최근에는 소득 수준도 큰 차이없는 수준이 됐습니다. 그렇다보니 외식 비용도 우리와 큰 차이 없는 수준인데 빵은 우리보다 눈에 띄게 쌉니다.
디씨 빵 갤러리 개념글을 눈팅하고 일본에 사는 한국 유튜버 채널도 들락날락하면서 우리나라와 빵 시장이 어떻게 다른 조사한 결과를 말씀드리자면, 우선 일본인들이 빵을 많이 먹습니다. 그것도 티가 나게 많이 먹습니다. 일본 총무성에서 조사한 데이터를 보면[5] 일본인들은 2021년에 1가구(평균 2.21명)당 식빵에만 10,251엔을 지출했다고 합니다. 일본 슈퍼에서 파는 식빵이 1근(340g, 핸드볼 공 정도 크기 포장)에 180엔 정도고, 할인을 하면 160엔 이하에 파는 것들도 종종 보입니다. 연간 지출 금액을 180엔으로 나누면 55~60봉 정도인데 할인을 해서 사는 비율도 높을 테니 2.21명으로 구성된 가구당 60~70봉 정도를 먹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우리가 2023년에 인당 라면 77봉 정도를 먹었다고 하는데, 일본은 우리가 라면을 먹듯이 공장에서 만든 식빵을 먹고 있는 셈입니다.
다음으로 눈에띄는 다른 점은 일본 빵의 주류는 우리처럼 빵 가게에서 사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만들어 슈퍼나 편의점 같은 소매점에서 파는 빵이라는 점입니다.
위 그래프는 일본의 전자 광고지 서비스 업체에서 6,279명을 대상으로 어디서 빵을 사는지 복수응답 앙케이트를 한 것[4]인데 슈퍼마켓이 69.6% 슈퍼마켓 안에 있는 빵집이 56.6%, 그냥 빵집이 54.8%, 편의점이 37.4%, 드럭 스토어가 25.9% 순서라고 합니다. 빵 전문점이 아닌 슈퍼마켓, 편의점, 드럭 스토어를 합하면 133% 로 슈퍼내 빵집이나 그냥 빵집보다 비중이 높습니다.
1억2천만이 넘는 인구가 이렇게 빵을, 특히나 공장에서 만든 빵을 열심히 소비하니 자연스럽게 빵 업체의 규모도 헤비급입니다. 업계 No.1인 야마자키 제빵 한 곳의 1년 연결 매출이 1.2조엔 수준으로 단일 기업으로 한국 빵 시장 전체(양산빵 시장 1.2조 + 베이커리 시장 4.5조 정도로 추산) 규모를 넘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의 농심같은 위상을 가진 라면회사인 닛신 식품의 매출이 2024년에 7,300억엔 정도니 상대적으로 더 체급이 크게 느껴집니다.
이렇게 공장 빵이 메인스트림이 되다 보니 한국에서 생생우동 미만의 우동을 파는 매장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된 것 처럼, 대기업 양산빵 이하의 품질은 자연스럽게 컷이 되면서 가격 저지선이 만들어집니다. 그 결과 우리보다 1인당 소비 규모도, 인구도 훨씬 큰 빵 시장을 가지고 있지만 베이커리의 수는 12,116 업소[6]로 19,430 업소인[7] 한국대비 37%나 적습니다. 이렇게 매장이 적은 편인데도 외식 컨설팅 업체의 게시물을 참고하면 3년내에 30~40% 정도의 매장이 폐점한다고 합니다. [8] 일본인들이 그렇게 많이 빵을 먹어도 베이커리 점포당 평균 매출액이 [9] 2021년 기준 2,048만엔 수준으로 낮은 편이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빵을 파는 건 여러모로 어려운 일일 것 같네요.
4. 우리는 왜 빵이 비싼가 I
일본 빵이 싼 이유는 공장빵이 메인스트림이기 때문이라는 시장 구조 분석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었으니, 한국 빵 값이 비싼 이유도 마찬가지로 시장 구조 분석을 통해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소비자의 관점을 잠시 내려놓고 빵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업계 사람의 눈높이로 빵 시장을 들여다 봤습니다.
