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정해진 언어로만 똑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 언어를 만들거나 다듬어서 똑똑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즉
언어 통제력이 없는 고지능자가 있고,
언어 통제력이 있는 고지능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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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리더 국가라면,
언어 통제력이 있는 고지능자가 사회 곳곳에 필요할 것입니다.
리더 국가가 아니라면,
다른 리더 국가로부터 언어를 수입해서 쓰기만 할 것입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언어는
그 국가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과거에는 리더 국가였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국가의 능력을 좌우하는 주요 단어들이
외국에서 수입한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면, 과거에도 리더국가가 아니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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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자유가 필요합니다.
언어 통제력이 필요합니다.
십년 쓰다 버릴 유행어만 만들게 아니라,
앞으로 백년 이상 유용하게 쓰일 단어들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기존 단어도 의미를 다듬어야 합니다.
단어는 기본적으로 자기 유리한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언어 생성의 기본 원리는
자기 유리한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개인언어가 아니라,
집단언어라면,
우리에게 유리한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로움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은 단어는
다듬어야 합니다.
다듬어서 이로움을 최대화해야 합니다.
그럴 수 없으면 폐기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단어를 만들면 될 것입니다.
근대 일본인에게 유리한대로 만들어진 단어를
우리가 그대로 쓸 필요는 없습니다.
고대 중국인에게 유리한대로 만들어진 단어를
우리가 그대로 쓸 필요는 없습니다.
현대 미국인에게 유리한대로 만들어진 단어를
우리가 그대로 쓸 필요는 없습니다.
순이기주의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단어를 만들어 써야 합니다.
물론 우리에게 유리하다면,
그걸 중국인이 만들었든 일본인이 만들었든 미국인이 만들었든
잘 쓰면 됩니다.
단어를 수입하는 건 나쁜게 아닙니다.
우리의 이로움에 부합하면 쓰면 됩니다.
다른 나라가 만들었다고 무조건 쓰면
노예근성이고,
다른 나라가 만들었다고 무조건 안 쓰면
반동근성입니다.
둘다 자유라 하기 곤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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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언어를 만들어서 쓸 때,
그것은 사실상 '외국어'와 유사한 게 됩니다.
기존에 있는 단어인데,
그 의미를 수정해서 쓴다고 해봅시다.
그렇게 개인노트에 생각들을 축적해온다고 해봅시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외국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번역이 필요합니다.
나는 이 단어를 이런 의미로 쓴다고 딱 정의를 내리던가,
아니면 그 단어의 사용을 글속에서 여럿 보여주고,
이를 통해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만약에 번역이 제대로 안 된 경우에는
혼돈 또는 오해가 생길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질문을 하면 됩니다.
만약에 소설을 쓴다고 해봅시다.
새로운 단어를 창작하여 글을 썼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그 책에서 온전히 의미를 다 알 수 있게 적어야 할 것입니다.
질의응답을 통해 보충할 수 없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서 썼을 때,
셰익스피어에게 이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물어볼 수 없습니다.
책 읽다보면 자연히 무슨 의미인지 알게끔 쓰여져야 합니다.
과학은 짧게 정의를 하고
문학은 글속에서 자연히 알게 합니다.
짧고 정확하게 정의하는
과학이나 프로그래밍은 오히려 특수한 것이고,
대개 정의란 — 의미의 요약입니다.
사전을 외웠다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온전히 다 안 거라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 언어를 만들거나 다듬을 때에도
간결하고 정확하게 정의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따라서
글이나 말을 통해 그 단어를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언어가 발달하고, 언어가 다듬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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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강조하자면,
언어 생성의 기본 원리는
자기 유리한대로 만드는 것입니다.
기존 언어는
바위처럼 단단히 굳어져 있습니다.
이로움을 향한 강한 의지!
그것이 당연함을 깰 수 있게 만듭니다.
자기 유리한대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보편성이 있으면 집단에 전파되는 것입니다.
❖
한자는 언어를 새롭게 생성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한자는 언어의 의미를 다듬기 어렵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이미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벳에는 의미를 가진 이미지가 없습니다.
한자에는 의미를 가진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한자는 그 의미에 구속됩니다.
물론 한자를 처음 쓰던 시점에서는
이런저런 한자를 스스로 생성해서 썼을 것입니다.
아직 한자가 얼마 없으니, 일일이 다
자기 유리한대로 만들어서 썼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상당히 흐르자
언어의 자유가 사라집니다.
중국인조차도 구속됩니다.
고대 중국인에게 구속됩니다.
그들은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중국이 유럽에 역전당한 이유일 것입니다.
언어는 무서운 것입니다.
중국은 마약으로 망한게 아니라,
언어로 망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아편전쟁으로 망한게 아니라,
언어의 자유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에 망한 거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한자로부터 독립한지
50년 정도가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합니다.
중국과 일본이 못하는 일을
한국은 할 수 있습니다.
한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가지고
유행어만 만들게 아니라,
100년 이상 가는 스테디셀러 같은
그런 언어들을 다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이기심을 극대화하면,
기존 언어에 문제점이 보일 것입니다.
혹은 새로운 언어가 필요한 부분이 간파될 것입니다.
새로운 언어를 생성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보편성이 있다면,
전세계에 퍼질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언어를
세계인이 쓴다는 것은 곧
우리가 리더 국가라는 걸 의미합니다.
※ 부록 :
A : 언어는 어떻게 만드나요?