한국 베이커리의 상품 마진은 보통 개인이 하는 동네 빵집[10]도 '별로 안남음 빵마진 진짜 진짜 엄청높아봐야 20%', 이원일 같은 유명 셰프가 하는 빵집도[11] '비밀 베이커리'의 현재 수익률은 약 20% 내외', 전국구 빵집도[12] '채소빵 가격은 하나에 1800원이다. 이성당은 여기서 324원(판매가의 18%)을 빵집 이익으로 남긴다. ', '성심당의 튀김소보로는 1개에 1500원이다. 마진은 이성당보다 좋다. 1개 팔 때마다 300원(판매가의 20%)이 빵집 이익으로 돌아간다.' 20% 내외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파리바게트도 20%일지 궁금해집니다. 2020년대 한국 빵을 상징하는 기업은 물량의 파리크라상과 평판의 성심당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국내 베이커리 시장 규모는 4조5,380억원 이었으며,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가 각각 2조 원, 7,000억 원으로 두 프랜차이즈가 전체 시장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13]
파리크라상은 워낙 규모가 큰 기업이고 여러 자영업자들이 얽혀있다보니 공정위에서 가맹점주 권익 보호를 위해 가맹점수와 점포당 평균매출액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14] 공시에 따르면 2023년 파리크라상 (파리바게트) 가맹점수는 3,419 개고 가맹점 평균매출액은 7억 5,474만원이라고 합니다. 음? 잠시만요. 7.5억? 만약 이익이 20%나 남는다면 연 수입이 1.5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어라? 저는 글 작성을 중단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파리크라상에 가맹점 신청을 해야 하는 걸까요?
잠시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보니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 정도 수입이 유지가 됐다면 온 천지에 파리크라상과 뚜레쥬르가 가득하고, 대기업들이 여기저기 프렌차이즈 빵 시장에 뛰어들었을 것 같습니다.
구글링을 해보니 서로 다른 외식 컨설팅 업체에서 파리바게트는 고소득이 보장되는 꿀같은 프랜차이즈라는 복붙 수준의 비슷한 내용의 글을 잔뜩 올려둔 것이 눈에 띕니다.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함정이 분명 있을 것 같습니다. 파리바게트에 젖과 꿀이 흐른다면 온 천지에 파리크라상과 뚜레쥬르가 가득하고, 대기업들이 여기저기 프렌차이즈 빵 시장에 뛰어들었겠죠.
이럴 때 대기업 눈치 안보고 할말은 한다는 자영업 전문 유튜버들이 도움이 됩니다. 유튜브 검색으로 구독자 수 10만명인 자영업 다이어리 채널에 조회수 11만인 '파리바게뜨 하루 207만원 팔면 한달에 얼마나 벌까? (ft.10년차 자영업사장)' 이라는 제가 딱 원하던 내용이 담겨있을 것 같은 영상을 찾아냈습니다.[15] 게다가 2025년에 올라온 영상이라 시류도 잘 반영할 것 같습니다.
6분 정도의 길지않은 알찬 영상이니 직접 보시는 것도 괜찮지만, 바쁘신 분들을 위해 해당 영상에서 언급한 내용을 두 가지 정도로 정리해 봤습니다. 먼저 창업비용은 4억 내외라고 합니다. 파리바게트는 프랜차이즈 관리를 위해서 30평 이상의 매장이 확보되어야 가맹을 한다고 하네요. 이는 파리크라상에서 고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음으로 파리바게트의 월 순수익을 계산하면 세전으로 294만원 수준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는 4억이나 되는 창업자금을 현금으로 보유하고 있는 분은 드물기 때문에, 신용보증재단에서 보증을 받아 8천만원 정도를 빌리고 모자란 금액은 주택담보대출로 충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리를 4%로 잡을 경우 4억을 대출하면 첫 해에 연 1600만원, 월 133만원씩 이자가 청구되기 때문에 세전 수익은 160만원까지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니 영상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수도권에 차린 파리바게트는 사장이 빵을 굽지 않을 거면 창업하지 말고 그 시간동안 다른 곳에 가서 알바를 뛰는 것이 나은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보통은 사장님이 새벽에 일어나서 빵을 굽고, 사모님이 매장을 길게 보는 식으로 운영해서 수익을 올리게 되죠. 그리고 영상 베스트 댓글로 파바 사장님이 이 영상의 내용은 사실이라는 리플을 남겼습니다.
빵을 비싸게 파는 사장님이 마진을 많이 남기기 때문에 비싼 것이 아니라면 빵이 비싼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5. 우리는 왜 빵이 비싼가 II
위에서 본 파리바게트 수익표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2,700원에 파는 소금빵의 원재료비는 앞에서 계산한 대로 250원 내외이니 재료 원가가 10% 이하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앞의 표에는 63% 로 나와 있습니다. 이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원가 250원은 밀가루, 소금, 설탕, 버터등의 순수한 원료가 기준이 된 값이지만 뒤의 큰 숫자는 발효가 끝난 냉동 생지에 붙은 가격이기 때문입니다.
빵 제조 공정을 굵직하게 네 단계로 나누자면 ① 원료를 계량한 뒤 섞어서 반죽을 치대고 ② 반죽을 다시 1인분 분량으로 나눠서 빵 모양대로 성형한 다음 ③ 효모가 빵을 부풀게 하기를 기다린 뒤 ④ 오븐에 넣어서 구운 후 식힌다가 됩니다. 냉동 생지는 앞의 ①~③ 까지의 과정을 대형 공장에서 미리 끝낸 뒤, 가맹점 사장에게 납품하는 것을 말합니다. 파리크라상은 가맹점가입비와 인테리어 시공 수수료로 초기 수익을 올린 뒤, 냉동 생지를 가맹점에 판매하여 수익을 올린다는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냉동 생지에의 납품가에는 재료비, 파리크라상 공장 근무자 인건비, 전기 및 가스 등 유틸리티 비용, 파리 바게트의 판매관리비, 빵 R&D 비용, 공장에서 가맹점까지 배송하는 비용, 파리크라상 마진이 모두 녹아있습니다. 영상에서 언급한 원가 63% 과 이 글의 서두에서 계산한 10% 이라는 숫자의 갭이 발생하는 이유죠.
냉동 생지를 이용해서 빵을 구운뒤 판매하는 과정은 일반적인 식당에서 재료를 직접 손질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밀키트를 사다가 조리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이 보장되고, 균일한 품질이 나오며, 특별한 조리기술을 가진 사람을 채용하지 않아도 되고, 빠르게 조리를 끝내고 서빙할 수 있으며, 요리사 한둘이 감당하기 어려운 다양한 메뉴를 취급할 수 있습니다. 반대급부로는 원가가 비싸서 수익을 남기기 위해선 비싸게 팔아야 하지만 그렇게 팔아도 딱히 남는 게 없다는 거고, 시간이 지나도 조리담당의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6. 결론: 우리는 빵이 왜 비싼가
식당 한두곳이 밀키트를 이용해서 음식을 조리한뒤 비싸게 판다고 해도 딱히 대세에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식당이 점점 늘면 주위 가격에 영향을 미치게 되겠죠. 한국 빵값이 비싼 이유는 저렇게 밀키트 같은 것을 사용해서 조리해서 파는 매장이, 전체 베이커리 매출의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2023년에 전국의 베이커리 매장에서 1년동안 빵을 팔아서 올리는 매출액이 4조 5300억이었는데, 파리바게트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의 별도 매출은 당해 1조 8,512억원이었습니다. 거기에 CJ푸드빌이라는 파리 크라상보다 베이커리 분야에서의 체급은 작지만 만만하지 않은 기업이 하나 더있죠.
일본은 야마자키 제빵이라는 거대한 기업 외에도 조단위 매출을 올리는 시키시마 제빵과 후지빵이라는 업체가 더 있습니다. 이들은 대량 생산과 효율적인 유통망을 통해 일정 품질이 넘는 빵, 특히 식빵과 같은 기본 제품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대량으로 공급합니다. 이 가격이 일본 소비자들이 인식하는 '빵의 기준 가격' 즉, 가격 닻(Price Anchor) 역할을 하게 되고 이들 존재가 시장 전체의 빵값에 상방경직성을 부여합니다.
반대로 한국은 양대 프랜차이즈가 베이커리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고, 이들이 고가 기준선을 형성합니다. 개인들이 하는 빵집이 프랜차이즈보다 현저히 낮은 가격을 책정하면, 소비자들에게 품질이 떨어지는 빵이라는 인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개인 빵집들은 오히려 프랜차이즈보다 더 좋은 재료, 특별한 레시피, 제빵사의 기술력을 내세워 프리미엄 제품으로 포지셔닝하고, 3,500원~4,000원 등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빵 값에 하방 경직성이 생기는 거죠.
과거 저가 빵집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공장제 양산빵이 없는 것도 아닌데 결국 시장의 선택을 받아 주류가 되지 못했고 현재와 같은 구조로 고착화 됐습니다. 양대 프랜차이즈 빵집의 가맹점 수는 합쳐서 4,700곳 가량 됩니다. 거기에 파리크라상의 직원수먼 따져도 5,400명이 넘으며 영업이익률은 1%를 좀 넘는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이미 비싼 빵 사업은 1만 가구가 넘는 가정의 생계가 걸린 문제가 되어버려 몹시 손대기 어려운 문제가 됐습니다.
물론 저렴한 빵으로 보다 많은 소비자들에게 만족감을 주려는 개인 빵 사업자에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재료비 자체가 부담될 정도로 비싼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장이 제빵 기술을 익히고, 도구의 도움을 받으면 반죽 후 발효까지 저비용으로 넘길 수 있습니다. 파리바게트 같이 제과와 제빵을 아우르는 빵 백화점 같은 구색을 갖추기는 어렵지만, 제과점이 아닌 산책중에 들르는 동네 빵집에 3~40종의 빵과 케이크를 기대하고 방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로컬 빵집의 단골들은 익숙한 맛의 빵을 적당한 가격에 구입하기를 원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