B : 그 방법 중 하나는 '본질'입니다. 본질로써 의미를 만들면 됩니다. — 대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찾았다면, 그 본질을 가지고 그 대상을 가리킬 언어의 의미를 만들면 됩니다. A : 다른 방법은요? B : 연상하기에 유리한대로 만들면 됩니다. 예를들어 코끼리는 '코'를 연상케 하죠. 그리고 그건 코끼리를 잘 나타냅니다. 그런 식으로 단어가 대상을 연상하는데 유리하게 만들어지는게 좋습니다. 개념어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인데, 그 개념의 핵심을 떠올리기 유리한 단어를 조합하거나 변형해서 만드는게 좋습니다. — 연상에 유리하게끔 만들어지고, 직관력을 높이는데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연상에 불필요한 건 가급적 제거해서, 가볍게 만들어야 합니다.
A : 또다른 방법도 있나요?
B : 세상이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다 — 이런게 있을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마음을 품고 혹은 밝고 따뜻한 마음을 품고 — 세상이 이로워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화목해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힘을 얻고 강해졌으면 좋겠다 — 이런 바램을 품은 채로, 그에 부합하게 단어를 만들면 됩니다.
A : 바램이 단어를 바꾸나요?
B : 단어 중 일부는 그저 사실에 대한 것이지만, 또다른 일부는 가치가 들어간 것입니다. 바램, 태도, 가치관 — 이런 것에 따라서 '본질'이 무엇이라 볼 것인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연상'시키면 좋을지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에따라 새로운 단어가 생성되거나, 기존의 단어가 수정되거나, 기존의 단어가 폐기될 것입니다.
A : 혹시 주의할 점이 있나요? B : 기존 단어를 이런저런 구실로 못 바꾸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당연함에 의한 저항을 만만히 봐선 안 됩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하나는 관료주의입니다. 관료적 효용을 위해서 단어를 못 바꾸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학자들도 관료화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동일한 개념을 오직 같은 단어로만 가리킬 때, 의심해봐야 합니다. 마치 표준부품의 효율성이 그러하듯, 소통이 잘 되도록 통일시킨 유용함이 있지만, 다르게는 생각할 수 없게 경직성을 만든 것일 수 있습니다. 학문도 관료화되면 창조력을 잃게 될 것입니다. 발전이 정체된 학문일수록, 언어를 의심해봐야 합니다.
A : 기존 단어를 바꾼다는 건, 내가 쓰는 걸 의미하는 거죠?
B : 물론 그렇습니다. 개인언어를 뭘로 쓸지는 자유라는 거죠. 생각의 자유이죠. 그걸 글이나 말로 한다면 표현의 자유이고요. 표현은 자유이지만, 다른 사람이 그 개인언어를 거부할 자유도 있는 것이지요.
A : 새로운 단어를 만들었으면, 기존 단어는 폐기하는 건가요?
B : 그렇습니다. 다만 꼭 그런 건 아닙니다. 두 단어 모두 써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걸 가리키는데, 두 개의 단어를 쓴다는 것은, '두 개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중언어 같은 것이지요. 독일어를 잘 하는 한국인은 같은 것을 한국인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고, 독일인의 관점으로도 볼 수 있겠지요. 그 두 관점을 종합할 수도 있겠고요. 그럼으로써 한국어만 아는 사람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생각해낼 수도 있고, 미처 관찰하지 못한 걸 통찰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관점의 다양성이 그런 파워를 만드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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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언어 자체가 사회적 약속이 있어야 성립하는데 개인이 마구 만들고 폐기하면 그건 언어가 아니죠 과장하면 그냥 울음소리?도 안되는 공기의 진동따리죠...
뭐 만드는거까지야 자유지만(마음대로 줄이던지 창조하던지 등)던져진 순간 그게 사회에서 받아드려졌을때나 언어죠...
언어가 사고의 한계를 만드는건 어쩔 수 없지만 언어를 통해 얻은 이점의 반대급부죠...
언어는 대부분 개인 또는 2인에 의해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해요. 예를들어 밭을 그리고 그 밑에 힘을 그리면, 그것이 남자를 뜻한다는 걸 누군가 만들었겠죠. 처음에는 개인이 만들고, 그 다음 친구나 가족과 그걸로 소통하고, 나아가 부족집단에 수용되고 그런 식으로 전파되었을 거란 것이죠. 농사짓던 집단이었을 것이고, 밭과 힘이 있으니 남자가 잘 연상되어서 유용하게 쓰이고 잘 전파되었겠죠. 그러나 오늘날 과연 밭과 남자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의문이죠. 밭에서 힘을 쓰고 있으면 농기계 아닐까 싶고요.
맞아요. 프로그래밍 언어도 여럿이죠.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고, 언어마다 장단점이 있겠고요. 특정 언어로 구현한 프로그램을 다른 언어로 번역해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넓게 생각해보면, 함수를 정의하고 쓸 때, 그 함수명이 바로 언어라 할 수 있을 거예요. 이미 있는 함수를 호출해서 쓰는 수도 있겠지만, 기존 함수를 자기 쓸모에 맞게 변형하는 수도 있겠고, 아예 새로운 함수를 직접 만들어서 이름 붙이고 쓸 수도 있겠죠.
이미 이뤄지고 있는 일 처럼 보입니다. 만약 언어체계나 문자, 문법 등을 통째로 바꾸는 걸 얘기하시는 게 아니고,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거나 단어의 의미가 변용되거나 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죠.
그 예로 즐겨찾기, 바로가기, 나들목 같은 단어들이 있을 것 같고요, 현타 같은 단어도 원래의 의미에서 벗어나서 사용되고 있죠. 그리고 그러한 단어들이 생겨나는 과정도 본문에 있는 내용과 흡사한 것 같습니다. 다만 중간에 사회적 합의라는 과정이 들어가면서 그 적용이 한번에 이뤄지지 않을뿐이라 봅니다.